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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다윗(삼상 17:55-58)

55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감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아브넬이 이르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56 왕이 이르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57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 58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 하니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라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은 일약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아브넬에게 물었습니다.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이렇게 질문하는 모습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사울 왕은 다윗을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울 왕은 다윗에게 갑옷을 입히기도 하고 칼을 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전혀 만나보지 못한 것처럼 새삼스럽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골리앗을 무찌르기 전에는 그만큼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만나기는 했지만, 그가 골리앗을 무찌를 것이라는 기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큰 기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누구인지, 도대체 왜 이렇게 골리앗과 자원하여 싸우려 하는지 등등 다윗에 대한 자세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골리앗을 무찌른 후에는 갑작스럽게 모든 관심이 생겨났습니다. 이 질문은 사울 왕만 가지고 있었던 질문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가지게 된 질문이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다윗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요? 우리는 종종 하나님도 사람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주목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처럼 골리앗을 무찌르고, 솔로몬처럼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고, 엘리야처럼 바알 선지자들과 싸워서 승리하는 쾌거를 이루어내야만, 그때에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겨우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의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고, 기도의 능력이 있는 몇몇 특별한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거나, 성직자들의 기도에 더 귀를 잘 기울이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설교하거나 가르치면서 자신이 뭔가 대단한 존재나 된 것처럼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는 잘못된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관심은 자녀들 모두에게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이,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소중합니다. 너무나 소중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고전 1:26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니님은 뛰어난 사람들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고 못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못나야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판단 기준이 하나님의 판단 기준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박항서 감독처럼 베트남 축구를 일약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승리를 거머쥐게 해야만, 다윗처럼 골리앗을 물리쳐야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맹인들의 눈을 여시기도 하고, 비천한 자들을 일으키시도 하고, 나그네를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는 분이십니다(시 146:8-9).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모습 이대로” 받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 누추한 모습을 보면서 쫓아내지 않습니다. 그의 실패를 보면서 외면하지 않습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분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달려가 입을 맞추고 환영합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드디어 사울 왕 앞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진 후, 다윗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습니다. 사무엘이 돌아간 후, 다윗은 다시 평범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흘렀고, 다윗이 기회를 잡았습니다. 골리앗을 무찌르게 되었고, 사울 왕 앞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그 뒤로도 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시련의 기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약속대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 서막으로 이제 첫 단추가 꿰진 것입니다. 다윗은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때로는 답답해 보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무엇인가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별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다고 했는데, 실제 우리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기어이 이루셨던 그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셨던 약속도 기어이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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