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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한 저울 (잠 16:10-11)

우리가 읽은 잠언서의 말씀, 특별히 오늘 읽은 잠언서 16장 10절의 말씀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잠언서 16장 10절 말씀이 어떻게 되어 있죠?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어서, 그 왕이 재판하게 될 때에, 재판을 하게 된다고 하면, 그 왕의 입술을 통해서 판결이 나오고, 그 왕의 입술을 통해서 재판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재판이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판결, 하나님의 재판이 이루어질 거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겠습니다. 이 구절의 문자적인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죠. 왕이 재판을 하는데, 왕이 재판을 하기는 하지만, 그 재판은 사람의 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판인 것이고, 그 왕이 내린 그 판결이 그냥 판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결이고, 옳은 판단이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그런 말씀이 바로 오늘 잠언서 16장 10절의 문자적인 의미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문자적인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내용 자체를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정반대와 같은 현실을 만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이 완벽한 사람인가? 아니잖아요? 왕이 완벽한 사람이고, 실수가 없는 사람이고, 정말 하나님처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람이어서, 그 왕의 판결을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우리가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평무사한 정의로운 판결일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에, 오늘 잠언서 16장 10절의 말씀을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정말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셔서,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내려주시고, 악을 행한 자에게는 징벌을 내려주시는, 그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 가운데 펼쳐진다고 한다면,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어요.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도 좋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정의가 짓밟히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죠. 악인이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것이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정말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왕의 판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왕이 재판관의 역할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여러 가지 소송 사건들을 보면서, 그 판결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인데요. 그 왕이 판결을 해주면, 솔로몬의 재판처럼, 정말 모두가 다 감탄할 만한 그런 아름답고 멋진 판결이 나오느냐 하면, 그렇게 좋은 판결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판결들이 너무나도 많이 나오게 되는 것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늘 만나는 현실이 무엇입니까? 정의로운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는 판단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라면 하나 훔친 사람에게는 몇십 년씩 구형을 때리는 반면에, 수억씩, 수백 억씩 떼어먹은 그 악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나버리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 게,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고, 그래서 그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가 잠언서 16장 10절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쉽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판결해야 될 일들이 정말 많아요. 학생이 학교에 가면 자신의 실력을 판결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정당한 시험에 의해서, 그래서 그 사람의 학생의 실력을 판단받아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죠. 축구를 한다고 하면, 축구 심판이 경기를 운영하면서 그 선수들이 반칙을 했는지, 정당하게 경기를 하고 있는지 심판이 제대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는 이런 판단하면서 심판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요. 그런데 정말 정의로운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축구 경기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편이 뭔가 조그만 잘못을 하면, 옐로우 카드를 주고, 레드카드를 주면서, 그래서 우리 선수들에게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하는 그런 심판이 상대방의 심각한 반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거 반칙 아니라고, 못 본 척해버리면서 경기를 편파적으로 진행하는 그런 축구 경기를 보면서 얼마나 분통이 터지셨습니까? 지난번 아시안게임을 하는데, 이 폭력 축구를 하고 있는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그러다가 우리 선수들 다 치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도 조바심 가운데서 축구 경기를 보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이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정말 엉터리 심판이 있어서, 그래서 의도적으로 정말 누가 봐도 반칙인데 반칙이 아니라고 하고, 정말 누가 봐도 이것은 괜찮은 행위인데, 오프사이드라고 선언을 해버리는 그런 심판을 보게 된다고 하면, 정말 짜증이 나고, 심지어 분노가 솟아오르게 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스포츠 경기에서만 일어나겠습니까? 스포츠 경기처럼 메달이 걸리거나, 아니면 돈이 조금 걸려 있는 것에서만 이러한 반칙적인 정말 편파적인 판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이권이 걸린, 이권 앞에서는 정말로 엄청난 악한 판결들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진실은 은폐되는 것이고, 거짓은 마치 진짜인 것처럼 부풀려져서 알려지는 가짜 뉴스들이 판치는 그런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오늘 잠언서 16장 10절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하나님의 말씀이 재판관인 왕의 입술에 있은 즉, 그 왕이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않는다.” 그 왕의 재판은 하나님의 재판이오, 공평한 재판이오, 옳은 재판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이 말씀이 문자적인 의미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말씀이 구약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에도 비슷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은 어떤 사람이 잘못을 했을 때에, 그 잘못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 것이냐라고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해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고 있다고 한다면, 너희가 교회 공동체에서부터 그 사람을 쫓아내 버려라. 교회가 재판을 해서, 그 사람을 쫓아내 버리면, 하늘에서도 그 사람을 쫓아내 버리는 것이 될 거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죠. 다시 말하자면 교회가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이 그냥 결정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린 결정과 같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6장 19절의 말씀도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내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내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고 했을 때, 이 천국 열쇠를 받는 사람이 누구죠? 베드로입니다. 베드로! 베드로가 지금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 베드로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래서 덧붙여주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에요. “내가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데,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열쇠로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면, 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고, 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면,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그 권세가 어떤 권세인가? 보통 권세가 아닌 거예요. 교회에서 무엇인가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이 하나님께서 내린 결정이 되는 것이고, 그 교회에서 누군가를 재판에서, 그래서 그 사람을 출교 시키면, 그 사람은 지옥 자식이 되는 것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교회의 결정이라고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결정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신약 성경 가운데도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구약 성경 잠언서 16장 10절의 말씀과 그리고 마태복음 16장과 18장의 말씀들을 쭉 살펴본다고 한다면, 그러면 왕의 판결이나 교회의 재판이나 판결, 결정들이 곧 우리가 하는 결정이 곧 하나님의 결정이오. 우리가 하는 그 모든 결정은 곧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정과 똑같은 것이니까, 그렇게 알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될까요? 결론적으로 먼저 말씀을 드린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내리는 모든 결정들은 완벽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 결정을 내리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사람이 내리는 결정은 100% 완벽하고 무흠하고 아무런 오류가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왕의 결정이든, 교회의 결정이든,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들은 모두가 다 완벽할 수가 없고,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그런 것을 얼마나 많이 경험을 했습니까? 정말 이건 아닌데, 교회가 엉터리 판결을 내리는 거예요. 정말 이건 아닌데, 재판정에서 엉터리 판결을 내리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정의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그런 일들을 너무나도 많이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고대합니까? 마지막 날을 기대하는 거죠. 최후의 심판의 날, 하나님께서 모든 망가진 것들을 제대로 원상복귀시키시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그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눈물을 흘리는 자들에게 눈물을 닦아주실, 이제 모든 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실, 그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우리 모두가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이 세상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나, 이 세상에서는 말도 안 되게 억울한 일들을 우리가 당하면서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수를 갚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우리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이유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인정해 주실 것이고, 우리의 억울함을 다 풀어주실, 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최후의 심판의 날을 고대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기 전에는 여전히 잘못된 판결이 있을 수 있겠고, 억울한 일들이 늘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왕의 판결이든 교회의 재판이든, 그 어떤 결정이든 모든 것들이 다 불완전하고 제대로 된 결정들이 아닐 수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왜 잠언서 16장 10절에서는 왕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왕의 재판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판과 같아서, 그르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교회가 결정하면 곧 그 결정이 하늘에서 내린 결정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왕의 판결이든지, 교회의 판결이든지, 그 어떤 권세를 가진 자의 통치 행위든지 그 모든 것들을 하찮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우리가 대부분의 경우에는 복종하고 순종해야 된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왕이 누굽니까? 구약 성경에서 등장하는 왕은 누구일까요? 왕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려야 하는데, 그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하나님 대신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왕인 것이죠. 하나님께서 왕에게 그 통치와 다스림을 위탁하신 겁니다. 각각의 영역에 그러한 위탁자들이 다 있어요. 위임을 받은 사람들이 다 있어요. 그래서 재판의 영역에서는 재판장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재판을 하는 것이며, 축구장에서는 축구 심판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축구 심판을 하고 있는 것이고,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대리하여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녀들을 양육하고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부모님에게 권세를 주신 것이고, 각각의 영역마다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해 주셔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의 영역에서 다스리고 통치하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죠.

그랬을 때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가? 그렇게 하나님을 대리해서 통치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른 자세이고, 성경적인 자세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하나님의 대리를 하고 있는, 그 권세 잡은 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입니다. 그게 성경적인 원리예요. 로마서 13장 1절, 2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우리는 권세에 복종해야 되나요? 권세를 거슬러야 되나요? 복종해야 돼요! 그게 성경적인 원리예요. 왜? 모든 권세는 누가 주신 권세예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고, 그 하나님께서 주신 그 권세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게 바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는 게,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그런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건물에 들어간다고 하면, 건물 관리인이 그 건물을 관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건물 관리인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차장에 간다고 한다면, 주차장 관리하는 사람이 주차장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차장 관리원의 말을 듣고 주차를 해야 하는 것이죠. 교통을, 우리가 운전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교통경찰관의 그 지시에 따라 복종하면서, 우리가 운전을 해야 되는 것이고요. 우리가 학교에 간다고 한다면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에 따라서 학생들은 공부해야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자녀들은 부모가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거역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모님에게 권세를 주셨음을 인정하고 그 부모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부모님의 부모님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게 성경적인 원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각각의 영역에서 각각의 권세 맡은 자가 있는데, 내가 어떤 어떤 분야에서 어떤 힘을 가지고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시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에 있는 권세 맡은 사람들에게 순종하며 복종하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축구 심판이 편파 판정을 하기 할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러나 사실 축구 심판이 90% 정도는 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축구 경기가 운영이 되는 거예요. 대부분의 판단은 다 괜찮은 판단이에요. 볼이 밖으로 나갔다. 볼을 누가 차야 된다. 등등 대부분의 모든 판단들은 다 괜찮은 판단이에요. 옳은 판단이에요. 축구 심판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판단들이… 일부 잘못된 판단들이 있을 수가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축구 선수들은 축구 심판의 그 지시를 따라야만 할 의무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따르지 않고서는 축구 경기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축구 심판의 그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선수는 축구장에서 쫓겨나갈 수밖에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마서 13장 3절에서부터 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내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내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로마서 13장의 말씀이 누구에게 주어진 말씀인가? 1차적으로 로마에 있는 박해받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지금 로마 정부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무슨 말을 하냐 하면, 그러니까 “너희를 지금 고통스럽게 하는 그 로마 정부와 싸워가지고, 종교의 자유를 쟁취해 내라. 그들을 무너뜨리고 기독교 국가를 세워라.”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 그 세속 국가의 왕에게 복종하고, 법률에 복종하라고 가르쳐주고 있는데, 심지어 무슨 얘기를 하냐면, 이 로마 국가가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정의의 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선을 행한다고 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라고 그렇게 말을 해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법을, 이 세상의 법을 지키고 권세에 순종해야 되는데요. 그것이 곧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잠언서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잠언서 16장 10절의 말씀도 왕이 지금 판결을 하고 있는데, 그 판결이 무슨 판결인가? 하나님이 주신 판결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그 말은 그러니까 이 왕의 판결이 100% 다 옳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그 원리상으로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왕을 세워주셔서 그로 하여금 재판을 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서, 너희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그렇게 왕을 세워줬으니까, 그 왕의 판결에 따르고 순종하고 복종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모든 그런 통치에 우리가 복종하는 것이 옳다 하는 것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죠.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런 로마서의 말씀이나 이런 걸 가지고, 국가의 불법적이고 악한 통치에도, 아무 소리 못하도록, “그냥 입 잠잠하고 있어라”라고 하는 그런 식으로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은 아닙니다. 또 성경 전체로 우리가 살펴본다고 한다면, 잘못된 통치에 대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은 것이 옳으냐?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하면서 거부하고, 반항한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불의의 통치에 협력하거나 잘못된 그런 통치에 그냥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복종하라고 하는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왕으로서, 일반적으로 통치자로서 가지고 있는 그런 선한 통치들에 대해서, 협력하고, 같이 해야 된다. 그냥 무조건 악한 사람이라고 규정해 버리고, 모든 것을 다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그런 악한 통치를 하게 된다고 한다면, 마치 신사 참배를 하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성경적인 원리에 반하는 그런 악한 일을 하라고 그렇게 요구한다고 하면,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거부해야 되겠지만, 다른 모든 것들, 빨간불에는 서고, 초록불에는 가라고 하는 그것은 누구든지 지켜야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지켜야 되는 거예요. 그것은 아무리 통치자가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적법한 통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이것을 우리가 고민하면서 순종해야 될 텐데요. 한편으로는 순종해야 되고, 그러나 악한 통치에 대해서는 순종하지 않아야 되면서,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늘 이해해야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를 잘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정말 권세 가진 자의 그것에 복종할 필요가 있는 것도 있는 등, 사실 이 문제는 그냥 아주 간단하게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그렇게 두부를 자르듯이 완벽하게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될지,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우리가 응답하는 게 좋을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아무튼 잠언서 16장 10절의 말씀은 무엇이냐 하면, 일반적인 통치를 말하는 것이죠. 일반적인 재판을 말하는 것이죠. 정말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그러한 판결이나 통치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따라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말씀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다음 절 잠언서 16장 11절의 말씀을 한번 보겠는데요. “공평한 저울과 접시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공평한 저울, 공평한 접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말씀이겠고요.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만일 이것이 우리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물건을 팔 때, 이런 저울들을 사용한다면,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정직하게 장사를 해야 된다고 하는 결론을 이 잠언서 16장 11절의 말씀 가운데서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원산지가 국내산이라고 써놓고 실제로는 일본산 수입해서 팔면 안 되는 거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수제 유기농 빵을 매일매일 만들어 판다고 써놓고, 실제로는 공장에서 만든 그런 반죽을 가져다가 팔면 안 되는 거죠. 반찬 재사용 안 한다고 해놓고, 실제로 반찬 재사용하면 안 되는 거죠. 공평한 저울을 사용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잠언서 16장 11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여기서 말하는 그 법이 무엇이냐 하면, 여기서 말하는 저울이 재판장이 사용하는 저울이라고 한다면, 바로 앞에 있는 10절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왕이 재판을 할 때 공정한 재판을 한다면, 공정한 저울을 사용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재판이 된다고 하는 것이고, 그런 공정한 하나님의 재판 앞에 우리가 순복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통치에 대해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 두려워할 일이 없는 것이죠. 악한 일을 한다고 한다면 오히려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복종하며 살아야 되겠구나. 정말 선한 일을 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그런 결론을 내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다가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 세상의 재판관들로부터 심판을 당하고, 그리고 고통을 당하는 그런 길로 갈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정말 정직하게 행하고 바르게 행해서, 그래서 상을 받는 그런 길로 가는 그런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럴 수 없기에 우리들은 다시 한번 십자가 앞에 나가고, 다시 한번 회개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나아가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그런 놀라운 은혜의 역사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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