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들어가는 말

영적인 진리는 비유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0.1.1 비유가 문제다

비유가 문제다. 이단은 성경 속에 있는 비유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비유를 그렇게 해석해야 할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여기에 쉽게 넘어간다.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비유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암호를 풀 듯 비유를 풀다보면 시원한 생수를 마신 듯 쾌감을 느끼게 된다. 비유는 쉽고 친숙한 이야기로 구성되기 때문에 머릿속에 깊이 남는다. 지루한 논리적 주장은 그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렵지만 이야기로 구성된 비유는 머릿속에 깊은 잔상이 남는다. 여기에 잘못된 해석이 붙으면 비유는 생각을 옭아매는 감옥이 될 수 있다. 그러면 그 감옥 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질 못한다. 외부인들은 이단들의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저런 엉터리 해석에 사람들이 넘어갈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비유 해석의 매력에 빠져들면 그 틀을 깨고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비유가 문제이고, 비유에 대한 바른 해석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단들의 잘못된 비유 해석에 대한 책임은 어느 정도 정통 교회에 있다. 그 동안 교회에서 비유를 잘못 취급하여 제멋대로 해석해왔기 때문이다. 이단들이 비유를 활용하는 방식이 그 동안 교회에서 비유를 활용하는 방식과 그리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엉터리 해석을 통해서 정당한 교리를 가르쳤을 때에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적어도 바른 교리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꿩을 잡는 게 매라는 말처럼, 그런 비유풀이가 신앙을 강화시키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비유풀이 속에 들어있는 독소를 알아채지 못했다. 똑같은 칼이 의사나 요리사에게 쥐어지면 선하게 사용될 수 있지만 강도의 손에 들릴 때에는 악하게 사용되는 것처럼, 비유풀이가 이단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영혼을 죽이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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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동안 잘못 행해져왔던 비유풀이의 오류들을 바로잡고 건전한 해석을 추구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쓴 것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셨을 때 의도했던 원래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이 책이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 비유를 제 자리에 갖다 놓았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신 그 의도를 연구하여 비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물론 학계에서는 과연 객관적인 해석이 가능한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모든 해석은 어쩔 수 없이 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객관적 해석을 시도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객관적 해석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해석이 있고 나쁜 해석이 있다는 점에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어떤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에게 무슨 말을 했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자녀가 그 어머니의 말씀을 어머니가 의도한 대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바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해석해서 삐뚤어진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러한 해석은 나쁜 해석이고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하나님의 의도에 맞는 해석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나쁜 해석으로 하나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해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총을 벗어나고 말았다. 이 책은 바른 해석을 추구하는데 도움이 되길 원하는 마음에서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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