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한나가 오랫동안 기도하는 모습은 엘리의 눈에 곧 띄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에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스스로 낯설었던 엘리는(cf. 3:1) 한나의 기도를 오해하였습니다. 그는 한나의 입술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을 뿐, 한나의 간절한 마음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술 취하지 말고 술을 끊으라고 하였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사정을 엘리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엘리 제사장은 한나에게 평안을 빌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축원하였습니다. 한나는 엘리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1:17). 아직 한나는 자신이 기도한 제목이 응답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또한 그는 돌아가서 한나는 음식에 입을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근심의 빛이 그의 얼굴에서 사라졌습니다(1:18).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한나는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한나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엘리 제사장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닐 것입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그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아직 한나는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아기를 가질 것이라는 확신이 한나에게 생겼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나가 하나님 앞에 서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가지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자는 절망 가운데 나아갔을지라도 기쁨과 확신 가운데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들으셨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약 1:6).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한 그대로 응답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세 번씩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가 제거되기를 기도했으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라는 깨달음을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구한 대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마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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