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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 (계 1:12-20)

목차로 돌아가기 +++ 1. 예언의 말씀 (계 1:1-3) +++ 3. 일곱 교회 (계 1:20)

밧모섬에 유배 중이었던 사도 요한이 주님의 날에,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인 일요일에, 환상을 보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환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어느 주님의 날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큰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그 소리가 무슨 무슨 음성이었냐면,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 내용을 소아시아에 있는 7 교회에게, 다시 말하자면, 지금으로 치면. 터키 지방에 있는 7개 교회에다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을 받아 적어서 전달하라” 하는 그런 메시지를 사도 요한이 듣게 됐습니다.

큰 음성이 들렸을 때 사도 요한의 반응이 무엇이었을까요? 큰 음성을 듣게 됐을 때, 그 소리 나는 쪽을 쳐다봤겠죠. 우리도 무슨 음성이 들리면 어떻게 해야죠? 고개를 돌려서 누가 나한테 말씀을 하시는지, 누가 나한테, 이런 나를 부르는지,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는 것처럼, 사도 요한이 주일날, 주의 날에 가만히 있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있는데, 큰 음성이 들리니까, 그 음성이 나는 쪽을 돌이켜서 바라보았다가,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딱 몸을 돌이켜서 바라보게 되자, 거기서 제일 먼저 본 것이 있는데, 그것은 7개의 금으로 만든 촛대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7개의 금 촛대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아마 성경을 읽으신 분은 이해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요한계시록 1장 20절 말씀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7개의 금 촛대는 7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7개의 금 촛대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7개의 금 촛대가 무엇을 상징한다? 교회를 상징한다고 그랬는데, 왜 교회를 촛대로 상징하고 있을까요? 촛대를 사용해서 왜 교회를 나타내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교회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빛을 비추는 사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과 16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사명, 그것은 빛과 소금의 사명인데, 빛의 사명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교회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바로 이 우리들이 모여 있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빛을 비추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게 만드는 그 사명, 빛을 비추는 사명이 바로 교회의 사명, 소명이기 때문에,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7개의 금 촛대를 사용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촛대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습니까? 금으로 만들어진 거죠. 금이 무엇인가요? 금은 아주 고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허접한 것, 별 볼 일 없는 것,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금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하는 것이고, 너무나도 귀하다고 하는 것을 나타낼 때 바로 금을 사용하는데요. 교회가 어떤 곳인가? 교회가 무엇인가? 했을 때, 이 교회라고 하는 것은 빛을 비추는 사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교회는 하찮고,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고귀한,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하는 의미에서, 금 촛대로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큰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거기에 7개의 금 촛대가 있었고, 그 금 촛대 사이로 어떤 한 분이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 예수님을 바라보았는데, 그 예수님을 볼 때에 뭐라고 표현하냐면, 인자 같은 이가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자 같은 이는 바로 예수님을 의미하는 건데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활동하실 때, 스스로를 호칭할 때, 뭐라고 호칭하셨냐면, “인자(人子)가”라고 하는 말씀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시고, 인자가 다시 올 것을,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그 호칭으로, 예수님께서 인자라고 하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인자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인자? 제가 지난번에 성경 공부를 하면서 “인자가 무슨 뜻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대답하셨냐면, 그거야 “예수님이 인자하신 분이니까, 인자라고 그러죠.”라고, 대답하시는 질문을 많이 봤습니다마는, 인자하신 분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사람 인”자 “아들 자”자를 써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이 인자입니다. 다시 말 말하자면 사람의 아들인 거죠.

그런데 그냥 사람의 아들이면, 사람일 텐데, 그냥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신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인자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자 그러면 앞으로는 인자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고,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좋겠고, 그 사람의 아들이 무엇인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사실은 신적인 존재, 사실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낼 때, 인자라고 하는 말을 쓴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인자라고 하는 표현이 어떨 때는 그냥 사람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시편에 기록하기를,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할 때 그 인자는 그냥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 에스겔서에서 나오는 “인자야” 하는 그 표현들은 그냥 사람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인자가 신적인 존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된 최초의 성경 구절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다니엘서 7장 13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됐습니다. 다니엘서 7장 13절부터 14절은 다니엘 선지자가 환상을 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그러니까 누가 하늘 구름을 타고? 사람처럼 생긴 사람이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누구죠? 하나님이죠. 그러니까 사람이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즉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거예요. 하늘 구름을 탔다고 하는 것은, 하늘 구름을 타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인데, 사람 같은 존재가 있는데, 그분이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갔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옛날 다니엘 선지자가 본 환상 가운데 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어떤 인자가 있는데, 인자처럼 생긴 사람이 있는데, 즉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하늘 구름을 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인자에게, 사람처럼 생긴 분에게, 뭐를 주었냐면, 권세도 주고, 영광도 주고, 나라를 주고, 즉 하나님이 소유할 만한 그런 모든 것들을 사람처럼 생긴 분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처럼 생긴 분에게 모든 민족이 절도 하고, 예배도 하는 그 환상을 다니엘이 본 거죠. 그 환상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비록 누추한 모습을 하고, 아주 평범한 사람의 모습처럼 하고서, 이 세상에서 활동하셨지만, 예수님은 정말 100%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이셨고,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하는 것을 예언한 것이 바로 다니엘서 7장 13절 14절에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까? 약 6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거예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시지도 않는 겁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지금 로마 황제가 교회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소아시아에 있는 7 교회가 정말 고통 가운데 있는 겁니다. 그 고통 가운데 있고, 다른 사도들은 이미 순교를 다 해버렸고, 요한 사도만 홀로 살아남았는데, 잘 먹고 잘 산 것이 아니라, 요한 사도도 결국 꼭 잡혀서 밧모섬이라고 하는 곳에 유배되어 가서, 거기서 살고 있는 가운데, 그 어느 날 주님께서 그 요한 사도에게 환상을 보여주는데, 어떤 환상을 봤는가? 7개의 금 촛대가 있고, 그 금 촛대 사이로 인자 같은 이,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이 그 사이를 거니시는 모습의 환상을 보게 된 것이죠.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그때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있으며, 가슴에는 금으로 만든 띠를 띠고 있고, 머리털은 하얀데, 양털같이 눈 같이 하얄 뿐만 아니라, 그 눈은 불꽃같은 눈이고, 그 얼굴은 해 같이 빛나고, 목소리는 많은 물소리처럼 장엄한 목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그 입에서는 날 선 검이 나오고, 그리고 발은 풀무에 단련한 것 같은, 주석 같은 그런 단단한 그 발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이죠.

뿐만 아니라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가지고 있고, 또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습의 예수님을 목격한 거예요. 입에서 막 칼이 나온다고 하니까, 이것을 상상해 보면 굉장히 무서울 수도 있겠는데요. 예수님의 얼굴은 막 빚, 해처럼 막 빛이 나고, 많은 물소리처럼 그런 장엄한 목소리를 내는 그 예수님, 어떻게 그림을 그려본다고 한다면, 좀 이상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을 이 사도 요한이 바라본 겁니다.

그런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 일곱 별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 교회의 사자들, 사자가 무엇이죠? 호랑이 사자를 말하는 게 아니고, 천사들을 의미합니다. 메신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사자라고 하는데, 오른손에 7 별을 가지고 있는데, 7 별은 천사들을 의미하고, 뿐만 아니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그 예수님을 이 사도 요한이 바라보게 된 거죠.

그리고 그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 18절 말씀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아마 그 광경이 무서웠던 것 같아요. 너무나도 무서워 어서 벌벌 떨고 있을 때,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오.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다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정말 겸손하신 모습으로 사역을 해 주셨는데, 지금 이 사도 요한이 바라본 예수님의 모습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있고, 권세를 가지고 있고, 별을 붙들고 있고, 그런 찬란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런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는 모습을 바라본 것이죠.

이러한 걸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 예수님의 이 모습을 일일이 일일이 설명하려고 한다면, 아마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 그 발이 주석과 같다고 그랬는데, 왜 주석과 같이 생겼다고 이야기했을까? 그 눈이 불꽃같다고 했는데 왜 불꽃같다고 했을까? 우리가 아마 상상해 보시면 충분히 그 의미를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불꽃같다고 하는 그 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꿰뚫어 보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있겠죠. 다리가 주석 같다고 하는 얘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옛날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 가운데, 그 거대 신상의 다리는 발은 무엇이었죠? 철과 흙이 섞여 있어서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던 반면에, 예수님의 발은 주석, 그러니까 고귀하면서도 단단해서 무너지지 않는, 그런 든든한 그런 발이라고 하는 걸 상상할 수도 있겠고, 아무튼 그 모든 것들을 다 일일이 상상하고 설명해 드릴 수는 없지만, 제일 중요한 것만 이 시간에 같이 말씀드리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일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죽은 줄 알았는데,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로 아직도 살아 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지금 일곱 금 촛대 사이, 다시 말하자면 일곱 교회 사이를 함께 다니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곱 별을 붙드시고,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있는 것이죠. 그 모습을 볼 때 이 사도 요한은 너무나도 깜짝 놀랐을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현재 바라보고 있는 상황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이 무엇입니까? 지금 상황은 로마 황제가 지배하고 있고, 그 로마 황제가 교회를 핍박하고 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게 되었고,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면 죽임을 당할 뿐만 아니라, 요한도 이미 잡혀서 유배를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아주 절망적인 상황, 풍전등화와 같은 그런 상황 가운데 교회가 놓여 있어서, 다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인데, 그때 사도 요한이 본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가 그냥 내 팽개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교회와 함께하신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들 눈앞에 보면, 다들 풍전등화와 같이 쓰러지고, 다 죽어가고 있는, 다 잡혀가고 있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영적인 눈으로 환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는, 그 주님께서 교회를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 받고 있는 그 일곱 교회들 사이에서 주님께서 계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모든 권세를 잡으시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사도 요한이 바라본 것입니다.

교회를 표현할 때 뭐라고 표현합니까? 일곱 금 촛대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현재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냐 하면, 금 촛대가 아니라 비난받고 조롱받고 박해를 받고 정말 힘들게 겨우 겨우 견디어 나가는 교회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 내 눈앞에 있는 것이죠. 사도 요한이 바라볼 때 그 일곱 교회의 모습들을 보면, 너무나도 힘들어요. 망해가고 있어요. 어려운 가운데 있어요.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 교회들의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픈데,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어떻게 그 교회를 바라보시는가? 그 교회가 아무런 가치도 없고, 별 볼 일 없고, 그런 교회가 아니라, 주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도 소중한 교회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금 촛대로 표현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교회를 누가 붙들고 있는가? 주님께서 붙들고 계시다고 하는 겁니다.

지금 상황은 로마 황제가 다스리고 있는 것 같고, 로마 황제의 말 한마디에 의해서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인 것 같지만, 그러나 실제로 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은 이 별을 누가 붙들고 있어요? 인자 같은 이가 붙들고 있어서, 이 세상을 로마 황제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주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죠.

그래서 이 모습을 보았을 때, 사도 요한이 너무나도 기뻤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 옛날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와 비슷합니다.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나도 편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고, 그 누구도 우리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런 일들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생각에 우리는 그래도 좀 괜찮은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랑 비슷해요.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에는 누가 교회를 핍박했습니까? 로마 황제가 핍박을 했고, 모든 시대 제도가 핍박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은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 중에는 맘몬이라고 하는 신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죠. 돈이 우리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 좌지우지하는 것 같고, 그래서 그 돈의 신에 우리가 경배하지 아니하면, 결국 이 세상에서 낙오를 하게 되는 것이고, 입시 지옥에서 우리가 철저하게 살아남지 않으면, 곧 멸망해버릴 것만 같고, 취업의 전선 가운데서 성공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망해버릴 것 같고,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 정말 위험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가 있는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우리들의 삶이 흔들려버리는 것 같고, 조금만 있으면 모든 것들이 다 망해져 버릴 것 같은 그런 상황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데, 주님께서 이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런데 이 세상은 그러한 것들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여전히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 가운데 계시고,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지금도 우리들의 발걸음을 하나씩 하나씩 인도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 만나는 그 삶을 보면 정말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똑같은 상황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고 어제 당했던 그 고난이 오늘도 당하는 것이고 오늘 당하는 그 고난이 내일에도 그대로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이 병이 좀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그 병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를 힘들게 하고 그것 때문에 내가 망해버릴 것만 같아요. 어떤 사람은 돈의 문제 때문에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돈이 돈의 문제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하고 이것이 내 삶을 전혀 그냥 가만 놔두지 않고, 나를 결국 망가뜨려서 나를 무너뜨릴 것만 같은 그런 풍전등화와 같은 그런 상황 가운데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맘몬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목적이 없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영광스러운 주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계시고 교회를 주장하고 계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담대하게 주 안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우리 주변의 위험만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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