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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족반 교재 – 제1과 하늘 아버지

탕자(蕩子)의 비유

이스라엘의 어느 가정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바깥세상에는 온갖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이 펼쳐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지금 내게 주세요.”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고 하는 것은 당시 중동의 문화에서는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던 사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둘째 아들에게 유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간섭이 없이 사는 그곳은 천국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면서 흥청망청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이 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싸늘한 반응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남의 집에 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주인은 돼지를 치는 일을 시켰습니다. 돼지는 유대인들이 가장 더럽게 생각하는 짐승이었습니다. 비굴하게 느껴졌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그런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너무 배고파서 돼지가 먹는 여물을 먹으려 했지만, 그렇게 먹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의 집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일꾼들도 풍족하게 먹는데…” 눈물이 그의 눈에서 흘러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집을 뛰쳐 나왔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면,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패륜을 저지른 자식은 동네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던 유대 율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에서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사느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잘못 했다고 용서를 빌면서, 그냥 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라도 받아달라고 할 생각으로 말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마을 재판에 회부하면 어떻게 되지? 아버지가 나를 보고 분노하면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망설임 속에서 그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을 가까이 갔을 때였습니다. 저기 멀리서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오매불망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고, 아들의 발걸음의 특징을 보고 저 멀리서 알아보고 달려온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후로부터 마을 어귀에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이 고생이 심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린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유산을 내놓으라면서 아버지를 향해서 했던 치욕스러운 말은 이미 잊은 지 오래입니다. 아버지의 관심은 오로지 둘째 아들이 무사한가였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들처럼 보이는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그 발걸음을 보니 분명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급해졌습니다. 혹시라도 동네 사람들이 아들을 알아보고 유대 율법에 따라 처리하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조급한 마음에 먼저 달려갑니다. 유대 어른들은 결코 위급한 상황에서도 뛰는 법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잘 돌아왔다. 아들아” 아버지는 너무나도 기뻐서 잔치를 벌이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죄를 지었으니, 면목이 없다 말하고 그저 품꾼으로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를 각색한 이야기

1.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고아(孤兒)인 것처럼 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이신데도 말입니다. 마치 아버지의 집을 떠나 고생하는 탕자(蕩子)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애타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어떻게 초대하고 있나요? 마태복음 11:28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2. 아버지가 없는 고아라고 생각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것보다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아버지의 품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훨씬 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고아처럼 살아가는 것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12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3.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산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았나요? 그래서 어떤 유익을 누렸나요? 시편 23:1과 23:4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

크리스천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다 해도 절망하지 않았으며, 늘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7-10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10)

4. 이러한 삶에 동참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고, 매일의 삶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여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두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8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8)

주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우리들의 육신의 부모들도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직접 낳은 어머니가 우리를 잊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사야 49:15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3:1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5.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로 하나님을 인정하거나 강제로 사랑하게 만드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그럴만한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영접하는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강제로 사랑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며, 참된 사랑은 사랑하지 않을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로 오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6.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귀를 기울여 들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에게로 향하여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7:9-11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9-11)

7.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 하나님께 기도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을 제 아버지로 영접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아버지가 없는 고아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고달프고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 마음에 오셔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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