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 읽은 잠언서 18장 19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렵나니,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한 번 사람이 노엽게 되면 그 사람과 다시 화목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죠. 한 번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되면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것이, 마치 굳건하게 닫혀버린 그 산성의 문빗장을 여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하는 말씀이 오늘 잠언서 18장 19절의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가 잘 실감하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우리의 실생활 가운데서 참 사이가 좋았던 사람인데 마음이 어긋나 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이 그렇게 원수가 되어 버리고, 서로 거리가 멀어져 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일을 경험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그런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고 하는 말씀입니까? 노엽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사람이 노엽게 되면 그 마음을 닫아버리게 되고,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망가져 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 되고,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저는 SKT를 쓰다가 KT로 바꿔버렸습니다. 왜 바꿨을까요? 예. 이번 해킹 사건을 보면서 마음을 바꿔버렸어요. 제가 SKT에 10몇 년 동안 쓰는 충실한 고객이었는데 제 마음이 다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손님 하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비즈니스를 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죠.
식당을 하거나 아니면 어떤 서비스업을 하거나 어떤 일들을 할 때, 사람의 마음이 닫혀버리면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가 늘 삶을 살면서 실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이 노엽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다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우리가 살펴보면 그 방법은 너무나도 쉽고 간단합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에 보면 우리 성도들이 행동해야 될 황금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성경 말씀 전체를 다 요약하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하는 이야기는 성경 말씀이라고 하는 이야기예요. 이 성경 말씀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겠는가? 이 정말 방대한 66권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성경 말씀을 요약하고 요약해서, 또 요약하고 요약해서 가장 간단하게 만들면 어떤 말로 요약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어떻게 요약해 주셨어요? 마태복음 7장 12절의 말씀으로 요약해 준 겁니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내가 그 사람에게 해줘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그 방식대로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주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의 요약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표현으로 말하자면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된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요. 항상 내 상황과 다른 사람의 상황을 바꾸어 놓고,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어땠을까?” 내가 말을 하기 전에, 내가 무엇인가를 행동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되냐면, “내가 하는 이 말을 내가 듣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면 정말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말해주기를 내가 원하는가?”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라는 거예요.
내가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그 방식대로 사람에게 행해주라는 얘기예요. 역지사지로 내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내가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내가 그 입장이라고 한다면 나로부터 어떤 말을 듣기를 원할까? 나로부터 어떠한 대접을 받기를 원할까? 내가 어떻게 대접받기를 원하는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그대로 해 주라고 하는 것이 무슨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요약한 말씀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죠.
만일 우리가 운전하고 가다가 옆에 있는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사고가 날 만한 그런 위험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가 큰일 날 뻔했구나! 내가 사고를 당할 뻔했구나!” 화가 나서 욕을 해대고 빵빵거리고 위협하면서, 그러면서 보복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의 태도를 가질 게 아니라, “내가 저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나로부터 어떠한 반응이 나오기를 소망하는가?”를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운전하고 가는데 계속해서 직진해 갔다고 하다가는 길을 잃을 수가 있겠고 목적지를 갈 수가 없어서 급하게 운전대를 꺾는다는 것이, 뒤 차를 보지 못하고 내가 실수해서 그래서 갑자기 끼어들어서 뒷사람에게 방해를 준 그 운전자의 입장에 내가 서서, 그때 뒤차가 나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랐는가?” 먼저 생각해 봐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만일 그 끼어드는 운전자라고 한다고 하면, 그 다른 차로부터 어떠한 반응이 오기를 소망하겠습니까? “괜찮아요. 내가 속도 줄여줄 테니까 들어오세요. 내가 안전하게 멈추어서 내가 거리를 좀 띄워줄 테니까 그러니까 안전하게 들어오세요” 그렇게 내게 배려해 주면서 그 뒤차가 그렇게 나에게 따뜻하게 대우해 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나로서 어떤 사람이 갑자기 끼어들어왔을 때 화가 나서 욕을 해대고 빵빵거리고 그리고 욕을 해대면서 그렇게 그 사람을 위협하면서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참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렇게 끼어들 수밖에 없었구나”를 생각하라는 거예요.
혹시 모르잖아요. **”지금 갑자기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급하게 가야 되는 그런 아주 긴박한 상황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못하고 제대로 잘 의사 표현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너무나도 마음이 급해서 지금 집에서 우리 딸아이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빨리 딸아이한테 가고 싶은데, 그 급한 마음에 핸들을 꺾어서 그래서 뒤차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만들었을 수 있는 그런 운전자일 거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추측하면서, **”저 사람이 늦어서 계약이 취소가 되고 그래서 장사를 망칠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늦지 않아야 되겠다고 하는 그런 조급하고 조급한 마음 때문에 그래서 할 수 없이 급하게 운전대를 꺾었을 수도 있다”**고 하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고, **”내가 만일 그 입장에 있었다고 한다면 나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가? 내가 어떠한 행동을 바라기를 원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생각해야 그래야 상대방을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운전자들이 서로 조그마한 잘못 때문에 상대방을 향해서 위협하고 보복 운전을 하고 하면서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고 끔찍한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노엽게 해서 그들의 마음을 닫아버리게 만들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고 한다면 나로부터 어떠한 말을 듣기 원하고 어떠한 행동을 받기를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면서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식당에서 주문을 했는데 음식이 늦게 나오거나, 종업원이 불친절하게 대우를 하거나, 내가 기대한 그런 맛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종업원을 향해서 비난하고 욕하고 갑질하고 따지고 싸우고 고함을 치면서 항의하면서 내 권리를 찾는 것이 그게 당연한 일일까요? 아니에요. **”그 주인이 어쩌다가 오늘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서빙을 잘 할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있었을지도 모르니, 오늘 내게 서빙하는 그 종업원이 힘든 일이 있어서 주인과 약속 때문에 그걸 빼먹지도 못하고 억지로 나와서 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내게 잘 서빙을 해 줄 수도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이런 일을 벌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만일 저 종업원 입장이라고 한다면 손님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을까?” 생각하고, “내가 그 입장이라고 한다면 손님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기를 원할까? 내가 실수했을 때 화내는 것을 기대할까? 아니면 등을 두드려주면서 ‘괜찮아요. 아무 문제없어요. 상관없으니 그냥 다른 일 하세요’ 하면서 친절하게 대우해 주기를 원할까?” 생각하면서 행동하자 이 말이에요.
우리 아이가 실수하면 소리치고 때리고 꾸중을 하면 되는 것일까요? 내가 몇 번씩이나 이야기했는데, 몇 번씩 얘기한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또 잘못하고 또 잘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혼내고 “너는 가능성이 없는 아이야. 너는 언제나 문제야. 너 때문에 내가 죽을 것 같아. 너 때문에 내가 너무나도 힘들다” 말하면서 우리 아이를 비난하는 게 그게 정말 바른 방법일까요? 그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 피치 못할 어떤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 때문에 지금 엄마가 말한 것을 듣지 못할 수 있다든지, 내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이 아이의 피치 못할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들이 있어서, 그래서 이 아이가 아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몇 번씩 이야기했어도 또 반복하는 그 실수들을 보면서 혼내고 비난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아이의 입장에 있었다고 한다면, 내가 엄마 아빠로부터 어떤 말을 듣기를 원했을까? 내가 만일 이 아이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내가 이런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우리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해주길 바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며, **”남이 나에게 대접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대접해 주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명심하고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사랑으로 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처벌하셔야만 했다고 한다면,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지금 당장 지옥에 쳐 넣어도 아무런 항변할 수 없는 그런 연약한 죄인들인데,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시고, 길이 참으시고 인내하시고 끝까지 그 사랑을 변치 아니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과 은혜를 마음속에 기억하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에서부터 45절 말씀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자녀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에게만, 선한 사람들에게만 햇빛을 주고, 하나님께서 착한 사람들에게만 비를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선인에게 뿐만 아니라 악인에게도, 의로운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때문에 우리와 같이 악한 사람들이 살아남아 있는 거예요.
악인도 용납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죄인이 살아 있는 것이고, 은혜를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입은 것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내 입장에서 분노하고 책망하고 비난하고 욕할 것이 아니라, “만일 내가 그 입장에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며, 나는 어떠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가?” 한 번 더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의 모습들을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보여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서 18장 20절 말씀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사람의 입에서 무엇이 나온다고요? 열매가 나온다. 이것이 아주 놀라운 일이죠.
열매를 식물들만 맺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이런 과수나무만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의 말도 결국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열매로 인하여 배부르게 된다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입술의 말이 그냥 허공을 울리는, 물리학적으로 본다고 한다면 공기의 진동으로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단순히 공기의 진동이 말이 아니라 소리가 아니라, 이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말이 그냥 울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전달되는 곳에서 어떤 종류의 열매든지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열매가 맺히는데 어떤 열매가 맺혀요? 좋은 열매가 맺히기도 하고 나쁜 열매가 맺히기도 하는데, 만일 좋은 열매가 맺히게 된다고 한다면 그 열매로 인하여 배부르게 될 것이고, 만일 나쁜 열매가 맺히게 된다면 그 나쁜 열매로 인하여 망하게 되는, 정말 고통을 당하게 되는 그런 나쁜 열매가 맺히게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것이어서, 정말 조그마한 씨앗 하나에서 어마어마한 많은 열매가 맺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혀의 힘이라고 하는 것, 말이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그런 파워를 가지고 있는데, 이 말이 그냥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파워가 있어서 결국에는 무엇인가를 이루어냅니다. 열매를 만들어내고 결과를 만들어내고 어떠한 결과를 빚어내는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진 것이 말의 힘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습니다.
이사야서 55장 10절, 11절 말씀에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파워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냥 유야무야 없어져 버리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파워풀해서 결국에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그런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의 말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들이 하는 말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능력이 있어서 무엇인가 열매를 만들어내고 무엇인가 어떤 결과들을 만들어내는데, 어떤 열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선한 말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이지만, 악한 말은 의미 없는 말, 생각하지 않고 내던진 말,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무심코 던졌던 말들, 농담으로 던졌던 말들, 배려하지 않고 그냥 내뱉은 말들은 정말 파괴적인 열매를 맺어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죽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혀에 달려 있습니다. 잠언서 18장 21절 말씀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혀의 열매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지 않고도 우리의 행동으로서 말을 할 수도 있고, 우리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우리의 어떤 얼굴 표정으로, 우리 몸의 어떠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가에 따라서 결국 우리는 말을 하게 되어 있고 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텐데,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선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 위해서 매일매일 기도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오늘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가 대화하고 또 우리가 관계하고 하는 그 모든 과정 가운데서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이 넘쳐나게 하시고, 우리들의 말로를 통해서 위로를 받게 해 주시고, 우리의 말을 통해서 내 남편이, 내 아내가, 우리 부모님이, 우리 자녀들이 힘과 용기를 얻게 해 주시고, 우리의 말로 인해서 상처를 받지 아니하도록 주님께서 저희들의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옵소서” 기도하며 엎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매 순간순간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 어떠한 말을 하기 전에, 그냥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당장 솟아오르는 생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무엇이 사탄의 뜻입니까?”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 사탄의 생각일 가능성이 많아요. 당장 내 마음 가운데 생겨나는 감정들은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나오는 생각일 가능성들이 많아요.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우리가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떠한 말을 하기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내가 어떠한 행동하기 원하시는가? 내가 이 순간에 어떻게 움직이시기를 원하시는가?” 한 번 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바로 저 사람의 입장에 있었다고 한다면” 누구에게 화를 내기 전에 내가 먼저 그 화를 내는 것을 받아들일 그 사람의 입장에 내가 서 보고, 내가 우리 아이의 입장에 서 보고, 내가 우리의 어머니의 입장에 서 보고, 내가 우리 상관의 입장에 서 보고, 내가 우리 동료의 입장에 서 보고, 그래서 그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 방식대로 사람들에게 행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로우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랑을 아끼지 아니하셨던 것처럼 사랑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어 마음을 닫아버리게 하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이 열려서 우리들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하나님을 전하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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