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능력 (출 7:8-13)

명령하신 대로 (출 7:1-7) +++ 피로 변한 물 (출 7: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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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동영상에 나온 한 대사 가운데 하나가 “엄마가 있다고? 그럼 내게 보여줘 봐.”라고 하는 말이 들어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사람들이 우리들을 향해서 하는 말일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그렇다면 하나님을 좀 보여줘 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좀 나타내 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 7장의 말씀을 보면, 바로 왕은 모세를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내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바로와 담판을 짓기 위해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내라”라고 하셨다고 이야기했을 때, 바로가 했던 대답이 무엇이냐면, “그럼, 이적을 내게 보이라.”는 겁니다. “이적을 보여줘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증거를 찾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고 계신가? 하나님께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가를 갈망하고 있고, 그 증거를 발견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짜잔”하고 나타나 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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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셨을 때,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다고 하는 그 증거들을 보여주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적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상식으로,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아,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결단을 하게 된 것이죠.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 가셨을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기적을 본 제자들의 반응이 무엇이냐면, 그때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과연 누구일까? 예수님이 과연 어떠한 분일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결단의 과정으로 거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수고하고 했어도 고기 한 마리 낚을 수 없이 빈털터리로 이제는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 그 말씀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어마어마한 양의 물고기가 잡히는 그 기적을 체험하면서,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기적을 보면서, 주님을 바라볼 수가 있었고, 기적을 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있었고, 그래서 주님 앞에 엎드릴 수 있는 결단을 하게 된 것이죠.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 요한이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러 가다가 그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향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라고 이야기했을 때,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사람이 그 순간에 즉시 일어나 걸어가게 되는 그 모습.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주변으로 다 몰려들면서, 그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울과 아세라 신을 섬기면서 배도의 길을 가고 있었을 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 이 재단의 제물을 살라 주시옵소서.” 불태워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불을 내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제단 위에 그 재물을 다 살려버리게 될 때,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임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다.” “바울과 세라는 가짜 신이고, 우리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드러내게 될 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주님 앞에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 가운데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전파되게 되었을 때, 선교사님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 할 때 수많은 우리 조선의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기독교 신앙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와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참된 사랑으로 섬기고, 의술로 치료하고,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예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 예수님이 정말 우리들의 구세주라고 하는 사실을 믿게 되면서, 주님 앞에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정말 교회에 가면 복된 길인 줄 알았고, 교회에 가면 행복한 것인 줄 알았고, 교회에 가면 성공한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제가 어렸을 때 고산읍 교회를 출석했었는데요. 출석한 것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목사님이셨습니까, 그 교회를 다녔는데, 그 당시 제가 3살 4살 그 정도였을 때였을 겁니다. 그때 교회에 가면 무엇이 있었냐면, 환등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환등기로 사진을 보여주면서, 성경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당시에 텔레비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 시골 마을 가운데서, 교회에 가면 그런 것을 보면서, 많은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교회가 가장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져 버린 곳이 되어 버렸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혹할 만한, 교회에 갔더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예수님이 계시는구나. 주님을 믿으니 무엇인가 잘 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별 볼 일 없네. 아무것도 없네.”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어쩌면 오늘날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바로 모세가 바로 왕을 찾아갈 때도 그런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이 나갈 수 있도록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어 달라고 바로 왕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때 바로 왕이 대답한 말이 딱 하나입니다.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는 겁니다. 이적을 보이라고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이죠. 너희들에게 이 명령을 한 그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고 하는 증거를 내 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지팡이를 던져라. 그러면 그것이 뱀이 될” 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바로 왕 앞에서 지팡이를 딱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정말 그 지팡이가 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모세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거면 바로가 항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내 주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지팡이를 내던진 것이죠. 그리고 뱀으로 바뀐 것을 보면서, 이제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애굽 왕 바로가 애굽의 술사들을 부르는 겁니다. 술사들을 불렀더니 그 술사들이 나와서 똑같은 기적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수사들도 지팡이를 가지고 나와서 지팡이를 던졌는데, 그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이 나타나게 된 것이죠. 애굽의 술사들은 어떻게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었을까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성경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추측한다고 하면, 아마도 요즘 마술사들이 하듯이 그렇게 눈속임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즘 마술사들은 어떻게 하죠? 딱 모자 속에다가 뭘 하나 집어넣으면, 계란 같은 거 집어넣는다든지, 뭘 하나 집어넣으면 짠하고 뭐가 나타나죠? 비둘기가 나타나요. 대단합니다. 카드를 가지고 이렇게 딱 하면서 짠 하면 돈이 만들어집니다. 마술사들이 그렇게 하는데, 마술사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 눈속임이죠.

왜 비둘기를 만들죠? 이렇게 해가지고 다른 동물은 안 만들고, 왜 항상 나오는 게 비둘기죠? 비둘기가 순해서 숨겨놓으면, 잘 숨어 있는 새이기 때문에 비둘기를 사용한다고 그래요. 눈속임을 통해서 그렇게 비둘기를 만들어내듯이, 아마도 애굽의 술사들이 이 순간에 마술을 부리듯, 그렇게 지팡이를 던지는 것처럼 했는데, 마치 뱀이 나타난 것처럼 그렇게 눈속임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을 이야기해본다고 한다면, 아마도 귀신의 힘을 빌어서, 주술적인 능력으로 실제로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크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해 볼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서를 보면 신접한 여인이 주술을 통해서 사무엘의 혼을 불러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러니까 아마도 이런 사탄적인 주술적인 힘을 통해서 이런 일을 했을는지도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그런 방법을 사용했던 속임수를 썼던 이 모세가 행했던 바로 그 똑같은 기적을 바로의 술사들도 똑같이 해버렸다고 하는 데서 완전히 체면이 구겨지고 말았습니다.

내가 이 지팡이로써 뱀을 만들기만 하면,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바로 왕은 똑같은 기적을 보여주면서 마음이 완악해져서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지 않겠다고 해버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러나 결국 모세가 만든 지팡이 그 뱀이 마술사들이 만든 그 뱀들을 잡아먹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정말 모세의 그 능력이 이런 술사들의 능력보다 더 뛰어났다고 하는 것을 표현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좀 체면이 구겼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증거를 보여주었고,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애굽의 술사들에 의해서 그 똑같은 기적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데리고 나갈 수 없게 된 것이죠.

어쩌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고 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그런 기적들처럼 오늘날에도 좀 기적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병자가 있으면 낫고,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걸어가고, 그리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고, 교회에서 엄청난 기적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면,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만 다니기만 하면 다 공무원 합격, 합격 경찰 시험 다 합격, 모든 게 잘 되고 하는 사업마다 성공하고, 모든 것들이 다 잘 된다고 한다면, 그러나 교회를 다니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 망해버린다고 한다면, 그러면 복음 전하는 것이 더 훨씬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고민거리가 뭐냐 하면, 이 세상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는데, 똑같은 기적을 바로의 술사들이 해낸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고, 그래서 주님 때문에 잘 되고, 그리고 주님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산다고 간증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불신자들도 우리랑 똑같이 사는 거예요. 똑같이 잘 되고, 똑같이 모든 것들이 잘 풀리고, 예수 믿지 않아도 다 성공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조롱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드냐면, “하나님, 좀 강력한 한 방 좀 보여주세요. 정말 대단한 한 방 보여주셔서,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한 방을 크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세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 것을 보여주고 계시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했던 재앙이었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맨 처음부터 해주셨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두 말 필요 없죠. 그냥 애굽 왕 바로 왕이 바로 항복해버리고 바로 내보낼 텐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10가지 재앙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그 재앙은 맨 마지막에 남겨두고, 맨 처음 보여준 게 무엇이냐면,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고 요구한 그 바로를 향해서, 기껏 보여준다고 하는 것이 지팡이로 뱀을 맞는 거예요.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것도 기적, 기적이기는 하지만, 그 기적을 보면서 아무런 마음의 감동도 없고 아무런 동요도 없고, 그저 “우리도 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무시당할 수 있는 그런 기적을 보여주었다고 하는 게 오늘날 우리들의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은 애굽의 진노를 쏟아내 버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심판해 버리고 끝내버리셔서,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애굽 왕 바로를 향해서 은혜를 베풀고, 그리고 돌아올 것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만일 이 순간에 바로 왕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이 순간에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냈다고 한다면, 굳이 열 가지 재앙을 당하지 않아도 됐었을 겁니다. 장자들이 다 죽는 일이 없어도 됐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약한 기적,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약한 그 증거들을 보았을 때, 그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 앞에 나왔더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사야서 1장 5절에서부터 6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배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들려주시는 안타까운 말씀이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될 때마다 채찍질을 하셨는데, 그 채찍질을 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면 될 텐데, 더 완고하게 버티면서 더 죄악을 저지르면서 하나님의 더 큰 심판을 자초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해 주시는 말씀이 바로 이사야 1장의 말씀인 겁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그냥 저주를 내려버리시고 심판해버리고 끝내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가능하면 길이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가능하면 심판하지 아니하실 방법을 찾으시면서 은혜를 베푸시는 그런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엘서 2장 13절 14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인애가 많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심판해버리고, 채찍질해 버리시고, 끝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도 길이 참으시면서, 우리들에게 조그마한 시그널을 보내주시는 것이,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하는 그런 시그널만 보여주었을 때, 그때 회개하며 돌아오라고 조그마한 시그널을 보여주면, 그때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올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우리들에게 은혜요 복이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냐면, 바로, 바로와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바로와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마치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도,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푼 것을 애써 모른 척하면서, 하나님의 세밀하게 들려주신 음성을 모른 척하면서, 계속해서 죄를 짓기를 계속한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때는 우리가 좀 더 담대하게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잘못할 때에는 마음속의 양심이 우리들을 채찍질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떨린 마음 가운데, 그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워요. 그런데 그 일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는 것 같으면, 하나님이 모르시나? 하나님이 안 보고 계시나? 하나님이 안 계신가? 하면서 그 죄를 더 뻔뻔하게 짓기 시작하는 것이죠.

우리가 신앙생활을 나태하게 하게 되면, 그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될 텐데라고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런데 나태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아무런 채찍질이 없고 아무런 심판이 없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좀 더 담대한 마음이 생기는 거죠. 하나님께서 겨우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 버리는 그 정도만 보여주니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점점 죄악의 완고함이 더 강해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뱀을 만드실 때, 그것이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채찍질해 주시는 그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길로 돌아올 수 있는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도 이 세상은 계속해서 지팡이로 뱀을 만들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안 해도 먹고살 만하다. 신앙생활 안 하고 이 세상에 길로 가도 심판당하는 거 아니다. 죄악의 길로 걸어가도 괜찮은 것 같다. 내 마음 가운데 미움이 가득 차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네. 내가 용서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전혀 심판하지 않는구나. 생각하면서 이 세상의 그 유혹에 우리들이 자꾸만 넘어갈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 세상은 능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하나님과 비슷하게 많은 기적들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만 이렇게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도 지금 이 세상의 능력으로 많은 뱀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세상이 우리들에게 행복을 주기도 하고, 가짜 평화를 주기도 하고, 가짜 성공을 주기도 하면서, 이 세상의 성공과 이 세상의 행복과 이런 것으로도 하나님 없어도 충분하게 살 수 있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착각하게 만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복된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가 만들었던 그 뱀이 애굽의 술사들이 만들었던 그 뱀을 잡아먹었던 것은 이 세상이 우리들에게 주는 가짜 평화, 이 세상이 우리들에게 주는 가짜 행복, 이 세상이 주는 가짜 만족들이 결국은 허무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치 우리는 엄마 태중에 있는 아이들처럼, “도대체 엄마가 어딨지?” 엄마의 증거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우리를 향해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그 하나님을 발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고, 죄악의 길로 가던 길을 멈추고 주님에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고, 불신앙의 길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 말씀하시고, 나태한 그 길에서부터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고, 이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길로 오라고 말씀해 주고 계실 때, 애써 모른 척. 이 세상에 그것들에 속아 넘어가면서, 이 세상 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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