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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골 1:24-29)

오늘 읽은 말씀 골로새서 1장 24절 말씀에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남겨놓으신 고난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그 남은 고난이 있는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고 있다. 그 고난을 내 육체에 받아들이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말씀이 골로새서 1장 24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남겨놓으신 고난이 있다고 하는 이 말은 우리가 조심스럽게 이해를 해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고난이 구원이 불완전하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다 이루신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나머지 고난을 다 채워야만, 그래야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의미하는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신 그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충분한 구원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신 그 보혈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다 치른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없는 것이죠.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더 이상 해야 될,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 점을 먼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 말씀에 보면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드려서 드리신 그 제사가 영원한 제사요 온전한 제사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아니한, 완벽한 제사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다른 제사가 필요 없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 말씀 가운데서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하는 것이죠. 구원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인가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교회의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의 그 구원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것 같은 비성경적인 생각들이 교회 안에 많이 침투해 와 있었습니다. 특별히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어떻게 가르쳤는가? 우리가 드리는 그 예배, 천주교에서는 미사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 미사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미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희생을 반복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신 그 죽음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미사라고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고난을 다시 또 시행해야 되는 것 같은 그런 가르침을 가르쳐주고 있고요. 뿐만 아니라 연옥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죽게 된다고 한다면, 천국이나 지옥에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연옥이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그 연옥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다 씻어야만, 그래야 그 이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이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죽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선행을 베풀고, 무엇인가 기도를 하고, 무엇인가 더 무엇인가를 해야만, 그 연옥에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그 연옥의 교리들이 있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뿐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 내에서도 이런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한 가지 더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고, 방언을 해야 되고, 성령의 체험을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첫 번째 단계요. 그다음에는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고, 방언을 받아야 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그다음의 단계로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가야만 된다”라고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부족한 것인 양,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부족한 것인 양, 그렇게 가르치는 잘못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 내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잘못된 내용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이지만, 천국에서의 상급은 무엇으로 받는가? 우리가 얼마나 헌신을 했는가? 우리가 얼마나 전도를 많이 했는가? 우리가 어떻게 믿음 생활을 잘했는가? 우리가 얼마나 헌신했는가에 따라서 천국에서의 상급이 달라진다고 하는, 그래서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 천국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더 무엇인가 해야 된다고 하는 것 같은, 그런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합니까? 14만 4천 명이라고 하는 그 숫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우리가 특별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만, 그 숫자에 들어간다고 가르치는 등,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이 무엇인가 부족한 것인 양, 그렇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우리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그 보혈의 피가 완전해서, 더 이상의 아무것도 필요 없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 죽으심이 완전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고,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를 쉬게 해 주시겠다고 하는 그 주님의 말씀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골로새서 1장 24절의 말씀 가운데서 바울 사도는 고백하기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는데, 그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서, “도대체 그렇다고 하면 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이 불충분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의 길을 가는 가운데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고 여러 가지 시련과 역경을 당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쉽고 편하고 행복한 길일까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일까요? 어떤 길일까요? 믿음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 것이 쉽고 편하고 행복한 길입니까?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입니까? 한편으로는 기쁨의 길이에요. 오늘 우리의 준비 찬양을 하면서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540장 4절 말씀 가운데 “주가 주시는 참된 기쁨도 헤아릴 수 없도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고 행복이 넘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 생활할 때 힘들고 어려운 고난도 우리들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 가운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말씀해 주고 있는데, 자기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죽음의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고난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마냥 쉬운 것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죽음의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그런 고통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유하자고 하면 결혼 생활과 같아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결혼 생활하는 것이 힘든 일입니까? 행복한 일입니까? 둘 다예요. 행복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비유하자고 한다면 아이들을 기르는 것만 같아요.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행복한 일입니까?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둘 다예요. 힘들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그 모든 것들이 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행복하고 기쁜 것인가 했을 때, 정말 그래요. 행복한 길이에요. 하지만 그 길이 쉽고 편하기만 한 길이 아니라, 고통이 따르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우리의 믿음을 중단해 버릴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쥐고 내게 주신 그 십자가를 쥐고 믿음으로 승리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 왜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요? 주님을 따르는 길에 왜 십자가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탄의 최후의 발악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고 하는 것은 양탄자가 깔려 있는 아주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한 사탄의 공격이 언제든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비유하자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 어느 상태에 있는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라, 지금 우리는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 광야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의 그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기도 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하시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뜨거운 뙤약빛 밑에서 밤에는 추운 그곳에서 광야 가운데서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잘 찾을 수 없는 그런 힘든 그 광야의 길을 걸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천성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의 길이기 때문에,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어려움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은 고통이 있을 수밖에 있고 없고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왜 십자가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왜 고난이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중 국적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이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것과 같은 세상이에요.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발을 붙이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 하늘나라에 있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의 방식과 자꾸만 부딪히는 겁니다. 뭐가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이 세상과 맞지 않는 거예요.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천국의 방식대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고 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고 고난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제가 그 누구보다도 그것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중국적,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거기서 사는데 정말 힘들어요. 왜냐하면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고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미국에서 살려고 하니까 모든 것이 다 힘든 겁니다. 하나부터 10까지 모든 것들이 다 힘들어요. 그래서 유학을 하기도 하고 또 그곳에서 목회도 하기도 하고 하면서 그곳에서 모든 것이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이게 너무 힘들구나. 그러면서 이곳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는 영주권이라도 따야 되겠다 해가지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영주권을 따고, 영주권을 따도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시민권을 따야 되겠다 해가지고 막 시민권을 따는데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우리 아내에게도 영어 공부하라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시민권을 둘이 같이 가서 탁 따 가지고 시민권을 딱 땄는데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한국에 와가지고 여기서 사는데 한국에 살면서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살려고 하니까 여러 가지가 많이 힘듭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해서 한국에서 한국 시민권으로 가지고 살기 때문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저는 모든 것들이 힘들어요. 여러분들이 주민센터에 가서 1분이면 해결할 것을 저는 1시간 동안 이야기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 일이 안 되고, 1시간 동안 거기서 헤매야 되고, 은행에 가서 뭐 하려고 해도 1시간 동안 이야기한 다음에, 그래도 안 되고 거절당하고 모든 것들이 다 안 되는 왜 이렇게 거꾸로 사는지 모르겠어요. 인생을 그런데 정말 그 나라의 시민권이 아니라 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그런 일이 되는 것인데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우리들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이죠.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에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탄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죠. 바울 사도를 고난을 주면서 방해하려고 하고 온갖 방해를 가했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고난이 있는 것이고, 욥이 고난을 당했던 것 같은 그런 고난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인데,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이 고난 때문에 더 이상 못해먹겠다. 더 이상 복음 전하지 못하겠다 하면서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는 그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하면서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가게 된 줄로 믿습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서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불같은 시험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미리미리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비무환이라고 우리 옆에 사람들한테 한번 얘기합시다. 잘 알고 잘 대비합시다. 고난이 올 것을 대비하셔야 돼요.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늘 좋은 일만 있을 것인가? 아니요. 어려운 일이 반드시 옵니다. 고난이 옵니다. 어디서 오는가 가족들 가운데서 오게 되고 동료 교인들 가운데서 오게 되고, 또는 목사님을 통해서 오게 되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교인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게 되기도 하고, 어느 방면에서 고난이 올지는 모르지만, 그 고난이 오는 거예요.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내 헌신을 알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이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그 조롱과 어려움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있을 거라고 하는 것을 미리미리 대비하고 우리가 그 고난이 온다고 한다면, 그 고난 앞에서 무너져 버릴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대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서부터 13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어떻게 하라 즐거워하라.” 왜 즐거워해요?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더 기쁘고 더 영광스럽기에, 우리가 이 고난을 당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완전히 쓰러져버릴 것이 아니라 고난이 크면 클수록 기쁨도 더 클 것이다. “슬픔이 더 강하면 강할수록 행복이 더 클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이 고난을 담대하게 맞닥뜨려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가 일부러 고난을 당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를 보면 우리 성도들 가운데 고난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제목이 뭐냐 하면 “하나님, 제발 제가 순교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가 제발 순교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순교자의 그 영광을 너무나도 사모한 나머지 “하나님,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사는 것이 너무나도 죄스러워요. 이렇게 내가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요. 오히려 내가 고난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순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그렇게 고난을 사모하고 순교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수도원 운동을 하면서 일부러 고난을 자처하고, 내가 일부러 고행을 하면서, 그래서 내가 고행을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더 바람직한 것이다 하면서, 일부러 고난을 자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무엇이 좋은 것인가? 고난이 없는 게 좋은 거예요. 편안한 게 더 좋은 겁니다. 행복한 게 더 좋은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편하게 신앙생활할 수 있으면 좋아요. 행복하게 신앙생활할 수 있고 기쁨으로 신앙생활할 수 있으면 훨씬 더 좋은 거예요. 그러나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우리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해도 반드시 어려움이 있는 거죠. 반드시 고난이 있는 것이죠. 누구를 통해서 나를 사랑해 줄 줄 알았던 그 사람을 통해서 오히려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인데, 그럴 때 우리가 놀랄 것이 아니라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이 있다고 한다면, 더 큰 기쁨이 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히려 감사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어떻게 기도했는가? 바울 사도의 기도는 하나님 고난을 더 당하고 싶습니다. 순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10절 말씀에 보면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바울 사도가 고난의 길을 가는 가운데 고난을 받으면 그 고난 때문에 기뻐하기는 했지만, “고난 괜찮아” 한 것이 아니라 고난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 고난을 없애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그 고난을 하나님께서 없애주셔서 감사했고, 또 그 고난을 없애주셨을 때, 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즐거워했으면서, 또 바울 사도의 기도의 제목이 뭐냐 하면 “하나님 고난이 좀 없게 해 주세요.” “복음 전하는데 길이 열리게 해 주세요.”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갔지만, 그러나 고난이 온다고 한다면 좌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며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그 십자가를 피하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길을 갈 때 우리가 무엇을 예상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을 기대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 교회 분위기를 격려하는 분위기로 가져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칭찬해 주려고 합니다. 뭐 하나 잘하면 칭찬하고 뭐 하나 헌신하면 잘했다고 박수 쳐주고 서로서로 격려해 주고 자꾸 격려해 주는 일이 우리 교회 안에서 필요합니다. 그래서 박수 치는 거예요. 그래서 격려하는 거예요. 하얀 옷 입고 오면 또 박수 쳐주는 거예요. 내일은 어떻게 준비할지 기대가 됩니다. 박수 쳐주는 거고 음식 준비해 주시면, 너무 감사해서 박수 쳐주는 거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우리 교회 안에 있어야 돼요. 그런데 격려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비아냥거리고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뒤에서 조롱하는 목소리가 반드시 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탄이 어떤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일들이 우리들 가운데 있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그 옆에서 박수치면서 주님 힘내십시오. 십자가 지는데 주님 우리가 옆에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하면서 예수님을 격려하면서 그러면서 박수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도와준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그 길에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가버렸고, 십자가를 지는 그 길 가운데 “네가 만일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너를 구원해 보라고 하면서,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그런 십자가의 길을 주님께서 때려치우고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 위에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피 흘려주시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는 가운데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들에게도 남아 있는 십자가 고난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의 앞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겸손하게 그 십자가를 기쁨으로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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