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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

확실한 응답

– 이국진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눅 11:5-8)

2.2.1 밤중에 떡을 빌리는 문화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은 1세기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의 중요한 문화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손님이 오면 손님에게 음식을 극진하게 대접할 뿐만 아니라, 그 손님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등 따뜻하게 맞이했다.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을 위해 대접할 음식을 옆집에 빌리러 가면, 이웃집 사람은 기꺼이 음식을 제공하는 것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였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전통이 중동 지역에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초대 교회에서 장로의 자격 가운데 하나로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는데(딤전 3:2; 딛 1:8), 이것은 당시의 문화를 엿보여주는 것이었다.

오늘 날에는 깊은 밤중에 손님이 찾아오는 법이란 없다. 우리 주변에는 호텔과 식당이 많이 있어서, 이러한 호텔을 이용하면 숙박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고 식당을 이용하면 쉽게 허기짐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손님이 밤중에 찾아왔다고 해서 먹거리를 빌리러 이웃집 문을 두드려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들에겐 음식을 저장해두는 냉장고가 있어서 거기서 음식을 꺼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면, 전화로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고 차를 타고 나가서 24시간 운영되는 식당에 갈 수도 있다.

하지만 1세기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 지방에서의 상황은 오늘날과 상당히 달랐다. 높은 지대이면서 미풍이 부는 팔레스타인에서는 낮에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밤중에 손님이 찾아오는 일이 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케네스 E. 베일리는 생각한다. 1 하지만 여행자들은 걸어서 혹은 낙타를 타고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한밤중에 친구의 집에 도달할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여행 도중에 머무를 수 있는 여관이나 혹은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또 친구가 갑작스레 방문했을 때 내어줄 수 있는 음식이 항상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다. 물론 올리브나 치즈와 같은 저장식품들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손님을 맞이한 사람은 손님을 대충 대접할 수는 없었다. 2 손님에게 소홀히 대접하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손님이 이미 식사를 했든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든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은 성인 한 사람의 식사 분량보다 많은 빵을 손님 앞에 내놓아야 했다. 3 세 덩이의 빵은 종종 한 사람이 충분히 먹을 정도의 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곤 한다. 4 하지만 빵이 없던 주인은 5 이웃에게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먹을 것을 좀 나누어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마을에서는 공동으로 빵을 구웠기 때문에 누구의 집에 빵이 남아 있을지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6

그러한 요청이 있을 때 떡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떡을 주지 못하겠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있을까? 21세기의 개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 비유를 읽으면서 그런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대의 집 구조는 한 가족이 함께 자리에 눕는 구조여서 밤중에 일어나 떡을 건네준다는 것은 불편할 수 있었다. 7 그래서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라는 대답이 실제적으로 들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8

하지만 예수님은 설마 그런 대답이 나오겠느냐고 질문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 질문을 던지신 것은 절대로 그런 대답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을 기대하신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로 시작하는 질문은 강한 부정의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다(눅 11:11-12; 12:25; 14:5, 28; 15:4). 9 오늘날에도 친구가 밤중에 찾아와서 한 끼의 식사정도를 요청한다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그것을 거절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은 더더욱 그랬다. 그 당시 사회는 공동체적 삶을 살았으며, 어떤 가정에 찾아오는 손님은 마을 전체의 손님으로 간주하여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함께 환영해주는 미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0 따라서 당시의 사람들은 아무리 깊은 밤중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일어나서 음식을 나누어주었을 것이다. 이미 잠자리에 들어서 도중에 일어나 주는 일이 귀찮다고 해서 그러한 요청을 거부하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만일 누군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고 대답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람은 그 사회에서 아주 불친절한 사람이라 낙인이 찍히고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할 것이다. 11 손님 대접을 중요하게 여겼고 명예를 중요하게 여겼던 사회였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는 대답은 실제적으로 나올 수 있는 반응이 결코 아니었다. 이것은 듣는 자들로 하여금 절대로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없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가상의 대답일 뿐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화와는 달리, 밤중에 친하게 지내던 이웃의 집에 가서 떡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무례한 일도 아니었으며, 또한 그렇게 찾아온 이웃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법도 없었다.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떡을 나누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떡을 좀 나누어달라고 부탁하러 온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의 이웃이며 더 정확하게는 친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늘날처럼 개인적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고 이웃집의 손님은 바로 나의 손님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던 것이다. 실제로 한 마을은 친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대접해야 하는 손님은 이웃집만의 손님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손님이었고, 바로 자신이 대접해야 할 손님이었다. 그러므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떡을 주어야 했다. 그 손님은 자기에게 온 손님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로 그 벗됨(friendship)을 인하여 떡을 나누어줄 것이다. 친구란 밤중에도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또한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정말 그럴 일이 없을 것이지만) 자다가 일어나 떡을 나누어주는 일이 귀찮고 싫은 마음이 생길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루 종일 일을 하였는데 밤늦게야 겨우 잠이 들어서 도중에 일어나는 것이 정말 힘들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부정적인 대답을 하겠는가? 그래도 일어나 떡을 나누어줄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 대접을 최고의 가치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그 사회에서, 그리고 영예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 그 사회에서 매장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라는 사실 때문에는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도(물론 이럴 가능성도 없다), 혹시나 이웃들로부터 이웃의 요청을 거부한 매정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일어나 떡을 나누어 줄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떡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은 당당하게 그런 요청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12 이와 관련하여 누가복음 9:51-55의 표현은 흥미롭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사마리아 지방의 한 마을로 보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심판해주시도록 하고 싶다고 말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모습에서 그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손님들은 오히려 더 당당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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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케네스 E. 베일리,『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이레서원, 2017), 207.[]
  2. 베일리,『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211.[]
  3. Abraham Mitrie Rihbany, The Syrian Christ (London: Andrew Melrose, 1919), 152-153.[]
  4. 요아킴 예레미아스,『예수의 比喩』(분도출판사, 1974), 152; Joseph A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X-XXIV (New York: Doubleday, 2000), 911; Craig L. Blomberg, Interpreting the Parables (Downers Grove: IVP, 1990), 275.[]
  5. 당시 대부분의 민중들은 그저 매일 매일 겨우 끼니를 때울 수 있을 정도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갑작스레 다가온 손님을 충분히 대접할만한 양식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Cf. Gildas Hamel, Poverty and Charity in Roman Palestine, First Three Centuries C.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9), 142.[]
  6. 베일리,『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208.[]
  7. 사이먼 J. 키스트메이커,『예수님의 비유』(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232-233.[]
  8. James A. Metzger, “God as F(r)iend? Reading Luke 11:5-13 & 18:1-8 with a Hermeneutic of Suffering,” Horizons in Biblical Theology 32 (2010), 40-41.[]
  9. 예레미아스,『예수의 比喩』, 153-154; 베일리,『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206-207; 존 팀머,『하나님 나라 방정식: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새로운 접근』(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1), 68; Alan F. Johnson, “Assurance for Man: The Fallacy of Translating Anaideia by ‘Persistence’ in Luke 11:5-8,” JETS 22 (1979), 124. Blomberg, Interpreting the Parables, 275; Arnold J. Hultgren, The Parables of Jesus: A Commentary (Grand Rapids/ Cambridge: Eerdmans, 2000), 228; Bernard Brandon Scott, Hear Then the Parable: A Commentary on the Parable of Jesus (Minneapolis: Fortress, 1989), 87.[]
  10. 베일리,『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209; William R. Herzog II, Parables as Subversive Speech: Jesus as Pedagogue of the oppressed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Fress, 1994), 200-202; Hultgren, The Parables of Jesus, 229; Scott, Hear Then the Parable, 87; 홍창표,『하나님 나라와 비유』(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4), 305.[]
  11. Cf. B. J. Malina and J. H. Neyrey, “Honor and Shame in Luke-Acts.” in The Social World of Luke-Acts, ed. J. H. Neyrey (Peabody: Hendrickson, 1991), 25-65.[]
  12. J. Duncan M. Derrett, “The Friend at Midnight: Asian Ideas in the Gospel of St. Luke,” Studies in the New Testament: Midrash, Haggadah, and the Character of the Community (Leiden: E. J. Brill, 1982), 36.[]
  13. 존 팀머,『하나님 나라 방정식』, 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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