“네가 우리들의 재판관이냐?” 이 말을 풀으면, “네가 우리들의 하나님이냐?”라는 뜻이다. 롯의 집 앞에 몰려들었던 폭도들은 롯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말을 했던 것은 사실 그들이 롯의 말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롯은 자기 집에 온 손님들을 욕보이려는 악당들에게 악한 일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였다. 그 말은 롯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사실은 롯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신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나님의 음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전달되는데, 그 당시에는 롯의 입술을 통해 전해진 셈이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보였어야 할 정당한 반응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윗에게서 찾을 수 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피난길에 올랐을 때, 시므이가 비난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신을 비난하는 그 소리는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억울한 말이었다. 그래서 다윗의 부하들은 화가 치밀어 시므이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다윗은 시므이를 통해 자신의 허물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시므이를 통해 자신을 저주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충신 우리야를 배신하여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던 파렴치범이 아니던가?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시므이의 비난을 오히려 회개의 기회로 삼았다. 그런 다윗은 살았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에게는 사유하심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은 롯의 입술을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닫았다. 그리고 결국 망했다. 그들은 애써 하나님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고 확신했다. 무슨 짓을 해도 안전할 것이며, 자신들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자기들이 정의였고, 자기들이 진리였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망했다.
우리는 실수할 수 있다. 우리는 넘어질 수 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다. 그게 인간이다. 다윗과 같은 사람도 넘어질 수 있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쉽게 넘어질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네가 하나님이냐?” 외치며, 뻔뻔하게 계속 죄를 지을 수 있고,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회개하며 엎드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