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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이 될 상인가? (왕하 8:7-15)

이제 한 달 정도 뒤가 되면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어떤 사람으로 세울 것인가, 대한민국의 지도자를 어떤 사람으로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지대한 국민적 관심사일 것입니다. 어떤 지도자가 선택되는가에 따라서 국가의 운명이 바뀌고, 더 나아가 우리 개인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야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 후보들 가운데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십니까?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김동연, 허경영을 비롯해서 여러 후보들이 이번에도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될 것인데, 도대체 어떤 후보가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저는 누구를 지지할까요? 그것은 비밀입니다. 저 나름대로 더 지지하는 후보가 있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있기는 하지만, 비밀로 붙이는 것은 선거법상 금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제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제 사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들을 열광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사람이, 만일 어떤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 열광적으로 지지한다고 하면, 제 사명은 그 정치인이 우리의 구세주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정치인의 앞잡이나 노예가 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로 헌신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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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어떤 지도자가 선출되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어떻게 탄생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투표를 통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선거가 아주 중요한데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서 투표를 하게 되고,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민주적인 절차가 발달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힘으로 권력을 차지하곤 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든지, 아니면 왕권을 계속 강화해서 자기의 아들에게 물려주든지, 아니면 전쟁을 통해서 정권을 잡든지 해서, 힘이 있는 사람이 정권을 잡게 되었는데요. 그게 우리들이 눈으로 보게 되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면, 선거를 통해서 지도자를 세우든, 힘에 의해서 정권을 잡게 되든, 그것이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난 현상이겠지만, 그러나 영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면, 지도자는 누가 세우는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폐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서 2장 20절에서부터 21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여호와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 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적인 관점이 무엇이냐면,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것이고, 한 나라의 왕이 세워지고, 한 나라의 왕이 무너지는 것도, 한 나라의 지도자가 세워지고, 한 나라의 지도자가 몰락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과 주권 아래 있다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이고, 영적인 관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우연이라고 하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이라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그저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그렇게 수동적으로 움직인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도표를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네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선택과 결정을 함으로 인해서, 이 세상이 움직여 나가는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이 세상이 움직여 나가는가에 대한 관점을 네 가지로 볼 수가 있겠는데요. 첫 번째 견해는 어떤 견해입니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주권적으로 결정하시고 선택하시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아무런 선택과 결정권이 없다고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달렸다고 하는 것이 첫 번째 견해인데요. 만일 이렇게 바라본다고 한다면 모든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 인간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견해가 첫 번째 견해일 것입니다. 이 견해는 결코 옳은 관점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의지를 가지고, 우리의 선택과 우리의 결정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옳지 않은 견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 견해는 정반대의 견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것은 우리 인간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 것이고, 인간이 다 선택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결정과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모든 책임이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고, 하나님은 개입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손 놓고 있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없다고 보는 관점이 세속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이건 역시 잘못된 관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첫 번째 견해와 두 번째 견해를 섞어놓은 신인 협력론적인 견해가 세 번째 견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선택과 결정을 하는 것이 반절, 그리고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을 하는 것이 반절이라고 하는 신과 인간이 반반씩 협력해서 모든 것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세 번째 견해일 텐데요. 역시 이것도 바른 관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성경적인 견해가 무엇이냐면 마지막 네 번째 견해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본다고 한다면 100%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자율적인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발생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적인 면에서 바라본다고 한다면 100퍼센트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영적인 측면에서 본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하나님이 온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주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바라보느냐? 저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다고 한다면, 전적으로 인간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영적으로 바라본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관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성경적인 관점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 따라 모든 것들이 발생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엘리사 시대에 있었던 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다메색이라고 하는 동네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아람왕 벤하닷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자신이 병에서부터 나을 수 있을 것인지를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병에 걸렸던 이 벤하닷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이 이 병에서 나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궁금해서, 하사엘이라고 하는 신하를 보내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하사엘은 낙타 40마리를 끌고 갑니다. 그 위에 예물들을 가득가득 실어 가지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예물을 드리고, 이 벤하닷 왕이 병에서부터 낳을 수 있는지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엘리사 선지자가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왕이 반드시 나을 겁니다”라고 말하십시오. 하지만 왕이 낫는 것이 아니라 죽게 될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벤하닷 왕이 죽게 되는 이유는 병에 의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신으로 왔던 그 하사엘이 그 벤하닷을 죽이고 왕이 될 거라고 하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리고 이 하사엘이 왕이 된 다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고, 아주 정말 박해하게 되는,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결국 하사엘이라고 하는 이 사람은 돌아가서, 벤하닷에게 이야기해서, 병에서부터 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다음 날 이 하사엘은 왕의 얼굴에 이불을 덮어서, 물을 적신 이불을 덮어서 살해해버리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려주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지만, 오늘 조금 전에 제가 설명드린 그것을 묘사해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그것이 어떻게 서로 맞물리면서 돌아가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사람의 생명이,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한 나라의 왕이 세워지고 한 나라의 왕이 없어지는, 그 모든 것들이 이 세상 모든 만사가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벤하닷 왕이 죽기 전에, 하사엘이 그 벤하닷 왕을 죽이기 전에, 이미 그렇게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에 의해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서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누구에게 주권이 있다고요? 하나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에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결론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결론은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움직인다고 한다면,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사람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우리는 헛된 우상 앞에 엎드리지 않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우상이나, 무속을 의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참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야지, 참되신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엎드리거나 참되신 하나님이 아닌 무속에 의존하는, 그런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주나 팔자, 혹은 관상, 무속, 부적을, 부적 같은 것을 통해서, 우리들의 미래를 바꾸어 보려고도 하고, 우리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있습니다.

대체로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 무속에 의존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는데요.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무속이나 관상이나 사주나 팔자를 의존해서, “내가 왕이 될 수 있는 상인가”를 묻는 것이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헛된 우상과 무속 앞에 현혹되는 그런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이 있는데,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참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된 헛된 우상 앞에 잘못된 무속 앞에 우리가 머리를 숙이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그런 불완전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종 우리 크리스찬들 가운데는, 소위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기도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마치 점쟁이가 앞날을 알려주듯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당신은 목사가 되어야 될 사람이다. 당신은 무엇을 해야 될 사람이라. 당신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면서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알려주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크리스찬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되고, 이런 일을 해야 된다고 말해 주면서, 예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종종 우리 크리스천들 가운데도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이 어떤 경우는 목사일 수도 있고, 권사일 수도 있고, 장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할지라도, 성령님을 빌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정당한 건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물론 구약시대 때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선지자들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해준 이야기가 구약 성경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엘리사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것에 따라서, 벤하닷 왕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하사엘이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예언해준 이야기들이 구약 성경 가운데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있었던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일이었고, 그것도 아주 예외적으로 일어난 일들이었지, 지금은 성경이 완성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제는 완전히 계시가 되어서, 더 이상의 추가적인 계시가 있을 수 없는 이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해 주신 성경 66권을 묵상하고, 또 이 말씀에 따라서 의지하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 그래서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 길을 어떤 길로 인도해 주시는지, 어떤 길을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분별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 어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나, 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찾아가서 내 앞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를 구하는 것은 그것은 건전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기는 하지만, 우리가 구약시대 때 그랬던 것처럼, 이것은 100% 하나님의 뜻이라고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게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우리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또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주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역시 우리의 인간적인 선택에 의해서 인간의 결정에 의해서, 이 세상의 역사가 흘러가게 되는 것이고,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그런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사엘이라고 하는 사람이 오늘 등장하는데요. 자신이 섬기던 왕이었던 벤하닷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이 되었습니다. 이 하사엘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냥 자동적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나쁜 방법이긴 하지만, 자기가 왕의 자리를 쟁취해서 왕의 자리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동시에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는 해야 될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죠. 지난 시간에 우리는 수넴 여인이라고 하는 이 여인이 자신의 땅을 되찾기 위해서 왕 앞에 나아갔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사엘이라고 하는 사람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이 되는 이야기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것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그 어떤 것들이든, 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통치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일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우리들이 행하는 것들을 통해서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선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악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 같은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국은 공의롭게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우리들은 선한 선택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악한 일을 선택한다고 한다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만일 우리가 선한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선한 일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세상은 뒤죽박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공의로우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전혀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은 엉망징창으로 돌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기도 했는데도 응답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따라서 변화가 돼야 될 텐데,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어요. 그런 일을 만나게 될 때마다 우리는 당황스럽습니다. 왜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반대로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당황스러운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사회를 바라볼 때는, 정말 절망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정의로운 판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는 정반대의 판결들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의로운 자는 고난을 당하고, 악한 자들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정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들의 생각에, 하나님이 안 계신가?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한다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가? 라고 질문을 던지게 되고, 하나님은 혹시 졸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일에 전혀 참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생각이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 도대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엉망진창입니까?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하면서 사람들이 외치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한 달 정도 남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우리들이 기대하고 소망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소위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내가 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들이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사엘이나 벤하닷이나 피장파장 다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아람 나라가 적군이거든요. 이스라엘 민족을 침공하려고 하는 그 아람 나라의 왕들입니다. 따라서 벤하닷도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그런 나쁜 왕이고, 하사엘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그런 나쁜 왕이 될 때, 피장파장 나쁜 사람들인데, 그런데 사실 자신의 군주를 죽인 이 하사엘 쿠데타를 일으킨 하사엘이 훨씬 더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도덕적인 관점으로 본다고 한다면, 나쁜 왕을, 더 나쁜 사람이 물리치고, 그 왕이 등극하게 되는 어쩌면 정말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그 더 나쁜 사람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도,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가 무엇이냐 하면, 그 나쁜 사람이 왕이 되는 그 모습도, 그냥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나쁜 사람이 왕이 된 것이 아니라, 그냥 이러다 저러다 보니까 우연에 의해서 하사엘이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의 가르침이 무엇이냐면,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냥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악한 자가 권력을 잡은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되는가?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범사에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나중에 이 아람 나라는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켜버립니다. 나중에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가 일어나게 되는데요. 느브갓네살 왕이 다스리는 그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에 의해서 남쪽 유다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하게 된 것이 우연하게 된 것인가?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의 뜻과 계획 가운데 있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있었다고 가르쳐주는 거에요. 심지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바벨론의 왕인 느브갓네살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에이전트(agent)라고 하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하는 것이죠. 예레미야서 25장 9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내종,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일으키시고, 느브갓네살 왕을 일으켰는데 ,그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유다 나라가 패망하게 될 텐데, 그 느브갓네살을 하나님께서 뭐라고 부르냐면, 그는 나의 에이전트(agent)다. 내 대리인이다. 내 심부름꾼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되는 이유가, 심지어 그런 악한 일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런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어떤 일을 이루실지를 바라보면서, 기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일을 이루시고 있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마음에 안 들지만,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이루실지를 바라보면서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처럼? 애기처럼.

여러분들 아기 길러보셨잖아요? 아기들한테 부모님이 데리고 장난을 치는데요. 놀아주는데요. 무슨 놀이를 하면서 아기들이랑 놉니까? 까꿍 놀이를 해요. 까꿍 그러면 아이들이 웃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하냐면 숨어요.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아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 이 아이가 도대체 엄마가 어디 갔을까? 아빠가 어디 갔을까? 호기심으로 눈을 휘둥거리면서 바라보는데, 그런데 엄마가 짠하고 나타나서, 까꿍 그러는 거에요. 그러면 이 아이가 아빠의 얼굴을 보고 엄마의 얼굴을 보고 웃습니다. 그 엄마가 다시 몸을 숨기면서, 숨으면 그 아이가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엄마가 어디 갔을까? 아빠가 어디 갔을까? 하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 있으면 까꿍하고 나타나겠지. 그리고 조금만 정말 기다리고 보면 엄마가 까꿍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가 너무나도 행복하게 웃습니다. 엄마가 사라질 때, 두려워하고 울고 불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언제 까꿍할까를 기대하면서, 눈을 불쑥 뜨고 그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그 어린아이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고,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을 만나고, 때로는 악한 자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정말 사악한 일들이 이 세상에서 판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 까꿍하실지를 기대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저한테 이럴 거예요. “목사님, 하나님이 제발 까꿍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예 절망적으로 끝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길에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악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악한 일조차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대하면서,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셨을 때, 하나님은 마치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울부짖을 때 하나님은 마치 없는 것처럼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과 헤롯 당원을 비롯한 당대의 사악한 권력자들이 통쾌한 승리를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기억하고 계십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셔서 실패가 아니라 궁극적인 승리를 하셨고,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을 위한 영원한 구원자가 되신 줄로 믿습니다.

그 부활의 믿음으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따라서 울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신실하신 손길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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