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로 돌아가기 +++ 10. 도둑질 (출 20:15) +++ 12. 탐욕 (출 20:17)
이 계명은 단순히 거짓말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라고 하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는 좀 다르게, 이웃에 대하여 증거 하는 데, “거짓말로 증언하지 말라”라고 하는 그런 식으로 오늘 십계명의 제9계명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십계명 가운데서 제9계명이 “거짓 증거하지 말라”라고 되어 있는 것은, 당시에 그 유대 사회가, 법정에서 진술을 통해서 재판을 하던 그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 재판은, 오늘날처럼 과학적인 수사 기법에 의해서, 확실한 증거들을 내놓고 재판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참 증거들을 채집하고, 그리고 그 어떤 재판을 내림에 있어서, 과학적인 증거들이 잘 사용됩니다. DNA를 통해서, 그리고 또 뭐죠? 지문을 통해서, 여러 가지 증거들을 통해서, 이 사람이 이 일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들을 내놓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재판이 잘못될 가능성이 굉장히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약 시대만 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재판이 그렇게 과학적인 증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서, 재판을 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증인들이 나와서, “내가 저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걸 내가 보았다”라고 하는 진술을 하게 되면, 재판장은 그 진술들을 듣고 재판을 내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재판에 있어서 목격자의 진술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인데, 만일 그 진술이 잘못된다고 하면 큰 문제가 되겠죠. 그래서 구약시대 때 재판은 어떻게 했냐면, 한 사람의 증인으로만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2명 혹은 3명의 진술이 똑같을 때에, 그 증거를 객관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서 재판을 하게 되는 겁니다. 한 사람만 얘기한 거 가지고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증언만 가지고는 재판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증인들이 2명 혹은 3명 이상 나타나게 된다고 하면, 그 증거를 객관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서 재판을 하게 되어 있는데요. 그런 재판의 시스템을 우리가 생각해 본다고 하면, 정말 증인의 위치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재판을 하는데, 그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 거짓 진술을 하게 된다고 하면, 그러면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고, 불법적인 결과가 가져오게 되는 것이어서, 엄청난 그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재판에서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날에도 안타깝게 우리나라 재판에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겠지만, 정치적인 재판이라든가, 또 여러 가지 이권들이 걸린, 그런 어마어마한 권력이 뒤에 있는 재판, 그런 재벌의 권력이라든가 정치적인 권력이 뒤에 있는 그런 재판 가운데서는 증거가 조작이 되거나, 또 진술들이 조작이 돼서, 잘못된 그 재판을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문제가 되는데요. 요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재판을 할 때 엄청난 잘못된 재판이 있었던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탈북자였던 유유성 씨를 국정원에서 증거를 조작했는지, 어땠는지, 아무튼 잘못된 조작된 증거를 제출해서, 그 사람이 북한의 간첩이라고 그렇게 결정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오세훈 서울시장 때 취직을 한 사람인데, 결국 그 일이 터진 것은 박원순 시장 때 문제가 불거져서, 결국 간첩이 우리나라 전반에 파고들었고, 심지어 공무원까지 하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온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그렇게 불거졌던 사건이었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건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다 증거들이 조작되고 문제가 있었던 것이어서, 지금 이제 이 시대에 들어서는 그 잘못된 재판에 대해서 국가가 배상해 주어야 한다고 하는 결론이 났고, 또 더 나아가서 그때 가담했던 잘못했던 검사들에 대해서, 지금 고발이 들어가 있는 상태인데, 그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재판에서 증인이 거짓말로 증언해서, 그것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당한다고 하면, 정말 이건 말도 안 되는 비참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정말 억울한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실을 말해야 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고,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인데, 특별히 재판의 상황 가운데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저는 재판에 관련된 그 일들을 몇 번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재판에 가서 증언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변호사들이 불리한 것 있으면 모른다고 잡아떼라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해서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았는데요.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늘 새겨들어야 될 말씀인데요. 왜냐하면 우리는 정의의 편에 서기보다는, 정의보다는 우리 편이 누군가에 따라서, 말이 바뀌기 쉬운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엇이 사실인가?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누가 우리 편인가가 더 중요하고, 우리 편이라고 한다면, 그 우리 편을 위해서는 거짓말이라도 하고, 우리 편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슨 말을 지어내서라도, 그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해를 입히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별히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크리스천들이 증인석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국회에서 여러 가지 청문회가 있다든지, 여러 가지 진술들을 해야 되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을 때, 바로 현장에서 무엇이 잘못이었는가? 무엇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청문회 현장 가운데서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거짓말을 이야기하는,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사람이 누군가? 우리 크리스천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되는데요.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진실에 서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거짓말로 진리를 수호하거나 진리를 변호할 수 없다고 하는 점입니다. 안타깝게도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가짜 뉴스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들을 보호하고, 그 가치들을 훼손되지 않게 만들려고 하는 열정이 너무나도 지나쳐서, 그래서 그것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짜 뉴스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대량으로 유포되고 있는 시절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사회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들이 어떤 가치들이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동성애가 난무하는 그런 사회가 되기보다는 성적으로 거룩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대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동성애에 대한 여러 가지 위험한 뉴스들이 많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고, 어떠한 일이 생기고 하면서, 그 동성애의 위험을 알리는 그런 뉴스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은 과장되고 잘못된 내용들이고, 심지어 거짓으로 꾸며진 그런 내용들을, 이 동성애가 이 사회에서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짜 정보들을 만들어서 확산시키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일반인들은 대체로 그러한 것들을 판단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정말 그러한지 과학적으로 알 수도 없고, 실제로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또 이러한 법들이 만들어질 경우에 어떠한 일들이 발생할 건지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대체로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가짜 뉴스들이 돌아다니게 되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리고 그 내용들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얼마나 충격적인지, 그 뉴스를 보면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지지 않아요. 이거 아주 심각하구나. 이걸 빨리 우리 주변들에게 빨리빨리 알려줘서, 이 심각성을 알려야 되겠다고 하는 그러한 심정에서 가짜 뉴스를 많이 퍼 나르게 되는데,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거짓말로 진리를 수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죠.
더군다나 이슬람의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이 정말 이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수많은 테러리스트라든가, 그리고 수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우리 한국 사회가 그런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정복당하게 된다고 하면,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충격적이고 그래서 너무나도 괴로워서, 그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또 가짜 뉴스들이 많이 생산이 되는데, 이슬람교도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수천 명씩 죽였다고 한다는 그런 뉴스라든가, 알고 보면 그게 그런 뉴스가 아니라, 유조선이 폭파해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불타 죽은 그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이 마치 이슬람교도들이 크리스천들을 불태워 죽인 것이라고, 그렇게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이슬람교도들에 대해서 혐오를 해야 되고, 그리고 그들을 막아야 된다고 하는 그런 뉴스들이 얼마나 많이 퍼지는지 몰라요. 또한 우리 일반인들은 그런 내용들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것을 받으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많이 퍼 나르게 되는데,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거짓말로 복음을 수호하거나, 거짓말로 진리를 변호하는 것은 성공할 수도 없고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거짓말은 지금 당장에는 성공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아주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거짓말로 진리를 사수하려고 한다면, 그러면 진리가 사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거짓말들이 드러나게 될 때, 오히려 진리까지도 거짓말로 오해받을 수 있는 그런 위험성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항상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 그런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하게 됩니까? 거짓말을 하는 그 이유가 뭘까요? 거짓말을 하는 이유 간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그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움직여 나가신다고 하는 그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말을 통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악에 대해서도 승리할 수 있고,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평정하고, 지금은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다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정의롭게 만드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죄가 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요. 거짓말도 특히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더라고 한다면, 애굽 땅에 가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완전한 거짓말이 아니라, 반쪽짜리 거짓말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어떻게 약속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내가 너로 하여금 복을 주겠고 이 땅을 내게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약속을 믿어야 합니까? 믿지 말아야 합니까? 믿어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해주셨는데, 그 아브라함이 애굽 땅에 가서 위험한 상황을 만나게 된 거예요. 자기 아내를 빼앗길 것만 같습니다. 그 포악한 애굽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를 보고 빼앗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겁니다. 그 위험한 상황 가운데서 “이 아내를 빼앗기면 어떡하나?”라고 하는 그 걱정 가운데,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내 아내라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내 누이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켜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반드시 이룰 거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믿었다고 한다면, 그 순간에도 담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데, 믿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말의 죄는 사실은 불신앙의 죄이고,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큰 죄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그 좋은 길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으면 거짓말을 줄일 수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거짓말을 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죠. 아합 왕은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나봇을 모함했습니다. 불량배 2명을 세워서 나봇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하고 그래서 쳐 죽였습니다. 증거 조작에 의해서, 최고 중범죄에 해당하는 죄에 처단해버리고 말았는데요. 그것을 이렇게 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아합은 그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이 성공한 것 같았어요. 거짓말로 재판은 자기가 원하는 결과대로 나왔고, 나봇은 죽었고, 나봇의 포도원은 자기가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건가요? 성공한 것이 아니고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께서 아합과 이세벨을 심판하셨고, 나봇의 피를 핥았던 그 개들이 아합과 이세벨의 피도 핥게 되는, 그런 심판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악인이 승리하고, 거짓말과 속임수와 증거 조작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유혹을 받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은 부부였는데요.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전부를 바친다고 해놓고 거짓말을 하고 일부를 숨겨둔 것이죠. 이들이 했던 그 이유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목적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거짓말을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명성을 얻으려고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했던 거짓말이 사람들에게 했던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에게 한 거짓말이고, 결국 하나님께서 치셔서, 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같은 날 죽임을 당하는 엄청난 큰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도 거짓말을 했는데요.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일들을 했는데, 그 거짓말의 파급 효과는 컸습니다. 자기만 거짓말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던 애굽 왕, 그랄 왕, 아비멜렉이 그들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고 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큰 심판을 당하는 그런 위험한 일을 겪게 되었는데, 내 거짓말로 인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피해를 당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결단들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또 하나의 거짓말이 나오는데요. 십브라하고 부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애굽 땅에 살던 히브리 산파였는데요. 바로 왕이 그 산파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들들은 모두 다 죽여버리라고 하는 그런 아주 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 십브라와 부아는 무고한 그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애굽 왕의 명령을 거역했을 뿐만 아니라, 애굽 왕에게 와서 거짓말을 합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너무나도 건장해서, 우리가 아기를 도와 조산하러 가기 전에 이미 그들이 낳아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그 아이들이 그냥 잘 건강하게 태어나서 우리는 죽일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갔더라고 하면, 그 아기를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죽이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출애굽기의 말씀을 보면, 그렇게 거짓말한 십브라와 부아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잘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집안을 흥왕 하게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십브라와 부아를 인정하셨고 그 사람들의 집을 흥왕케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좋은 일을 위해서는 십브라와 부아처럼 거짓말할 수 있을까요? 십브라 부아가 아무런 심판을 받지 않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좋게 좋은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이런 상황 가운데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었던 라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의 군사들이 쫓아왔을 때, 정탄꾼들을 숨겨주면서 거짓말로 둘러댔습니다. 벌써 정탕꾼들이 왔다가 갔으니까 쫓아가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결국 이 라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라합과 그 가정을 구원해 주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짓말 중에서는 괜찮은 거짓말도 있는 건가요? 아닌 건가요? 헷갈리시죠? 예 저도 헷갈립니다. 이에 대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신학자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종교개혁자였던 마틴 루터라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는 도움이 되는 거짓말, 즉 십브라와 부아처럼, 라합처럼 죄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은 도움이 되는 거짓말이라고 분류하고 있고, 두 번째는 악의가 없는 거짓말, 유쾌한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웃자고 하는 말이 있잖아요? 강조하는 말, 수사학적으로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말들 이러한 것들은 유쾌한 거짓말, 악의가 없는 거짓말이고 세 번째 거짓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거짓말인데,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사람과 마틴 루터라고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거짓말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되겠지만, 악의가 없는 거짓말은 과장법이나 수사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나, 혹은 죄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들은 괜찮은 거다라고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틴 루터의 생각이었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이었습니다. 반면에 성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사람을 들어보았을 겁니다. 그 성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거짓말은 다 잘못된 거짓말이고, “좋은 거짓말, 하얀 거짓말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거짓말을 해야 될 상황인데 정말 누군가를 도와줘야 될 상황이고, 더 큰 의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될 상황이 된다면, 거짓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침묵해 버리는 것이 좋다고 성 어거스틴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악의가 없는 거짓말 유쾌한 거짓말들에 대해서, 우리만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신학자들, 유명한 그 성도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 것이고, 현대 기독교 윤리학에서도 이 문제 가지고, 굉장히 학자들마다 논란이 심한 문제, 과연 유쾌한 거짓말 도움이 되는 거짓말은 괜찮은 것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어서, 제가 여기서 “이건 된다, 안 된다”라고 한마디로 얘기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한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려고 하는 그 노력은 부단한 노력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일 루터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거짓말은 하면 안 되지만, 도움이 되는 거짓말이나 악의가 없는 거짓말들, 유쾌한 거짓말들에 대해서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그런 거짓말들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다 보면, 사람은 워낙 그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정말 중요한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그리고 악을 자신의 이득을 취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그런 상황 속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진실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된다고 하는 그 대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함부로 말을 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보통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우리들 가운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있어요. “나는 거짓말 못하는 사람이야” 하면서, 솔직한 얘기를 막 하시는 분 있잖아요? 그죠? 생각납니까? 그런 분들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매정한 말을 막 뱉어내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죠. “나는 거짓말하지 못해” 이거 좋냐면, “이게 뭐가 좋아? 이건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오늘 점심 먹었는데, 점심 맛있었습니까? 맛이 없었습니까? 맛있었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합시다. “나는 거짓말하지 못해. 이게 음식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안 하고, 진실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은 애정이 없고, 매정한 사람이며,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참 선한 말들을 해야 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을 해야 되고, 그리고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정말 친절한 이야기들을 많이 말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정말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 좌절하고 있고,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가능성이 없을까?”라고 그렇게 정말 정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 앞에 다가가서, “나는 거짓말 못해. 내가 보니까 당신 실력 없어. 당신은 가망성 없어. 노력해 봤자, 아무 소용없어”라고 그렇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을까요? 참된 말을 하는 것과 매정한 말을 하는 것은 우리가 구분하는 것이 옳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의 말, 권고하는 말, 칭찬하는 말 물론 제가 오늘 남성 중창단에 대해서 칭찬하는 말을 한 것은 그냥 칭찬하고자 하는 그런 격려하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잘해서 잘했다고 그랬어요. 그러나 못한 사람들도 격려해 주고 가능성이 있다고 격려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죠. 솔직히 나는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면서, 솔직해야 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이 없는 지혜가 없는 말을 하는 것은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아무튼 이 거짓말의 문제는 우리가 늘 살아가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문제입니다. 어떤 때에는 내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이 엄청난 큰 피해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기 때문에, 과연 이 순간에 내가 어떻게 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가? 주님께서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과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순결함을 지키면서도 지혜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각각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상황에 따라서, 처한 상황에 따라서, 진지하게 우리가 기도하면서, 이 우리의 말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은 그런 귀한 말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하면서 사용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열정을 꺾는 이야기를 하고, 진실을 말한다고 하는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거짓말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는 그 의미를 왜곡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격려와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사랑의 말을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는 이 계명을, 그걸 좀 더 적극적인 말로 표현하면 진실하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길 원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그저 거짓말을 해대면서, 또 우리들의 말에 신용을 떨어뜨리면서, 그렇게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떠한 삶을 원하시는지, 매순간순간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믿음의 언행들을 우리 모두가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물론 우리는 너무나도 연약하기 때문에 늘 넘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늘 주님 앞에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회개하며 나가고 다시 한번 또 결단하고 결단하면서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서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