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유사점과 대조점의 결정

– 이국진

비유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무엇과 무엇이 서로 비교되고 있는지 그 유사점(tertium comparationis)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대조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대조점(tertium contrarietatis)도 찾아내야 한다. 어떤 것(A)이 비유로 사용될 때에는 그것(A)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 중에서 어떤 특정한 부분(a1)을 비교하면서 비유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것이 유사점이다. 하지만 그 특정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들(a2, a3, a4, ….)은 유사점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유사점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들은 대조점이 된다. 이런 대조점마저도 유사점인 줄 알고 착각하면 비유해석은 산으로 올라가기 쉽다.

예를 들어, 시편 94:22에서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고 노래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을 반석(A)에 비유하는 것은 그 반석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 가운데 “듬직하여 피할 곳을 제공해주는” 점(a1)을 생각한 것이다. 바로 이점이 유사점이다. 하지만 반석은 그런 특성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반석은 내가 아무리 대화를 시도하려고 해도 답을 해주지도 않고 나의 요청에 답을 줄 수 없는 무기물(a2)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반석은 도끼를 들고 내리치면 깨어질 수 있고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에 뚫릴 수도 있는 것(a3)이다. 반석은 움직일 수도 없어서 나에게로 와서 도와줄 수도 없고 그냥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a4). 이 외에도 반석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성들(a5, a6, a7, …)이 있다. 그런데 시편 94:22에서 하나님을 반석(A)에 비유할 때 염두에 둔 것은 유사점이라 할 수 있는 오직 a1뿐이다. 하나님의 특성과 다를 수밖에 없는 대조점인 a2, a3, a4, …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반석이시기 때문에 반석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절대로 응답할 수 없는 무기물질(a2)과 같다고 해석하거나, 우리가 하나님을 쪼갤 수 있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a3)라고 해석한다면, 비유를 크게 오해한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비유를 해석할 때, 어떤 의미에서 그 비유가 사용되었는지 유사점을 분석해내야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비유가 사용되지 않았는지 그 대조점을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 어떤 단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특성들이 영적인 진리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해석한다면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유사점과 대조점을 찾아낼 것인가?

첫째로, 그 유사점은 대체로 문맥에서 발견할 수 있다. 1 비유를 소개하는 도입부나 비유를 정리하는 결론부를 보면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비유가 사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포도원에 심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눅 13:6-9)는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는 말씀 뒤에 나오는데,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어느 정도 참다가 결국 찍혀버리게 될 것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우리도 회개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참는 기간이 지난 후에 멸망하게 될 것임을 교훈하는 것이다. 끈질긴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눅 18:2-8)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눅 18:1) 하신 비유라고 도입부에 설명하고 있다. 잃은 양의 비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패륜아의 비유는 모두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에 불만을 느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때문에 하신 비유의 말씀이다. 이 비유를 통해서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우리가 함께 기뻐해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도입부나 결론부를 보면 비유를 성사시키는 유사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도입부를 분석할 때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법은 오늘날 우리의 어법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게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천국 비유의 도입부는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 13:24),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마 13:45). 이 표현을 보면,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한다. 곧 천국이 농부와 같다는 의미로 이해하기 쉽다. 또한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한다. 곧 천국이 장사꾼과 같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천국은 모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알곡만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값진 진주의 비유에서는 천국이란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얻어야할 가장 소중한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유를 도입할 때,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 13:24),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마 13:45)라고 도입하는 이유는 당시의 비유 도입의 형식(formula)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옛날이야기를 할 때,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에”라는 표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 유사하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천국을 “농부”에 비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국의 복음은 받아들이는 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또한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와 같은 도입부분도 천국이 장사꾼과 같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비유는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천국은 추구해야할 최상의 가치가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 도입부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의 “경우와 같다”고 이해해야 옳다. 2 비유를 이해하려고 할 때, 문맥을 중요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함을 늘 기억해야 하지만, 비유의 도입에서 나타나는 표현 때문에 비유가 실제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을 놓쳐서도 안 된다.

두 번째로,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일치하는 해석을 추구해야 한다. 3 비유에 등장하는 아주 독특한 내용으로 하나의 교리를 만들려는 시도는 잘못될 수 있다. 그런 오류를 벗어나려면 성경 전체에서 지지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비유를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밤중에 손님을 맞이한 사람이 이웃집에 가서 떡을 빌리는 비유(눅 11:5-8)에서, 하나님은 떡을 빌려주는 이웃에 비유되었다. 그 이웃집 사람이 밤중에 잠을 자고 있다가 떡을 빌려달라고 하는 요청을 받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하시는 분이라고 결론을 내리거나,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의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관심을 쏟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결론을 내리거나, 하나님은 주무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그 잠을 깨워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잘못이다. 성경 전체에서의 가르침은 하나님은 전지(全知, omniscient)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해서 심각한 도전을 하는 비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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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ntra 요아킴 예레미아스,『예수의 比喩』(분도출판사, 1974), 53. 예레미아스는 “우선 문맥을 완전히 도외시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2. D. A. Carson, “The OMOIOΣ Word-Group As Introduction To Some Matthean Parables,” NTS 31 (1985), 277. 권성수,『천국은 어떤 나라인가?』(횃불, 1993), 22, 36, 50.[]
  3. 사이먼 J. 키스트메이커,『예수님의 비유』(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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