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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로 만든 뱀 (민 21:4-9)

오늘은 구리로 만든 뱀의 이야기를 함께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야만 했었는데요. 이런 상황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만 빙빙 돌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그 길이 너무나도 험난해서 정말 입에서 불평과 짜증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러한 모습이 사실, 2천 년, 2천 년이 아니고,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실 우리들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어려운 상황이 되면 이내 원망과 불평을 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기도 하고,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특별히 우리가 더 사랑해야 될 사람들을 향해서 더 많이 불평하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향해서 원망과 불평을 터뜨린 것처럼 서로를 향해서 비난을 터뜨리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가 정당한 것인가? 이러한 태도가 당연한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우리가 보여야 될 반응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회개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광야에서 40년 동안 헤매야 했던 그 이유가 무엇이었죠? 불순종 때문에 그랬어요. 가나안 땅을 코앞에 놔두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의심하였고, 그리고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결국 40년이라고 하는 광야 생활을 하게 된 것이죠. 잘못을 누가 했어요? 자기들이 했단 말이죠. 자기들이 잘못을 해놓고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에게 하는 것 그것은 바른 태도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인해가 크시사 우리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시고 언제라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우리가 처하게 된다고 한다면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는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그게 바른 태도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바른 태도가 있다고 하면 무엇이겠습니까? 인내하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려운 상황 가운데 넣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기 때문인 거죠. 따라서 우리는 이 순간에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어디로 인도할지를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 하겠습니다. 로마서 5장 3절에서부터 4절 말씀에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원망할 게 아니라 불평할 게 아니라, 오히려 인내하며 소망을 가지는 것이 바른 태도라 하겠습니다.


사실 원망과 불평은 영적인 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만드는 독이 되는 것이고요. 이러한 독은 우리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원망과 불평이 우리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가 있다고 하면 바로 그 원망과 불평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은 심각한 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원망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짜증을 내고 불평하지만 사실은 그게 심각한 죄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죠. 그 죄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바로 우리들의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겁니다. 환경에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죠.

똑같은 환경이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고 말할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 가운데서 욥은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신 자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지라고, 그 힘들고 어려운 고통 가운데서도 욥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죠.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정말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해서 팔려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을 때 그 노예의 현장 가운데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노예의 신분 가운데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서 그로 말미암아 보디발의 집안 전체가 형통함을 얻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감옥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고, 그 감옥의 모든 사무를 다 맡아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쳐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했던 것을 우리는 성경 말씀에서 볼 수가 있는 것이죠.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 감옥 속에서 원망하고 불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미하는 가운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이고요. 스데반 집사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서 돌을 던지며 처형을 당하는 그 순간에 목숨을 잃어가는 상황 가운데서도 그들을 향해서 원망하거나 비난하거나 욕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오히려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했어요.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를 위하여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신 그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스데반 집사님은 그 마지막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기도하는 놀라운 믿음의 모습을 보여준 줄로 믿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우리들의 모습 가운데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죄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그 원망과 불평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서 거기에는 엄청난 독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향해서 불뱀을 보냈는데요. 불뱀이 무엇입니까? 독사죠?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독사입니다. 이 뱀에게 물리게 되면 100% 죽을 수밖에 없는 가장 치명적인 그 뱀에게 물려서 이스라엘 백성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는 많은 분들이 아마 마음속에 약간 불편함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질문이 있는 것이죠. 왜 하나님은 이렇게 불뱀으로 이스라엘 민족들을 심판하시는가?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잔인하신가 원망했다고 죽여버리시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너무나도 잔인한 하나님이 아닌가라고 하는 질문이 아마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 가운데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질문하는 것은 제대로 된 질문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고 치명적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독약을 마시게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죠? 죽어요. 그런데 그 독약을 마시는 게 누구예요? 나란 말이에요 내가 마셔놓고 내가 죽었다고 한다면 딴 사람을 비난할 게 아니라 원망할 게 아니라 사실은 그 독약을 마시지 않아야 되는 행동을 내가 했었어야만 했던 것이죠. 사실 불뱀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독을 누가 만들어냈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만들어낸 겁니다. 원망과 불평이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속에서부터 나오는 죄인 것이고, 그 죄의 독이 바로 사망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인 것이죠. 누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한 거예요? 하나님이 잘못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죄와 죽음을 자초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인가? 오늘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내가 선택한 잘못, 내가 선택한 원망 불평의 죄가 사실은 치명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라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한 예인 것이죠.

오늘날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주시는가 보내시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 불뱀과 같은 상황들을 늘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했던 불평과 불만이 결국에는 독으로 내게 되돌아오는 것이고, 그 독으로 인해서 우리 가정이 망가지고 우리 자녀들이 망가지고 모든 것들이 다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죠. 나는 아무 일 아니라고 생각했고, 나는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가를 직시하라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왜 이걸 보내주시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직시하도록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탄은 우리들로 하여금 늘 아무것도 아니라고 유혹하는 것이죠.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있을 때 하와에게 나타나서 유혹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만일 내가 선악과를 먹는다고 한다면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경고해 주셨어요. 하지만 사탄이 와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먹어도 죽지 않는다. 괜찮다. 오히려 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거라고 우리들을 속이는 것이죠. 지금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들을 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리가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 그거 다 아는 거지 그거 괜찮은 거라고 아무 문제 아니라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사탄이 속삭이고 있는 거예요.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사는 거 그거 괜찮은 거라고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막사는 거 그거 괜찮은 거라고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결국은 그 죄의 결과가 사망이라고 하는 것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잘못을 저지르는가 그 잘못의 대가가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심각한 거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심판을 받고 재판을 받고 결국 감옥 속에 들어가게 되면 결국 처벌을 받게 되면,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사랑하는 가족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자리로 들어간 그 후에, 그때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전에 미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죠. 그전에 미리 법을 지켜야죠. 그전에 미리 믿음으로 살아야죠. 많은 사람들이 죄악을 저지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하는 그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 죄악을 저지르다가 나중에 그 죄악이 뿜어내는 독을 마시게 될 때 그 결과를 맞이하게 될 때 후회하며 땅을 치게 될 것인데, 워낙에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죄의 싹시 사망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미움을 갖는 게 괜찮은 게 아니에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괜찮은 게 아니에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이기적으로 탐욕적으로 사는 게 괜찮은 게 아니에요. 남을 속이고 악을 행하는 게 괜찮은 게 아니라 치명적인 독, 불뱀과 같은 것이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미리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니까 큰일 났어요.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수시로 미움이 있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수시로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수시로 원망하는 마음들이 생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떨어져 사는 삶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큰일 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를 보면 불뱀을 보낸 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뱀에 물렸을 때 모세를 향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래서 모세에게 부르짖으면서 하나님께 어떻게 해서 기도해서 간구해서 살려달라고 요구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이렇게 울부짖는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이 “진정으로 회개한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어 완벽한 회개라고 말하기에는 약간 어렵습니다.


물론 회개의 요소가 이들의 마음 가운데 있었어요. 자신이 잘못했던 것을 깨달았고 그리고 범죄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하는 것 이것은 회개의 요소이기 때문에 회개의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회계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의 뉘우침이 마치 바로 왕의 뉘우침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로 왕은 10가지 재앙을 만날 때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하나님께 범죄 했다고 인정했어요. 하지만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한 것은 아니었어요. 출애굽기 9장 27절을 예로 들어보면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 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백성은 악하도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얼마 안 있다가 또 번복해 버렸어요.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켜 주시는데,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불에 매 몰린 사람들을 고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냥 말씀만 하시면 되는 거죠. 다 낳아라 다 용서해 줄게 다 낳아라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하셨는가 아주 특이한 방법을 하셨는데 모세로 하여금 구리로 뱀을 만들라고 하신 겁니다.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신 것이죠. 뱀에 물린 사람들마다 모두 저 놋뱀을 바라보라고 말한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단순히 자신들이 잘못했다. “우리가 범죄 했구나”를 깨닫는 것 이상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반응을 통해서 하나님께 제대로 돌아오는 것을 원하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회개란 무엇인가? 아, 내가 잘못했구나가 아니라, 거기에서 머무는 것이 잘 회개가 아니라, 사실은 거기서부터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그게 진정한 회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셨던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물 독뱀이 독이 퍼졌는데 놋뱀을 쳐다본다고 왜 낫겠는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어떻게 노변 본다고 우리가 사냐 하면서 거역하고 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망하게 된 것이죠.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느냐면 아주 힘든 것을 이야기하면 열심히 해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어려운 거를 하라고 하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이단들이 그래서 잘 돼요. 이단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정말 어려운 걸 가르쳐요. 막 죽어라고 애써야만 된다고 하는 걸 가르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해요. 전도도 열심히 하고 돈도 다 갖다 바치고 하라는 대로 다 하는 거죠. 뭐 아무리 힘든 것도 다 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복음은 무엇인가 아무나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너무나도 쉬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 아무것도 필요 없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믿지 않고 외면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나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저 아랍 나라에서 이스라엘로 왔지만, 엘리사 선지자가 자신의 몸을 7번 요단강에 씻으라고 할 때, 얼마나 쉬워요? 근데 그걸 보고 화를 내는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를 원하시는 것인데요. 놀랍게도 정말 이상한 것 같았던 그 명령에 순종하고 따른 사람들은 놀랍게도 살았습니다. 민수기 21장 9절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 즉 모두 살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민수기의 이야기는 수천 년 전 이스라엘 민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상태가 무엇인가? 우리의 상태는 불뱀에 물린 것만 같아요. 그 어느 한 수 사람도 온전한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다 불뱀에 물려 독이 퍼지고 있는 것 같은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습니다.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죠. 그리고 그 죽음의 증상들이 지금 오늘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소외당함과 질병과 배신으로 또한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일들로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죽음의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고, 그것 때문에 괴로운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위해서 그 옛날 하나님께서 놋뱀만 바라보면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놀라운 정말 쉬운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바라봐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와라. 간단한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죠.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부터 16절의 말씀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의 방법은 어려운 방법이 아닙니다. 만일 불뱀에 물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저기 저 멀리 있는 나뭇가지 뛰어갔다가 1등으로 온 사람을 구원해 주겠다고 한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어요? 너희 가운데 억만금을 낸 사람들을 구원해 주겠다고 한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어요? 너희 가운데 어려운 수학 문제 풀면 그러면 합격시켜 주겠다고 하면 누가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겠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내어주시며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어라. 권력이 없어도 믿을 수 있어요. 돈이 없어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어요. 건강이 없어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나이가 많아서 치매에 걸린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아무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불뱀에 물린 것과 같은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과 같은가 마치 놋뱀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우스운 것 같아요. 이게 무슨 힘이 있나 생각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잖아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너희가 손해 봐라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손해 봐라. 그러면 망할 것 같은데요? 너희가 차라리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라. 아니, 그러면 우리가 완전히 박살 날 것 같은데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 하나님의 말씀 어떻게 이것이 우리를 살릴 수 있겠는가? 주님을 믿고 신뢰하며 가는 그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을 때, 우리가 바라볼 때, 저 놋뱀과 같은 것이 어떻게 내 독을 없앨 수 있을까? 의심 가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내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은혜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광야의 길과 같습니다. 이 광야의 길 가운데 우리는 반드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될 겁니다. 끝이 없어 보이고, 그리고 그 길은 험하고, 그 길은 물이 없는 곳이고, 그 길은 때로 먹을 것도 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그 길은 축복의 길입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으로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오늘 하루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늘 체크해 보십시오. 원망과 불평 가운데 미워와 미워하며 괴로워하는 가운데 살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송으로 살았는가? 이번 일주일간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가? 환경이 나로 하여금 불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불평하게 만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렸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님 도와주소서 힘없고 연약한 저를 도와주옵소서 이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주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평화를 맛보아 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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