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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하신 대로 (출 7:1-7)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별히 참 고통스러운 일들을 또 만나게 되고 여러 가지 악한 일들도 만나게 되는데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참 좋은 일들만 정말 멋있고 행복한 일들만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자꾸만 발생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데, 그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라고도 하고,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도 하는데, 선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다면, 왜 이 땅에 악한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선하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최악이 이 세상에서 관영하지 않고, 오로지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일들만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그 예상과는 달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이 현실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들 악이 판치는 모습들, 재난들, 정말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아니한 더러운 모습들을 많이 목격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많은 혼란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한다면,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시는 것일까? 선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고, 충분히 발생하지 않게 만드실 수도 있는데, 왜 이 세상이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까 하는 것이 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한 일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죄악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그 통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 때문에 발생하는 발생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이, 악한 일들이 자꾸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이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온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대답해도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악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정말 재난이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일들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용하셨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면, 그러면 그 죄와 악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에게 돌려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철거 현장 가운데서 아파트가 무너져서 그래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죽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때 그 철거 현장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일하던 그런 근로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회사의 대표가 나와서 사죄를 하고 잘못했다고 그렇게 참 그렇게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모든 그 철거 작업이 개인이 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그 모든 일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판단과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 회사의 사장은 저 먼 곳에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책임을 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가운데 발생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악에 대한 모든 죄에 대한 그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이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 아니라고 악과 죄와는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악한 일 죄악들이 발생하는 것을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그런 악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대답하게 될 수도 있는데요.

만일 그렇게 하나님과 무관하게 이 세상에서 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능한 하나님이란 말이냐? 악이 발생하고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은 그것을 방지할 만한 능력이 없고, 그것을 막을 수도 없는 정말 무능한 하나님일 수밖에 없느냐라고 하는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악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그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과연 우리를 악의 손에서부터 구원해내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도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정말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온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해도 문제가 되고,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발생한다고 대답해도, 문제가 되는 어느 쪽으로 대답을 해도 곤란한 문제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선하신 하나님이지만, 무능하기 때문에 악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이든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는 하지만 선하지 않아서 나쁜 하나님이기 때문에 악이 발생하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닌가 이 둘 중에 하나이지, 선하신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일 수는 없겠다고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고 질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냐면, 성경에서는 그러한 우리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는 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하는 이 두 가지 모순되어 보이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성경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진리는 모순되어 보이는 것 같은 그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처럼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해야 된다고 하는 사실을 말하기도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기록한 책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은 신성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100%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하시고, 하나님은 세 분이지만 그러나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등, 그래서 모순되어 보이지만 동시에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주관하시며 다스리신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통제 아래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가운데,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을 떠나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간섭 가운데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오늘 우리가 누구 한 사람을 만나고 우리의 발걸음이 이곳까지 오게 되는 것도,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용하셨기 때문에,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지, 우연한 것이 없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성경 말씀이 바로 욥기서의 말씀입니다. 욥기서를 보면 사탄이 욥을 향해서 재난을 내리게 되는데요. 그 사탄이 욥의 재산들을 다 빼앗아 버리고, 욥의 자녀들을 다 죽이게 되는, 그런 엄청난 재난을 가져오게 되는데, 사탄이 임의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서 재가를 받고, 하나님께서 거기까지만 하라고 허용해 주시니까, 그 허용하시는 범주 내에서, 사탄이 활동하는 것처럼 욥기서에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의 경우를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버렸을 때, 죽이려고 하다가 미디안 상인에 팔아서 결국 요셉이 종살이를 하게 되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하는 그런 엄청난 고난을 당했는데, 요셉이 나중에 고백하기를,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형들이 나를 팔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미리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내가 이곳에 온 것이라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모든 죄의 책임이 하나님에게로 돌려지게 될 텐데, 성경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 말씀을 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악한 일을 하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죄와는 상관이 없고, 하나님은 죄에 대한 책임이 없으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시험이라고 하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유혹이라고 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데요. “사람이 ‘유혹’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유혹’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유혹’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유혹’하지 아니하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악을 행하도록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욕심에 이끌려 죄를 짓는 것이고, 그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그래서 그 전적인 죄에 대한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어느 한 구절만 읽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아주 복잡한 진리를 다양하게 이곳저곳에서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한 구절만 읽어서는 안 되고, 이 구절을 읽고 다른 구절도 함께 읽으면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어느 한 구절만 바라보게 되면 성경을 오해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7장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아주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아주 잘 읽어주었습니다. 지금 모세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바로 왕 앞에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어 달라고 요청을 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한 이후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모세는 바로 왕 앞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내어 보내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왕은 더 완악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재료를 공급하면서, 벽돌을 구우라고 했지만 모세가 다녀간 이후에는 재료를 공급하지 않으면서 똑같은 양을 구워내라고 학대하기 시작했는데요. 너무나도 힘들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가 그냥 가만 내버려 두었더라고 한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너희가 바로 왕의 심기를 건드려서 우리가 더 힘들게 되었다고, 모세를 향해서 원망하는 그런 소리를 듣고 정말 마음에 상처를 받고 지쳐서 이제는 모든 용기를 잃어버리고 뒤로 물러선 그런 모세를 향해서 다시 한번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출애굽기 7장의 말씀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들은 이 모세는 정말 난감했을 것이고 힘이 쭉 빠졌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너는 다시 바로에게로 가서,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구원해 오라고 다시 한 번 재차 말씀해 주시는 내용이 오늘 출애굽기 7장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보낼 때하고 두 번째 다시 말씀하실 때 하고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러한 달라진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텐데요. 사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첫 번째 갔을 때 실패하고 돌아왔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여기 있다. 핵폭탄 여기 있으니까, 핵폭탄 들고 가라. 그렇게 말해주었더라고 한다면, 정말 좋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만 하고 계십니다. 가서 너는 바로 왕 앞에 이야기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약간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출애굽기 7장 3절에서부터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적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 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 말씀을 가만히 읽어보면 무슨 내용입니까? 모세가 가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내어 달라고 말하면, 바로가 바로 듣겠다고 하는 말입니까? 안 들을 거라고 하는 말입니까? 안 들을 거라고 하는 말이죠. 이것처럼 맥 빠지는 일이 없을 겁니다. 가서 열심히 일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야 갈 텐데, 내가 너를 보내는데 바로가 네 말을 안 들을 거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질 것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바로가 마음을 완악하게 할 텐데, 모세가 바로를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가 마음을 악하게 할 텐데, 그렇게 마음을 원하게 한 것이 어떻게 해서 완악하게 된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다는 거, 그러니까 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니까 “모세야”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가서 이야기하면, 그 말을 듣고 협조해 주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을 더 힘들게 하는 그런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텐데, 그렇게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이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시는 것이라고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가리켜서 마치 백신과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백신 맞으신 분들 많으시죠?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서 백신을 많이 맞게 되는데, 백신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몸에 어떤 약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우리 몸 안에 집어넣는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리에게 넣어주어서, 우리의 몸이 그 코로나 바이러스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만드는 것이 백신의 역할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냥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많이 약화시켜서 넣어주는 것이죠.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차도 빼고 포도 빼고, 다 힘을 약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싸울 수 있을 만큼의 정도로 힘이 약해져 버린 바이러스를 우리 몸 안에 넣어서, 우리가 그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항체를 갖게 되고, 능력을 갖게 되면, 나중에 진짜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그것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연습을 시켜서, 정말 정규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몸이 그 코이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쳐 이길 수 있도록, 약해진 바이러스를 우리 가운데 넣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가운데,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모든 악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고 있는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악한 세력들을 통제하고 계시고 다스리고 계시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도록, 하나님께서 그 악한 세력들을 다 통제하시는 가운데 발생하게 만든다고 하는 것이 오늘 성경 가운데서 말씀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모세를 향해서 해 주시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냐면, “모세야, 네가 지금 내 명령을 듣고 바로 앞에 가게 되면, 순순히 모든 사람들이 다 항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반발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실패를 경험하게 될 텐데, 그 실패가 그냥 완전히 우리를 무너뜨리는 실패가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치하시고 제어하시고, 모든 것을 다 움직이게 만들어서,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악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말씀을 드렸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유명한 작가 존 번연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천로역정>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자가 천성을 향해서 여행을 하는 가운데, 천성문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그 앞에 두 마리의 무서운 사자가 포효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 사자를 보면서 기독자가 너무나도 두려워 떠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불신이라고 하는 겁쟁이가 돌아간 지점이구나!” 생각하면서, 나는 어떻게 저기를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있는데, 그 옆에 있는 천사가 기독자를 향해서 말해 주는 겁니다. “가만히 잘 보아라. 사자의 발에 무엇이 묶여 있는지 보아라.” 보았더니 그 사자의 발에 쇠사슬이 묶여 있는 거예요. 아무리 큰소리로 울부짖고, 그렇게 이빨을 내놓고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만일 그 기독자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 길로 똑바로만 간다면, 털 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쇠사슬로 어어해 놓아서 전혀 상처를 줄 수가 없는 상태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기독자가 그 가운데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허용하시는 그 모든 일들이 때로는 우리들에게 두려움이 될 것이고, 때로는 정말 절망적인 일이 될 것이고, 때로는 우리가 기도하며 애쓰며 정말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정말 악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일어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첫 번째,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불신 겁쟁이가 묶여있는 사자 앞에서 겁을 먹고 도망간 것처럼 도망할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그 가운데서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던 그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있다. 이 모든 악한 것들이 하나님께서 그냥 방치해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 가운데서,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마저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허용하셔야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담대하게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놀이동산에 가면 뭐가 제일 재밌죠? 놀이동산에 가면 무서운 게 제일 재밌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 가장 많이 몰립니까? 메리고라운드에 많이 몰립니까? 거기는 유치원 아이들만 몰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를 타려고 하냐면, 아주 무서운 놀이 위에 타려고 합니다. 하늘에서부터 뚝 떨어지는 거, 청룡 열차처럼 막 올라갔다. 내려갔다. 뒤집어지고 하는 그런 것에 갑니다. 왜? 그냥 타면 죽겠죠. 위험하죠. 그런데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안전바가 우리를 꽉 지켜주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한다고 하면, 그 어떤 위험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즐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말,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말씀 가운데 그 항상 범사에는 무엇이 포함되는 겁니까? 좋은 일만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일, 감당하기 어려운 일,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 좌절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만나는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콘트롤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불평과 원망과 좌절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이유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는 감사를 해야 합니까? 악하고 나쁜 일조차도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서 발생하는 것인데, 내게 이런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셨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한눈 팔고 계시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발생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기대를 가지고 바라봐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어떤 놀라운 일을 이루어 나가실까? 어떤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내실까?

저도 제 인생 가운데서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습니다. 정말 제가 원했던 것, 좋은 대학에 가고 싶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안 된 적이 있었어요. 옛날에 첫사랑이 있었는데 헤어졌어요.잘 됐습니까? 잘 안 됐습니까? 잘 됐죠. 그 당시에는 슬퍼요. 그 당시에는 괴로워요. 그런데 모든 것을 간섭하시는 하나님. 한 치의 오차도 없고 한 치의 잘못도 없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그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움직이셔서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기억한다고 한다면, 범사에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서 징계라고 하는 말에는 우리가 다른 말들을 집어넣을 수가 있을 겁니다. 무릇 고통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무릇 병든 것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뭐요? 사고가 나는 것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지금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목적하는 것에 실패를 하는 것이 당시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내가 애써서 노력했던 그 모든 것들이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세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몇 살이냐면, 80세. 아론의 나이가 83세.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시다고 한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정답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일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일까를 질문을 던져야 되는 것이고,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순종하는 데 방해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문제가 꼬여갈 때 우리는 고통스러울 겁니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너무나도 절망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시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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