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문제의 진단, 한심한 해법(삼상 8:4-8)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이스라엘 민족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나아와 아들들의 문제를 말했습니다. 그들은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간파했습니다. 사사로 세워진 사무엘의 아들들이 정의롭게 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불의가 자행되고 있는데도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벌거벗은 임금을 보면서도 임금이 벗었다는 사실에 눈을 감아버린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는 더욱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악에 동참하고 또는 방조하고 있을 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장로들은 담대하게 문제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은 옳았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은 옳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장로들은 이스라엘에도 왕이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왕이 있어서 나라를 체계적으로 다스리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고, 사사들이 다스리고 있는 것에 문제의 원인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사무엘이 왕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도 사사였습니다. 사무엘이 다스리던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었고, 더 나아가 그 주변의 블레셋 민족이 감히 이스라엘을 넘보지도 못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스라엘에 왕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왕의 제도가 현재의 문제를 치유할 방법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문제는 제대로 잘 지적했는데, 해법은 엉터리 해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어떤 교회는 박사 학위를 가진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성도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목사님은 사임하게 되었고, 새로운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청빙의 기준으로 세운 것이 박사학위자는 제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장로교회였습니다. 당연히 장로교단의 교단 신학교를 졸업한 분이 담임목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교회는 새로운 목사님을 청빙하면서 장로교 목사는 제외하기로 하였습니다. 교단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미국의 어느 한인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요엘과 아비야의 문제는 사사라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바로 그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주변 국가들에는 왕이 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고 사사들이 재판을 담당했었는데, 주변 국가들에서는 왕이 있고 관료가 있어서, 왕의 리더십 하에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사실 그 나라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더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군대가 없었고, 그저 필요에 따라 위기 시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용군처럼 일어나 싸우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도 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요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사무엘의 아들들을 거부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사실 하나님에 대한 거부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었습니다. 그 언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로 하였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여 주시기로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사사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사 제도를 거부하고 왕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삼상 8:7). 그들이 왕을 구하는 것의 깊은 배후에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왕을 세우자는 요구는 어쩌면 백성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요청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배교적인 성격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 세상의 것에서 만족을 누리려는 죄성이 그 속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로부터 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구원자를 바라는 마음이 곧 죄의 출발입니다. 만일 사사가 제대로 된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사를 세우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여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 가정을 심판하시고 대신 사무엘을 세워주신 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일이 꼬여갈 때에도 우리가 할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왕을 세워달라고 하는 요구는 불신앙적인 동기로부터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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