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명철을 얻으라 (잠 4:1-9)

선을 베풀라 (잠 3:27-35) +++ 의인의 길, 악인의 길 (잠 4:10-19)

잠언서의 말씀은 솔로몬 왕이 쓴 것입니다. 대부분을 솔로몬 왕이 쓴 것인데요. 솔로몬이 이 잠언서를 쓰면서,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라고 권면하고 있으니까, 이 잠언서의 1차 독자가 누구들이겠습니까? 바로 솔로몬의 아들들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 잠언서의 1차 독자 제일 처음 이 잠언서를 받아 든 독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르호보암 왕을 비롯해서 그의 형제들에게 주었던 솔로몬 왕의 메시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다”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데, 솔로몬의 아버지가 누구였죠? 다윗왕이었죠. 다윗왕의 아들이었고, 그리고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의 유약한 외아들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이렇게 고백하면서, 이 말씀을 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4절 말씀에,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누가 누구에게 알려줬다는 얘기니까? 다윗이 솔로몬에게 알려준 거죠. 안타까운 것은 솔로몬이 그러한 다윗의 말을 잘 들었나요? 잘 듣지 못했나요? 잘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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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이제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를 물려줄 그 솔로몬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라고 훈계해 주었는데, 그 훈계의 이야기를 들었던 그 솔로몬이 다윗의 그 유언대로 그 교훈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았다라고 한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결국 이방 신상을 섬기고 우상들을 섬기는, 전들을 많이 만드는 등,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많이 떠나버렸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도 솔로몬이 가르쳐주었던 이 말씀을 그대로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나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아무튼 잠언서의 1차 독자는 르호보암을 비롯한 여러 솔로몬의 아들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만 준 메시지가 아니라, 이 말씀은 우리 모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1차 독자가 누구였는가를 이해하고 본문의 말씀을 읽는다고 하면, 조금 성경을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의 메시지가 1절부터 9절까지인데, 이 메시지의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떤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아버지의 훈계와 명령을 듣고 순종하라.” 아버지가 가르치는 그 훈계를 버리지 말고 그 훈계를 잘 받으라고 하는 교훈이고, 그렇게 해서 훈계를 받고, 그 지혜를 따르고, 그 명철을 따르는 것이 그것이 살 길이고 그것이 보호받는 길이고 그것이 영화롭게 되는 길이라고 하는 말씀으로 쉽게 요약할 수가 있겠습니다.

지금 솔로몬은 자녀들을 향해서 해주는 말씀이 “아버지의 말을 잘 들어라.” “내가 지금 하는 이 교훈을 마음속에 새기고, 그 교훈을 잘 듣고 행한다고 한다면, 너희가 살게 될 것이고, 너희가 보호받게 될 것이고, 너희가 영화로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솔로몬이 르호보암을 향해서 해주고 있는 이 말, 다시 말하자면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라고 했을 때, 이 아버지의 훈계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우리가 한번 살펴본 적이 있지만, 지금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의 훈계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가르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솔로몬이 하는 모든 말을 가르키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키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교적인 문화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조건 따라야 하고, 부모님에게 항의하거나, 대들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말씀하면 그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순종해야만 한다고 하는 유교 문화권에서 살다 보니까, 성경 말씀을 읽을 때도 솔로몬에 했던 솔로몬이 해 주었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성경에서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버지께서 말한다고 한다면,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들어야 하고, 따지거나 항의할 것이 아니라, 무조건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절대로 이유를 달지 말고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한 가르침,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교훈 정확한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고,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우리가 반드시 믿고 반드시 순종해야 될 그런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말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말, 사람의 말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까? 오류가 하나도 없이 완벽하게 정말 오류가 없는 정답만을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말을 하는 가운데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을 이용해서 말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말을 하기만 하면, 성경 말씀을 가지고 말하니까, 무조건 다 “그 말씀이 맞구나”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말이 무조건 다 옳은 말이 아니라고 하는 예를 어디서 찾아볼 수가 있나요? 이단들에게서 찾아볼 수가 있는 겁니다. 이단들은 다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암송하고, 성경을 인용하면서,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잘못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이 그 말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말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못된 성경의 잘못된 사용이 이단들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가 하면, 그렇지 않아요. 이단들만 성경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잘못된 사용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잘못된 사용이 나타날 수가 있겠는가? 실수로 나타날 수가 있는 거죠. 잘못 착각을 해서 실수로, 하나님의 뜻이 이게 아닌데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잘못 이해해서 실수로, 잘못 오해해서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의도적으로 성경을 잘못 사용할 가능성도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젠다(agenda)를 가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내 말만 하면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잘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잘못된 성경을 악용하는 일들이 벌어질 수가 있는데, 그것이 누구에게서 벌어질 수가 있는가? 이단들에게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실수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무능한 것이라고 한다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사악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우리 모두에게서 그런 잘못된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는 점을 우리가 먼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항상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오늘 성경 말씀 가운데서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라. 자녀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반드시 들어라.”라고 하는 이 말씀은,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다 들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니고, 여기에는 전제가 있는 겁니다. 무슨 전제가 있습니까?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한다고 하면, 정말 선하고 옳은 말씀을 하신다고 한다면 이라고 하는 그 전제가 있을 때에, 그럴 때 아버지의 교훈을 우리가 따를 수가 있는 것이죠.

유교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서, 유교적인 관점에서 본다고 한다면 부모님이 말씀하는 것은 무조건 옳습니다. 부모님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들어야 되고, 무조건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잠언을 읽으면서도 유교적인 개념을 가지고, 그렇게 부모님의 말씀은 무조건 들으라고 했다고 그렇게 오해하기가 쉽지만,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자녀들아,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고 하는 이 말씀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당연하죠. 옳죠.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아버지를 거역하며,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자녀들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고 성경에서는 그런 자녀들이 있다고 한다면, 정말 징계하면서라도 그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잘 듣도록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그런 성경 말씀들이 있는데, 일반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왜 부모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이 사랑해서 해주시는 말씀이고, 또 자녀들을 위해서 해주시는 말씀이고,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에서 나온 수많은 경험으로, 우리 아이들은 아직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그 생각하는 것이 단편적이고, 아직 알고 있는 것이 일부만 보고 있지만, 그러나 부모님은 벌써 오랫동안 생활을 해오면서, 그 단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후 관계 모든 것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이미 파악하고 있는 가운데, 좀 더 넓은 시각 가운데서 이 자녀들에게 무엇이 좋은가를 다 알고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당연히 옳은 말씀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일반적인 의미에서 당연히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인데, 그런데 거기에 전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죠. 부모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그 교훈과 일치해야 한다고 하는 전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님들은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할까요? 우리 자녀들은 이 교훈의 말씀을 읽으면서, “아, 내가 가능하면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되겠구나. 부모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한다고 한다면 반드시 따르고, 순종하는 자녀가 돼야 되겠구나. 그 교훈을 잘 받아들여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그 태도를 자녀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 배워야 한다고 하면, 그러면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부모들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겠습니까? 이것을 유교식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참된 교훈을 자녀들에게 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점검해 봐야 되는, 우리들의 마음이 유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자녀들을 대하면 안 되는 겁니다.

자녀들을 아주 강압적으로 무섭게 대하면서, “어디 자녀가 아빠의 말에 대꾸를 해? 내가 말하면 무조건 따라 해야지.” 묻지 말고, 따지지 말고, 무조건 해라고 하는 그런 강압적인 자세로 부모가 자녀에게 대할 것이 아니라, “잔말 말고, 내 말 다 들어.” 그런 독재자와 같은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우리 자녀들을 대해야 합니까? 성경에 보면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그래요. 정말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막무가내고 마치 독재자와 같고 정말 피 한 방울도 안 들어가고 말도 통하지 않는 그런 답답한 부모님이라고 하는 인상을 자녀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성경의 교훈은 무엇이냐면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불만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지금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의 상태인지, 자꾸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해하려고 하고, 우리 자녀들이 지금 어떤 마음의 상태인지 이해해야 하고, 그리고 칭찬해 주어야 하고, 격려해 주면서 우리 자녀들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대하는 모습들을 우리 부모들이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어느 순간에 “더 이상 우리 부모님하고 대화해봤자 말이 안 통해.” 하면서 부모님들을 향해서 우리 자녀들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 자녀들에게 귀를 기울여서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다 듣고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해야지, 오늘 말씀을 보면서 “너는 따지지 말고, 무조건 내 말 들어. 군대식으로 ‘까라면 까.’ 내가 명령하면, 무조건 들어.” 하는 그런 군대 상관과 같은 군대 고창과 같은 그런 막무간에 부모님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해주어야 되는데요.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말을 할 때는 언제나 내가 하는 이 말이 정말 자녀들이 온전히 따라 해도 될 만큼 정말 하나님의 뜻에 합한 말을 내가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가난한 자가 있으면, 아마 이런 예는 많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를 보면서 “너 열심히 공부 안 하면, 너도 저 거짓처럼 될 거야.”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어떤 부모는 그 가난한 자를 보면서, “저런 가난한 사람들을 네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가? 네가 더 열심히 해서 그런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구분하고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우리 부모님들이 하는 그 말이 정말 성경적인 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말들 그런 교훈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하나님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을 하면서 들으라고 할 때가 너무나도 많아요.

탐욕이 찌든 말, 욕심이 찌든 말, 이기적인 것을 강조하는 말, 이기적인 것을 부추기는 말 돈을 우상으로 생각하는 말, 교만한 마음을 만들어지게 만드는 그런 말들, 그런 말들을 하면서 자녀들을 따르라고 한다면, 그 말을 따르면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하는 거예요. 그런 부모의 말을 들으면 망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들을 해야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말들을 해야 되는데, 너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 다 짓밟아버리고, 너는 무조건 성공만 해야 돼, 마치 돈과 성공이 우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해버린다고 한다면, 우리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탐욕을 배우고, 이기적인 것을 배우고, 그래서 정말 가난한 자들 연약한 자들을 무시하고, 짓밟아버리는, 그런 안하무인과 같은 인간으로 기르면서, 너는 내 말 들어라고 이야기한다고 하면, 그것은 자녀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들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 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잘 가르쳐야 될 것이고, 그래서 자녀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분별해서 잘 가르쳐야 될 뿐만 아니라, 그러다가 혹시 내가 잘못 가르친 게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그 즉시 자신의 잘못을 자녀들 앞에서 인정하고, 그리고 그걸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로 가져야 합니다.

무대뽀의 아버지 어머니는 자녀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강압적으로 정말 옳지 않은 것도 무조건 명령해서 끌어가는 부모가 된다고 한다면, 우리 자녀들을 결국 망하게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사랑이 많은 자녀들로 성장하게 만들고, 이웃들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 아이들로 성장하게 만들고, 양보할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하게 만들고, 교만한 것이 아니라 겸손한 아이들로 성장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너그러운 자녀들로 만들어주는 그런 교훈들을 하는 부모님이 돼야, 그래야 그 교훈이 아이들을 살리는 교훈이 되는 것인데, 그 교훈이 아니라, 너 공부 1등 해야 돼. 너 다른 사람들 짓밟아 버리고, 네가 승리해야 돼. 야, 네가 한 대 맞으면 너 열 대 때려. 그러면서 그런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을 죽이는 그런 일을 할 게 아니라, 과연 내가 하는 이 말이 우리 아이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한 교훈인지, 늘 살펴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일 부모님께서 가르치고 교훈하는 그 가르침이 하나님의 교훈과 어긋난다고 하면 상반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때도 그 교훈을 들어야 됩니까? 듣지 말아야 됩니까? 그때는 눈물을 머금고 순종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과 다른 말을 한다고 하면, 눈물을 머금고 주님의 뜻을 선택하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교훈을 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될 것이고, 자녀들은 가능하면 부모님의 말을 순종하고 따르는 결단을 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따를 수 있는 결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부모님의 교훈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따라야 할 말씀인 것이죠. 부모님께서 사랑으로 해 주시는 말씀이고, 경험에서 나온 말씀이고, 잘 되라고 해 주시는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부모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주었을 때 그것을 반드시 따라야 되는데, 교훈을 따르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4절 말씀에 보면, 그 교훈을 따르면 “네가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6절 말씀에 보면 “너를 보호해 줄 것이고 지켜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교훈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그 교훈에 순종하며,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그 길로 따라간다고 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가? 살게 될 것이다. 형통할 것이다. 지켜줄 것이다. 영화롭게 될 것이다라고 성경에서 약속해 주고 있는, 당연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런 선하고 좋은 교 가운데 살게 된다고 한다면, 그러면 결국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경험을 할 때가 많다고 하는 것이 문제죠. 이 세상에서는 누가 성공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고, 그리고 아주 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 같아요. 구두쇠 같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을 아주 쥐어짜면서 인자가 없이 매정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결국 성공하는 것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우하고 양보하고 배려하게 된다면, 그리고 겸손하게 된다고 한다면, 이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양보하면서 살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용해서 그래서 손해 보게 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근데 성경은 현실과는 다르게 무슨 말씀을 하냐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게, 복된 길이고, 하나님 때 뜻대로 사는 것이 사는 길이고, 지켜주신다”고 영화롭게 될 거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성경 말씀이 잘못된 겁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현실에서는 잘 믿겨지지 않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두 번 해보고, “아, 이게 아닌 개벼!” 하면서 하나님의 길에서부터 떠나는 것이죠. 심지어 크리스찬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심지어 중직자들도, 목사님들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말하면서도, 살다 보니까 성경적인 방법대로 하면 망하는 것 같아요. 성경적인 방법대로 하면 늘 손해만 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실제적으로는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교훈과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왜? 이 세상에서는 무엇이 정의예요? 주먹이 정의예요. 답이에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고난 당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보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는데, 이 세상에서 누가 승리하는 것 같은가? 주먹이 이기는 것 같아요. 주먹이 이기는 것 같아요. 옛날에 어떤 영화가 있었는데요. 아주 아주아주 오래전에 나온 교회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습니다. 그때 제목이 “할렐루야”였었는지, 뭔지, 아무튼 제목도 생각도 안 나고 하는데, 누가 나왔냐면, 박중훈이라고 하는 탤런트가 나온 그런 교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사기꾼 박중훈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전도사 역할이든가 목사 역할 가짜 전도사 가짜 목사 역할을 하는 건데요. “주여, 주여” 하면서 이제 가짜로 교회 안에서, 이렇게 행동을 하는 겁니다. 설교도 하고 축도도 하고 막 그러는데, 그 교회 안에 들어온 불량 학생들이 있었어요. 불량 학생들이 있으니까, 그 불량 학생들을 박중훈이 어떻게 했냐면, 목사님 가운, 목사님 옷을 입고, 뭐 이렇게 겸손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화장실로 데려가서 그 불량 학생들을 놓고 주먹으로 막 무릎 꿇히고, 그렇게 해가지고, 힘으로 제압하니까,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이 겸손하게, 행동이 확 바뀌어가지고, 그 모습을 딱 보여주는 거에요.

그게 어쩌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에요.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irony)에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자하게 대하고, 사랑으로 대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면, 무시하고 깔보고 전혀 말을 듣지 않는데, 주먹 한 번 쓰니까, 깡패가 가서 그 불량 학생들을 힘으로 제압해 버리고, 무릎 꿇기고, 명령해버리니까, 찍소리 못하고, 변화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런 일들이 그게 그런 장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에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보면, 다 빼앗겨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면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 내 것을 지키고, 내 조그마한 권리라도 잡고, 내가 가진 그 무엇이라도 지키려고 하면, 하나님의 방법은 다른 데 쳐박아 두고, 일단 이 세상의 방법으로 먼저 해결해서, 주먹으로 치든, 뭘 하든 그래서 먼저 제 앞에서 해결해 놓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아이러니(irony)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건 우리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가졌던 고민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다가 애굽 땅에 갔는데, 그 애굽 사람들 포악한 애굽 사람들이 진치고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약속해 주시는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지만, 그 하나님의 약속은 생각이 나지 않는 거예요. 지금 이 애굽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가 있겠는가? 그 상황 가운데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뭐냐면, 거짓말하는 거예요. 이 사람은 내 아내가 아니고, 내 누입니다. 이 세상의 방법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하는 거예요. 왜? 그게 정답처럼 보입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뜻 안에 들어가서, 거기서 도전을 받는 겁니다. 그 순간에 질문을 던집니다. “너도 예수와 한패 아니냐?”라고 하는 그 질문 앞에서, “예. 나는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입니다.”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고, “나는 저 인간 모릅니다. 내가 만일 저 인간을 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내 위에 벌을 내리시고 또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저주하면서까지 세 번씩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실패의 삶들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믿음의 위인들이 넘어졌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더더욱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던 것이죠. 우리가 만일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아무 문제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내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이 있지만, 그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낼까?” 늘 넘어지고 늘쓰러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이 불쌍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저 높고 높은 보자 위에서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들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던 것이죠.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순엉터리라고 우리들에게 세뇌를 시키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지혜와 명철을 얻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게, 그게 살 길이다. 그게 하나님께서 너희를 지켜주시는 길이다. 그게 너희가 영혼을 얻는 길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이 말씀 앞에서, 이것이 실감나지 않지만,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 가운데서는 늘 넘어지고 늘 쓰러지기 때문에, 이것이 실제로 우리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모든 것을 바로잡으셔서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복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날마다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 그 결단의 순간에 이 말씀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면서 지혜를 선택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지혜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것들을 우리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숨뿐만 아니라, 영원까지 지옥의 능이 멸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 앞에 엎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매 순간순간마다 기도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주님 저희들의 심령 가운데,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복된 길이다. 증명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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