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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채권자는 채무자보다 더 기억력이 좋다. —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

진정한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좋은 점을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 — 키케로 (106-43 BC)

– 이국진

사랑은 악한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말을 우리는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1) 사랑은 악한 것을 내가 도모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2) 사랑은 상대방의 나쁜 것(단점)을 바라보지 않는다. (3) 사랑은 상대방이 잘못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우선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지당한 말이다. 사랑하는데 악을 행할 수 있는가? 오래 전에 유행했던 유행가 중에, 이은하 가수가 부른 “아리송해”라는 노래에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역설을 노래한다. 사랑이 없으면 미워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미움도 있다는 역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역설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악을 도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는다.

2008년 아주 뜨거운 여름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아주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섭씨 38도가 넘는 폭염이 있던 어느 날, 델라웨어 카운티 직업학교의 교사인 에드워드 캔터맨(Kanterman, 59세)이라는 사람이 14개월이 된 자신의 손자(니콜라스)를 유리창이 닫힌 차 속에 5시간 동안 방치해 두는 바람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캔터맨은 평상시 매일 손자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었는데, 그날 손자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는 일을 잊고서 수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5시간 뒤에 돌아와 혼수상태의 손자를 발견하였다. 응급실로 보냈지만, 결국 4일 뒤에 그 아이는 죽고 말았다. 검찰은 이 캔터맨이란 사람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펜실배니아 주법에 의하면, 12세 이하의 아이를 과실치사하게 했을 경우, 중범죄로 다루어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나는 이 뉴스를 들을 때,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 할아버지는 어떻게 아들을 잃은 자신의 딸(레베카)을 바라볼 수 있을까? 레베카는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죽도록 만든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런데 나중에 뉴스를 들으니, 레베카는 “그가 책임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평생 죄책감 속에 살아야 할 것 같다. 니콜라스는 천사 같이 착한 아이였으며, 할아버지가 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라며 캔터맨이 처벌받지 않도록 탄원하고 있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처벌을 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은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다.

성경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가르친다(로마서 12:17).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자신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에게로 넘쳐야 한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1958년 4월 25일 필라델피아에 유학을 왔던 오인호 씨(당시 나이 26세)는 한국의 부모님에게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통으로 가다가 근처에 있던 흑인 불량배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청소년 파티에 들어갈 입장료 35센트를 구하기 위해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 잔혹한 사건은 당시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며, 범인들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던 오인호 씨 형제의 가족들은 편지를 보내, 범인들을 선처해 달라는 호소문을 보냈다. 이들은 범인들이 석방된 후 직업 교육과 사회 적응을 위한 일에 사용하라고 500불도 보내왔다. 그때 보낸 편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교육적 빈곤이 살해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은 이들이 석방된 뒤에 직업 교육 및 사회 적응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금을 적립하기로 했습니다. … 이것은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 연결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다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성령으로 우리의 소망을 밝혔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 국민들과 특히 우리의 피붙이인 아들을 죽게 한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여, 그냥 언급만 하고 지나가도 될 것같다. 2 사랑은 악한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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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박지호, “아들 죽인 범인 용서한 한국인 부모, 미국인들에게 감동: 오인호 기념 장학 사업 지속…이스턴대학 해마다 추모 행사.”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192.[]
  2. 손동희,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아가페,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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