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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매 (롬 4:1-8)

자랑할 데가 어디냐? (롬 3:19-31) +++ 주객전도 (롬 4:9-12)

동계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텔레비전에서 스포츠 경기를,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좀 보셨습니까? 저도 이번에 올림픽 경기를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는데요. 여러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동계 올림픽 스포츠 경기는 어떤 종목입니까? 피겨! 여성분들은 피겨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전 별로 재미가 없는데, 저는 무엇이 재밌냐면 쇼트트랙이나 컬링이 재밌습니다. 특별히 동계 스포츠 올림픽 경기 중에서 쇼트트랙과 컬링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데요. 왜? 이 경기가 좋냐면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말 뛰어난 기량으로 세계의 모든 선수들을 제치고 승리하는 그 모습을 볼 때, 마치 제가 이긴 것처럼 그렇게 기쁘고, 너무나도 행복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황대헌 선수가 1500미터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판정 시비 때문에 정말 마음고생을 했던 선수였는데, 월등한 실력으로 아무리 편파적인 심판이라고 할지라도 전혀 어떤 시비를 걸 수 없게끔 완벽하게 추월해서, 그래서 결국 금메달을 따내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감동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 열심히 수고한 사람에게, 그리고 그런 결과를 이루어낸 사람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 경계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들의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올림픽 경기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이것을 스포츠 경기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한다면, 영혼의 올림픽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원의 올림픽에서 천국의 올림픽에서 영적인 금메달을 따는 일을 한 번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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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영혼의 올림픽에서, 저 영적인 금메달, 영적인 면류관, 영적인 트로피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받는 선수는 그 부분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서 그리고 아주 최고의 실력을 나타낸 선수가 금메달을 받는 것처럼,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최고의 무슨 업적을 이루어낸 사람, 신앙의 부분에 있어서도,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영적인 금메달을 받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말하기를, 당신이 영적인 금메달을 원한다면, 당신이 영적인 면류관을 원하고, 트로피를 원한다면,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치성을 다해서, 그래서 영적인 금메달을 따라고 가르치는 것이 이 세상 대부분의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훈입니다.

마음을 비워보십시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고 또 비워서, 무아지경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완전히 비울 수만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영적인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겁니다. 부처가 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만일 여러분들이 도를 열심히 닦아서, 만일 여러분들이 치성을 다한다면, 하늘도 감동하게 될 것이고, 영적인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영적인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지난 시간에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마음을 비운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최고의 노력을 다하고 치성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영적인 금메달을 딸 수 있느냐라고 하는 그 질문을 던지게 될 때, 그 금메달을 따기에는 “우리가 한없이 부족하구나!” 우리의 마음을 비워도,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에 들어있는 탐욕이 있는 것이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더러움이 있는 것이고, 분노와 시기와 질투로 들끓는 우리들의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서, 어떻게 영적인 금메달을 달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올림픽과 영적인 올림픽 천국 올림픽과의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베이징에서 한참 일어나고 있는 올림픽 경기와 영적인 올림픽, 천국의 올림픽과의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일반 올림픽은 상대평가인 반면에, 영혼의 올림픽은 절대 평가라고 하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이 세상의 올림픽에서는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이냐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만 더 잘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0.01초만 더 빨리 뛰어도, 좀 더 빨리 달려도 상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 이런 사람의 이름을 들어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스티븐 존 브레드 베리라고 하는 사람을 혹시 아시는 분 계십니까? 처음 들으시죠? 근데 아마 들으셨을 거예요. 들으셨지만 아마 이름은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데, 어쩌면 이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운빨 좋은 사람이라고 선정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2002년 솔트레이크 시리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호주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호주 선수는 쇼트트랙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는데요. 실력이 뛰어난 선수냐 하면,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닙니다.

겨우 올림픽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되었을 뿐이고, 올림픽에 참가했더라도 결승전에 가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도 않았고, 주목받는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천미터 쇼트트랙 경기에서 준결승전에 가게 되었는데요. 그 준결승전에서 이겨서 결승전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이 선수가 결승전에 올라갈 가능성이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실력이 뒤쳐지니까요. 그 준결승전에 누구랑 같이 경기를 했냐면, 우리나라의 김동성 선수와 경쟁을 벌였습니다. 김동성 선수는 아십니까? 아신다는 얘기는 실력이 뛰어나다는 얘기잖아요? 아주 뛰어난 김동성 선수와 함께 준결승전을 치렀는데, 김동성 선수는 탈락되고 이 선수가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왜? 이 김동성 선수가 앞에 막 달려가다가, 다른 선수와 뒤엉켜가지고 넘어지는 바람에, 맨 뒤에 달리던 이 브레드베리 선수가 어부지리로 올라간 거예요. 결승전에 그래서 운 좋게 결승전에 올라갔습니다.

이제 결승전에 올라가서, 다시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결승전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네 사람이 경쟁을 했는데, 네 사람 중에서 실력이 제일 뒤처지는 선수입니다. 나머지 선수는 어떤 선수가 있었느냐? 안톤 오노라고 하는 선수가 같이 뛰었습니다. 안톤 오노 아시나요? 헐리우드 액션으로 유명한 안톤 오노, 헐리우드 액션 액션이지만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안톤 오노 선수가 함께 결승전에 나왔습니다. 또 한 사람이 나왔는데 누구냐면 안현수 선수가 나왔습니다. 안현수는 아십니까? 예, 빅토르 안이라고 귀화해버린 그 선수, 금메달리스트인 그 안현수 선수가 같이 뛰는 이 경기에서 아직 실력이 별로 없는 이 브레드베리 선수가 우승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 줄 아십니까? 그림을 한번 보시면 좋겠는데요. 그냥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맨 뒤에 달리던 스티븐 존 브레드베리가 앞에 있는 3명의 선수 안토 오노, 리자준, 안현수가 한꺼번에 뒤엉켜서 쓰러진 그 사이에 혼자 부딪히지 않아서, 맨 뒤에 달렸기 때문에 부딪히지 않아서, 1등으로 들어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이 호주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서, 호주 정부에서는 기념 우표까지 발행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어 버렸는데요. 실력이 없던 이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못해서 딴 것이죠. 못해도, 다른 사람들이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보다 0.01초만 빨라도,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 올림픽, 영혼의 올림픽에선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인가?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인가라고 하는 이 올림픽에서는 상대 평가가 아니고 절대평가입니다. 하나님의 그 높은 기준의 합격점을 받아야 들어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그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낫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해서, 상대평가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천국 올림픽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아무도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벽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마음을 비울 수 없고, 탐욕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고, 시기와 미움과 질투를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더러운 욕심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는 연약한 인생이 하나님의 합격점을 받기는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 스포츠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요즘에는 스포츠 선수들이 아주 인기가 많잖아요. 손흥민 선수가 저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 가서 아주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그리고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류현진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에 가서 거기서 아주 인정을 받는 뛰어난 투수로서 세계인들의 각광을 받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또 올림픽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 자녀들도 스포츠 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조금씩 가졌던 부모님들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쉽게 우리 자녀들을 그쪽으로 보낼 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렇게 성공하는 사람은 정말 가물에 콩나듯 정말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고요. 100년 만에 한 명 나오는 거예요. 수천 명이, 수만 명이, 수십만 명이 아닌, 수백만 명이 노력을 해서 그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는데, 딱 한 명 금메달 받는 거에요. 딱 한 명 월드 클래스가 되는 거에요.

이 세상의 스포츠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에 와 같은 것이고, 단 한 명만 금메달을 받고 나머지 모두는 다 금메달을 받을 수 없는 아주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면, 영적인 스포츠인 이 천국의 올림픽에서 영적인 금메달은 누가 딸 수 있겠는가? 우리가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에요.

이 세상 종교는 “가능해” “가능하니까, 해봐”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가능하지 않다.” 불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의 말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기준, 정말 완벽한 기준에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라 이 말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쇼트트랙 경기를 하는데, 모든 선수들이 다 페널티를 받아서, 단 한 선수도 금메달을 딸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다 실격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다 자격이 없고 다 불합격인데, 복음이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런 불합격인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금메달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 빵점짜리 우리들에게 금메달을 걸어주시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자격이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자격이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힘입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불합격인데도 불구하고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되고, 영적인 금메달을 받게 되고, 영적인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잘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인 금메달을 따시고, 우리들을 향해서 시상대 위로 같이 올라오라고 초대해 주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금메달을 땄는데, 이 금메달은 나만을 위한 금메달이 아니라, 우리 전체를 위한 금메달이니까, “아무개야, 올라오라!” “아무개야, 나랑 같이 금메달을 받자”고 시상대위로 우리를 초대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편이기 때문에, 같이 금메달을 받자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송구스럽게 슬슬 올라가서, 그 시상대 위에서 같이 금메달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고 완벽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이것은 마치 올림픽에 나갔던 야구 선수단이 금메달을 받게 되었는데, 그 경기를 하는 내내 한 번도 출전해 보지 못한 선수가 한 명 있습니다. 후보 명단에 올라 있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후보에 끼기는 했지만, 실전에는 한 번도 기용되지 못한 선수가 있어요. 예선을 치르고 또 경기를 치르고, 또 경기를 치르면서 마지막 결승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모든 선수들이 다 열심히 뛰었는데, 한 번도 경기에 뛰지 못한 선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팀이 금메달을 받게 되면, 그 후보 선수도 금메달을 받게 됩니까? 그 후보 선수는 금메달 못 받습니까? 받는 것 같아요. 받아요. 병역 면제 같이 받습니까? 못 받습니까?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받는 것 같아요. 받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뛰어야만 줘가지고, 단 1초 남겨놓고도 선수 교체해서 뛰게 만드는 그런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마는, 한 번도 안 뛴 내가 다른 사람들이 잘해서 함께 금메달을 받는 것이죠.

이것은 축구 경기에 비유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비유할 수가 있겠습니까? 0대 0으로 끝난 축구 경기에서 이제 페널티킥을 차게 됐습니다. 다섯 명, 다섯 명이 서로가 공을 차고 있는데, 모든 선수들이 다 실축을 하는 거예요. 다 실축을 해서 아무도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선수가, 호날두나 손흥민이나 이런 선수가 나와서, 마지막에 한 골을 찼는데 그게 들어갔어요. 누가 이겼어요? 팀이 이긴 거예요. 팀이! 손흥민만 이긴 게 아니라, 그 팀에 속해 있는 모든 선수가, 실축한 모든 선수들도 함께 기뻐하면서 우리 팀이 이겼다고 하면서 함께 그 상을 받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다 씻어내시고, 그리고 하나님께 전적인 순종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얻게 되었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금메달을 우리들의 목에 걸어주시며 이 금메달은 내가 너를 위해서 딴 것이다. 말씀해 주시면, 이 금메달은 네가 한 금메달이라고, 우리에게 공로를 넘겨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함께 금메달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복음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 용서함을 받아,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었고, 우리가 영혼의 영적인 금메달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면, 내가 이 금메달을 딴 것에 대해 영원히 금메달 영적인 금메달을 딴 것에 대해서 자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교만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교만할 수 없는 거죠. 내가 딴 게 아니고, 그냥 얻어준 것이니까. 더욱더 겸손하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만일 황대헌 선수처럼, 내 실력으로, 내 능력으로 금메달을 땄다면 자랑스러울 겁니다. 아마 금메달을 목에 걸고, 으시대면서 들어와도 할 말 없을 거예요. 하지만 빵점짜리인 우리가 영혼에 금메달을 매달고 있다고 한다면, “네가 무슨 자격으로 금메달을 땄느냐?”라고 사람들이 말할 것 같아요. 우리는 자랑할 수 없고, 그저 은혜로 받게 되었음을 감사하며, 겸손하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은 이러한 이야기를 설명해주기 위해서 구약 성경에서 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누구의 이야기냐 하면 바로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를 힘입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 비유로 말하자면, 영적인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어떻게 영적인 금메달을 따게 되었는가?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에 의롭다 하심을 입게 되었는가? 어떻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자가 되었는가라고 하는 것을 구약 성경을 통해서 설명하는 가운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무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의를 이루었고 완벽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의롭게 되었다고요?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뿐이다.

오늘 읽은 로마서 4장 2절에서 3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다시 말하자면 영적인 금메달을 따게 됐는데, 어떻게 아브라함이 영적인 금메달을 땄는가? 구약 성경에서 뭐라고 설명하냐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쇼트트랙 경기장을 만들어 놓고, 아브라함아 니가 쇼트트랙 경기 1등으로 들어와! 그러면 내가 영적인 금메달을 줄게! 그래서 아브라함이 열심히 돌아가지고, 1등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영적인 금메달을 준 게 아니라, 그냥 받았다는 거예요. 믿음으로 받았다는 거.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거에요. 이게 복음인 것이죠.

구약 성경에 이미 복음이 들어가 있는 것인데요.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완벽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는 거짓말한 사람이었고,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이고, 여러 가지 허물들을 찾아보면 허물들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내가 너에게 의롭다고 할 테니까, 영적인 금메달을 주려고 할 테니까, 나에게 번제를 몇만 마리를 바쳐라. 그러면 내가 의롭게 해줄게!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거에요. 열심히 니가 신앙생활을 해서 정말 선을 쌓고 쌓고 쌓고 엄청나게 쌓아서 그래서 내가 원하는 만큼 쌓으면, 그러면 내가 너를 의롭다고 할게! 해준 게 아니라는 얘기예요.

그럼 어떻게 해줬는가?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그를 인정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서 영적인 금메달을 땄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에게 박수쳐줄 수가 있겠고, 아브라함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냥 받게 된 것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엄청난 선물을 준비해 주시고, 저 천국의 부활을 천국의 약속들을 하시면서 주시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는 불신하고 의심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다고 하는 것이 문제인데요. 믿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이 약속을 말씀해 주신 분이 사기꾼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자신의 것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향해서 나아가는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곳에 끌고 나와서 우리를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엘 민족을 징계하셨는데요. 불뱀을 보내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징계하셨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불뱀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물기 시작했는데요. 이 불뱀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뱀이었기 때문에, 이제 그 불뱀에 물린 사람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이르게 됐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나님 이 민족을 좀 살려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 가지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모세야, 내가 너에게 방법을 하나 줄 텐데, 지금 당장 놋으로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대를 높이 달아, 그 놋뱀을 달아놓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놋뱀을 바라보면 너희가 살 것이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모세가 그 말씀을 듣고 그렇게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포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살려주실 것이니, 저 놋뱀만 바라봐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봤습니까? 안 봤습니까? 안 봤어요! 보는 게 뭐가 어렵다고, 안 봐요? 그걸 안 보고 죽는 거에요. 내가 믿기만 하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바라보면 살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을 이제 신뢰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은 살았지만, 그 가운데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시겠다고 하는데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을 때 그들에게 그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올 수가 없었던 것이죠.

종종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의 공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공로가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반응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들의,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나도 답답한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고,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나도 좋은데, 그런데 현실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자식. 자식이 없는 겁니다. 큰 민족은커녕, 자녀 하나도 없는 이 상황, 그리고 나의 나이가 이미 100살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마음은 너무나도 낙망스러웠을 겁니다. 그 순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했는데, 도대체 내가 무엇을 통해서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이끌어내시면서 저 하늘을 바라보라는 거예요. 밤중에 하늘을 보여주시면서, 아브라함아, 네가 저 밤중에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네가 셀 수 있느냐? 네가 셀 수 있을진데, 내 자손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 말씀하실 때, 지금 현실의 모습을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아무것도 만져지는 것 없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매,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다 다 실격일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성경에는 이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말씀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서, 우리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적인 금메달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이 말씀이 로마서에 있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열심히 행해야 된다고 하는 말씀도 성경에 있습니다. 어디에 있죠? 야고보서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21절 22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야고보서의 말씀은 로마서의 말씀과 정반대의 말씀처럼 보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행한 게 없어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그 은혜를 우리가 받은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데, 야고보서에서는 너희가 믿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너희도 행해야 한다. 행함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똑같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면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어느 장단에 춤추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 말씀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질문이 다른 겁니다. 로마서에서의 질문은 무엇이냐면,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영적인 금메달을 따는 게, 그게 우리의 공로로 따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이냐? 라고 하는 그 질문에 대해서 로마서에서는 우리의 공로로 딴 게 아니라, 하나님이 거둬주시는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이 로마서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야고보서의 말씀은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야고보서의 질문은 참된 믿음이 무엇이냐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종종 로마서를 읽는 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어떤 오해를 합니까? 그래 내가 노력해서 받는 게 아니라, 그냥 준다고 그렇다고 한다면, 아무 노력할 필요 없겠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겠네라고 하는, 율법 폐기론자 적 같은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그냥 마음대로 살아도, 결국은 구원을 받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야고보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참된 믿음이란 행위가 뒤따라오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지, 삶이 변화된 모습이 보여지는 게 참된 믿음이지, 계속해서 악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하는 의미에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겸손해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더 나아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우리의 믿음을 흔들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는가 의심이 들 때가 있어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인가 아니면 망하는 길인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의 약속이 참되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그 길을 가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이 죽음의 길이지만, 이 죽음의 길이 나를 완전히 파멸시키고, 나를 완전히 끝내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를 나를 살리시고 부활하셔서 부활시켜 주셔서, 결국에는 승리하실 거라고 하는 그 믿음으로 어디까지 갔어요. 죽는 자리에까지 갔던 예수님의 그 순종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또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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