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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인 보화 (마 13:44-46)

믿음의 사람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지만,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없다고 말하고,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전혀 있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 그 소중한 것을 바라볼 수가 있는, 그래서 이 믿음의 눈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제일 안타까운 심정이 무엇입니까?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죠. 있는데도, 있다고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말해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 어쩌면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가 그러했습니다.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데, 이사야 시대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들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을 살아갔던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무엇인가? 믿음의 사람은 남들은 보지 못해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죠. 볼 수 있는 가치를 볼 수 있는 사람,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마치 건축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냥 들판을 지나면서, 허허벌판을 지나면서, 그냥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냥 “여기는 쓸모없는 땅이구나. 여기는 그냥 버려진 땅이구나.” 하면서 그곳을 지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건축가는 버려진 것 같은 그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는 빌딩이 세워지고, 저기에는 공원이 만들어지고, 여기에는 쉼터가 만들어지고, 이미 머릿속에서 수많은 계획들이 세워지면서, 마음속으로 그러한 아름다운 것들을 창작해내는 것인데, 그러한 developer 건축가의 눈은 일반 사람들의 눈과 다르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요리사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요리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재료가 주어지면, 그 재료를 보면서, 벌써 맛있는 음식의 냄새가 나요. 이걸로 무엇을 만들어 먹으면 좋겠구나. 벌써 재료 몇 가지만 보면, 음식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지, 하고 있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냉장고를 부탁해>라고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혹시 보셨습니까? 대답 안 하기로 작정을 했습니까?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요. 지금도 계속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 거기에 등장하는 냉장고는 어떤 냉장고입니까? 아주 평범한 냉장고예요. 물론 보통 냉장고가 아니라, 연예인들의 냉장고니까, 좀 차원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음식 재료는 어떤 재료냐? 그냥 우리 집에서 볼 수 있는 음식 재료들, 누구나 다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들이 그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는데, 그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재료들을 요리사들이 바라보면서 아주 놀라운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나는 이 재료로 무엇을 만들겠습니다. 나는 이 재료로 무엇을 만들겠습니다 하면서, 그 짧은 시간에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데, 우리는 직접 먹어본 게 아니고, 나온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게 정말 환상적으로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요리사는 어떤 사람인가?> 재료만 보고, 그 안에서 멋진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인 것이죠. 안타깝게도 저는 요리사가 아닙니다. 저는 음식을 할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 못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배고파서 냉장고 문을 딱 열면, 그 안에 뭔가 가득 차 있기는 있는데,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쭉 내려본 다음에 제 결론은 이것입니다. “아, 먹을 게 하나도 없구나.” 근데 그 이야기를 들은 제 아내가 뚜벅뚜벅 걸어오면서, 한마디 말을 던집니다. “먹을 게 없긴 왜 없어? 이렇게 많은데” 하면서, 거기서 재료 꺼내가지고, 엄청난 요리들이 나오는 거죠.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에 비유할 수 있는가? 믿음의 사람은 교육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누구를 가르칩니까? 코 흘리개 꼬마아이를 가르치는 거예요.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직 모든 것이 어설프고, 행동이 어설픈 그 학생들을 보면서, 아무 쓸모없는, 아무 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어린아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면, 이 아이가 위대한 인물이 되고 엄청난 인물로 성장해서,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를 꿈을 그리면서, 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죠.

몇 년 전에 뉴스에 나왔던 한 이야기인데요. 뉴욕에 있는 한 한인 노숙자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강찬이라고 하는 학생이었는데요. 집안이 망해서, 집이 차압을 당하고, 길거리로 나게 되어서, 그래서 모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한 젊은 한인 학생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았던, 뉴욕 롱 아일랜드에 있는 사우스 헌팅던 지역의 교사 선생님이 그 아이를 인도해서,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그 아이가 그렇게 노숙자로 살면서, 그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 어떻게 됐는가? 그 아이가 하버드 대학에 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문기사가 났어요. 다른 사람 같으면 노숙자라고 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에요. 저 인생은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선생님은 그 학생을 바라보고, 가능성을 바라보고, 결국 크게 키워서 엄청난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냈는데, 그 사람은 누구였는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교육가가 그런 일을 해내는 것이죠.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재료나 물건이나 사람에게서 가능성을 바라보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때,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3장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국이 마치 밭에 감춘 보화와 같다고 하는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그 천국이라고 하는 것이 별로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별로 가치 없어 보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고, 그래서 무시해버리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그 가운데서 그 밭에 감추인 보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은 밭을 갈다가,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을 발견한 거예요. 그러면 그 밭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보화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결국 그 보화의 가치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그 가치를 볼 수 있는 사람, 믿음의 사람이야말로, 천국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고, 그 천국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들은 다 포기하더라도, 천국을 소유하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를 말씀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재물을 숨기려고 한다면, 어디에 숨깁니까? 금고에 숨기든지, 안전한 곳에, 우리는 재물을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마는, 1세기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보물을 안전하게 숨기는 방법으로 땅속에 감추어 두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땅 속에 보물을 감추어 둡니까? 감추어 두지 않습니까? 혹시 감추어둔 분 계십니까?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물론 예전에 김제의 어떤 밭에서 수억 원이 발견됐다고 하는 뉴스를 듣기는 했습니다마는, 만일 저에게 그런 어마어마한 돈이 있다고 한다면, 땅속에 감추어 두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땅은 습기가 많아서, 땅속에 감춰 두면 다 썩어버리고 망가지고, 제대로 쓸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형은 좀 다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라고 하는 그 동화에서도, 그 40인의 도적들이 보화를 어디다 감춰두죠? 굴속에 감추어둡니다. 왜냐하면 그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은 습기가 없어서, 보물을 그 안에 감추어 두어도, 온전히 잘 보존이 되는 그런 땅이었기 때문에, 땅이기 때문에, 그렇게 감추어 둘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달란트 비율을 보더라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있었는데,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이 그 보물을 그 한 달란트를 어디다 감춰두는가? 땅속에 감추어두는가? 안전하게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이 땅에 감추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문제는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그런데 그렇게 감추어 둔 사람이 죽어버리면,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죽어버리거나, 전쟁에 나가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한다면, 그 안에 보물이 묻혀져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재산을 유산을 받고 또 받고 받고 해서, 그 자녀들은 자손들은 그곳에 보물이 묻혀 있는 줄 모르는데, 그 소작농이 가서 그 밭에서 소작을 하면서 농사를 짓다가, 그러다가 그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이 욕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냥 캐서 가져갈 수 없는 이유는 만일 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도대체 그 돈이 어디서 났는가? 사람들로부터 추궁을 당할 수가 있겠고, 그렇게 하게 되면 결국 빼앗길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기 시작하는 겁니다. 다 팔아서 그 땅을 자기의 소유로 명의 이전을 할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자기가 합법적으로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땅을 샀는데, 그 안에서 금광이 발견되면, 그 금광은 땅 산 사람의 것입니까? 전 주인의 것입니까? 새로 산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죠. 땅을 샀는데 거기서 석유가 터져 나왔다고 하면, 그 석유는 누구의 것이 됩니까? 땅을 판 사람의 것입니까? 산 사람의 것입니까? 산 사람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물도 발견되게 된다면, 결국 그 사람이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돈을 끌어 모으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살려고 하다가 돈이 부족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요? 아이고 내 힘과 능력으로는 못 사겠다. “그냥 포기하고 말자” 그럴 분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돈이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빌려서라도 살 거예요. 왜냐하면 그 안에 보화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하게 안다고 한다면, 내가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그 밭을 사고야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해 주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천국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해주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서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 또는 영생 이런 말들이 다 같은 의미의 말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마태복음에서는 주로 천국이라고 하는 말로, 마가나 누가복음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말로 표현이 되고, 요한복음에서는 주로 영생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이 되는데, 다 비슷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가? 영생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게 중요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왜 이 천국이 중요합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것들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들은 우리들에게 일시적인 만족을 주기 때문에, 어떤 일에 내가 기쁨이 생긴다고 하면, 그 기쁨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만 기쁨을 주는 것이죠. 이 세상의 것들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어봤을 겁니다. 머리를 깎으면 하루가 행복하고, 새 옷이나 차를 사면 일주일이 행복하고, 집을 사면 한 달이 행복하고, 결혼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제가 찾은 거에는 일 년이 행복하다. 1년이 다 넘어서 어떡하죠? 중국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가 행복하려면 술을 마시고, 일주일이 행복하려면 돼지를 잡고, 한 달이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원사가 돼라. 그런 속담이 있다고 하는데요. 뭐 주관적으로 이야기한 거니까, 이게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속담이나 이런 말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이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아주 잠깐, 일시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취업 준비생이 있습니다.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합격을 했습니다. 영원히 기쁠까요? 아니요. 취업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너무나도 기쁘고 너무나도 행복해서, 자랑하고 싶고 친척들한테 다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직장 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고 너무나도 힘들어서, “내가 왜 합격했던가?” 하는 날이 금세 다가옵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어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정말 박수 쳐줘야 될 학생들이에요. 정말 열심히 공부하 그렇게 해서 대학 합격하면 영원히 행복하나요? 아니요. 그때뿐이에요. 그때뿐. 이 세상의 것들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를 향해서 뭐라고 권면하고 있냐면, “왜 영원히 배부르게 해주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왜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을 위해서 그렇게 수고하느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사야서 55장 2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직장 다니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요. 결혼하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 열심히 시험 공부하지 말라고 하는 얘기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것들은 우리를 영원히 만족하게 해 줄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천국이 제일 중요한가? 왜 영생이 제일 중요한가? 그것은 이 세상의 것은 우리들에게 행복을 약속하지만, 사실은 우리들을 배신하고 우리를 더 고통 가운데 몰아넣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무엇인가요? 카지노나 로또 같은 것이죠. 카지노나 로또는 무엇을 선전합니까? 여러분 1등에 당첨된다고 하면, 여러분들의 인생이 역전될 것입니다. 만일 잭팟에 당첨이 된다고 한다면 당신의 삶이 달라질 겁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뉴욕에 들어가다 보면, 뉴욕의 고속도로 옆에 있는 빌보드 차트에, 빌보드에 뭐가 붙어 있냐면, 광고문 로또 광고가 하나 딱 붙어 있어요. 카지노 광고가 딱 붙어 있는데, 거기에 뭐라고 쓰여있냐면 이렇게 쓰여 있어요. “혹시 알아?” 이렇게 돼 있어요. 영어로는 “You never know” 혹시 알아? 네가 주인공이 될지?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거예요. 아, 나도 카지노에 가서, 한번 당기면, 혹시 알아? 나도 백만장자가 될지? 억만장자가 될지?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뀔지? 그래서 결국 가 가지고, 어떻게 되나요? 내 주머니에 있는 거 다 털리고 나오는 거예요. 수많은 한인들이 카지노 옆에서,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면서, 한 푼 달라고 하면서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어디서 나온 사람들인가? 카지노 가서 당기다가 전 재산 탕진하고, 돈이 없는데, 그런데 밖에 나와 가지고 사람들한테 돈 빌려다가, 돈 주면, 다시 그 안에 들어가서 처박고, 떨어지면 또 나와서 구걸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안타깝게도 그런데 카지노와 로또와 같아요.

우리가 무엇을 하면, 성공할 것 같은데, 성공이라고 하는 것, 돈이라고 하는 것, 명예라고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처럼, 당신도 열심히 살기만 하면, 당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결국 열심히 살다가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화재 사고로 인해서 완전히 목숨도 잃고 재산도 잃고, 건강 잃어버리고, 가족이 해체되는 그런 슬픈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하지만 영생은 무엇인가? 천국은 무엇인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기쁨과 행복을 주는 참된 보화라고 하는 사실,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했지만 정말 가치 있는 진짜 가치 있는 것이 천국이요. 영생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이 어떻게 얼마나 좋은 건가요? 이 천국이 얼마나 좋은 거죠? 성경에서는 천국이 좋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뭐라고 표현하냐면, 천국에 가면 찬송을 부를 거라고 해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그냥 하루 종일 찬송만 부르고, 지겹게 찬송만 부른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에 가면 너무나도 좋아서, 감탄이 계속 나온다는 얘기예요. 찬송 부른다는, 정말 좋구나. 정말 좋구나.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도 좋다고 하는 것을 늘 감탄하고 찬송하고, 또 찬송해도 그것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감격이 전혀 쪼그라들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끝까지 감격과 감동이 계속되는 것, 그것이 천국이요. 우리가 얻게 되는 영생이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얻어야 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을 잃어버린다고 하면, 영생을 잃어버린다고 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우리가 영생을 소유하기 위하여, 천국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것을 소홀히 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그 천국을 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을 발견한 사람 영생을 발견한 사람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은 영생이 천국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내버렸습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낚던 사람이 있어요. 배를 타고 다니면서 고기를 잡았던 사람인데, 어쩌면 그 베드로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삶의 수단이 무엇이었습니까? 배요. 그물이었어요. 이것만 있으면 먹고사는 겁니다. 아마 베드로는 배를 장만하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기뻤을 거예요. 내 이름으로 내 배를 하나 만들 수 있다니, 얻을 수 있다니, 배를 구입하면서 정말 좋아했을 거예요. 그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에 가기만 하면, 언제든지 고기를 낚는 그 삶을 통해서, 이 배와 그물이 있으면 내 인생은 행복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그걸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다가, 예수님에게 실망하고 다 도망가는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들도 나를 떠나가려느냐?”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베드로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장 18절 말씀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바울 사도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맨 처음에 이 영생의 가치를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모를 때는 교회를 핍박했어요. 왜냐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 예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완전 미친 사람처럼 보였어요. 바보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핍박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을 발견한 후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며, 주님을 따르고 이 영생의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 바울 사도를 본 사람들이 바울을 아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네가 미쳤구나. 미친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 영생이라고 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샀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가장 소중하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영생이 가장 소중하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다른 거 다 포기하더라도 영생이 소중하니까 영생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이 세상의 것들이 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그 우리 주님께서, 사실은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소중하시다고 인정하십니다. 여기 나오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이 농부는 그 보화를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버립니다. 그 보화를 찾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게 한 바로 그 농부가 누구를 상징합니까? 우리의 우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이 나와 같은 사람을 보시고, 세상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저 바보 같은 놈, 저 덜 떨어진 사람, 무시하고 조롱하는 우리들을 보시고,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우리를 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팔아,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사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를 팔았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어요. 단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저와 여러분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저와 여러분 모두가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영생이 가장 소중하고, 천국이 가장 소중하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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