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헤롯의 법정(눅 23:8-12)

예수님은 왜 헤롯 앞에서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이때 기적을 베풀었더라면, 풀려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헤롯에게 다가온 슈테른슈튠데(Sternstunde, 별의 순간)는 언제였을까?

어제는 우리가 빌라도가 예수님을 헤롯 대왕에게로 이첩하는 것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고 하는 사실 때문에, 갈릴리를 다스리고 있던 헤롯 왕의 관할권을 인정해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헤롯 왕에게로 이첩한 겁니다. 평상시 같으면 서로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이것은 내 관할이다. 참견하지 마라.” 하면서, 자신의 관할권을 주장했을 것인데, 예수님의 재판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골치 아프고, 자신의 양심은 죄가 없다고 선언해야 될 것이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압력을 넣어서, 그 앞에서 어떻게 할지 모를 때, 예수님을 헤롯 왕에게 넘겨 버리는 그런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헤롯대왕은, 그때가 유월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헤롯 대왕도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참여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 예수님을 대면하게 된 헤롯왕은 아주 기뻐하였다고, 매우 기뻐하였다고 오늘 성경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기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헤롯 대왕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서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셨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헤롯 왕에게도 분명히 들렸을 것이고, 그 헤롯왕은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요. 과연 정말 내가 듣던 대로 예수님이 그런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는 것인지, 정말 그런 신비한 인물인지 궁금해하던 차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너무나도 기뻐하면서,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확인해보고 싶은 그런 욕망이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쳤다는데, 예수님께서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셨다고 하던데, 과연 예수님께서 그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거 한번 고쳐봐라.” 이거 한번 바꿔보라고 요구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어떤 기적을 행할 것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

.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한 기적을 행할 것을 기대하면서 서 있던 그런 헤롯 대왕에게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해 주셨더라고 하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순간에 예수님께서 헤롯 대왕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도록, 어떤 신비한 기적을 좀 베풀어주셨더라면 어땠을까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조금 있습니다. 그 옛날 모세와 아론이 애굽 왕 바로 왕 앞에 가서 기적을 베푸는 것을 통해서, 그 애굽 왕 바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처럼, 주님께서 지금 피고의 몸으로 서 있지만, 피고가 아니라 만유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라고 하는 사실을 드러내시기로 원하셨다고 한다면, 충분히 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면서, 헤롯 대왕을 무릎 꿇게 만드는 그 일을 하셨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헤롯이 하는 그 말에 대해서, 이것을 행해보라고 말하고 저것을 묻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 한마디에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한 것이고, 말만 안 하신 것이 아니라, 기적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주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아니하시고, 그저 그 헤롯대왕 앞에 평범한 인간 모습만 보여주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순간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고 한다면, 헤롯대왕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그리고 풀려날 수도 있었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이 순간에 왜 아무런 기적을 행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그 앞에 서 있으면서, 엉터리 재판을 그냥 받고, 그리고 십자가의 길로 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에는 어떤 한 가지 원칙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는 곳곳마다 무조건 다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베풀 때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신 것이지, 아무 때나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할 수 있다고 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적을 베푸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기도 하셨지만, 많이 베푸셨지만, 그러나 베푸시지 않기로 결심하고 기적을 거부하신 이야기도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기적을 거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탄의 유혹 앞에서였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고 줄이셨던 바로 그 순간에, 사탄이 예수님에게 유혹하는 겁니다. 지금 배가 고픈데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는 그런 유혹 앞에서, 그때 속 시원하게 떡 만들어 버리고 떡 만들어서 먹어버리면 괜찮을 것만 같은데,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서기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요구하는 말이 “당신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는 그런 표적을 좀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겠습니다.” 당신이 표적을 보여주신다고 한다면, 우리가 믿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사도 개인과 바리새인들의 요구에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기적이 없다.”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는 기적 행하시기를 거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신 이후에, 그 자리에서 떡을 먹고 생선을 먹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셨으면 좋겠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로마 정부를 몰아내고 우리에게서 세금을 빼앗아가고 우리를 굶주리게 만드는 저 악독한 정권을 다 물리쳐버리고, 정말 능력이 있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인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고 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 옛날 다윗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고, 우리나라가 이제는 괜찮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 몰려다니고 있는 그 수많은 군중들에게서 예수님은 조용히 물러나셨습니다.

더 많은 기적을 보여주세요. 우리들에게 더 많은 떡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그런 이스라엘 민족들에게서, 예수님께서는 피하시고 숨으시며 그리고 기적을 보여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무엇이냐면 “저 사람들이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오.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나를 찾는 것”이라고 한탄하셨습니다. 그러한 수많은 거부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으로, 오늘 헤롯왕이 예수님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유대인의 메시아라고 한다면, 기적을 한번 보여달라.”고 이야기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아니하셨고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기적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이 기적을 바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서. 기적을 찾는 것도 아니고, 내가 회개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서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이 세상에 대한 욕망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탐심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기적을 요구한다고 하는 겁니다.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 앞에 진실로 서려고 하는 마음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서 기적을 이용해서, 무엇인가 내가 얻으려고 하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 그러한 잘못된 동기가 욕망이 되어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가운데, 사도들에게서도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병이 고쳐지기도 하고, 엄청난 기적들이 일어나게 되고, 기도하고 안수하면 성령을 받는 그런 모습들을 보았는데, 그중에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사도들 앞에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그 시몬이 사도들 앞에 동전 주머니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요구하는 겁니다. “저한테도 안수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권능을 좀 주십시오. 내가 돈을 얼마든지 드릴 테니까, 내가 기도하면 다른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내게도 그런 능력을 달라.”라고 돈을 내밀었는데 이 시몬의 관심사가 무엇이냐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능력만 필요한 거예요. 하나님의 그 기적만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그 기적을 통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얻고 유익을 얻겠다고 하는 세상적인 탐욕과 욕망으로 나아가게 될 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그런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그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기적을 보면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되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 목적인데, 사람들은 그 기적만을 바라고 있다고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베드로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을 때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업을 한다고 하면 떼돈을 벌 수 있겠구나. 예수님께서는 어디에다가 그물을 던지라 말만 하고, 우리는 가서 그 고기를 잡기만 하면, 우리는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수도 있겠다고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그 순간에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그 주님 앞에 엎드리면서, 주님 저를 떠나십시오 저는 죄이로소이다. 자신의 더러운 죄를 보면서 회개하며 나아가는 그 베드로를 향해서, 주님께서는 사람 낳는 어부가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거기에 있는 겁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만드는 것,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인데, 회개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신비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거절하셨다고 하는 이 사실을 오늘 하루 지나면서 깊이 묵상해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영적인 가장 큰 목적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가장 큰 목적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고,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목적이 돼야 되는 것인데, 그런데 종종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무한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이 목적으로 변해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어머니가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라고 하는 그 사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는 그 어머니라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만족스러워야 되는데, 어느 순간에 그 아버지가 나를 향해서 가져오는 장난감 선물을 보면서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고 아버지가 가져오는 그 선물만이 나의 목적이 되어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고 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죠. 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선물을 주지 못하니까,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야. 나에게 선물을 주는 유괴범이 나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 같은 그 유괴범이 나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서 따라가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영적인 관계 가운데서 사랑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면서, 어느 순간에 하나님은 사라져 버리고 하나님에게서부터 받을 수 있는 선물이 목적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얻는 이득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되어 버릴 때가 많이 있는 것이죠. 교회 다니면 내가 사업하는 데 도움이 되고, 교회를 다니면 사람들이 나에게 박수 쳐주고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나를 알아주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서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 버리는 그 순간, 결국 우리의 신앙생활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종종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당근을 제시하는 그런 복음 전하는 방법을 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사업체에서 직원을 뽑으면서 세례 교인만 우리는 뽑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세례 증서를 가져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데요. 그렇게 해서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들여놓는 것이 아니라, 세례 증서를 얻기 위해서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죠. 학교를 다녀야 되는데 학교에서 출석 체크를 하기 때문에, 미션 스쿨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증명을 내야 되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출석 체크를 위해서 다니는 것인데, 우리들의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라도 해서 교회에 발을 들여서 설교 말씀을 들으면, 그리고 은혜를 받게 되면 저 사람들이 언젠가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해요.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어떻게 했었냐면, 아침에 교회에 오면 돈을 줬습니다. 2천 원씩 줬어요. 그래 가지고 1부 예배. 2부 예배, 3부 예배가 있었는데, 1부 예배 때 오시면, 2천 원씩 드렸어요. 그렇게 해서 오신 분이 한 200여 명이 교회를 나왔는데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2천 원 받기 위해서 앉아 있는 거예요. 그분들이 나와 가지고. 2천 원 받고 그다음에 어디로 가시는 줄 아십니까? 그다음 교회를 가는 거예요. 그 지역에는 그 돈 주는 게 아주 많이 있는데, 그다음 교회 가서 2천 원 받고, 또 그다음 교회 가서 또 2천 원 받고, 또 그다음 교회 가서 2천 원 받고, 하루 종일 주일이 되면 그래도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교회에 앉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해서라도 설교를 들을 수 있고,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을 만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데요. 그런데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예가 거의 없습니다.

기독교가 박해를 받다가 로마 황제 콘스탄트인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해 버렸습니다. 국교로 선포해 버리는 그 순간, 그때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공직에 나가기 위해서는 교회에 다녀야만 했고, 그리고 교회에서 세례 교인이라고 하는 증명서가 있어야, 내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하는 그런 증명서가 있어야, 공직에 갈 수 있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 버리고 만 겁니다. 너무나도 좋아 보이잖아요? 모든 국민이 다 교회에 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타락이 언제부터 시작됐냐면,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역사가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오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공무원 취직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가 유용한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목적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내 흥미를 자극하고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기적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기적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침묵해 버리셨습니다. 어쩌면 가롯 유다도 그렇게 해서 실패를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서 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쫓아왔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돈주머니를 맡게 되었고 돈 주머니를 맡아서 그걸 가지고 활용하는 가운데 돈의 맛을 보게 되었고, 어느 순간에 주님이 목적이 아니라 돈이 목적이 되었고, 그 돈 주머니에서 돈을 훔쳐가는 것이 크게 재미가 들리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인생 가운데서 주님이 목적이 아니라, 돈이 목적이 되는 그 순간 그의 인생은 실패의 인생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어요.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어깨에 힘주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졌어요. 내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야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우리 예수님과 동행하는, 그런 내가 이런 권력이 있다고 하는 그 맛이 너무나도 들려서, 제자들 사이에서 서로 다툼이 일어나는 겁니다. 누가 더 높은가? 네가 높은가? 내가 높은가? 내가 수제자인가로 해서 서로 싸우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 그런 잘못들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은 언제나 살펴보면서 주님만이 우리의 목적이 되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을 날마다 날마다 해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손뼉 쳐주고 나를 드높여 주는 것이 가장 목마른 상태가 되어 버릴 때가 있는데, 결국 그렇게 되면 믿음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사람들의 박수 소리 인정해 주는 거 쫓아다니다가 망한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원하기는 우리의 목적 가운데 주님만이 목적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헤롯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헤롯은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쉬운 것이죠. 지금 헤롯 왕 앞에 서 있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우리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데, 그 주님 앞에 엎드리고 그 주님을 영접했더라고 한다면, 엄청난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었던 헤롯이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 당시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 당시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눈이 멀었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되기도 하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되기도 하고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마다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만 만나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체험할 수 있는, 바로 그 당사자인 예수님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데, 헤롯은 그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그 만왕의 왕 예수님을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냥 쓰레기 취급해 버리고, 그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만나고 볼 수 있다고 하는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 순간을 어쩌면 별의 순간을 만난 거 아닙니까? 별의 순간을 잡아야 되는데, 그 순간에 예수님을 잡지 아니하고 그냥 조롱하고 멸시하고 빌라도로 보내버린 것이죠.

이것이 얼마나 아쉬운 일인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에 보면,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인데, 그것을 막아버렸다고 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는데 그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그 황금과 같은 찬스, 보화와 같은 예수님을 별의 순간과 같은 예수님을 버려버렸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을 꼭 붙잡고 만나고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고 해놓은 그 모든 기회들을 그냥 방치해버리고, 못 본 척하고 지나쳐 버리시지 않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번 고난 주간 특별 새벽 교회를 만들어 놨으면, 이것이 나에게 은혜의 기간이 되겠구나. 생각하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은혜가 되는 거예요.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면, 그 예배의 시간이 내게 은혜가 되겠구나. 생각하고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은혜가 되는 거예요. 성경 공부가 있으면 그것이 내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구나. 생각하고 차지하면 내게 보화가 되고, 내게 생명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예수님이 내 눈앞에 있어도 조롱하고 멸시하고, 관심 주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면, 그 어떠한 보배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더욱더 사모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그 놀라운 은혜의 주님을 사모하면서, 날마다 날마다 그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5 total views,  2 views toda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