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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창 37:5-11)

오늘은 요셉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꿈을 꾼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요셉은 어렸을 때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두 번 걸쳐서 꾼, 그 꾼 꿈이 참 의미가 있는 꿈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밭에서 곡식단을 묶었는데, 형들이 묶은 단들이 요셉이 묶은 단 주위에 둘러서서, 그 요셉이 묶은 단을 향해서 절하는 꿈을 꾸게 된 것이죠. 아마 기분 좋은 꿈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다시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을 향해서 둘러서서 또 절하는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의 의미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만한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당장 그 형들이나 그 아버지나 그 꿈의 의미를 다 간파했습니다. 요셉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고, 형들도 그 앞에 절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부모들도 그 앞에 절하게 될 거라고 하는, 그런 엄청난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꿈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요셉이 걸어갔던 길은, 정말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그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 요셉이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주는 꿈이 아니라, 개꿈일 수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다가, 나중에는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렸는데요. 형들이 그 요셉을 죽이려고 하면서 했던 말이 창세기 37장 20절 말씀 가운데 기록돼 있습니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형들은 그 꿈을 꾼 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이 요셉을 죽여버리자. 그래서 그 꿈이 한낱 개꿈이었다고 하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었어요. 요셉이 도무지 일어설 수 없도록, 짓밟아 버리려고 했었던 것이죠.

그 요셉의 꿈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하지만 이런 일로 인해서, 결국 역설적으로 그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버린 이것이, 결국은 요셉으로 하여금, 저 강대국, 그 당시에 엄청난 강대국이 되겠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는 그런데 꼭 필요한 과정으로 형들이 사용이 되었던 것이죠. 역설적인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산통이라고 하는 그런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처럼, 요셉이 이렇게 팔려가고, 노예가 되기도 하고, 또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이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이 요셉을 총리로 이끌게 만드는 그런 도구가 되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알 수가 있겠습니다. 요셉의 꿈을 무산시키려 했던 그 형들의 행동이 결국에는 요셉의 꿈을 성취하게 만드는, 그런 아주 필연적인 결과를 빚게 된 것이죠.


그래서 나중에 요셉은 그 모든 과정을 생각하면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4절에서 5절 말씀에 이렇게 요셉이 말을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의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형들은 요셉의 꿈을 짓밟아버리기 위해서, 요셉의 꿈이 개꿈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죽이려고 했고 팔아버리려고 했지만,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히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셔서, 결국 요셉을 이렇게 높은 위치로 올라가게 했다고 하는, 그런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 것이죠.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개꿈이 아니라, 요셉의 인생이 어떠한 인생이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계시였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요셉이 꾼 그 꿈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의 그 오묘한 섭리 속에서, 그 꿈대로 요셉에게 주어졌던 그 꿈대로, 요셉이 정말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되고, 아버지도 경배하고, 그 형들도 경배하게 되는, 그러한 결과를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7년 대기근이 벌어지는 상황 가운데서, 요셉은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살리는 그러한 구세주와 같은 인물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어떤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우리도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일까요? 온 세상의 리더가 되겠다고 하는, 그런 원대한 꿈을 어렸을 때 가지고, 그 꿈을 향해서, 요셉도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꿈을 결국에는, 나중에, 그 꿈이 허망한 꿈처럼 보였고, 정말 말도 안 되는 꿈처럼 보였지만, 결국에 그 꿈이 이루어지는 이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도 지금 정말 내 모습을 본다고 한다면 별 볼 일 없고, 지금 내 모습은 무엇인가? 실패한 사람 같고, 내 모습이 어떠한 모습인가? 별 볼 일 없는 것 같고, 내 모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에서도, 우리가 요셉처럼 꿈을 가지고, 정말 엄청난 위대한 인물이 되겠다고 하는 그런 꿈을 가지고 나아간다고 한다면, 결국 그렇게 요셉처럼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그런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이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보게 된다고 한다면, 요셉이 어렸을 때부터 꿈을 꾸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정말 부단히 노력을 했고, 그래서 결국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정말 대단한 인물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런 인물들은 어떻게 그렇게 큰 대단한 인물이 되었는가? 어렸을 때부터, 정말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서 부단히 노력해서, 엄청난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프로야구 선수인 오타니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 계획을 세워놓고, 하나하나 그 계획에 따라서, 자신의 몸을 만들고 훈련하고 해서, “지금 정말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되는 그 위치에까지 올라갔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손흥민 선수와 같은 선수는 어떻게 했는가?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부단히 노력을 했는데, 정말 그 아버지 송웅정 옹의 그 계획에 따라서, 정말 철저하게 훈련을 하고, 꿈을 가지고 그렇게 해서, 그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그 위치에까지 올라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겠는데, 요셉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인가 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도 정말 이런 오타니 선수와 같이, 손흥민 선수와 같이, 어떤 계획을 세워 가지고, 그래서 그 최고의 위치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이 창세기의 말씀을 읽다 보면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꿈을 꾼 게 아니에요. 어느 날 잠을 잤더니 꿈이 꾸어진 겁니다.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그 꿈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 아니라, 어느 날 꿈을 꾸다 보니까, 꿈이 꾸어진 거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총리가 되기 위해서 요셉은 정말 많은 노력을 하면서,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그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물론 요셉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위치에서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은 맞습니다. 그가 노예의 신분에 있었던지, 아니면 그가 감옥에 갇혔던지, 그 상황 가운데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살았던 것은 맞지만, 그러나 이 요셉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요셉의 고백처럼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내가 의지를 가지고, 이런 자리에 올라온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셔서, 우리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까지 인도해 주셨다고, 정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자리에 올라갔다고 믿음의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이 요셉의 이야기를 묵상하고 읽으면서, 그러니까 우리도 꿈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전을 가져야 됩니다”라고 하는 그 메시지를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꿈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꿈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다. 물론 비전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위해서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그렇게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교훈을 어디서 찾아낼 수 없는가? 요셉의 이야기에서 찾아낼 수는 없는 것이죠. 요셉의 이야기는 뭐냐? 요셉의 이야기는, 자신이 꿈을 가지고, 비전을 가지고 노력을 해서, 이 위치에까지 올라간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자신이 꿈을 꾸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꿈을 꿨는데, 의지를 가지고 꿈을 꾸나요? 내가 이런 꿈을 꿔야 되겠다. 그렇게 꿀 수가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죠. 그냥 꿈을 꿨는데, 어느 날 꿈이 꾸어졌어요. 하나님께서 그 꿈을 주신 것이죠. 그리고 그 꿈대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꾸게 만들어 주신 대로, 그 요셉을 삶을 인도해 주셨는데, 때로는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노예로 팔려가는 그 순간에,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이 들었을까요? 감옥에 들어가는 순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들어갔다 생각이 되었을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보여주신 그 계획대로, 요셉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신 그 이야기가 이 요셉의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먼저 이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요. 성경에 보면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 경우가 많이 등장합니다. 성경을 보면 꿈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요.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그 요셉의 꿈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바로도 꿈을 꿉니다. 바로가 꿈을 꾸는데, 그 꿈을 통해서 앞으로 7년 동안의 대풍년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대풍년의 기간이 지난 뒤에는 7년의 대기근이 있을 거라고 하는 그런 꿈을 꾸었는데 바로 그대로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옥 속에서 요셉은 바로의 관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술 맡은 관원장과 그리고 떡 맡은 관원장들이 꿈을 꾸었고, 그 꿈대로 그들의 인생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사기에 보면 미디안 군인들이 꿈을 꿉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굴러 들어와서 그 미디안 진영의 장막들을 다 무너뜨린다고 하는 그런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어떤 꿈이었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을 물리치게 되고 승리하게 될 거라고 하는 그 이야기를 미디안 군인들의 꿈에 나타나게 만든 것이죠.


뿐만 아니라 아비멜렉 왕이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을 듣고서 아비멜렉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주는 이야기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야곱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사다리가 보이는 것이고, 층계가 보이는 것이고, 그 층계를 통해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런 꿈을 꾸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야곱은 하나님께서 꿈에 돌아가라.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지시를 꿈을 통해서 받았던 것이죠. 열왕기상에 보면 솔로몬이 꿈을 꾸는데, 그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했을 때, 꿈속에서 솔로몬은 내게 지혜를 주옵소서. 기도, 간구했고, 그것을 보신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뿐만이 아니라, 부귀와 영광까지도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에 가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고, 그냥 다른 길로 돌아가라. 지시하심을 받아서, 동방 박사들도 꿈에 지시해 준 것에 따라서, 자기의 고향길로 돌아갔다고 하는 이야기도 기록돼 있고,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유대 지방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있을 때,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서 갈릴리 지방으로 돌아간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라도의 아내는 예수님을 재판하는 그 과정 가운데, 꿈에 예수님 때문에 굉장히 고통을 겪는 그런 꿈을 꾸면서, 자기 남편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상관하지 말라 이런 권면을 하게 되었고요.

바울 사도는 밤에 환상을 통해서, 저 아시아 지방에서 전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지니까, 밤에 꿈을 꾸었는데, 환상 가운데 마게도니아 청년이 나타나서,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그 지시하심을 받고, 그런 계시를 보고, 바울 사도의 전도의 방향이 이 소아시아에서 저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는 그런 결정적인 선교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보면 꿈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와요. 정말 많이 나와요. 이런 성경 속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들이 생각하기가 쉬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러면 우리들이 꾸는 꿈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라고 한다면, 그 옛날 꿈을 통해서 수많은 선지자들에게, 그리고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아니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조차도, 그런 꿈을 통해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오늘날 나에게도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할 수가 있게 되겠는데요.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분명하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 꿈에 의지하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날은 꿈을 꾸면, 그 꿈이 하나님의 계시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 꿈에 따라서 움직이거나 꿈에 따라서,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냥 꿈을 꾸신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면 될까요? “개꿈 꿨구나”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꿈을 꾸면 어떻게 생각하시면 됩니까? “요즘 내가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구나.” “내가 이 문제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예전에는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고, 그 꿈을 통해서 미래를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셨는데, 왜 오늘날에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미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 36권과 신약 27권, 39권과, 39권이죠? 39권과 27권 성경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들려주시고자 하는 그 말씀들이 성경 안에 다 기록되어 있어요. 성경으로 충분하고 성경으로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의 추가적인, 하나님께서 또 다른 계시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실 이유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못하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미 완벽하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고, 이 계시의 말씀 가운데서, 빼거나 더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가?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성경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 성경이 아닌 다른 어떤 꿈이나, 다른 어떤 특별한 계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되는가? 성경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해야 되는 거예요. 성경을 묵상하면서 신앙생활해야 되는 거예요. 성경으로 충분하다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성경이 아닌 우리가 개인적인 꿈을 꾼다거나, 개인적인 경험이나 이런 것들이 보조적인 수단이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성경이 우선적인 것이고, 성경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지, 꿈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종종 꿈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꿈을 통해서 계시해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런 목회자라고 한다면, 그런 교회에서는 빨리 나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좋은데요. 왜냐하면 그러한 목회자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노예로 삼아서, 자기 마음대로 할 가능성이 많은 목회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양의 탈을 쓴 이리,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할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사람이 정통 교단에 속한 목회자라고 할지라도, 자꾸만 하나님께서 내게 꿈을 주셨다고 말하고,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셨다고,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하면, 그 목회자는 굉장히 위험한, 성도들을 영적으로 착취해 버릴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피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렇게 말을 하게 된다면, 결국 자기가 하나님처럼 행동할 위험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 주셨고, 하나님이 나에게 꿈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고, “자신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알고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그 사람이 하나님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이런 특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걸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요셉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요셉의 이야기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아니했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때로는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시는 일들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요셉이라고 하는 어린 소년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어떠한 일을 이루어 나가실 것인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고, 하나님의 계시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이 뭐 대단한 사람이냐 하면, 대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냥 평범한 우리랑 똑같은 그 요셉에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겁니다. 내가 너를 높이겠다. 내가 너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드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꿈 이야기를 들은 그 형들은 그것을 무시했어요. 요셉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런 거죠.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고, 요셉의 길을 인도해 주셨는데, 그 요셉의 길을 막는 사람들이 있어도, 오히려 그걸 이용하셔서, 그걸, 사람들의 장애물을 더 사용하셔서, 놀랍게도 그 요셉을 하나님의 손에 인도해 주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그 역할로 만들어 주신 것이죠.


요셉의 삶 가운데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 겁니다. 노예로 팔려가게 됐어요.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게 됐어요. 꿈을 해석해 주었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그 이야기를 다 잊어버렸어요. 배신을 당한 거죠. 아무런 소망이 없던 이 요셉에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요셉을 세워주신 것이죠.

요셉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그 꿈을 기억하고 견디고 그 꿈을 생각하면서 이겨냈을까요? 아니면 꿈은 다 잊어버렸을까요? 요셉이 노예로 팔려갈 때, 지금 내가 노예로 팔려가지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형들보다 부모보다 더 높은 곳으로 세워주시겠다고 나에게 꿈을 주셨지. 그러니까 그 꿈을 생각하면서, 노예로 팔려간 그 상황 가운데서도, 그 꿈을 기억하면서 견뎌냈을까요? 감옥에 갇히는 그 순간에, 내가 지금 감옥에 갔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신다고 했다고 하는 그 꿈을 생각하면서, 그 꿈 때문에 이 요셉이 견뎌낼 힘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릅니다. 성경에는 아무런 말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추측하기로는 아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힘드니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하는 그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시겠다고 했던, 그 꿈을 기억하면서 그 어려운 고난의 과정을 견뎌냈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언제 기억했을 것인가? 자기가 정말로 높아진 다음에, 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 형들이 자기 앞에 절하는 그 모습을 볼 때, 그 꿈이 그때서야 생각이 났을 것 같아요.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에요. 형들이 내 앞에 절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내가 꿈을 꾸었던 그 꿈이 그때서야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되었을 거예요. 맞아. 그 옛날 하나님께서 내게 꿈을 주셨는데, “그 꿈대로 내가 이렇게 되는구나”라고 하는 것을 그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 맞았구나. 내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대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해 주셨구나. 그때서야 그 자리에서 깨닫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꿈을 의지하지 말라고 해서 좀 실망하셨습니까? 나도 요셉처럼 그런 꿈을 꾸고 그 꿈을 보면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꿈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실망이 되십니까? 하지만 실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보여준 그 꿈 이상으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해 주신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우리를 향해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에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셨어요. 이 세상이 무엇인가 완벽하지 못하고 더럽고 늘 실패하고 늘 자격이 없고 초라한 성적표밖에 내밀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그 세상이 누구예요? 바로 나예요.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했는가? 바로 나를 사랑하셨다는 거예요. 실패한 나를 아무런 내놓을 것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나를 향해서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셨다고 이 성경에 말씀해 주고 계세요.


로마서 8장 32절의 말씀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가장 소중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끼실 것이 뭐가 있어요? 우리에게 주시지 않을 게 뭐가 있어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그 하나님의 약속이, 그 옛날 요셉이 꾼 꿈보다도 더 큰 꿈이에요. 요셉이 꾼 꿈보다도 더 확실한 그 약속이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해 주신다고 하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은 그것을 잊었기 때문에 아마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물론 요셉이 그 노예로 팔려간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힘든 순간에 그 꿈을 기억하지는 아마 못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요셉의 길과 비슷하다고 할 수가 있어요. 우리의 인생이 늘 승승장구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무런 문제도 없고 늘 승리하고 늘 좋은 일만 있고 늘 행복한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늘 문제 투성이일 수밖에 없어요. 원했던 것이 실패해 버리고 내 인생은 끝난 것인가 생각되는 일들이 있을 겁니다. 정말 답답한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원하던 학교 못 갈 수도 있어요. 내가 원했던 직장에 못 갈 수도 있어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어요. 정말 내가 애쓰고 수고했던 모든 공든 탑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거예요.

그 옛날 요셉을 향해서 주셨던 그 놀라운 꿈을,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 어떠한 방해 공작과 그 어떠한 그 형들의 시기와 질투 가운데서도, 오히려 그걸 이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높이 들어 세우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해 주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다고 하는 이 놀라운 이 하나님의 약속, 분명하게 기록된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선하신 길로, 가장 완벽한 길로, 우리가 보기에는 망가진 것 같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이건 막다른 골목처럼 보였지만, 그 자리가 노예의 자리고, 그 자리가 감옥의 자리였기 때문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길로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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