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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성안수금지라면 여자신학생은 왜? – 코람데오닷컴과 최갑종 교수의 서면 인터뷰

질문 1: 바울은 고린도전서 14:34와 디모데전서 2:12에서 너무나 명백하게 여성도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과 남자를 가르치고 주관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교회에서 남녀성도들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당회를 인도하여야 하는 여성목사가 가능한가? 답변: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가르치거나 남자를 주관하지 말라”는 바울의 교훈으로부터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있다는 결론을 유추해 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여성도들에게 예배에서 이미 기도나 예언에 참예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고전 11:5)과, 바울의 선교사역에 여러 여성사역자들이 있었다는 사실(롬 16:3,7; 행 18:26)과 정면으로 대립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말하지 말고 잠잠하면서 어떻게 교회에서 기도와 예언을 할 수 있으며, 바울과 함께 복음의 동역자가 되거나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엄밀하게 말해서 고린도전서 14:34-36, 디모데전서 2:8-15의 본문들은 여성안수금지를 위한 규범적인 본문이 아니다. 다만 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의 여성도들 중에 복음의 자유를 남용하거나 곡해하여 남자와 여자의 구분, 남편과 아내의 질서까지 부정하여 가정과 교회를 혼란스럽게 함은 물론, 선교의 문까지 닫게 하는 위험을 가져오고 있는 자들에게 준 바울의 특별한 교훈이다. 우리가 이들 본문들을, “예배 시에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전 11:3-16)는 권면이나, 혹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라”(롬 16:16; 고전 16:20)는 권면처럼,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정황에 비추어 해석하여 그 의미와 메시지를 오늘날 적용시키려하지 않고,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구절들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사실상 오늘 교회 안에서 여성이 가르치고 말하는 모든 행위들은 일체 중지되어야 한다. 교회는 여성가대원, 여주일학교교사, 여전도사들을 일체 세우지 않아야 할 것이며, 신학교는 여신학도를 입학시키지 않아야 함은 물론, 목사 후보생을 가르쳐야 하는 여성신학교수들을 세워서도 아니 된다. 여성들은 교회에 올 때 반드시 머리에 수건을 써서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당부하여야 하며, 교회 안에서 여성도들은 어떤 경우에서든 말하지 말고 잠잠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질문 2. 구약에서 제사장은 오직 남자에게만 주어졌고, 목사는 어떤 의미에서 구약의 제사장직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여성이 제사장직인 목사가 될 수 있는가? 답변: 구약에서 선지자가 이스라엘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변자이라고 한다면,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의 대변자였다. 그들의 주된 사역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중보자적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약의 중보자적 제사장 사역은, 마치 구약의 모든 속죄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화목적, 속죄적 죽음을 예표하였던 것처럼, 장차 이스라엘백성은 물론, 전 인류를 대변하는 대제사장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잠정적 사역이었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장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직을 완전히 수행함으로써 사실상 성취되고 종결되었다.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시고 있으며, 우리는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인종과 신분과 성별을 초월하여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히 10:19-22). 그래서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가리켜 “제사장”으로 부르고 있다(계 1:6; 5:10; 벧전 2:9). 종교개혁자들이 로마카톨릭 교회의 사제직을 반대하여 “만인제사장직”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남성목회자만이 제사장직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 질문 3. 예수 그리스도는 공사역 기간 동안 남자만을 12제자로 선발하였으며, 이들이 나중에 신약교회의 기초를 마련한 “사도들”이 되었기 때문에, 사도직을 계승하고 있는 목사는 당연히 남자만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답변: 예수 그리스도가 왜 남자만을 12제자로 뽑았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신약성경은 이점과 관련하여 어느 곳에서도 명쾌하게 답을 주지 않는다. 예수님 자신이 남자이므로 3년 동안 늘 함께 동고동락하며 순회전도사역을 감당하여야 할 제자 중에 여성을 포함시킬 경우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당대의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상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성들도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처형을 당할 때 남성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지만 몇몇 여성들이 십자가의 현장을 끝까지 지켰으며, 예수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도 여성들이었고, 부활한 예수님을 제일 먼저 목도한 자도 여성이었고,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워진 자들도 여성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부활한 예수님의 목격자와 증인으로 세워진 사도직은 그 후대에 계승되지 않고, 제일 마지막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로 종결되었다(고전 15:8-9). 그럼으로 예수님 당시 사도직은 오직 남자에게만 주어졌고, 목사가 사도직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만이 목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정당한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질문 4. 남자인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여자인 이브가 나중에 아담의 배필로 지음을 받았으며,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브의 후손인 여자가 목사가 되는 것은 부당하지 않는가? 답변: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이브가 아담을 통해 배필로 지음을 받은 것이 분명하고, 창세기 3장에 따르면 이브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창세기 1:26-28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똑같은 권한과 사명을 받았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이새의 아들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먼저 난 것이 필연적으로 축복의 우선권과 지배권을 가지지 않았다. 또한 여자가 남자의 “배필”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남자에 대한 여자의 피종속권(被從屬權)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종종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배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49:25; 출 18:4; 신 33:7,26,29). 그리고 창세기 3장에 나타나 있는 여자에 대한 뱀의 유혹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남자인 아담의 권위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유혹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타락이전에는 이브가 아담에게 종속관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타락이 아담과 이브 사이에 있었던 사랑과 조화의 관계를 갈등과 불평등의 종속관계로 바꾸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이브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하였지만, 범죄한 이후에는 선악과를 먹게 된 책임을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한 여자”(창 3:12)에게 돌렸다. 이브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남편으로부터 다스림을 받게 되었고”, 거기에다 더 많은 해산의 고통을 지게 되었다(창 3:16). 이처럼 아담과 이브, 남자와 여자 사이의 불평등과 갈등 및 종속관계는 하나님이 세우신 본래의 창조질서에 속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인간의 타락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 이것은 아담과 이브,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갈등과 종속관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타락의 문제가 해결될 경우 언제든지 해소될 수 있는 잠정적인 것을 뜻한다. 그럼으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 여자의 차별 없이 “새로운 창조”가 되었고(고후 5:17), 인종과 신분과 성별의 차이가 없는 새 창조시대, 새 언약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여전히 옛 창조 시대에 타락을 통하여 주어진 것을 근거로 하여 여성의 사역을 제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질문 5.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심으로써, 설사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 본질과 신분에 있어서 남녀가 서로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기능에 있어서는 이미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따라서 남자에게 주어지는 목사의 역할을 여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고 말할 수 없지 않는가? 답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가 되려고 하거나, 여자가 남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창조질서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목사의 직분이 남자에게만 주어진다고 보는 것이 옛 창조질서에서는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창조질서에서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목사의 주된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와 교회의 권징과 성찬의 집례 및 봉사와 선교와 교육 등이라고 할 때, 이들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창조질서에 속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본질(신분)과 직능은, 나무와 열매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엄격하게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신분과 대통령의 직능이 어떻게 서로 나누어질 수 있는가? 대통령의 신분이 없으면 대통령의 직능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한편으로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의 신분으로 창조되었음을 인정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어떤 직능은 남자에게만 주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결국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여자의 신분을 제한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약성경은 오순절 성령이 남녀의 구분 없이 꼭 같이 주어졌고, 남녀가 꼭 같이 예언하고, 기도하고, 꼭 같이 복음전파사역에 참여하였다고 말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남녀의 직능상의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오늘 교회 밖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과학, 군사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남녀의 직능상의 차별을 철폐하고 있다. 그런데 남녀의 차별을 철폐하는데 사회보다 더 앞장을 서서 선도해 나가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도 않는 성직에 있어서 남녀의 직능상의 차별을 계속 두려고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질문 6: 디모데전서 3:2에서 감독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으로, 디도서 1:6에서는 장로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감독과 장로와 같은 성직은 초대교회에서 남자에게만 허락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목사와 같은 성직은 당연히 남자에게만 허락되어야 하지 않는가? 답변: 디모데와 디도가 목회하였던 당시 사회는 모든 것을 남자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적문화사회였다. 그래서 건덕상, 혹은 선교적 동기에서 디모데와 디도가 목회하였던 교회에서는 감독과 장로를 남자들에게만 허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 시대의 모든 초대교회가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고린도와 로마교회에서는 여성인 브리스길라가 감독이나 장로이상의 교회지도자로 있었고, 뵈뵈는 겐그리아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교회의 지도자였다. 더구나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감독이나 장로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뿐만 아니라, 각각 자녀를 두고 있는 자로 말하고 있는데(딤 3:4; 딛 1:6), 이것이 자녀가 없는 자는 감독이나 장로가 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만일 이들 본문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자녀가 없는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로 나서지 않아야하며, 오늘 날 자녀가 없는 목사와 장로는 모두 교회에서 사표를 내어야 하지 않는가? 그럼으로 이들 본문에 근거해서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는 것은 성경본문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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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울과 여성 – 최갑종

바울과 여성 -여성 안수문제를 중심으로- 최갑종(백석대학교 총장, 바울신학전공) 1. 서론 기독교가 태동된 주후 1세기 헬라-로마-유대사회는 남존여비사상(男尊女卑思想)이 팽배한 가부장적(家父長的) 사회였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예술, 종교, 사회의 모든 영역들을 남성이 주도하였으며, 여성들은 이들 영역들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여성들은 존재론적(存在論的)으로 남성들보다 하위급에 속한 자로 간주되어 성차별이 당연시되었으며, 남성이 있는 대중 앞에 나설 수도, 말할 수도 없었고, 거리를 나설 때는 얼굴조차 함부로 노출하지 않아야만 했다. 하지만 기독교운동이 시작되면서 남성위주의 헬라-로마-유대사회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예수는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여성들을 찾아갔고, 여성들을 만났으며, 여성들에게 이적을 베풀었고, 여성의 질병을 고쳐주셨으며, 그들을 자신의 하나님의 나라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시켰으며, 그들을 부활의 첫 증인들로 삼았다. 예수에 의해 시작된 기독교운동을 헬라-로마사회에까지 확장시킨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종적, 신분적, 성적 차별이 있을 수 없다”(갈 5: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면서, 당시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을 초기 기독교운동에 적극적으로 불러들였으며, 여성들을 교회의 지도자나 자신의 동역자로 삼았다. 여성에 대한 예수와 바울의 자세와 가르침을 그 당대사회구조면에서 본다면 참으로 놀랍고 혁명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기독교는 초기 시절부터 당대의 가부장적 사회와 문화를 뛰어 넘어 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인격으로 간주하였으며, 여성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였다. 구원의 은총과 은사와 교회의 제반사역에 있어서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남성들과 함께 성령의 은사들을 받았으며, 함께 예배를 드렸으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말씀을 읽고, 듣고, 그리고 말씀을 가르쳤다. 하지만, 남존여비사상과 가부장적구조가 여전히 지배적인 사회구조 안에서, 어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차별의 자유를 지나치게 확대시킴으로 인해 가정과 교회에 무질서를 초래하였고, 그로 인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해와 선교의 장애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을 경우에는 그들의 자유가 일시 제재를 받기도 하였다(고전 14:34-35; 딤전 2:11-15). 그렇지만 남녀의 동등한 인격과 역할을 지향하고 있는 기독교복음자체가 축소되거나 바꾸어진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복음은 가는 곳마다 여성들에게 새로운 자기인식과 자유와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평등과 여성의 인권이 보장된 오늘의 평등과 민주사회가 형성되기까지 기독교의 지대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사회만 하더라도 일백여년 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근세기 한국 기독교지도자들은, 당시 유교의 남존여비사상과 가부장적 사회구조 안에서도, 선교사들과 함께 여성을 교회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여성을 교육시키고 개화시키는데 앞장을 섰다. 이화학당, 호수돈 여고, 정신여고, 배재학당 등은 여성 교육과 여성 지도자 배출의 산실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 날 한국사회에서 남녀평등과 여성들의 인권이 법으로 보장되기까지 한국 기독교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정치, 경제, 과학, 문화, 교육, 예술 등 사회전반에 걸쳐 여성들의 진출과 활동은 과히 놀랄만하다. 여성과학자, 교수, 정치인, 기업인, 기술자, 교사, 군인, 의사, 법조인 등 남성이 관여하는 모든 영역에 여성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여성 장관, 여성 국회의원은 물론, 여성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초기의 한국교회가, 주후 1세기의 기독교가 헬라-로마-유대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성들의 인권과 자유와 역할을 확장시키는데 있어서 사회보다 항상 앞장을 섰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는 여성의 문제에 있어서 한국사회를 선도해가고 있기보다도, 오히려 사회보다 뒤떨어져 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 안에서 여성의 성직 안수(예를 들면, 여성목사와 장로직분)를 비롯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는 문제이다. 여성의 성직 안수문제는 이미 지난 반세기 이후부터 한국 기독교 안에서 가장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오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어떤 교단 교회들은 이 기간 동안 교단의 금기사항으로 간주되어 왔던 여성안수문제를 허용하여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위치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반면에, 어떤 교단 교회들은 여성안수문제를 교단의 신학 및 정체성과 결부시켜 계속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왜 한국 개신교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 문제를 두고 이와 같은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여성안수문제를 포함하여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더욱 확대하려는 교회나 신학교 교수들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여성의 안수 문제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고 하는 교회나 신학교 교수들까지도, 똑같이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를 초대 기독교 공동체와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이든, 찬성하는 교단이든,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의 소속교수이든, 여성안수를 지지하는 교단의 소속교수이든, 다 같이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의 신학적 근거를 주로 바울서신에서 찾고 있다. 예를 들면,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교수들은 고린도전서 11:3의 남자는 여자의 머리임을 가리키는 본문, 고린도전서 14:34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가르침, 디모데전서 2:12의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는 가르침 등에 근거하여, 바울은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여성의 안수를 지지하는 교수들은, 갈라디아서 3:28의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 하나이라는 가르침, 고린도전서 11:1-12의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는 가르침, 바울이 자신의 선교와 목회현장에 브리스길라, 뵈뵈, 순두게 등 여러 여성 사역자들을 참여시킨 점 등에 근거하여, 바울은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 동일한 초대 기독교 공동체나 신약성경을 두고 이처럼 서로 상반된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가? 초대 기독교 공동체나 신약성경 자체가 이중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동일한 공동체나 성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가? 만일 이해와 해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 주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글의 주된 목적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도 바울의 교회 안에서 여성 위치와 역할에 관한 주요 가르침을 헬라-로마-유대사회의 문맥과 관련하여 살펴봄으로써, 한국 개신교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토론되어 온 여성들의 위치와 역할 문제, 특별히 여성의 성직안수문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있다. 어떠한 연구도 전제와 방법론 없이 시작할 수는 없다. 여성의 안수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접근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해석학적 전제를 가지고 접근하고자 한다. 첫째, 바울의 서신들은 모두 영감(靈感)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시대와 문화와 환경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둘째, 바울의 서신들은, 영감(靈感)된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시대와 문화와 환경에 살았던 저자가, 그 시대와 문화와 환경에 살던 사람들에게 직접 주는 독특하고 개별적인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여 성도들을 향해 예배 때에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한 교훈이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한 교훈이나,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아의 집에 둔 겉옷과 가죽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는 부탁이나, 빌레몬에게 “나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라”는 부탁 등은, 특정한 시대와 문화에 살던 사람들이나 개인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이들 본문들은 “서로 사랑하라”, “성령의 인도를 따르라”는 본문처럼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직접 적용되어야 하는 규범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셋째, 바울 서신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해석자가 자신의 어떤 주장을 전제한 다음, 특정한 본문에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가서 그 본문으로부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본문으로부터 저자가 그 본문을 통하여 자신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본래 의도나 메시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특정한 본문에 대한 해석은 그 본문의 상황적 적용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2. 바울의 콘텍스트(Context)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주후 1세기 헬라-로마-유대 사회 안에서 형성되었으며, 신약성경, 특별히 바울의 서신들은 일차적으로 그 시대에 살고 있는 헬라-로마-유대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다. 초대 기독교와 신약성경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예수와 바울도 유대인으로 출생하여 헬라-로마-유대 사회와 문화의 틀 속에서 성장하고 생활하였으며, 동일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예수와 바울 당대 헬라-로마-유대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요구된다. (1) 헬라 사회 고대 헬라 사회에서 남성은 그 신분과 존재에 있어서 원천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여성은 남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남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여러 영역에 자유롭게 관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반면에, 여성은 이와 같은 남성의 영역에 관여할 수 없었고, 여성의 위치와 역할은 주로 가정에 제한되어 있었다. 여성들이 공회에 참석하여 투표를 하거나 말을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주전 4세기의 아덴에서 여자들은 자신의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얼굴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야만 했다. 심지어 처녀는 결혼하는 신랑이 자신의 얼굴을 보는 첫 번째 사람이 되도록 하여야만 했으며, 결혼한 후에 남편이 자기 아내의 얼굴을 대중 앞에 노출시키게 될 경우, 그는 바로 자신의 얼굴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고전적인 아덴의 법에 따르면, 아내 된 여자가 가정을 떠나 대중들 앞에 나서게 되는 경우, 그 여자는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부정한 여인으로 간주되어 이혼을 당할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헬라 세계에서 정숙한 여자들은 결혼 전에는 자기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그리고 결혼 한 후에는 자기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일체 집을 나서지 않았다. 결혼한 정숙한 여자들의 경우 남편이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혹은 개인적인 유흥을 위해서든 집을 나설 때 따라가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부인이 남편이 참석한 파티장소에 동행하여 술을 마시게 될 경우, 그것은 남편과 자신에게 다 같이 수치스러운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창녀들만이 남자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결혼하기 전에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 아래 복종하면서 생활하여야 했고, 결혼한 다음에는 남편에게 복종하면서 가사 일에 매여야 했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여야 했다. 그리고 집안에서도 외부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인의 방’으로 불리는 별채에 머물러야만 했다. 주전 4세기 중엽에 살았던 아폴로도루스(Apollodorus)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그 당시 사회 구조가 얼마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종속되어 있었는가를 보여 준다: “우리[남성]는 우리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젊은 여인들과, 매일 매일 몸을 돌보아 줄 하녀들과, 그리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가사 일을 맡길 수 있는 아내를 두고 있다.” 일종의 고급 창녀로 불리어질 수 있는 ‘젊은 여인들’은 남자들의 저녁 파티에 참석하여 남자들을 시중들고 성적으로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이러한 파티에 아내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하녀들은 집안에서 주인 남자와 주인 여자를 시중들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가사 일을 담당하였으며, 그리고 아내들은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남편의 부재중에도 집안에서 가사 일을 전담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여자들이 부득이 집을 나서게 될 경우, 남자들에게 일체 말을 하지 않아야만 했다. 유리피데스(Euripides)는 “결혼한 여자[혹은 여성]가 젊은 남자와 함께 서있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여자, 특별히 결혼한 여자가 거리에서 젊은 남자와 함께 있거나 말을 하고 있을 경우, 수치스러운 일을 하는 여자나 창녀로 취급될 수 있었다. 1세기의 헬라 작가 플루타르크(Plutarch)는 [신부와 신랑에게 주는 충고]라는 책에서 ‘결혼한 여자는 집안에 머물러야 하며, 손과 발과 얼굴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신체도 일반 사람들에게 노출시키지 않아야 하며, 밖에서 말을 하지 않아야 하며, 매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여자가 밖에서 묻거나 말을 하고 싶을 경우 자기 남편에게만 하거나 남편을 통하여 말을 하여야 하며, 직접 밖에서 말을 하는 경우 그것은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것이나 남편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2세기 초엽에 디오 크리소스톰(Dio Chrysostom)은 거리를 나설 때 얼굴은 물론 몸 전체를 가리고 나서는 여인들을 자기 남편을 욕되게 하지 않는 정숙한 여인으로 칭찬을 하고 있다. 이처럼 고대 헬라 사회에서 여인들의 언행은 자신들은 물론 자기 남편들의 수치/체면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었다. 물론 바울 당대에 마게도니야의 여성들은, 우리가 사도행전 16:14-15과 빌립보서 4:2-3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고대 헬라 지역의 여성들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렸으며, 집안일은 물론 장사를 포함하여 시의 관리나 중요한 민중제사와 국가제사의 여사제로 일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여종들이나 여자 노예들은 일반 여자들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규범이나 제약에 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집안에 있는 여주인들을 대신하여 외부세계에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대중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에서 물을 길어오거나 기타 다양한 심부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자기 남편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하는 가난한 농부들의 아내들에게도 이와 같은 규범들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다수 헬라 여자들은 철저하게 남자들에게 예속되어 있었으며, 남자들이 하는 일에 함부로 관여할 수 없었다. 헬라 세계에서 여자들을 남자들에게 종속시키게 된 배경에는, 우리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자들은 존재론적으로 남자들에 비해 불완전하고 하급 존재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세속적 영역에서 종교적 영역으로 방향을 돌릴 경우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는 점이다. 종교적 영역에서 헬라 여성들의 역할은 보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이다. 정치, 사회적 영역에서의 성적 불평등이 종교적 영역에서는 거의 사라진다. 여 사제들은 남 사제들과 똑같은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모든 여성들은, 그들의 사회적인 신분에 관계없이, 성전의 모든 장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고, 기도와 제사행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여 사제들은 국가적인 제사를 직접 집전하였으며, 신탁의 전달자가 되곤 하였다. 그래서 헬라 사회의 여성들 가운데 종교행위 참여를 자신의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는 자들도 있었다. (2) 로마 사회 고대 로마 사회에서 여성들의 위치와 역할은 헬라사회의 여성들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사는 여성들은 자기 남편들과 함께 극장과 서커스단에 갈 수도 있었고, 남편들과 함께 연회나 파티에 참석하여 남자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도 있었고, 서로 대화도 할 수 있었다. 여자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 자유롭게 시장에 갈 수도 있었고, 신전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신전을 찾아가거나 야외공연장을 찾아갈 수도 있었다. 교육받은 상류층의 여인들은 자기 가족들이 아닌 남자들과 지적인 담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그 밖에 부동산을 세를 주거나 사고팔기도 하였고, 시(市)의 여사제나 고급관리인이 될 수도 있었고, 유력한 정치인의 후원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법정에 나가 자신들에 관한 문제를 청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랜 전통과 관습을 따라야만 하는 대다수의 일반 여성들은 헬라 사회의 여성들처럼 남성에게 의존적이었으며, 그들의 활동도 남성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여성들은 합법적인 재산 소유자나 시민권자가 될 수 없었다. 로마 사회에서 여성의 덕목 중의 하나는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에 대한 복종이었고, 결혼한 다음에는 남편에 대한 복종이었다. 따라서 로마 사회의 여성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아버지와 남편이 사망하는 것도 그들에게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상실로 생각하였다. 아버지는 자기 딸의 결혼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고, 남편은 자기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고전적인 헬라사회의 여인들처럼 로마사회에서도 정숙한 여자들은 집안에서 가사 일을 하고, 남편의 재산과 하인들을 관리하여야만 했다. 그리고 헬라의 여성들처럼 집을 나설 때는 자신들의 정숙함을 나타내기 위한 표시로 수건을 써서 얼굴을 가려야 했다. 설사 여인들 중에 사회적인 활동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독자적인 것이라기보다도 주로 남편들의 힘이나 가문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때때로 여자들도 시(市)에서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은 할 수 있었지만, 여자들의 자리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그것도 제일 마지막에 배정되었다. 물론 시골의 여인들이나 여 노예들은 헬라의 경우처럼 남자들과 함께 일하였다. 종교적인 영역에서 로마의 여성들은 헬라의 여성들보다도 훨씬 더 자유롭지 못했다. 사실상 종교의 영역에서 로마의 여성들은, 그들이 시민사회에서의 영역에서 누렸던 자유와 비교해 볼 때, 지나칠 정도로 제한을 받았다. 헬라의 여성들과 달리 로마의 여성들은 종교적 영역에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심지어 여 사제들도, 동물들을 도살하여 드리는 희생제사에의 참여가 배제되었다. 간혹 모든 여성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종교축제들이 열리곤 했지만 여성들의 축제에서는 짐승의 희생제사가 배제되었다. 그러나 헬라종교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로마의 종교에서도 헬라종교에서처럼 여 사제들과 여신들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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