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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을 막은 나귀 (민 22:25-33)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가는 과정들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점점 가까워질 때에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굉장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가까이 가면 결국 원래 그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들, 그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통해서 피해를 당할 것이 분명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던 그 터전이 쑥대밭이 되는 그런 위기의 상황 가운데서 그 가나안 사람들은 정말 두려움이 크게 임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야기는 그 가운데 모압 민족이라고 하는 민족이 있었는데, 그 모압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모압 왕 발락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 발락이라고 하는 사람은 히브리 민족이 다가올 때 이들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들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모압 왕 발락은 주술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이 시대에도 주술의 힘을 믿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는데요. 이 당시에는 주술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느껴지던 시대였습니다. 주술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주술의 힘을 통해서 우리가 물리치고 싶은 것을 물리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던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이 모압 왕 발락은 주술의 힘을 빌어서 히브리 민족을 어떻게 물리쳐 보려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용하다는 그 주술사를 찾게 된 것이죠. 정말 빼어난 점성술사 뛰어난 그런 점성가들 뛰어난 그런 주술사들을 모색해서 찾아보아서 결국 그가 발견해 낸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인물이었는가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는데 이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선지자였을까요? 아니면 그 당시 모압 땅에서 활동하고 있던 주술사, 그 당시 모압땅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방 점술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뭐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발람에게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것으로 민수기에서는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발람이 누군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는데 타락한 선지자가 아니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당시 이방 주술사 이방 점술사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는 아마도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보기보다는 그 당시 이방 땅에서 활동하고 있던 주술사 중에 한 명이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울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그 지방에서 용하다고 하는 점술가를 발람을 이렇게 찾아내어서 그 사람을 초빙하고 이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다가오고 있는 그 히브리 민족을 향해서 주술을 부려서 저주를 쏟아부어서 그들을 물리치고자 하는 주술적인 방법으로 히브리 민족을 물리치고자 하는 계획을 이 발락이라고 하는 모압 왕이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초대에 이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거부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원래 이 주술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돈을 주면 복채를 주면 그 복채를 받고 그 복채를 준 사람을 위해서 축복을 빌어주던가 아니면 그 복채를 준 사람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저주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주술사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줄수사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찾아와서 히브리 민족을 저주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하며 많은 돈을 주는 이 요청을 거부할 리가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발람은 잠깐 기다려 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신과 접촉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모시는 그 신이 내게 뭐라고 말하는지 한번 들어보고 그리고 자신이 결정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지, 그런데 그날 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고요. 그리고 히브리 민족을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발람이라고 하는 주술사가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어제 내가 신으로부터 메시지를 들었는데 가지 말라고 합니다. 따라가지 말라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거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발락이라고 하는 모압 왕이 더 높은 사신들을 보내고 더 많은 재물들을 보내면서 초대하게 된 것이죠. 우리가 최고로 대우해 줄 테니까 가장 엄청난 복제를 줄 테니까 제발 와서 저 히브리 사람들을 저주해 달라고 그렇게 요청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발람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가지 말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단호하게 대답하는 겁니다. 못 간다 나는 갈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아무리 많은 은금을 준다고 해도 나는 갈 수가 없다고 대답을 하게 된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답해 놓고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또 무슨 이야기하는지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발람의 마음 가운데는 가고 싶은 거예요. 많은 돈을 주니까 은금을 많이 주고 최고의 대우를 해주니까 이 발람이라고 하는 주술사는 따라가서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날 밤을 기다려 보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첫 번째는 가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두 번째 밤 이번에는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발람에게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지만 그곳에 가서 함부로 말하지 말고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말을 하라고 그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내가 일러준 말만 하고 다른 말은 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그래서 발람은 너무나도 신이 나서 따라가게 됩니다. 따라가는데 따라가는 과정 가운데 그 길 앞에 하나님의 천사가 그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칼을 빼어 들고 죽이려고 그렇게 서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천사의 모습을 사람의 눈에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었던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막 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누가 보았는가? 나귀가 보았다는 거예요. 이 발람이 타고 가던 나귀가 보고 그 천사를 피해서 자꾸만 길을 이탈해서 딴 데로 가고 길을 이탈해서 벽에 부딪히고 하니까 화가 나서 이 발람이 이 나귀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똑바로 가라고 이야기하는데 나귀는 이미 칼을 들고 있는 천사를 보았기 때문에 똑바로 갈 수가 없습니다. 앞을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더 때리니까 갑자기 나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나를 때리냐고 주인을 향해서 항의합니다. 왜 세 번씩 나를 때렸냐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 주인인 발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네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고 내가 칼이 있었다고 한다면 너를 죽였을 거라고 하면서 분풀이를 하고 있는데 그 나귀의 대답이 무엇인가요? 내가 주인님을 언제 한 번 거역한 적이 있느냐 하면서 나귀와 발람과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뜨게 하셔서 칼을 든 천사를 보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를 통해서 발람이 말을 듣는데 내가 가는 길이 악하기 때문에 내가 막으러 온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랬더니 발람이 그때서야 깨닫고 아이고 안 가겠습니다. 그러면 그냥 되돌아가겠습니다 하는데 오히려 또 천사가 무슨 얘기를 하냐면 가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것도 좀 우리가 읽으면서 약간 이상한 것처럼 느끼긴 하는데 가긴 가지만 그러나 반드시 내가 시킨 말만 하라라고 하는 말을 듣고 결국 이 발람이 모압 왕 발락에게로 가서 이제 저주할 준비를 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발람은 거기에 가서 저주를 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말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 그 모압 왕 발락은 저주하라고 자꾸만 부탁하고 여기서 저주하라고 했는데 저주가 안 되고 오히려 축복이 나가니까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거기서 재단을 쌓고 또 거기서 저주하라고 하니까 또 저주하지 않고 또 축복하니까 또 다른 곳으로 옮겨서 자꾸만 시도했지만, 놀랍게도 이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히브리 민족을 향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하는 것이 민수기에 나와 있는 그 긴 이야기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첫 번째는 뭐라고 예언을 했나요? 민수기 23장 8절 9절 말씀 다 읽어보지는 않겠지만 그 가운데 핵심적인 것만 본다고 한다면 민수기 23장 8절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리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에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홀로 산다고 하는 말이 무슨 얘기냐 하면은 빼어난 그야말로 최고의 민족 두각을 드러내는 그런 민족이 될 거라고 하는 그런 예언을 이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 히브리 민족에 대해서 예언을 해 주게 된 것이죠. 보통 다른 민족과 같지 않다. 일반 민족과 같지 않고 아주 빼어난 민족이 될 거라고 축복하는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이 발락이라고 하는 모압 왕의 마음이 정말 난감했습니다. 저주해 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축복해 주니까 난감한 것이죠.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또 저주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두 번째는 이 발람이 뭐라고 예언을 합니까? 민수기 23장 19절에서부터 20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그렇게 축복한 거예요. 계속해서 연이어서 23절 24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을 해야 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때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은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이야기한 것이 이 히브리 민족이 어떤 민족이 될 것인가 강한 민족이 되어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강하게 만드시고 축복해 주시고 지금 저 애굽 땅에서 왔지만 그런 나은혜가 아니라 이 땅을 차지하고 정말 강대한 민족이 될 거라고 하는 그 예언을 두 번째 예언에서 해준 거예요.

그다음에 이 발락이 이제는 너무나도 난감해서 그러면 저주도 하지 말고 축복도 하지 말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시 또 한 번 삼세판이니까 한 번 더 데리고 가서 거기서 예언하라고 했더니 거기서 아주 놀라운 예언을 해 줍니다. 민수기 24장 8절 9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죠.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의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도 화가 나서 그렇게 그러고 있으니까 발람이 이제는 돌아갑니다.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예언을 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예언한 내용이 민수기 24장 17절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규라고 하는 것은 왕이 들고 있는 이 긴 막대기 그거죠.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처럼 이 24장 17절의 예언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먼 훗날 한 별이 나타나서 그래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게 될 거라고 하는 그 메시아에 대한 예언까지 한 이야기가 오늘 이 발람의 이야기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 전체적인 이야기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꽤 길었는데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아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정말 놀랍다고 하는 것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놀라운가요?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한 주술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냈다고 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주술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존재잖아요. 점성가라 점을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존재가 바로 그 주술사들이고 점성가들이고 신접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예언이 어느 사람을 통해서 이런 예언이 나오게 되었는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미래에 대한 예언과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했다고 하는 사실이 정말로 놀라운 것이죠.

이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 것은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을 다 다스리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한 사람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른 사람들 사람들의 하나님일뿐만 아니라 악인도 악한 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시기도 하고, 저 바벨론이라고 하는 적국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사용하시기도 하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모든 존재들을 다 통치하고 관할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이방 주술사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실 수 있다고 하는 점이 아주 놀라운 것이죠.

성경에 보면 이런 예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번 경우만 나오는 게 아니고 여러 경우에 많이 나오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서 예전에 아브라함이 애굽 땅으로 가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애굽 왕 바로 왕의 입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책망하시는 일을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바로 왕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책망하는 일들을 하신 것을 우리가 창세기의 말씀에서 보게 되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7년 대풍년의 기간과 그리고 연이어서 나타나는 7년 대기근의 기간이 있을 거라고 하는 그 계시를 누구에게 주었는가 저 애굽 땅 불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 그 애굽 왕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서를 보게 되면 사울 왕이 누구를 찾아가냐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신접한 여인은 하나님께서 제거하라고 하신 그런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사람일 텐데, 놀랍게도 그 신접한 여인이 불러들인 그 사무엘의 그 혼의 이야기를 통해서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 왕에게 전달해 주는 그 모습을 사무엘서에서 보게 되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보면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사악한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아니한 사람이었지만 그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악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이야기해 준 것이 요한복음 11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9절에서부터 52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오.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로라 정말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을 뛰어넘게 일하시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이죠.

특별히 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나귀가 말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귀가 입을 열어서 자신의 주인인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을 꾸짖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요. 정말 나귀가 말을 했을까요? 어땠을까요? 어 그 대답은 두 가지 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우선 어 나귀가 정말 입이 열려서 말을 했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니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신다고 한다면 나귀가 입을 열어서 말을 하게 하시도록 하도록 만드실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홍해 바다를 가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홍해 바다만 가르실 뿐만 아니라 나귀의 입을 열어서 그 나귀를 통해서 자기의 주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도록 만드신다고 한다면 충분히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귀가 말한 게 아닐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하나의 우화적인 것으로 이해할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이솝 이야기를 보면 동물들이 말을 하잖아요? 사자와 생쥐가 이야기하고 그 이이라고 하는 이솝이 만든 우화에 보면 동물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그런 장면들이 나오는 건데 그런 문학적인 장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전달해 주는 방식이 있듯이 성경에 이 부분이 이 부분의 장르가 문학적인 장르가 우화적인 것이라고 본다고 한다면 실제로 말을 했다기보다는 이러한 나귀의 말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기 위한 하나의 문학적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이론적으로 이야기하든 저런 쪽으로 이해하든 두 것이 다 가능할 텐데 아무튼 어쨌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해 주셨다고 하는 것이 아주 놀라운 겁니다. 물론 발람이 이렇게 제지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서 모든 지금 흘러가는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에 의해서 발람이 제지를 당한 거잖아요? 원래는 저주하러 왔었는데 하나님께서 나귀를 통해서 또 발람의 입을 또 컨트롤하셔서 발람이 함부로 저주하지 못하고 축복하도록 만들어주었는데 하나님께서 이 발람을 제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어서 그냥 발람이 하고 싶은 대로 발람이 원하는 대로 그냥 저주하도록 그냥 내버려 뒀다고 한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이 정말 저주를 받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광야에서 다 망해버려서 그래서 완전히 박살 나버리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까요? 아니에요. 발람이 저주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주술을 부려봤자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지금 가난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발람이 그 저주하지 못하고 축복하는 이런 일들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그냥 발람이 마음껏 저주를 했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민족이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은 당연히 저 가나안 땅에 진군해서 가나안 땅을 반드시 점령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주술이 힘이 있나요? 주술이 힘이 없어요. 주술이 힘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발람이 주술을 부렸다고 할지라도 저주를 내렸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 옛날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서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했을 때 똑같이 애굽의 술사들도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그런 주술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세의 지팡이가 만든 뱀이 그 지팡이를 먹어버렸듯이 이 세상의 주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 쓸모가 없는 거예요.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그럴듯해 보이고 힘이 있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정말 용한 점쟁이인 것 같고 그래서 정말 저 사람의 말을 들으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지만 사실은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이 주술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발람의 주술을 막아버리고 저주하는 것을 막아버리고 그 발람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시고 발람의 입을 통해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하게 하시는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이 확실하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시고 그리고 그 민족을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것을 모압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시고 또 그 이야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어서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깨닫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는 것이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달이 됐었을까요? 안 됐을까요? 됐어요. 됐으니까 여기에 기록이 됐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맞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고 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그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리고 위대한 나라가 되게 해 주실 것이고 그리고 우리 민족을 통해서 결국 마지막에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올 거라고 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정말 기쁨으로 정말 환호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무엇과 비슷하냐면 그 옛날 기드온이라고 하는 사람이 미디안 진영에 들어갔을 때 그때 기드온이 용기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기드온은 숫자가 몇 명 안 되는 300밖에 안 되는 그 용사들을 데리고 미디안이라고 하는 그 어마어마한 군대를 공격하여야 되는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알았지만 마음 한쪽 구석에는 너무나도 두려운 마음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300명밖에 안 되는데 미디안 군인들은 수만 명의 군인들이 있는데 어떻게 우리 이 300명으로 저 수많은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고 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불안한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기드온이 미디안 진영에 가서 정탐을 하는 가운데 미디안 군인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이야기를 미디안 그 천막 밖에서 듣게 된 겁니다. 미디안 군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사사기 7장 13절에서부터 15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 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덮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그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지역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하더라.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이 기드온이 미디안 진영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그 미디안 군인들에게 보여주셨던 꿈과 그 해석의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보리떡처럼 별 볼 일 없는 우리를 통해서 저 미디안 민족을 완전히 무찌를 거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을 때, 그때 이 기드온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넘치고 흥분이 넘치고, 맞다. 우리가 보리떡과 같은 존재이지만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이 미디안 민족을 물리칠 수 있게 만들어 주셨구나. 그래서 용기를 얻고 돌아와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일어서서 미디안 민족과 싸우러 나가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바로 이 이야기가 똑같은 이야기일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이 발락이 다스리고 있는 이 모압 땅은 어떤 땅입니까? 정말 강대한 땅이죠.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진 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땅을 지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 가운데 불안한 마음이 있는 거예요. 두려운 마음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과연 저 땅을 지나서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무서워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모압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의 인생의 길이라고 하는 게 광야의 길을 걸어가서 저 가나안 땅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의 길이 무엇과 같은가 쉽고 평탄한 길이 아니라 우리의 길에 먹을 것이 다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예요. 우리의 길에 물이 다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야. 우리 앞에 대적이 진 치고 있는 상황들이 보이는 거예요. 산 넘으면 끝날 줄 알았더니 산 너머 또 하나의 산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거죠. 그럴 때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불안합니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우리가 넘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옛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발람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게 하려고 하셨던 하려고 했던 그 계획을 바꾸어서 오히려 축복으로 바꾸어 버리신 하나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를 향해서 저주하고 비난하고 욕한다고, 우리를 무시한다고 우리는 쓸모없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소리들을 들으면서 낙망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 저주의 말을 축복의 말로 바꾸시는 하나님 우리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정말 벼르고 있는 이 세상에 그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축복의 말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 2편 1절에서 9절까지 이렇게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시편 2편 1절부터 보면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에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의 분을 바라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원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내 유업으로 주리니 내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내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며 질그릇같이 부으리라 하시도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세상의 군왕들이 일어나서 우리를 밟아버리려고 하고 우리를 저주하려고 하고 우리를 짓밟아버리려고 하는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자가 그것을 비웃으시며 그 모든 도모를 바꾸어서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거예요.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들려오는 모든 저주의 말들을 축복으로 바꾸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며 담대하게 믿음으로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의 말씀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 이기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해서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패가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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