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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15-23)

의의 무기 (롬 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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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 집에 브라운관 tv, 아주 옛날 구형 tv만 있는데, 어느 날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오기를 최첨단 스마트 tv, 최첨단 led tv를 공짜로 나누어 준다고 하면 받으러 가시겠습니까? 안 가시겠습니까? 너는 설교해라. 나는 아무 소리 안 하겠답니까? ㅎㅎㅎ. 받으러 갈까요? 받으러 가지 않을까요? 예. 받으러 갈 겁니다. 받으러 가는데, 만일 주민센터에서 말하기를 만 개가 준비되어 있으니, “선착순 1만 명에게만 준다.”라고 한다면 언제 받으러 가시겠습니까? 그 시간이 오픈되는 시간에 가시겠습니까? 오픈되는 시간 이전에 가서 미리 줄 서 있다가 받으시겠습니까? 미리 가서 받죠.

선착순으로 만 명에게만 준다고 한다면, 공짜로 준다고 한다면, 아마 모두가 다 그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니 그 전날부터 텐트를 치고 기다리면서, 그 텔레비전을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 명의 순위 안에 들면 받게 되는 그런 행운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조금 늦어서 만 한 번째 서 있는 사람은 받을 수 있나요? 받을 수 없나요? 받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받지 못할까 봐 새벽부터 가서 줄 서기도 하고, 어떤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그 전날 미리 텐트를 치면서 기다리고 받으려고 할 겁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경우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주민센터에서 문자로 연락이 옵니다. 당신은 이번에 새로 나누어주게 될 최첨단 스마트 tv, led tv를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됐습니다. 아무 때나 오셔도 드립니다. 아무리 늦게 오셔도 드립니다. 1년 뒤에 오셔도 드립니다. “반드시 받게 돼 있습니다.”라고 하는 문자가 온다고 한다면, 언제 받으러 가시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일찍 가서 받죠. 하지만 굳이 새벽부터 가서 줄 설 필요 없을 것이고, 그 전날 텐트 치면서, 그렇게 그 텔레비전을 받겠다고 기다릴 사람들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선착순이 아니기 때문에, 내 것이 보장되어 있는데, 굳이 내가 가서 고생하면서 줄 서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로 제가 한번 말씀을 드린 건데요.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구원과 빗대어서 생각해보자고 한다면, 우리들에게도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 겁니다. 만일 우리가 거룩하게 살고 의롭게 살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서, 그래서 완벽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율법을 지키겠습니까? 안 지키겠습니까? 지키는 거죠.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사람만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들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모두가 다 열정을 다해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느 날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모든 죄는 이미 다 용서되었고,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제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번 대답 한번 또 해주세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대답하려고 하니, 아닌 것 같고, 없다고 대답하려고 하니, 그건 믿음이 없는 것 같고,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모르겠죠? 그런데 그게 많은 크리스천들의 생각 속에 있는 그런 질문이고, 대답입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 열심히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야 될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때, “너 율법을 얼마나 지켰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가?”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라고 한다면, 내가 뭐 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율법을 지키지? 내가 뭐 하려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살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거저 은혜를 주시는데, “내가, 왜 이렇게 선착순 줄 서듯이,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되는가?” 하는 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공로가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공짜로 얻게 되었다고 한다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어졌어요? 없어졌어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그러면 율법을 안 지켜도 되겠네?”라고 하는 질문이 떠오르는 겁니다. 바리새인들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엄청나게 많이 지은 세리도 천국에 가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삶을 산 사람만이 아니라, 간음했던 창기들도 천국에 가고, 악한 자들도 다 천국에 간다고 한다면, “내가 뭐 하려고 이렇게 거룩하게, 정말 힘들게 살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 오늘 성경 말씀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15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오?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오?” 그에 대한 대답이, “그럴 수 없느니라.” 그게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생각이 드는 것이죠.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그냥 공짜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면, “굳이 이제 우리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일 겁니다. 그런 질문에 대해서, 오늘 로마서 6장 15절에서 그렇게 율법을 어기고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괜찮겠는가? 왜냐하면 우리가 죄인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죄지어도 구원받으니까,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합격점을 못 받아도,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니까, 우리가 굳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겠는가? 죄를 지어도 되지 않겠는가?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질문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 질문에 대해서 오늘 로마서 6장 15절의 말씀은 “그러면 안 된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한번 도표를 봤으면 좋겠는데요. 이것이 오늘 6장 15절에서부터 23절의 말씀을 요약한 도표입니다. 아주 긴 말씀을 우리 지오가 잘 읽어줬는데요. 그런데 이 말씀은 추상적인 말씀들이 자꾸 나오기 때문에 한마디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약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쭉 한번 요약을 한번 해봤는데요. 이 요약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어도 괜찮은가? 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질문에 대해서 “그럴 수 없다.”라고 대답을 해놓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그다음의 내용입니다.

왜 그런 죄를 지으면 안 되는가?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된다? 사망의 열매를 맺는다. 구원받는다는 얘기입니까? 못 받는다는 얘기입니까? 못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훈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면, 의의 종이 되는 것이고, 의의 종이 되어 우리는 영생의 열매를 얻게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로마서 6장 15절에서 23절의 말씀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냐면,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하는 그런 우리들을 향해서 해 주시는 말씀이 “아니다. 아니다. 너희가 그렇게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들을 순종하면서, 의의 종으로 살아야 영생을 얻는 것이지,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멸망하게 될 것이다. 사망하게 될 것이다.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텔레비전으로 예를 다시 바꿔서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브라운 관 tv가 있어서 led tv를 받았는데, 스마트 tv를 받았는데, 이제는 집에 와서 뭘 봐야 되나요? 옛날 브라운관 tv를 계속해서 봐야 되나요? 흑백 tv를 계속해서 봐야 되나요? 아니요.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되는 것이죠. 스마트 tv, led tv, 정말 최첨단 스마트 tv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받아놓고 땅속에 감추어 둬 버리고, 처분해 버리고, 여전히 흑백 tv, 브라운관 tv를 앞에 놓고 그 앞에서 왜 우리는 스포츠가 안 나오냐? 왜 우리는 우영우가 안 나오냐? 그러면 안 된다는 얘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가만히 묵상하다 보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하나 떠오를 겁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씀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그런데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여전히 죄악 가운데 머무르게 된다면 어떻게 된다는 말씀이에요? 사망하게 될 거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구원을 무조건 받는다는 이야기입니까?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오늘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는 말이 충격적으로 들립니까? 아마 칼빈주의 신앙에 대해서 열심히 교훈을 받으신 분들은 아마 충격처럼 느끼게 될 겁니다. 우리가 장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흔히 튤립(tulip)이라고 합니다. 튤립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튤립 한번 보여주세요. 이 튤립인데, 이 튤립 꽃을 기억하라는 게 아니고,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하는 것이 다섯 가지 교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표를 한번 보시면요.

첫 번째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죄성으로 가득 찬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고 영적으로 무능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서는 우리의 힘으로서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하는 것이 첫 번째 교리입니다. 영어로 total depravity라고 얘기를 하죠. 완전히 타락해버렸다. 그런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아무런 이유 없이, 몇몇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셨다는 겁니다. 인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소수를, 몇 명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일부를 선택하셨는데, 그렇게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는가? 아무 기준도 없이 선택하셨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했다는 겁니다. “내가 사랑할 자를 사랑하고,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고” 하나님께서 그냥 아무나 선택하셔서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이지, 사람이 무엇인가 이 사람은 저 사람보다 나은 점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은 저 사람보다 더 예쁘기 때문에, 더 신앙생활을 잘할 것 같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기준에 따라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무나 막 선택하셨다고 하는 것이 두 번째 교리입니다. unconditional election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신 것은 모든 인류를 구원 베풀기 위한 그런 피 흘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일부만을 위한 구원의 사역이었다고 하는 겁니다. 즉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주셔서 구원을 베풀어주신 그 구원이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아니라, 일부 그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서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고, 속죄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세 번째 교리죠. limited atonement라고 하는 겁니다. 보편적으로 구원해 준 것이 아니라 일부 제한된 선택된 자들만을 구원해 주신 거라는 겁니다.

네 번째 교리가 무엇이냐면, 그런 은혜를 우리 인간이 받는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자동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사람 편에서 “나는 구원 안 받을래” 하면서 거부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구원 안 받고 싶어” 내가 구원을 거부해서 거부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그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irresistable grace.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 교리가 뭐냐 하면 성도의 견인(堅忍)이라고 하는 교리인데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실패해버리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구원을 못 받게 되는 그런 낙오되는 일이 없이, 그런 성도들은 끝까지 결국에는 구원시킨다. 성도는 무조건 구원한다라고 하는 것이 칼빈주의 5대 교리인데, 이 5대 교회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람의 구원이 전적으로 누구에게 달려 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지, 사람 편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칼빈주의 5대 교리 강령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구원을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다고 한다면 도중에 실패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그게 칼빈주의 5대 교회에 나오는 것인데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6장 15절에서부터 2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 무슨 내용입니까? 이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그러나 너희가 은혜를 받았다고 해놓고, 계속해서 죄 가운데 거하고 있다고 한다면 구원을 받는다는 거예요? 못 받는다는 거예요? 못 받게 된다는 겁니다. 너희가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결국 죄의 종이 되는 것이고, 죄의 종이 된다고 한다면, 결국에는 사망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오늘 말씀하고 있어서,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잘못된 것입니까?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잘못된 것입니까?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되나요? 무엇이 옳은 겁니까? 둘 중에 하나만 맞고,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말하고 있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우리가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성도의 견인 교리가 무엇이냐면, 이런 것입니다. 도표를 한번 다시 한번 보여주시죠. 성도의 견인 교리, 다섯 번째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그 선택한 자는 반드시 결국 구원하신다고 하는 의미가 성도의 견인 이야기입니다. 성도의 견인이라고 하는 교리가 가르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성도의 견인 교리가 가르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일시적으로 보이는 그런 사람, 교회를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도 반드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참된 성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거짓 성도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들은 누가 참신자인지 누가 가짜 신자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참 성도도 있고 가짜 성도도 있다는 거예요. 참 성도도 있고 가짜 성도도 있는데, 그런데 그 가짜 성도 중에는 누가 있을까요? 누구든지 가짜 성도가 될 수 있어요. 목사도 가짜 성도일 수 있고, 장로도 가짜 성도일 수 있고, 선교사도 가짜 성도일 수 있고, 그가 누가 진짜 성도인지 가짜 성도인지 알 방법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참된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래서 결국은 구원을 받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리고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참된 성도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는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장 4절에서부터 6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 그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멸망받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니라, 신앙인인 것처럼 성도인 것처럼 행세를 해왔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해오고 있었지만, 그러나 결국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 어떻게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사망하게 되어 있고, 멸망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보면서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종종 어떤 분들은 이런 히브리서 6장의 말씀이나 성경 다른 곳에 있는 말씀들을 예로 들면서, 믿는 자도 타락해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는 그런 성경 구절들을 들이대면서, 칼빈주의 5대 교리가 틀려먹었다고 주장하는 그런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있고, 정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은 칼빈주의 5대 교리가 맞기 때문에 무슨 죄를 지어도 어떤 악을 행해도 그런 사람은 무조건 천국을 간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잘못된 양극단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정말 성경적인 말씀대로 다른 믿음을 우리 모두가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죄악을 계속해서 짓게 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의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인 것이고, 그렇게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못 받을 것이다? “못 받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로마서 6장 23절의 말씀 가운데서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죄의 삯은” 무엇이오? “사망이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그 음성을 거부하면서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결국 멸망할 것이고, 구원받지 못할 거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망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1차적으로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그런 1차적인 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사망을 말하는 것이죠. 요한복음은 11장 25절에서 26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내가 믿느냐?”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여기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이야기는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요. 예수 믿는 사람이든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든 다 1차적인 사망은 경험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2의 사망을 말하는 것이고, 영적인 사망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사망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할 때, 여기서의 사망이 무엇이냐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어떤 나무에서 가지가 잘려 나가면, 더 이상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처럼 잠시 보이지만, 결국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영적인 생명의 근원이신 우리 하나님에게서 우리가 잘려 나가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말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된다? 이제는 어떻게 하라? 흑백 텔레비전을 보지 말고,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보지 말고, 이제는 무엇을 하며 살아라? 하나님의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같이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생활 의로운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말씀을 기억한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도 괜찮은 줄 알고, “나 어차피 구원받았어.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대.” 하면서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었던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부터 끊어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오해해서, 지금도 내가 죄를 짓고 있지만, “나, 예수님 믿으니까, 구원받았어.” 하면서, 그 죄에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우리가 죄의 종으로 계속 머무르고 있었던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 죄의 종으로 머무르고 있었던 그 부분을 이제는 의의 종에 그 부분으로 바꾸어 버리는 그런 믿음의 결단이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들은 그 죄를 계속해서 짓고 있는 것일까요? 첫 번째는 우리가 오해해서 그렇습니다. “죄를 지어도 괜찮구나.”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그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하는 그 무서움을 우리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그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심각한 결과가 올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2015년에 있었던 사건이었는데요. 서울에서 살던 어떤 40대 부부가 친정이 있는 경북 문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40대 부부가 문경의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귀촌을 소망하면서, 그렇게 친정이 있는 집 가까이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정말 땅을 사고 거기에 멋진 집을 잘 지어놓고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지 이틀 만에 두 부부가 죽은 상태로 발견이 됐습니다. 그 집에 인터넷 설치를 하기 위해서 방문했던 어떤 인터넷 기사가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서 창문을 통해서 보니까, 방 안에 아주머니 한 분이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 119로 신고를 했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밖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고, 그리고 부부 사이가 안 좋았던 것도 아니고, 정말 자살해야 될 이유도 없이, 그저 꿈을 안고 멋진 인생을 살기로 했던 그 부부가 그런 참변을 당하게 된 이유를 조사했는데요. 어떤 이유였었냐면 그 집에 보일러실에 연통이 깨져 있었다는 겁니다. 그 연통에서부터 일산화탄소가 방출이 됐는데, 일산화탄소가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어서 방 안에 들어오는 줄도 몰랐는데, 그런데 실험을 해보니까 보일러를 든 지 세 시간 만에 치사량에 이르는 일산화탄소가 방출되었다는 것이고요. 밤사이에 잠을 자다가 그런 참변을 당한 것이죠.

냄새도 없고 아무 색깔도 없고 그러니까, 아무런 경각심도 갖지 못하다가 그냥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죄가 그래요. 괜찮은 것 같아요.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 같아요. 그 안에 있어도 괜찮은 것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지 않으면서 망해가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벗어난 것이 혹시 없는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것은 없는지, 매 순간순간마다 살펴보면서 믿음으로 주 앞에 서는 믿음의 결단들이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는 이런 의의 길로 가는 것보다, 죄의 길 가운데 머무르고 있기를 좋아할까요? 세 번째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는 이러한 삶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의 스타일 이대로 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서, 그래서 여기서부터 빠져나오려고 하는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인데요. 사실 빠져나가면 행복이에요. 죄를 지으며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기쁨이고 정말 행복한 일이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복된 길인데, 우리가 그 복된 길로 나아가기를 좋아하느냐 하면 아니요. 오히려 더 두려워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가 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 자존심은 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오히려 더 불안한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고, 지금 이대로가 좋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고 하는 그런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쇼생크 탈출이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영화가 있는데요. 그 영화에 보면 이런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브룩스라고 하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요. (조금 나중에 보여주세요.) 브록스라고 하는 영감이 있는데, 그 영감이 종신형을 가지고 그 감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감옥에서 살고 있는데 모범수예요. 감옥에서 정말 모범적으로 수영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감옥의 도서관의 사서로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석방 위원회에서 그 사람을 관찰하다가, “아, 이 사람은 너무나도 모범수이기 때문에 가석방을 해도 좋다.”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내일이면 이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내일이면 드디어 감옥이 아니라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브룩스 영감이 그 가석방되기 전날 헤이우드라고 하는 동료 죄수를 향해서, 상처를 주고, 목에 흉기를 들이대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결국 어떻게 됐을까요? 석방은 취소되고, 그냥 다시 감옥 생활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주인공 앤디가 레드라고 하는 흑인 선임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이 감옥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왜 저 영감은 내일 나갈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저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그냥 몇 분만 더 참으면, 이제 자유의 몸이 될 텐데, “왜 저런 엉뚱한 일을 해서, 감옥에서 나가는 것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 감옥의 최고참이었던 레드라고 하는 흑인이 대답을 해주는 거죠. 그게 이미 감옥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감옥에 내가 맞춰져 버렸기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한 말이 이 말이에요. (지금 한번 보여주세요.) “이 담장은 우스운 거야. 처음에는 싫어하지. 그러나 나중에는 익숙해지게 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는 이 담장을 의지하게 돼. 그게 바로 제도화된다는 뜻이야.” 브룩스라고 하는 영감은 이 감옥 속에서 그런대로 인정받고 도서관 사서로 일을 했지만, 사회로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추장스러운 노인일 뿐이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죄수의 별을 붙이고 왔던 사람이라고 무시당할 것이고, 사회에 나가면 도서관 사서는커녕 도서관 카드조차 발급받을 수 없는 불행한 인간이기 때문에, 세상에 내가 자유의 몸을 얻는 것보다, 그냥 이곳에서 사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걸로 제도화되어 버린 것이죠.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 머무르고 있는 것은 이게 편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 편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에 사탄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던 그 삶이 너무나도 변한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바꾸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어요. 사실 바꾸면 자유의 몸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훨씬 더 기쁜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그런데 그 훨씬 더 좋은 기쁨을 향해서 나아가기보다는 그냥 옛날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 마음 가운데 사악한 모습은 없는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모습은 없는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해요. 왜냐하면 그 죄악의 길을 따라서 계속해서 살아간다면, “그런 죄악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구원받을 거니까, 나는 예수님 믿었으니까, 무조건 구원받는다.”라고 하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주님의 경고를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떠나 있는 것은 없는지, 점점점점 우리의 죄의 종으로 살았던 부분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의의 종으로 살라는 걸로 바뀌어 가야 할 것입니다.

정말 작은 이익, 없어도 되는 그 이익을 위해서 내 양심을 팔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님께서는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이웃과 형제를 향해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한 우리들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의의 길로 나아가면,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용서하지 아니하고 시기와 질투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식이 자신을 감옥 속에 쳐 넣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는 감옥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을 받고 난 다음에 100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서, 그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았을 때, 자신은 그게 권리라고 생각했고,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 결과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지만, 결국 갇히게 된 것은 누굽니까? 나 자신이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죠.

형제를 용서하면 그 사람이 감옥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내가 갇혔던 그 감옥에서도 내가 나오는 거예요.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살아가면, 우리 스스로를 감옥에 집어넣으며 사는 것이고, 죄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지금까지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별거 아닌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이번 한 주간 깊이 묵상하고 또 묵상하는 가운데, 내가 지금 죄의 종인지 의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보아보며,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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