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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6-30)

지금 와서 제 삶을 돌이켜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지만, 힘든 일도. 고통스러운 그런 순간들도 많이 있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아마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항상 성공의 가도만을 달릴 수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니고, 늘 어려움과 실패를 경험할 때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러한 실패가 저를 파멸로 인도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때 있었던 실패 때문에, 방향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오히려 더 좋은 결과로 귀결되었구나” 하는 그런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할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참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패를 하는 것, 또 어려움을 겪는 것, 그런 것들은 정말 힘들어서 그 당시에서는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될 정도였고,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저를 지탱해 주었던 힘이 있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생각하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일어설 수 있는 그런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죠.

나 자신을 바라본다고 한다면 가능성이 없어요. 나 자신만 바라보면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그 형편을 보면, 계산해보면,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어려웠던 일들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빚어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불신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신자들은 그런 기대와 소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그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것인데, 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고 하면, 정말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움직여 나가는가?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주관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할 때에야,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그저 우연의 연속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돌아가는 것이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소망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연의 연속이라고 하는 것은 목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목적이 있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으로 이 세상이 돌아간다고 한다면,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겁니다. 우연인데, 무슨 목적이 있겠어요? 우연인데 무슨 뜻이 있겠어요? 우연인데 어떤 방향이 있겠어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고, 굴러가는 대로 굴러가는 것이고, 좌충우돌하면서 이 세상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선한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그 확신은 누구에게 가능한 것인가? 오직 성도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세상이 우연히, 우연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그리고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라야, 선한 결과가 있을 것이고, 선한 목적이 있을 거라고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구절이 있는데요. 여기서 먼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할 때, “이것이 누구에게 해당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에게 해당되는가? 모든 사람에게, 이 세상 모든 인류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이 내용은 누구에게 적용되는 것인가? 누구에게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주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선한 결과가 이루어질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파멸을 이룰 것입니다. 지금은 행복한 것 같고, 지금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지금은 성공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의 종말은 결국 파멸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며,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표현이 있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선을 이룰 것인데, 무엇이 선으로 귀결되는가? “무엇이 결국 선으로 나아가는가?”라고 하는 그 질문에 대해서, 오늘 로마서 8장 28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것은 문자 의미 그대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일, 행복한 일, 성공한 경험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요.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때로는 실패와 그리고 정말 피하고 싶은 경험까지라도,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알고 보면, 결국은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거라고 하는 게, 오늘 본문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바둑이나 장기를 두게 되면, 고수들은 초보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둡니다. 저도 바둑을 하는데 저는 18급입니다. 대단히, 숫자가 크니까,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흰돌 검은 돌을 구분할 줄 알면 18급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둑을 두는 고수들이 있습니다. 몇 단, 3단, 4단, 9단 이렇게 되는 그런 사람들은 바둑을 둘 때, 내가 볼 때는 전혀 의미 없는 것에 바둑알을 둡니다. 바둑을 흰 돌, 검은 돌 번갈아가면서 두는데, 장고 끝에 고수가 어느 한 지점에 돌을 딱 놓는데, 왜 돌을 저기에 놓는지 이해할 수 없는 돌을 놓는 거죠. 그런 고수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먹히는 지점에 돌을 둡니다. 사석작전이라고 하죠. 내 돌을 거기에 놓는데, 그 돌을 놓으면 상대방이 감싸서 내 돌을 먹어버리는 겁니다. 내 돌을 이겨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석작전을 쓰는 겁니다. 고수의 바둑가를 보면, 장기를, 장기의 고수가 두는 사람들이 그 두는 움직임을 보면, 초보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수가 있는데, 그런데 나중에 대국이 끝나고 보면, 정말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죠. 아무 이유 없이 논 돌 같았지만, 이 수를 놓으면 오히려 지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수를 놓았지만, 알고 보니까, 나중에 그 대국을 이길 수 있는, 신의 묘수, 신의 한 수가 된 돌이 바로 그 돌이었고, 그 움직임이었다고 하는 것을 나중에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축구를 하는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보자들은 축구를 어떻게 합니까? 골때녀에서 축구할 때, 어떻게 축구를 하죠? 볼을 따라다닙니다. 볼을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어떻게 합니까? 볼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볼이 없는 오프 더 볼 상황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이죠. 이쪽으로 가면서 수비수를 끌고 가고, 저쪽으로 가면서 수비수를 끌고 다니면서, 볼이 움직이지 않는, 그 볼을 갖고 있지 않는 선수가 움직이는 그 움직임을 통해서, 공간을 확보하고, 그래서 치고 들어가고 티키타카를 하면서, 골을 넣는 그런 어마어마한 그런 실력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고수 정도가 아니라, 차원을 달리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과 9절 말씀에 보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게 정답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게 바른 해결책인 것 같아요. 내가 볼 때는 이것이 이루어져야 마땅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주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면, 바로 그 실패 때문에, 그 아픔 때문에,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우리를 빚어가시고 더 변화시켜주시고 영적인 유익을 주시는 그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너무나도 신나고 재미있지만, 그러나 어떤 때는 정말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는 겁니다. 그럴 때는 도무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어요. 하나님 왜 이런 일을 나에게 허락해 주십니까? 하나님 왜 이런 어려움을 나에게 주십니까? 그렇게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하는 것이고, 오늘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인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국은 선하게 이끌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모든 것들이, 심지어 악한 일,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 심지어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일 조차도 결국에는 선하게 인도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악한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전능자가 나쁜 전능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선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권한을 가진 자가 선한 자가 아니라, 악한 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축구 심판이 공정하고 선한 심판이라고 한다면, 너무나도 좋겠지만, 그런데 그 심판을 내리고, 판정을 내리는 그 심판관이 편파적이고, 돈을 받고 악하게 판정해서, 그리고 항의하면, 레드카드를 내는 그런 악한 심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선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만일 재판을 하는 판사가 공정한 판사가 아니라, 악마와 같은 판사라고 한다면, 이 땅에 정의로운 판결이 이루어질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죠. 선한 사람에게는 악한 판결을 내리고, 악한 사람에게는 무죄 방면하는, 그런 나쁜 판사가 권한을 가지게 되는 사회에서는 우리가 아무런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만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악마와 같은 권력자라고 한다면, 그 권력을 국민을 위해서 선하고 좋게 사용할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죠. 만일 악마와 같은 사람에게, 악마와 같은 사람에게 총칼이 주어진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이 군인이라고 한다면, 그 군인이 우리를 보호해 주고, 적으로부터 우리를 침입을 보호해 줄 거라고 하는 기대를 갖기보다는, 오히려 국민을 적으로 생각하고 살상하는 그런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무서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악마와 같은 사람이 경찰이 된다고 한다면, 그러면 강도를 잡고 악에서 보호해주는, 악에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고, 스포츠 단체의 임직원들이 정의롭고 선한 사람이 아니라 악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면, 선수들을 보호하고 선수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에만 급급한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악마와 같은 사람이 성직자라고 한다면, 영적으로 우리들을 착취하고, 우리들을 아주 피폐하게 만드는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될 거라고 하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가? 하나님이 만일 악마와 같은 하나님, 나쁜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선한 결말을 맺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대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에요. 좋으신 하나님이에요. 우리의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에요.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간 쓸개 다 내어주고, 자신의 몸을 갈아 넣어서 우리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그런 부모님의 마음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그 모든 일들이 결국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결국 온전하게 우리를 세우시고, 빚어가시고, 영적인 유익을 주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변화하여 이 모든 것들을 통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것이죠.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많지만, 무능한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지도자가 정말 착하고 좋은 지도자인데, 그 지도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있는 권력도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한 지도자라고 한다면, 우리들에게 어떠한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결과로 가져다주는 것이죠.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 자녀들을 사랑하는데, 그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하해와 같고, 정말 어마어마한 그 사랑을 가지고 있는 그런 부모님인데, 그 부모님이 무능하거나, 무식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만 내는 그런 잘못된 부모라고 한다면,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사실 우리 인간 부모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많지만, 안타깝게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실제로는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을 망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나는 사랑한다고 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우리 자녀들을 망쳐버렸고, 나는 이 아이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했는데, 오히려 이 아이가 자라지 못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계란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깨고 나와야 병아리가 되는데, 부모가 너무나도 조급하고, 부모가 너무나도 어리석어서, 이 아이가 빨리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란을 깨뜨렸다가, 병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계란 프라이만 돼버리는, 살리지 못하고 죽이는, 그런 어설픈 부모가 우리 부모가 아닙니까?

그게 제가 그랬어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미안해요. 그 정말 좋은 아이들을 어렸을 때, 그렇게 밝고 좋았던 그 아이들에게,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잘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들을 망쳐버렸고, 오히려 자신감을 잃게 만들어 주었고, 오히려 그들의 앞길을 막아버린 게, 어리석은 내가 아니었는가 생각하면서 너무나도 미안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 첫째 딸아이, 그러니까 미국에서, 결혼할 때 두 번 결혼식을 했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결혼식을, 한국에서 또 결혼식 했는데, 미국에서 결혼식을 하는, 먼저 결혼하는 그 결혼식장에서, 아빠와 딸이 연회 때 같이 춤을 춥니다. 미국 결혼식에서는 결혼식 마치고, 파티를 하면서 아빠와 딸이, 결혼하는 그 순간에, 제가 우리 딸아이를 안고, 딸을 보내면서 제 마음 가운데 몰려오는 게 있는데, 미안한 것밖에 없어요. 미안한 것 밖에. 그래 가지고 우리 딸아이를 향해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미안하다” 그랬어요. “미안하다.” “내가 너를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너에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것밖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게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왜냐?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선한 마음이 있는데, 우리에겐 능력이 없어서, 오히려 날마다 역효과만 나오는 거예요. 무능한 부모이기 때문에,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똑같다고 한다면, 우리는 선을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만일 하나님도 우리처럼 무능하다고 한다면, 결국 모든 것이 선하게 돌아갈 거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온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질 수가 없고, 심지어 사탄마저도 제멋대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제한해 놓은 그 영역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도록, 마치 예방주사에 그 면역 주사를 우리들에게 준다고 한다면, 그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서 일정 부분만 움직일 수 있게 하듯이, 하나님께서 사탄의 영향력도, 바이러스 면역 주사처럼 제한시켜서,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제한을 두게 만드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능력이 있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일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염려할 것도, 포기할 것도, 절망할 것도, 때로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정말 이해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국에 이것마저도 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거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도 괜찮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런 책임이 없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거니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론적으로, 팔자가 있고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의 삶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고,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큰 그림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며,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하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때, 우리는 늘 이 세상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이 충돌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풀며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세상의 법칙은 내 욕심만 챙기며 살아야 겨우 살 수 있을 것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용서하며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세상의 방법은 그러지 말고 원수를 갚고 복수하며, 통쾌하게 눌러버리라고 우리를 향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고 싶은 그런 삶을 살기보다는, 이 세상의 유혹은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 살라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 세상에 유혹에 우리가 넘어가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며 살다가, 나는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내 삶이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용서하며 살다가 나는 무시당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사명에 순종하며 살다가 내 삶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다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그게 우리 주님께서 가셨던 길이에요. 우리 주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가 있었던 것이죠. 죽음까지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끊어놓을 수 없고, 결국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게 될 때,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시고, 우리가 결국 그 주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은 줄로 믿습니다.

원하기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어떠한 상황을 만나든,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든, 도무지 아무런 해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에라도, 선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전능하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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