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끊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제안

1. 백신을 맞았는데도 왜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백신을 맞았는데도 왜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백신은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몸속에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오로지 마스크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격리” 방법뿐이다. 마스크를 써서 격리하든, “다른 사람과의 이격(離隔) 유지하기”(영어로 social distance라고 하는데, 이를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직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를 하든,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격리하는 방법밖에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백신에는 몸속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기능 자체가 없다. 따라서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바이러스 감염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백신이 바이러스가 몸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강화시키는 표현이 “돌파 감염”이다. 이 표현은 마치 백신이 바이러스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기능을 뛰어넘는 강력한 바이러스로 인하여 감염이 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다. 백신은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 자체가 없다. 아무리 백신을 맞아도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100% 감염될 수밖에 없다. 백신은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언론은 그리고 방역 당국에서조차 마치 백신이 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을 방치하거나 조장해왔다. 백신을 접종하던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미처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사람은 감염이 된 반면,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감염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러자 이것을 질병관리청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런 실례를 들면서,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고 선전했다. 당시에 백신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져 있어서 백신을 과연 맞아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때였다. 이러한 질병관리청의 홍보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국민들은 빠른 시간 안에 대부분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서 빨리 종식될 수 있다면, 백신을 기꺼이 맞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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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백신접종율이 80%를 넘겨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잠잠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처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있다. 방역패스를 믿고 나이트 클럽에 갔다가 거기서 대량으로 감염되는 돌파감염이 생겨났다. 우리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백신을 맞으면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백신은 마치 무용지물처럼 보인다. 확진자 중에서 미접종자가 30%나 되니까, 제발 백신을 맞으라고 질병관리청에서 호소하는데(2022년 1월 4일 기준), 그렇다면 확진자의 70%는 백신접종자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백신을 맞으라는 말인가? 일반 시민으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혼란은 백신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득시키지 못하고 마치 백신이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막인 것처럼 선전했던 질병관리청의 잘못이 크다. 백신을 맞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백신을 불신하게 만든 셈이다.

초창기에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미처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사람은 감염이 된 반면,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감염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해도, 감염이 되지 않은 이유가 백신 때문이라고 발표한 것은 큰 잘못이다.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백신 때문에 감염되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염이 안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다른 사람의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과정 중에 그 사람에게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백신 미접종자에게는 들어간 것이고, 백신접종자에게는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아주 예외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인양 발표한 것은 잘못이다. 백신접종자도 다른 사람의 바이러스를 흡입하게 되면, 감염된다. 그게 팩트다.

법원은 지난 2022년 1월 4일 코로나19 백신접종자와 미접종자의 확진자 발생률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학원 등에 대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적용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질병관리청에서는 황당한 결정이라고 반발하겠지만, 법원의 생각이 평범한 시민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백신접종자도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왜 백신을 맞아야 한단 말인가? 왜 방역패스가 필요하단 말인가?

2. 그렇다면 왜 백신을 맞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백신은 바이러스가 우리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바이러스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면, 마스크나 다른 사람과의 이격 유지하기 방법을 사용하는 것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왜 백신을 맞는가?

백신의 역할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다. 즉 항체를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거의 증상이 없이 지나가게 하거나, 약하게 지나가게 해준다. 항체가 약하게 형성되면, 좀 심하게 앓기도 한다. 그래서 2차, 3차가 필요하다. 좀 더 항체를 세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백신을 맞은 사람도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100% 확진자가 된다. 재수가 없어서 돌파감염이 되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100% 감염된다. 물론 본인은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킬 수 있다. 백신을 맞고서도 서로 마스크를 잘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자신은 가볍게 넘어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서로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백신접종자는 바이러스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통계를 내밀면서 백신을 맞으라고 주장하거나, 백신을 접종자도 결국 바이러스에 걸린다는 사실을 들이밀면서 백신 무용론을 펼치는 것은 모두 틀렸다. 백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질병관리청이 왜 이런 접근법을 사용해서 백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백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의사들 중에서 일부가 왜 이런 접근법을 통해 백신에 대한 거부 운동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백신은 맞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내 몸이 이겨낼 수 있도록 나를 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어떤 백신은 한번 맞으면 평생 다시 맞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다시 맞아야 하는 백신도 있다. 예를 들어 독감 백신은 1년에 한 번씩 맞는다. 그 이유는 1년이 지나면 내 몸속의 항체가 사라지거나 다른 종류의 독감이 오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은 1차 2차는 물론 부스터 샷도 맞으라고 한다. 그 이유는 독감 백신처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약해지거나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부스터 샷을 1년 뒤가 아니라 6개월 이내에 맞으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독감은 주로 겨울에 오는 것이기에 1년 뒤에 맞으면 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의 안내에 따라 백신을 잘 맞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백신을 불신하고 거부하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사망하거나 심하게 병을 앓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물론 백신을 신뢰하는가 신뢰하지 않는가는 자신의 선택이지만, 그 결과는 때때로 치명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냥 쉽게 넘길 바이러스가 아니다. 후유증이 심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우리는 우주복과 같은 방어막을 입은 게 아니다.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와 접촉하면 감염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그냥 가볍게 지나갈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조금 심하게 앓을 수도 있다. 심할 경우, 지병이 있다면 백신의 효과가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우리 딸은 백신접종 후 감염되었는데, 거의 아무런 증상 없이 지나갔다고 한다. 아직 젊은 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 그래서 마스크는 여전히 잘 써야 하고, 다른 사람과의 이격 유지는 계속해야 한다. 완전히 상황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3. 백신의 부작용이 있다던데

백신을 맞고 좀 더 안전한 삶을 누리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백신을 맞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소식이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뉴스들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제공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머뭇거린다. 게다가 백신접종자도 확진되는 현상 때문에 사람들은 백신접종을 거부하게 된다. 나도 백신 맞은 후에 사망하게 되지 않을까? 나도 백신 맞은 후에 실명되지는 않을까? 등등 혹 떼려다 혹을 붙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 의사들도 집단적으로 백신에 대해 반발하기도 한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side effects, 부수적 효과)이 있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백신을 상용화하기 전에 무수한 임상실험을 통해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이 위급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긴급하게 사용허가를 받았다. 따라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 큰 딸도 백신을 맞은 후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가 알러지 약을 먹은 후 그 증세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거야 큰 문제가 아니지만, 사망하거나 실명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백신접종은 강제적인 방법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백신접종 여부에 따라 출입을 제한하는 백신 패스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백신 패스를 시행하더라도, 자신의 신중한 선택에 따라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의 기본권이 박탈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따라야 한다. 지금 약간의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점은 정부가 더 고민해야 하고 더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동시에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서 과도한 선전은 중단되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지 못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백신의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그 효용성마저 깡그리 무시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가 방역에 끼어들면, 과도한 비난이 난무하게 되고 백신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특히 현 정부를 비난하고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자들이, 그것이 언론이든 정당이든 이익 단체든, 백신의 부작용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일들은 당장 중단되어야 하고, 또한 시민들은 그러한 잘못된 선동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백신이 정말 유익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백신을 수십억 명이 접종해서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는지가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질병관리청은 신속하게 그 데이터를 공유해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접종을 피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그렇게 잘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4. K-방역은 성공했는가?

K-방역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으로 이루어질 게 아니다. 여당 편에 있는 사람들은 방역이 잘 되었다고 평가할 것이고, 야당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주 형편없다고 깎아내릴 것이다. 정치가 방역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재앙이다.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평가가 공정하지 않으면, 그 대책도 엉망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가급적이면 비정치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우선 정부는 코로나가 발발한 이후로 효과적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우리의 일상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비교적 그리고 효과적으로 잘 해왔다. 그런데 방역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확진자 숫자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적다는 것에 근거하고 싶지 않다. 확진자 숫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확진자의 숫자를 점점 줄여서 감염의 상황에서 해방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확진자의 숫자가 많은가 적은가는 방역 성공의 잣대가 아니다. K-방역이 길을 잃은 것은 방역의 목표를 확진자 숫자 줄이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이 방역 성공의 목표인가? 그것은 일상의 유지와 회복이다. 일상의 유지와 회복이라는 가장 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확진자 숫자를 줄여나가는 것은 필요한 요소일 뿐이다.

만일 확진자를 줄이는 것만이 최상의 목표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외 입국자가 없도록 봉쇄해버리고, 어느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그 지역을 봉쇄해버리면 아주 간단하다. 초기에 해외 입국을 막았어야 했는데, 막지 않았다고 정부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런 조치를 취했다면, 벼룩을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정부가 그런 극단적인 조치를 통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래야 정권을 다시 빼앗아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적절하게 조치를 취했다. 확진자를 줄이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적절하게 마스크가 골고루 잘 배분되도록 조치를 취했고, 여러 가지 방역지침을 통해서 확진자를 줄여나갔는데, 확진자를 줄여나가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일상이 유지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는 점에서, K-방역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백신을 확보하여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일상이 크게 손해 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확진자의 숫자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개선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방역 당국의 목소리가 너무나 큰 나머지, 그리고 확진자의 숫자를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어버린 나머지, 다른 분야의 목소리들은 존중받지 못했다. 정치는 모든 것을 골고루 균형이 잡히도록 조치하는 기술인데,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는 오로지 방역 당국의 목소리만 강하게 들려지는 부조화가 빚어진 것이다. 그래서 방역지침은 시민들의 경제활동과 교육을 비롯한 일상을 위축시켰고, 더 나아가 신앙의 자유가 침해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정말 아쉬운 점이다.

기본적으로 방역 당국의 정책은 시민의 일상을 제한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정부의 다른 부서에서 방역 당국의 조치에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교육부는 그런 식으로 제한하면 아이들의 학습권이 무너진다고 반발하면서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노력을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마치 자신들이 방역 당국인 것처럼 등교를 제한하는 등 방역에만 몰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그런 식으로 영업을 제한하면 우리나라 경제에 큰 문제가 생기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방역 당국의 영업시간 제한 방침에 제동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메카니즘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장사를 못해 신음하며 못살겠다고 외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역 당국이 그런 식으로 종교활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어야 했고, 시민들의 체육 활동이나 공연 등 문화활동 마저 중단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문화체육관광부는 마치 자신들이 방역 당국인 것처럼 종교 단체를 감독하기 시작했고, 체육시설들은 문을 닫아버렸다. 방역 당국이 마치 독재하듯 행세하면서, 결국 정부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결과적으로 시민의 삶을 엄청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방역 당국은 오로지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것을 제어할 정치적 조정 역할이라는 것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이것을 대통령의 부재라고 표현하고 싶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방역 당국에 끌려간 형국이 되고 말았다. 겨우 한다는 게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재난지원금 몇 푼을 주면서 성난 민심을 달래는 것뿐이었다.

방역 당국의 조치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모임을 줄이고 일상을 제한했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정부의 방역 조치는 아주 간단하다.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맡기기 어려웠고, 소상공인들은 폐업 직전에 와 있다. 조기 축구를 하려고 해도 닫혀버린 체육시설을 보면서 한숨만 내쉬어야 했다. 신앙생활을 대단히 위축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일상을 완전히 빼앗아버렸다. 그래놓고 확진자가 줄어드니 방역을 잘했다고 할 것인가? 그런데 지금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확진자 숫자가 폭발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게 할 것인가?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고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질문을 다시 바꾸어서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확진자를 줄여버릴까를 목표로 세울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바이러스 전염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시민의 삶을 최상으로 유지하게 만들 수 있을까가 정부의 질문이자 목표여야 한다. 그래서 이 목표에 맞추어서 방역 지침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는 것을 최대로 보장하고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 방역을 어떤 수준으로 할 것인가를 방역 당국에서 내어놓아야 한다. 시민들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 방역 수준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시민들의 체육, 문화 등 여가생활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서, 방역 수준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시민들의 경제생활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하여 어떤 수준에서 방역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묻지 않고, 무조건 방역을 위해서 다른 모든 분야를 제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묻지 않았기 때문에,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는 모일 수도 있고 취식도 가능한데, 왜 결혼식은 안 되는 것인지? 카페에서는 먹을 수 있는 데, 왜 식당에서는 더 제한을 받아야 하는지? 사설 체육시설은 문을 여는데, 왜 공공 체육시설은 문을 닫는지?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의무가 아닌데, 왜 공공 체육시설에서는 마스크를 강요하는지? 야구 구경을 하기 위해 같이 4명이 택시를 타고 가고, 같이 식사를 할 수는 있는데, 왜 같이 앉아서 응원은 할 수 없는지? 군대의 단체 식사가 가능하고 구내 식당에서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데, 왜 종교시설에서는 식사를 제공하면 안 되는지? 지하철에서는 1시간씩 다닥다닥 밀접한 채 이동하는데, 왜 종교시설에서는 30%만 입장이 허용되는지? 9시까지 식사하는 것은 가능한데, 왜 11시나 12시에는 매식하면 안 되는지, 왜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왜 공무원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압력을 넣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방역 당국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접근을 해야 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은 밀접접촉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교회여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이단종파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외국인 노동자여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학원이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상황을 예방하는 것을 계몽해야 하는데, 어떤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간 것은 잘못이었다. 확진자가 다녀가면 감염의 위험이 있다.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어느 한 카페, 식당, 목용탕, 종교시설에서 전염이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동종 시설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위험한 것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고, 밀접접촉이 이루어질 때이다.

5. 이젠 슬슬 방역 조치를 풀어야 할 때다

백신을 잘 맞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할지라도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다. 따라서 실내에서 마스크를 잘 쓰도록 유도하고, 일상을 회백신을 잘 맞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할지라도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다. 따라서 실내에서 마스크를 잘 쓰도록 유도하고, 일상을 회복시켜야 한다. 여전히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조심하도록 안내하면 된다. 마스크 쓰기와 다른 사람과의 이격 유지하기, 그리고 손 씻기 등을 통해 바이러스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백신접종을 통해 심각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코로나는 종식(ending corona)이 목표가 아니라 코로나 속에서 살아남는 것(with corona)이 목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방역 당국에만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차원에서 대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재난지원금만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비전문가가 쓴 소견이니, 감안하여 읽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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