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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을 베풀지 못하게 방해 하는 것들

– 이국진

친절을 베푸는 마음을 방해하는 것에는 때때로 그럴듯한 변명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돕는 것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며, 이 사회가 점점 더 기독교적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크리스천들이 가져야할 자세일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들이 시행되도록 하고, 사회보장 제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 하지만 종종 이러한 생각은 친절을 베풀어야 할 순간에 친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함과 동시에, 내가 만나는 가난한 자와 불쌍한 자를 도와야 한다. 가난한 자는 항상 우리의 주변에 있으며, 이들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또한 내가 돕는 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패배주의적인 생각도 우리가 친절을 베풀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아무리 돕고 또 도와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 널려 있으며, 가난의 문제는 결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 내가 돕는다고 하여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해변의 불가사리를 하나씩 주워 바다에 던졌던 어떤 소년이 대답했던 말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나는 모든 불가사리를 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살린 불가사리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 것입니다.” 패배주의적인 생각은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갖는 생각은 아니다. 사랑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던지는 추상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또한 종종 돕는 것이 오히려 자활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친절을 방해하기도 한다. 얼마를 손에 쥐어주는 것보다, 그 사람이 스스로 벌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기를 쥐어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탈무드의 말은 명언이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없이, 지금 내가 자선을 하는 것을 금하는 변명으로만 이런 생각을 한다면, 옳지 않다.

C.S. 루이스는 “자선에 쓰는 비용 때문에 가계가 빠듯해지거나 제한받는 일이 전혀 없다면, 너무 적게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사랑을 베푸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사치스러운 생활이나 돈에 대한 욕심이라기보다는 생활에 안정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한다. 1 가지고 있는 것이 남아돌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예루살렘 사람들을 위한 구제헌금에 참여하였던 것처럼(고린도 후서 8:2-3), 언제나 남아돌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거나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립보서 2:4). 우리는 가인처럼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세기 4:9)라고 외치길 좋아한다. 그저 소시민처럼 내 일에만 집중하며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마리아 성의 기아를 생각해낸 나병 환자와 같은 마음이다. 이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아람 군대의 진영에 먹을 것을 구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아람 군대가 모두 도망갔으며, 그 진영에는 온갖 먹을 것이 널려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다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열왕기하 7:9).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해 주셨다고 만족해하며 감사하는 것이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이 말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만을 돌보아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친절이며, 그것이 사랑이 있는 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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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홍성사, 2001),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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