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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임하신 성령 (행 2:14-2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요. 그 이후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시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그 현장에 있었던 그 제자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의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어떤 마음일까요? 아마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한편으로는 정말 너무나도 흥분됐을 겁니다. 주님께서 승천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감격하기도 했을 겁니다. 정말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감정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올라가시고 그리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때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정말 기뻤던 그 순간도 한순간이었지만, 그리고 사라져 버린 그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이 갑자기 자신들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그 상황 가운데서, 어쩌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얼떨떨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얻었고,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너무나도 큰 기쁨이 있었는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갑자기 그들 앞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라지는 광경은 아주 웅장한 것이었고, 정말 대단한 기적과 같은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리고 난 뒤에, 승천하고 난 뒤에 남겨진 이들, 예수님께서 사라지고 난 뒤에 남아 있던 자들의 마음 가운데는 뭔가 허전함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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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엄청난 기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대를 표현한 것이 사도행전 1장 6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사도행전 1장 6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까 하니.” 제자들은 예수님께 물었어요. “예수님 지금입니까?”라고 물었어요. 예수님께서 등장하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버린 겁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허망하게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는 그 모습을 보면서, 수많은 그 제자들의 마음은 실망감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줄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그런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허망하게 죽어버리는 그 예수님을 보면서, 그 기대를 배신하고 죽어버리신 그 예수님을 보면서, 다들 실망하고 절망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절망의 순간도 잠시뿐이었고, 3일 만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을 때, 이제는 다시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예수님이 죽은 게 아니야.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셨어. 우리의 소망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대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겠구나. 그 예수님의 제자들은 소망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묻는 거죠. “주님, 지금입니까? 이 세상의 불합리한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 정말 이 세상에 불합리한 모든 그 제도들, 그리고 우리를 압제하는 모든 것들을 다 물리쳐버리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올 때가 지금입니까? 이스라엘 날을 다시 회복시킬 때가 이때입니까?”라고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물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었던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애매한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신 것이 아니라, 애매한 대답을 해주셨는데요. 사도행전 1장 7절과 8절 말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제자들의 마음은 흥분과 그리고 기대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루어지는 겁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나타나는 겁니까?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가 지금입니까라고 물어보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 언제 오는가는 하나님께 달린 것이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너희는 그냥 묵묵히 너희의 일을 해라. 그저 너희에게 맡겨준 사명 감당하며 살아라.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며 살아라. 나의 증인이 되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신 후에는 사라져 버렸어요.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왔으면 좋겠고,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 좀 어떻게 뭔가 좀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만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랬는데, 그 예수님께서 애매한 대답만 해주시고 그들 앞에서 사라져 버린 거예요.

올라가는 그 장면이야 정말 기적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흥분이 될 수 있었겠지만, 사라져 버린 그 예수님 그리고 이제 남겨진 이들 내 마음 가운데는, “이게 뭐지? 우리들이 남아서 뭘 하지? 왜 우리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하는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그 이야기가 사도행전 2장 1절에서부터 4절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데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성령 충만의 경험을 하게 된 겁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그 자리에 임재해 주셔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성령으로 충만하게 만드셨는데,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었냐면, 갑자기 자신들의 입에서 방언이 터져 나온 겁니다. 우리가 아는 그런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외국어가 튀어나온 겁니다. 그래서 그 외국어가 튀어나오는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성경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제자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방언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날의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날 흔히 말하고 있는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방언이라고 말을 하는데, 오늘 이 사도행전 2장에서 제자들이 경험했던 이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방언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경험했던 것은 무엇이냐면, 갑자기 외국어가 튀어나온 겁니다. 그들은 당시에 아람어나 헬라어를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자신들의 모국어인 아람어나 헬라어가 아니라 갑자기 외국어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라틴어를 말하기 시작했고, 이집트어를 말하기 시작했고, 페르시아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고, 그 주변에 있는 모든 민족들의 언어를 다 구사하면서 외국어를 갑자기 말하게 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부럽죠? 외국어를 말하게 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조심스럽게 구분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성령님께서 임재하신 그 사건과 성령님께서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된 그 현상 사이에는 약간의 구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사도행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제자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었는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외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계속 말하게 됐는지 잠시 이 순간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 순간만 그랬을 가능성이 크겠죠. 아무튼 외국어를 말하는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과 그리고 방언을 말하는 것은 좀 약간 구분해야 될 필요가 있는데요. 왜냐하면 오늘날 종종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 강림의 하나의 현상으로 방언을 말하는 것인데, 성령 강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방언을 말해야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 받은 게 아니라고 말하고,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면 반드시 방언으로 나타나야 된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항상 기적이 나타나는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는 그런 기적들이 매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내가 구주로 영접하고 우리가 주님께로 가게 되면,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게 되는 것인데,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려주실 때도 있고,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는 그런 기적이 나타날 때도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항상 죽은 자가 살아나야 되고, 항상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야만 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항상 방언의 현상들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도표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성령님께서 임하시게 된다고 하면, 그 결과로써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는 겁니다.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되는, 사도행전 2장 1절에서부터 4절 내 현상과 같은 것이 나타날 수도 있고, 고린도전서 12장 8절에서 11절에 기록된 것처럼 다양한 은사가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은사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 5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9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나타날 수도 있고,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일들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빨간 점을 찍은 것,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든지,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이제 나타나기 시작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반드시 동반되는 결과일 수가 있겠지만, 그 외의 현상들은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들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되는 이런 신비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역사적으로 본다고 하면, 정말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역사를 바꿔놓은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성령님의 임재하심, 성령님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일부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는 것이었던 것이 과거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례로 구약 시대 때는 어땠습니까? 구약시대 때, 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죠? 구약시대 때는 누가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됐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부르셔서, 선지자로 사용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임재가 있었고요. 그렇게 모세와 같은 사람들 이사야와 같은 사람들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성령님의 임재가 있었던 것이 과거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120명의 문도라고 종종 그러잖아요? 그런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보면 물꼬가 확 트인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구약의 시스템은 무엇이었습니까? 구약의 시스템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죄 지었으니까,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됐습니까? 제사장에게 가는 것이죠. 제사장에게 가서 “내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면, 제사장이 그 사람에게서 예물을 받아, 그리고 그 소를 잡고 양을 잡아서 제사장이 대신 그 죄지은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용서를 받아서 용서의 선언을 해주는 시스템이 구약의 시스템이었고, 그래서 구약에서는 소수의 성직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게 되었고,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나요? 예수님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죠. 예수님께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들을 위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그 장막을 걷어내 버리신 것이죠.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 오순절 성령의 임재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것은 마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같아요. 베를린 장벽이 있을 때에는 동독과 서독에 있는 사람들의 가운데서 일부만이 허락받은 사람들만이 교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버리고 나니까, 이제는 누구든지 왕래를 하면서, 그래서 모두가 다 그 만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처럼, 구약시대 때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해도 나갈 수가 없어요. 죄 때문에 나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장벽을 거두어 버렸고 이제는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들에게 영으로 임재하시는 그런, 누구든지 주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그런 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놓여 있던 담장이 제거되게 되었고,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고요.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 6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영이 아들의 영이 우리들에게로 다 오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 나아갈 수 있게 되는, 누구든지 주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죠.

과거에는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 특출 난 사람만 은혜를 받을 수가 있었고, 만점짜리 인생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고, 완벽한 사람들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렇게 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는, 그런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조금 전에 설명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다고 한다면 반드시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받아야 성령을 받은 증거이고 방언을 받지 못하면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그것은 왜 잘못된 주장입니까? 오병이어로써 떡이 불어나는 경험을 해야만,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났다고 한다면 이런 기적이 나타날 수도 있고, 저런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런 현상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방언을 받아야만 성령을 만난 것이고, 그래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주장은 복음의 원리와는 정반대되는 주장입니다. 복음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복음의 원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열로 인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복음의 원리예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방언을 받아야 성령을 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구원을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결국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원의 범주에서부터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바른 주장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증거는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데서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죠.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증거가 무엇인가? 우리가 주님을 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임재했던 것이 나타나게 된 것인데요. 그 증거는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메시아로 고백하게 되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고 하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 사건이, 단순히 어쩌다 보니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사실은 요엘서에서 예언해 주신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을 설명하는 베드로의 설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을 체험하게 되고, 그리고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그 주변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신기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혹시 술 취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는데, 그 순간에 베드로가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를 지금 우리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요엘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예언의 말씀대로, 이제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임하셨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서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님의 그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요엘서의 예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했을 때, 제자들은 어쩌면 그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흥분되고 기뻤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는 당황스러웠을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뭐 하지? 예수님이 사라져버렸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오지 않고, 우리가 따르던 예수님도 사라져 버렸을 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야 되는가?” 걱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언어를 말하게 하신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떠나버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점을 확신하게 되고 그래서 담대하게 되었을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미리 예언해 놓으셨던 건데요.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부터 20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런 예언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니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니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에게 요한복음의 말씀을 해 주신 것인데요. 내가 너희를 떠나면, 그러면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과 너희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 너희들을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이야기입니까? 성령님을 보내셔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거라고 그렇게 약속해 주신 것이죠. 내가 너희를 그냥 버려두고, 나 혼자 떠나는 게 아니다. 내가 이 세상을 완전히 너희를 내 팽개쳐두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주어서, 너희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너희들이 혼자 있게 할 것이 아니라, 너희들과 함께하실 것이고, 너희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그 성령님께서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과도 함께 계시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종종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두려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때로는 재정적으로, 때로는 우리 가정적으로, 때로는 우리가 건강의 문제 때문에, 때론 우리가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는 그런 경험들을 하게 되면서, 과연 하나님께서는 나를 생각하시기나 하나? 과연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사람을 안중에 두고나 계실까? 나는 목사도 아니고, 나는 장로도 아니고, 나같이 미천한 사람을 주님께서는 나를 신경이나 써주실까? 그렇게 생각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께서는 어느 특출한 사람 한두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든, 무언가 실력이 특출한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을 우리 주님께서는 사랑의 눈으로 보실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다고 하는 그 사실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이루시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나 혼자 홀로 어둠 속에 내동댕이 쳐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할지라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들을 향해서 무슨 말씀을 해주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다! 예수님께서 떠난 것 같지만, 떠나버려서 너희들을 완전히 고아처럼 버려둔 것이 아니라, 그 예수님이 떠나고 남은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하나님께서 내게 너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하는 동안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전에도 한번 예화를 들었습니다마는 애플 tv에서 나오는 빠칭코라고 하는 드라마에 보면 참 감동적인 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게 무슨 장면이냐면 선자라고 하는 여자 주인공이죠. 선자라고 하는 여자 주인공이 자기 때문에 돈을 아주버님이 빌려서 야쿠자로부터 돈을 빌려서 그 돈을 갚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그때 선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금시계를 팔아서 300엔을 만들어가지고, 그 돈을 야쿠자에게 갚으러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야쿠자의 사무실이 어디에 있냐면, 아주 험악한 지역에 있는 거예요. 험악한 지역 깡패들이 있는 지역, 그리고 사창가가 있는 그 지역에 그 사무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300엔을 가지고 그 야쿠자의 사무실에 가서 돈을 갚고, 그리고 약속 어음을 찢어버리기 위해서 그 사무실로 가야 되는데 선자와 선자의 손윗 동서인 경희와 함께 같이 가려고 하는데, 경희라고 하는 선자의 손 윗 동서가 무서워서 못 가는 거예요.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험악한 일을 해본 적이 없어. 그 무서운 곳을 내가 어떻게 가?” 하면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선자가 그 경희를 향해서 이런 말을 하죠. “무서버도 같이 무서버 하십시더. 그라모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자 경희가 용기를 넣고 같이 선자와 함께 야쿠자의 사무실에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무서운 곳을 가려고 할 때 혼자 가려고 하면, 무서워서 못 가요. 그런데 함께 가자라고 하는 선자의 말에 용기를 내서 가게 되는 것이죠. 아무런 힘도 없는 아녀자의 그 말 한마디와 함께 가겠다고 하는 말에 용기를 얻어서 갈 수 있는 것인데,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시는 분은 그냥 어떤 허접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너희들이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든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너에 버려두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함께하시겠다고 하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사건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으로, 누구에게든지, 아무런 자격도 없는 자들에게 무한대로 쏟아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케 하셔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가는 그 길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우리에게 약속을 해주신 것은 우리를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외면을 받으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여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고, 그래서 약속해 주신 주님의 약속이 무엇이냐면,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할 것이다. 너희와 동행하겠다고 약속해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서 기억하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어떠한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담대하게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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