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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회개(삼상 15:24-31)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들었을 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보다 백성들의 말을 더 두려워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지만 사무엘은 일언지하에 사울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사무엘은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미 버리셨기 때문에 기회가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일관된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7-10). 요한일서에서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일 1:9). 그래서 니느웨 백성들을 40일 안에 멸망시키겠다고 하셔놓고도 그들을 용서해주셨던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사무엘은 일언지하에 사울의 간청을 거절했을까요?

그것은 사울의 회개가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간청은 참된 회개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왕위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나온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영적인 지도자인 사무엘의 인정이 없이는 이스라엘에서 왕으로서 행세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악어의 눈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자신과 함께 돌아가서 여호와께 경배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25절),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사무엘이 사울을 높여주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30절). 그의 관심은 자신의 신분 유지에 있었을 뿐입니다. 이에 비하여 다윗의 회개는 철저했습니다. 다윗은 왕위를 잃을 것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시편 51편).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겸손하게 낮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사울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였는지 여부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서 전체를 통해서 보여주는 사울의 모습은 참된 회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사울의 뒤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다는 것을 뒤엎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변개함이 없으신 하나님일까요? 한 편으로는 그렇습니다. 한번 계획하신 것을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악에 빠졌어도 우리를 끝까지 구원해주십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은 바꾸시기도 합니다. 회개하는 자들을 또 용서해주시고 멸망시키기로 하셨던 것을 취소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돌이킬 때 사울이 겉옷자락을 잡다가 옷이 찢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세차게 뿌리친 것을 강하게 잡으니 찢어졌을 것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때어서 다른 왕에게 주셨다고 선언하였습니다(28절). 이때라도 사울이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뉘우치고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마치 집을 떠나 방탕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을 다 허비해버린 둘째 아들을 뛰어나가 맞이하면서 다시 복권시켜 주는 아버지처럼 복권시켜 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저 현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왕의 신분이 유지되는 체면만을 챙겼습니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이 세상의 것에만 관심이 많았던 사울은 결국 사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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