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3장 17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깨어서 돌보고 기도하며 그렇게 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성도들을 이끌어가는 영적인 지도자가 있게 마련인데요. 그런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영적인 지도자들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라고 하는 그 주제를,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즐거움으로 하게 하라. 근심 가운데 하게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사역을 하게 하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 영적인 지도자들이 있는데, 이런 영적인 지도자들이 사역을 해 나감에 있어서, 기쁨 가운데, 즐거움으로 이런 일을 하게 해야 하는 것이지, 근심 가운데 고통 가운데, 정말 슬픔 가운데, 이런 일을 하지 않도록, 그들을 즐거움 속에서 일을 하게 만들라고 오늘 히브리서 13장 1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영적인 지도자들로 하여금, 즐거움 가운데 이런 일들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7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기쁨 가운데 일을 하도록 해주어야, 그래야 우리들에게 유익이 있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영적인 유익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겠죠. 무엇이든지 기쁨으로 일하고, 정말 행복하게 일하고, 즐거움 가운데 일해야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죠.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행복하게 일해야, 생산성도 좋고, 모든 좋은 결과가 나타나고 그런 것이죠. 춤을 추든, 공부를 하든, 스포츠를 하든, 무엇을 하든, 기쁨 가운데, 즐거움 가운데, 행복한 가운데, 일을 해야, 그래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파리, 스포츠, 지금 올림픽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수많은 결과를 얻어내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고 한다면, 그 선수들이 정말 즐거움 가운데, 힘들지만, 행복한 가운데 즐기면서 하는 사람들이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롤프 메르클레라고 하는 사람이 했던 말이라고 하죠. “천재는 노력한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을 했는데, 아마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말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일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천재라고 할지라도 노력하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고, 그리고 정말 노력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 말,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적인 지도자이든지, 어떤 지도자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즐거움 가운데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적인 지도자는 누구를 의미할까요? 교회 안에는 어떤 영적인 지도자들이 있는 것일까요? 교역자들이 영적인 지도자일 것이고요. 우리 장로님들이 영적인 지도자일 것이겠고요. 뿐만 아니라 우리 주일학교 교사들이 영적인 지도자일 것이겠고요. 뿐만 아니라, 우리 카톡방에 단톡방을 이끌고 있는 우리 톡장들도 영적인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있는데, 영적인 그 리더들이 있는데, 그런 영적인 리더들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 모두가 다 기쁨 가운데, 즐거움 가운데, 행복한 가운데 일할 수 있도록, 사역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오늘 히브리서 13장 17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그들로 하여금 즐겁게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기쁨을 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즐거움 가운데 일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대접을 잘해주면 될까요? 선물을 주면 좋을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특별히 오늘 읽은 히브리서 13장 17절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면,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해라? 순종해라! 너희를 이끌고 있는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해라? 복종하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이 기쁨으로 일할 수 있도록, 그들이 즐거움 가운데 일할 수 있도록, 영적인 지도자들이 있다고 한다면, 너희들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서, 그들이 기쁨 가운데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라고 하는 것이, 오늘 읽은 히브리서 13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순종할 때 너무나도 기쁘죠. 앞에서 “자, 가자” 이야기하고, “이렇게 해보자” 이야기하고. “이렇게 가자”라고 이야기하면서, 리드하고 있는데, 인도하고 있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인도자를 따라서 순종하며 복종하며 따라가는 그 모습을 보여줄 때, 그 인도자는 기쁨 가운데 인도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 가자” 그러는데, 아무도 안 따라오고, “이걸 합시다” 하는데, 아무도 동참하지 아니하고, 아무도 복종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이다” 하면서, 말씀을 전해주었을 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변화되는 모습들이 있다고 한다면, 말씀을 전하고, 또 우리 주일 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치고, 또 우리 톡장들이, 또 영적인 지도자들이 그 사역을 해나가는 가운데, 신나게 기쁨 가운데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딸아이가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동네에 있는 여러 꼬마 아이들을 데려다가 바이올린 레슨을 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이 오냐면, 5살 6살 이런 아이들이 와서 그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데, 우리 딸아이가 종종 그 아이들의 영상을 올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이 세상에 이 꼬마 아이가! 이 바이올린 손가락 움직이는 요거 한번 잘 보라고 하면서, 또 이 아이가 이 활을 휘두르다가 마지막에 딱 끝나면서, 쫙 자기가 가르쳐준 대로, 자기가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줬는데, 막 하고 끝날 때, 쫙 하면서, 바이올린을 마치는 그 모습을,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저렇게 하는 모습을 보라고 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조그마한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그대로 하라고 했는데, 이 아이가 리사이틀을 하면서, 그대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따라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행복하고 너무나도 자부심이 있고, 너무나도 좋아서, 그래서 그 보람이 있다고 하는 그 상황을 자꾸만 설명해 주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영적인 지도자도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쳐 주었는데,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한다고 한다면, 영적인 지도자들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넘치고, 정말 행복하고, 정말 기쁨 가운데 사역을 해 나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사역을 기쁘게 하고 있을까요? 행복하게 사역을 하고 있을까요? 근심 가운데 사역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어떤 건가요? 저는 기쁘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역을 하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제가 말씀을 가르쳤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잘 받아들이고, 그리고 삶이 변화되는 그 모습들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보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사역한 기간을 살펴보니까 7년이 넘었어요. 7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이다”라고 설명해 주면서, “이게 아니고, 이것”이라고,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그렇게 수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말씀을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이면서, 그래서 복음에 맞게, 삶이 변화된 모습들이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예전에는 이렇게 행동해 왔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달라진 모습, 믿음이 더 성장하는 모습, 가르쳐준 그대로, 그 삶이 바뀌는 모습들을 제가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에, 그래서 기쁨 가운데 사역을 하고 있고 얼마나 제가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해도 듣지 않고 거부해 버리고 순종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런다고 하면 영적인 지도자가 정말 힘들 것 같아요. 맥이 빠질 것 같아요. 힘이 빠질 것 같아요.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말하는 것을 흘려버리는 그런,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 메시지를 전하는 영적인 지도자는 정말 힘이 빠지고 슬픔 가운데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가 있을까요? 성경에 보니까, 사무엘이라고 하는 선지자에게서 그런 예를 볼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 왕에게 전해준 것이죠. 하지만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행하지 않았어요. 아말렉과의 전쟁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전쟁을 하게 되어서 전리품을 얻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을 남겨두지 말고 다 죽여버려라. 소나 말이나 양이나 이런 것들 남겨두지 말고, 다 없애버리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이죠. 하지만 사울왕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해 버린 거죠. 사울왕의 말을 사무엘의 그 전한 이야기를 듣지 않고 양을 남겨두었습니다. 좋은 것들을 남겨둔 거예요.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물어봤습니다. “왕이시어, 도대체 이게 무슨 양의 울음소리입니까? 하나님께서 양들을 다 죽여버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짐승들을 하나도 살려두지 말고 다 죽여버리라고 이야기했는데, 왜 이 양들의 우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이게 뭡니까?”
그랬더니 사울 왕의 대답이 참 아주 그럴듯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님, 제가 이 양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최상품 양과 짐승들을 남겨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그럴듯한 대답을 해주었을 때,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했던 대답이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23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 가운데 그런 이야기를 전해줄 수밖에 없었고, 그 후로 사무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사울 왕을 바라보는 그 사무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사울 왕은 뭐 듣든 안 듣든, 그냥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었을까요? 그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지만, 그것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거역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을 때, 사무엘의 마음이 너무나도 힘들었어요. 사무엘상 15장 35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무엘이 이 사울 왕을 바라보면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픈 거예요. 반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을 전해주어도 거역하고 듣지 않는 그 사울을 바라보면서, 너무나도 슬프고 괴로운 상태 가운데 불순종한 사울을 보면서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을 기록하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도 안타깝게도 불순종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받아들이려고 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많아서 너무나도 기쁘고 너무나도 행복하게 사역해 나가고 있습니다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마음의 한 구석에는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죠. 대부분은 다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마는, 그중에 어느 하나만큼은 안 받아들이고 자꾸 거부하는 것이 있는 거, 자꾸만 밀어내요. 자꾸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러면 그러면 슬퍼요. 그러면 안타까운 거예요. 우리들이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탐욕적인 마음 가운데 있을 때 시기와 질투하는 그런 마음들 또한 교만한 마음들, 사랑과 배려가 없는 그런 마음들, 그리고 나의 삶을 바꾸지 않으려고 그냥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왜 우리는 순종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교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믿고 신뢰하며 따라가야 하는 것인데, 내가 교만해서, 내가 이해되지 아니하면 순종하지 않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순종하는 게 순종입니다. 순종이 무엇인가? 내가 이해되는 것만 순종하는 것은 제대로 된 순종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선악과를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실 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으면 죽는다. 먹으면 네가 망한다. 그러니까 먹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그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라서 순종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 거죠. 아니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먹으면 지혜롭게 할 만할 것 같은데, 먹으면 눈이 밝아질 것 같은데, 왜 먹지 말라고 했을까?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왜 먹지 말라고 했을까? 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그 명령이 이해되지 않을 때 그 선악과를 먹어버리고 만 것이죠.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죠.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도 순종하는 것이 그게 순종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왜 불순종하는가? 그 말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왜 나로 하여금 먹지 말라고 했는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죠. 말씀하시는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내가 내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누구와 같은가? 꼬마 아이와 같은 거죠. 꼬마아이는 부모님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요. 어느 날 재밌게 놀다가 이제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엄마가 이야기하는 거요. “얘야, 자기 전에 이빨 닦고 자야지?” 꼬마 아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이빨을 닦고 자야 돼요? 왜 이빨을 닦고 자야 돼?” 어제 닦았는데, 왜 오늘 또 닦아야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말에 순종하고 닦아야 되는 것이죠. 재미있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제는 핸드폰 그만하고 밥 먹어야지 하는데, 이해가 안 돼요. 나는 더 핸드폰 하고 싶은데, 왜 그만하고 밥을 먹어야 되느냐고? 나는 밥보다 핸드폰이 더 좋은데, 왜 핸드폰 그만하게 하려고? 하지만 그 말씀을 아는 분이 누구인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나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길 원하는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면서, 그 말에 순종하는 것이, 그게 그게 사랑이고 믿음이고 부모를 신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순종하는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내 마음으로 용납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그 말씀을 누가 하셨는가? 주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해야 되는 것이죠. 싸워서 이길 게 아니라, 차라리 손해 보라고 말씀하시는 그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이 용납하기가 어려워요. 내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왜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되는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순종해야 되는 것이죠. 왜 우리는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까지도 돌려줘야 되는가? 그렇게 억울하게 살아가기가 내가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그것을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고, 우리를 향해서 들려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들려주신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순종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목회자가 하는 말은 무조건 100% 다 따라서 순종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은 히브리서 13장 17절의 말씀은 너희를 인도하는 인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서, 그래서 그들이 정말 순종하고 복종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기쁨 가운데 즐거움 가운데 사역을 하도록 만들어주어야, 너희들에게 영적으로 유익하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러니까 무조건 목회자가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영적인 리더들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주일학교 교사들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무조건 다 듣고 따라서 맹목적으로 따라야만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오늘 히브리서 13장 17절의 말씀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 전제가 무엇일까요? 그 인도자가 바른 인도자라고 하는 전제입니다. 그 인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잘 가르쳐주고 있다고 하는 거라고 하는 그 전제하에서 이 말이 진리가 되는 것이죠. 만일 영적인 지도자가, 앞에서 이끄는 인도자가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만일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는 잘못된 가르침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면, 그때에도 순종하고 따르고 해서, 기쁘게 일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니에요. 그런 경우에는 순종할 수가 없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누가 있는가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거짓 선생이 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과연 이 메시지가 이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닌가를 분별할 필요도 있는 거예요. 요한일서 4장 1절 말씀에 뭐라고 표현하고 있느냐 하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무조건 다 따라갈 것이 아니라, 분별해서 진짜 선지자인지 가짜 선지자인지, 정말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교사인지, 그렇지 못한 가짜 교사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의 말씀에 이렇게 표현했는데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조심해라”라는 말이죠.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한 것 같아요. 겉으로 볼 때는 거룩한 선지자인 것 같아요. 겉으로 보면 영적인 지도자인 것 같아요. 좋은 지도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속에는 이리가 들어가 있고 가짜일 수 있다. 어떻게 알아보아야 되는가? 마태복음 7장 16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들의 열매를 봐서, 그들의 행동을 봐서, 그들의 행위를 봐서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갈라디아서 1장 8절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나 바울 사도가 전하는 거라고 한다면 다 들어. 나 바울 사도가 전하는 거라고 하면 너희들이 다 들어야 되는 거야. 무조건 복종해야 되는 거야. “무조건 다 따라야 되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설사 내가 전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가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면, 내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가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순종하는 것이 그게 진짜 순종이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에, 또 한편에서는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동시에 이야기해 주고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겁니다. 그림을 한번 보시죠. 잘못된 길로 가지 않으려고 한다면 분별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를 인도하는 인도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저런 말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분별하면서, 그래서 분별해서, 옳은 말씀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것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고,

또 한편에서는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참된 순종이라고 하는 건 무엇인가 내가 이해되어야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혼란스러운 거죠. 혼란스러 그래서 우리에겐 고민이 필요한 겁니다. 과연 우리가 순종해야 할 것인가? 순종하지 말아야 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한 것이죠.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편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 맹목적인 맹목적으로 따라갈 때, 우리를 인도하는 인도자가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4절 말씀에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인도하는 자가 맹인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참된 지도자인지 구분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래서 정말 혼란스러운 것이죠.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그래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숙제가 우리에게 있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영적인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합니다. 분별해야 될 때는 분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쫓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해 버리는, 그런 정반대의 길로 가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아요.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 교사의 말에 맹목적인 순종을 하면서 인생을 망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단의 종파의 그 잘못된 지도자들의 말에 무조건 복종을 하면서, 패망의 길로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려주어도 순종하지 아니하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면서, 그래서 역시 또 멸망의 길로 가는 경우가 우리 가운데 많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며, 그래서 순종해 나갈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