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참된 축복을 찾아서 (팔복강해 4)

우리에겐 갈망이 있다. 갈망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욕구가 갈망이다. 이러한 갈망 자체가 나븐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갈망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만일 아무런 갈망이 없다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지만, 결코 그 갈망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마시지만, 이내 다시 목마르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해결방식은 일시적인 해결뿐이고 부분적인 해결뿐이다. 때로는 그러한 해결을 위해 수고하면 할수록 더 큰 갈증만 느끼게 될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을 배부르지 못하게 하는 양식이라고 하였다(사 55:1-2).

이에 대한 불교식 해법은 갈망 자체를 없애버리라는 것이다. 욕심과 집착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갈망을 없애버리라고 한다. 그래서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무소유로 살라고 하고, 인간관계를 무시해버리고 출가해서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고 한들 결코 비워질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더 나아가 나 혼자 편하자고 가족을 떠나 출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그런데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갈망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헛된 것을 갈망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갈망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배부르게 할 것을 갈망하라고 말씀하신다. 의를 갈망하는 자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불의를 볼 때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바람직한 것이지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할 때는 그런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마태복음 6:19-34의 내용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개념이다.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의 심령이 악한 사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의 우상들은 우리를 결국 파멸로 이끌어버릴 것이지만,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 못할 헛된 것을 갈망하며 사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상은 우리에게 화려한 약속을 하지만 단 한번도 우리를 만족시켜준 적은 없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참된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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