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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뼈의 소망 (겔 37:5-6)

우리가 지금 계속 성경을 잘 읽어나가고 있는데요. 이번 주하고 다음 주는 에스겔서의 말씀을 읽는 순서가 됐습니다. 선지서로 오니까, 좀 읽는 것이 좀 어려워졌죠?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하지만 이 말씀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때마다 주시는, 은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와 다음 주에 우리가 에스겔서를 살펴보게 될 텐데, 에스겔서에서 전해주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오늘 이 오후 시간에 함께 같이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라고 하는, 이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를 먼저 알고 읽으면 좋겠는데요. 에스겔 선지자는 언제 활동했던 선지자인가?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끌려갈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포로로 끌려가는 일들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렇게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 이스라엘의, 유다 나라의 마지막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시드기야 왕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그래서 활동했던 선지자, 그러니까 어쩌면 가장 암울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 시기가 에스겔 시대랑 비슷한가요? 어떤가요? 비슷할 수 있어요. 비슷할 수 있어요. 예전에 어쩌면 우리나라가 70년대, 이런 때, 80년대 이럴 때는 참 부흥이 일어났었고, 교회가 막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던 시기였다고 한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그런 시기고, 어쩌면 교회가 무너진다고 하는 소식이 들리는, 그런 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어서, 어쩌면 에스겔의 시대와 비슷한 시대가, 어쩌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비슷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시고, 그리고 소명을 주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이죠. 그래서 이 에스겔 선지자가 전한 이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겠는데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지금 어쩌면 이스라엘 민족 유대민족들은 하나님에게서 떠나버린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는 유대 민족인데, 그 유대민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 하나님의 재앙의 메시지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발견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메시지는 늘 이런 심판의 메시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무슨 메시지까지 같이 따라옵니까? 회복의 메시지까지 따라오는 것이죠. 축복의 메시지까지 함께 따라오는 겁니다.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범죄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저주하시면서, 남자에게 여자에게 그리고 뱀에게 저주를 내리시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할 때에도, 무슨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구원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여자의 후손이 그 뱀의 머리를 깨부술 거라고 하는, 그런 약속의 메시지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주는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면, 심판의 메시지요. 경고의 메시지지만, 그러나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 가운데,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시켜 주겠다고 하는, 그 회복의 메시지가 동시에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1장에서부터 3장까지는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시는 이야기 에스겔 선지자에게 사명을 주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1장에서부터 3장까지. 그리고 4장에서부터 24장까지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왔다”라고 하는 그러 심판의 메시지가 기록돼 있습니다. 거기까지가 이스라엘 민족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인데요. 그 뒤부터는 내용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25에서 25장에서부터 32장까지는 주변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힘들게 했고 괴롭게 했던, 그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마지막 33절에서부터 48장까지는 33장에서부터 48장까지는 새로운 소망에 대한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어디에 소망을 둘 수 있는가? 하나님에게 소망을 둘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에 소망을 걸며,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메시지가, 에스겔서의 메시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선적으로 1장에서부터 3장까지를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불러주시는데요. 이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신 곳이 어디냐 하면, 저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불러주셨습니다. 먼저 끌려온 포로된 사람들 중에 에스겔이 있었는데, 그 에스겔 선지자를, 어디서 불러주셨는가? 저 유대땅 예루살렘에서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온, 저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그 포로로 잡혀 있는 그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불러주신 것이죠. 그렇게, 이렇게 이 바벨론에서 에스겔을 불러주었다고 하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왜 놀라운 일일까요? 왜냐하면 고대인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지역”의 하나님일 거라고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대인들의 생각이에요. 성경적인 생각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생각은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 신들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들이 많이 있는데, 그 하나님마다 잘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이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산에 하나님이 있고 골짜기에 하나님이 있고 강에 하나님이 있고 바다에 하나님이 있어서, 그래서 산의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면, 산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면, 그 산의 하나님 때문에 승리하게 될 것이지만, 그 산에 하나님을 믿고서 전쟁을 하는데, 어디서 전쟁을 하느냐 평지에서 전쟁을 하면 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고대인들의 생각은 뭐냐 하면, 이 신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지역과 맞물려 있는 신들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하나님이오, 유다 땅 그 예루살렘 성전의 하나님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 예루살렘 성전은 이제 무너져 가고 있고, 그 하나님이 활동할 수 있는 그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저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하나님께서 이 에스겔 선지자를 불러주실 때, 어디서 불러주시는가? 그 바벨론에서 불러주신 것,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서 있는 그 에스겔을 불러주시면서, 그래서 그에게 사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이 엄청난 일들을 보여주셨는데, 이걸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 주신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세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세요?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라! 이 세상의 거짓 신들은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 때문에 안 되고, 여기는 강이래서 안 되고, 아침이 돼서 안 되고, 저녁이 돼서 안 되고, 밤이 이래서 안 되고, 안 되는 조건들이 너무나도 많은 게, 이 세상에 가짜 신들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시죠. 어디서든지 계신 그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이 에스겔을 불러주시는 이 소명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에스겔서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은 그래도 신앙생활하기가 괜찮은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래요. 왜요?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고, 이렇게 좋은 주차장이 있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이 더운 여름에 시원한 예배당에 앉아서 예배드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들의 삶 가운데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어떤 일이 있을 거냐면은, 우리가 예배당을 빼앗겨서, 그냥 길가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요. 아니, 이미 경험을 했잖아요? 어쩌면 우리는 예배 처소를 찾을 수도 없는 곳에 있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우리가 자유를 빼앗기고, 나라를 빼앗기고, 그래서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을 그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성전에 매여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장소에 매여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 그 옛날 요셉이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으로 소망을 보여주셨던, 그 하나님이, 그가 저 애굽 땅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노예로 살게 될 때는, 하나님이 안 계셨는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이 하는 모든 일들마다 형통케 하신 하나님. 억울하게 감옥 속에 들어가게 되어서, 감옥에 처박혔을 때, 거기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는가? 아니요. 그 감옥 속에서도 요셉과 함께하셔서, 꿈을 해석해 주시고 놀라운 일들을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이신 것이죠.

오늘 아침에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눴습니다마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망가지고 좌절돼 버리고 실패해 버리고, 수고하고 공들였던 것들이 다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절망이 아니라, 우리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힘들면 힘들수록 그게 뭐예요? 비싼 놀이기구예요. 이해를 못 하셨어요? 힘들면, 아프면 아플수록, 더 비싼, 인기 많은 스릴 많은 놀이기구가 되는, 그래서 그 구원의 하나님, 그 옛날 에스겔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메시지들을 우리가 보게 된다고 한다면, 에스겔서에서는 여러 가지 환상들을 기록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은 37장에 있는 마른 뼈의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마른 뼈들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그 골짜기 가운데, 마른 뼈들이 잔뜩 쌓여져 있는데, 과연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는가? 뼈들이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뼈는 사골국 끓이는 게 좋아요. 뼈는 다른 데로 쓸 데가 없어요. 그런데 뼈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게 뼈인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마른 뼈들을 보여주신 다음에, 그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니까, 그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살이 붙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군대가 되는 그런 엄청난 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죠.

근데 이 뼈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쩌면 이스라엘의 현재의 모습을 나타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완전히 망해버린 것이죠. 이방 민족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당하고, 아무런 소망도 없고, 이제는 노예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어떤 소망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겠는가? 아무런 소망도 없는 그 에스겔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유대 민족들이 절망 가운데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마른 뼈의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이 마른 뼈들이 소망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주면, 살아나게 되고, 움직이게 되고, 군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에게는 소망이 없지만, 그러나 누구에게는? 누구에게 소망을 걸 수가 있어요? 하나님께 소망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면, 우리가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는 그 소망을 보여주신 것이죠.


그리고 그 일이 어디서 이루어집니까? 우리 주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죠. 사실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죄로 인해서 죽었던 인생들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더 이상 소망이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 보혈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부터 다시 살려내시고, 전에는 죽었던 우리를, 이제는 하나님의 군대로, 하나님의 장병으로 삼아 주시는, 그 놀라운 일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마른 뼈와 같고 아무런 소망이 없던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살엿이 언급하고 지나가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에서부터 53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원히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일어났던 한 장면, 그냥 무시할 수도 있는 이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예수님의 죽음으로 더불어서 죽었던 자들이 살아난 것 이게 무엇의 성취죠? 바로 에스겔서의 환상이 성취된 이야기인 것이고, 또 이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을 살리시는 그 주님의 그 역사를 보여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여, 우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한 것들을 다 깨끗이 씻으시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이 성취하신 예수님의 그 놀라운 것을 바라보며 주님을 더욱더 바라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38장에서부터 39장에 보면 곡의 전투가 나옵니다. 곡과 마곡의 전투가 나오는데요. 이것은 요한계시록에도 다시 등장하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습니다. 메삭과 두발을 통치하는 마곡의 왕, 곡이 여러 이방 나라 군대들을 모아서 총사령관이 되어서 공격해 오는 전투의 환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전투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통해서 사탄의 공격이 우리에게 항상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가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며 살아가야 된다고 하는 그런 교훈을 우리가 얻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40장에서부터 48장에 보면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이 보여집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보는 환상 가운데 새로운 성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그 성전을 에스겔이 보았을 때 기뻤을까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요? 정말 깜짝 놀랐겠죠. 왜냐하면 지금 저 유대 땅에 있던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거예요. 바벨론 나라가 공격해 들어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시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던 그 장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면서 나아가던, 그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버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더 이상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도 없는, 이제는 그 성전이 무너져버리는, 그런 시대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새로운 성전의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무엇을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까? 성전이 무너진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성전을 만들어 주시겠다 말씀해 주시는 거죠. 예루살렘의 성전 무너졌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그것이 없어졌다고 해서 하나님께 못 나아가느냐? 아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마련해 놓으셨고, 그 번제단이 그 안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죠.


그리고 이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은 어디에서 성취가 됩니까? 바로 예수님에게서 성취가 되는 것이죠. 끊임없이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 성전이 무너졌을 때, 다시 성전을 지으려고 해서,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는 제2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그 제2 성전을 수리하고 수리하고 수리해서 만든 헤롯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전이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서 성전을 지으셔서, 그래서 우리가 직접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의 말씀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사실 그 당시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타락해 버렸고, 그리고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의 탐욕의 수단이 되어버렸고, 그곳에서 참된 예배가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온갖 참 좋지 못한 모습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 성전 다 무너뜨려 버려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서 테이블을 뒤집어버리고 또 동전 바꾸는 자들을 다 쫓아내 버리시고 이 성전들은 무너져버려야 된다. 이곳에서 예배가 드려질 수 없다고 하면서, 무너뜨리고 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 하시면서, 예수님의 몸으로서 성전을 짓고, 우리가 이 세상 재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을 통해서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성전에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내렸는데요. 생수의 강이 흘러서 그 생수의 강이 점점점점 불어나고 그 생수의 강에서 많은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생겼어요. 죽었던 물고기들이 살아나고, 그곳에서 많은 생명들이 다시 생명을 얻는 그런 생수의 강이 흘러 나는 그런 환상을 보여주었는데, 이 환상 역시 누구에게서 성취가 됩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게 되는 것이죠.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만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의 말씀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또한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부터 38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그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그랬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그 성전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서, 모든 사람들을 먹이고 마시게 하고 적시고 다 살아나게 만드는 그 역사, 그걸 소망으로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48장에서는 다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땅을 분배하는 장면들을 볼 수가 있겠는데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빼앗겨버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지만, 다시 회복하게 될 거라고 하는 그 예언, 사실은 그것이 단순히 요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시오니즘으로, 유대인들이 다시 가나안 땅에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 성도들이 저 하늘나라의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신다고 하는 그 예언을 이 에스겔서의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이 말씀들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말씀을 읽는 가운데, 이러한 모습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이러한 그 환상들이 우리의 성도들의 삶 가운데 이루어질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으시는 그런 한 주간 또 그다음 주간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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