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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떡이 무엇인가?

– 이국진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할 때 돌을 줄 리 없다고 하는 말에서, 떡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종종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떡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결론짓는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요 6:51)이라고 말씀하셨고 “생명의 떡”(요 6:35)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들이 떡을 달라고 구하는 것은 곧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구하는 것이고, 떡을 구하는 것은 “예수라는 하늘의 만나를 먹은 자로서 하늘 백성다운 삶, 예수 같은 삶,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을 추구하라는 말”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1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구해야 하는 것은 정당한 성경적인 가르침임에는 틀림없지만, 여기서 떡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입해서 읽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성경의 한 부분에서 예수님을 떡으로 묘사했다는 사실이 다른 구절에서도 모두 떡을 예수님으로 읽어야 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떡을 예수 그리스도로 읽어야 한다면, 생선이나 알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 비유는 굳이 떡이 아니어도 성립하는 비유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생선과 알로 제시한 것이다. A를 구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버지가 A보다 못한 B를 줄 리 만무하다는 것이 비유의 요점이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만을 구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옳다(마 6:33). 하지만 이 비유에 나오는 떡을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은 과도한 것이 될 것이다.

떡이나 생선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이런 식의 표현을 대유법(代喩法, synecdoche)이라고 한다. 즉 일부로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방식이다. 때로는 병이 낫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도 있고, 진학을 위해서 또는 결혼을 위해서 기도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그 부족한 것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게 된다. 떡이나 생선은 우리가 기도하면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한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이 미신에서 말하고 있는 신(神)과는 완전히 다른 점이다. 미신에서 신(神)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인간의 간구를 외면하는 신이다. 오직 인간이 치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그때에서야 겨우 복을 내려주는 신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참되신 하나님은 그런 신이 아니시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와 같이 자상하신 분이시다. 아니 아버지보다도 더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더 나아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더 나아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의지가 있으시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담대하게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7-8)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혹시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접어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며, 우리들이 원하는 마음 그 이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우리들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허접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본 적도 없고 귀로 들어본 적도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아주 신비하고 놀라운 것들이다(고전 2:9).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좋은 것”이란 표현 대신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로 표현한다. 하나님은 그저 약간의 재물이나 건강이나 행운을 주시는 정도만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미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고 미적거리고 꾸물대실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롬 8:32). 만일 우리에게 영적인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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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김성수,『십자가로 읽는 예수님의 비유』(미스바, 2011),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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