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오지랖과 은사

나에게 주어진 은사는 무엇일까?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을 우리가 다 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 일이 선하고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선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렸다. 그리고 그 일은 솔로몬이 할 일로 넘겨졌다. 다윗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것이었다. 성전을 짓는 일을 하지 않기로 한 그 결정이야말로 다윗의 위대한 결정이었다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평가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이 말씀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와 사명이 있는데, 그 범위 안에서 사역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가르쳐준다. 귀가 코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 옳지 않고, 발이 입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 옳지 않다는 말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지, 자신의 영역을 넘어선 일까지 하려 드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역에서도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물론 이 말은 “이것은 나의 은사가 아니야!” “이것은 나의 사명이 아니야!” 하면서 쉽게 사명을 외면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사명을 회피하는 것 또한 옳은 일이 아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옆을 지나간다면, “이것은 나의 사명이 아니야!” 하면서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서는 안 된다. 마치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강도 만난 자를 만나게 한 뜻이 무엇일까를 질문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옳다.

내게 주어진 은사가 부족하다는 것이 핑곗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수술할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못 본 척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포도주로 상처에 부어 염증이 생기지 않게 도왔고, 헝겊으로 싸매어 더 크게 악화하지 않게 도왔다. 그리고 여관에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주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바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조폭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 즉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지 않는 것을 내놓으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고후 8:12). 보리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만 있으면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주님이시다. 이것으로 누구의 코에 묻히겠느냐며 화내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책망을 받은 것은 왜 다른 종처럼 다섯 달란트를 남기지 않았느냐는 것이 아니었다. 다섯 달란트를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에게 준 한 달란트를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우리는 더 큰 은사를 얻게 된다. 하나님의 은사는 고정된 게 아니라, 확장될 수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는 말씀은 진리이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더 큰 것으로 맡겨지는 법이다(눅 16:10-12).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프리미어 축구 선수가 되는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걷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아장아장 걸었다. 그러다가 걷고 뛰었다. 더 많은 연습을 하면서 실력이 느는 것이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은사와 사명은 발견해 나가는 것이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로마서 12:6-8은 우리가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성실함으로, 부지런함으로,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도대체 나의 은사와 사명은 무엇일까? 나의 믿음의 분량에 맞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우리는 너무 쉽게 나의 사명이 아니라고 하면서 포기하거나, 너무 쉽게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영역까지 침범하곤 한다. 주여 내게 지혜를 주소서. 기도하면서(약 1:5),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엡 4:15),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다윗은 자신이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하는 일을 성심껏 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만 지은 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지은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도 지어야 할 성전이 있지 않은가? 그 성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이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은사를 확장해 나갈까? 고민해야 한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