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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 (히 11:32-40)

믿음은 언제 빛을 발휘하게 될까요?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 정말 참 좋구나.” 믿음이 정말 너무나도 유익하다고 하는 사실을 언제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위기 가운데 알 수 있습니다. 촛불을 켜놓으면, 그 촛불은 어둠 가운데 있을 때에 그 빛이 비치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위기의 순간이 될 때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정말 위대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게 될 겁니다. 마치 촛불을 대낮에 켜 놓으면, 촛불이 켜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밝은 대낮에는 촛불을 켜 놓아봤자, 별로 의미가 없이 느껴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저녁때가 되면, 그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위기의 순간이 다가올 때, 우리의 믿음은 정말 놀라운 힘과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치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과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석 위에 세운 집, 그리고 모래 위에 세운 집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 두 집은 평상시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반석 위에 세운 집에도 들어가 살 수 있고, 모래 위에 세운 집에도 충분히 들어가 살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홍수가 나고, 비가 내리고 우기가 되면 그때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혹시 여러분, 동영상을 통해서 중동지방에서 종종 발생하는 와디라고 하는 곳에 물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그런 동영상을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보여드리고는 싶지만, 요즘 하도 저작권 문제가 문제가 많이 되기 때문에, 제가 보여드리지는 못하고, 나중에 오늘 집에 가셔서 동영상을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홍수. 지금 찾지 마시고, 그래서 검색해 보시면 맑은 하늘 아래 좀 괜찮은 것 같은데, 갑자기 어느 곳에서부터 물줄기가 막 쏟아집니다. 그곳이 어디냐면 바로 우기가 되면, 저 상류에서부터 물이 쏟아져 내려서 밑으로 흐르는 것인데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모래 위에 세운 집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중동 지방에 있는 바로 그 “와디”라고 하는 곳에 세운 집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와디”라고 하는 곳에 집을 세워 놓으면, 평상시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데 우기가 되고 상류 지방에서 홍수가 나게 되면, 물이 세차게 흘러내려와서, 결국 그 집은 다 파손이 되어 버리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죠. 똑같은 집인 것 같지만, 그런데 우기가 되면,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차이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열 처녀의 비유가 있는데요. 기름을 준비한 다섯 명의 처녀와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5명의, 또 다른 5명의 처녀가 있는데, 그 10명의 처녀들은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언제 신랑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같이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같이 사이좋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처럼 지내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밤이 되고 신랑이 왔다고 하는 사실을 듣게 되었을 때에, 신랑이 왔다고 하는 그 기쁜 소식 가운데,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촛불을 밝힐 수가 없는 겁니다. 등불을 밝힐 수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기름을 준비한 사람들은 등불을 밝히 들고, 그리고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간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평상시에는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되면, 그 모습이 완전히 180도로 달라지게 될 겁니다. 인생의 위기 가운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과는 달리 반응하게 될 것이고,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함께 읽었는데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불리는 책이고,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앞부분에서는 그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명씩 한 명씩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모세의 믿음에 대해서, 여러 믿음의 위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우리는 지난주에는 라합의 믿음에까지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그 이후의 내용들을 설명하면서, 오늘 본문은 그 믿음의 사람들을 일일이 하나씩 하나씩 다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그 믿음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 가운데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이제는 뭉뚱그려서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하려고 하면 종이가 모자라겠죠.

그래서 이제는 요약하면서, 믿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위기 가운데 승리할 수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설명하고 있는 가운데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고 하는 점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어떤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냐면, 이 믿음의 사람들은 아주 위대한 일을 이루어냈다.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2절부터 34절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했다. 믿음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분들은 누구의 이름들이 떠오르십니까? 믿음으로 나라를 이긴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수많은 전쟁의 영웅들이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지 않았겠습니까? 기드온 사사, 바락과 같은 사람, 삼손과 같은 사람, 입다와 같은 사람, 다윗과 같은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서 전쟁터에 나갔고, 그 전쟁터에서 놀랍게 승리하는 그 모습을 보여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를 행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누가 생각이 나십니까? 저는 요셉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요셉의 경우는 어떻게 했습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악을 행하자고 유혹할 때에 믿음으로 의를 행한 거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약속을 받은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고, 이삭이 약속을 받았고, 야곱이 약속을 받았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사자들의 입은 누가 막았습니까? 다니엘이죠. 다니엘은 기도하는 가운데, 모함을 받아서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그리고 그 굴 속에 있는 사자들은 며칠씩 굶주리면서 잡아먹기 위해서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믿음으로 사자의 입이 닫혀서, 죽지 않고 살아나는 놀라운 그런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불의 세력을 멸한 사람은 누굽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의 세력을 멸하였던 것이죠. 그들은 신앙을 지키다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기로 했다가, 결국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는데, 그 풀무불 가운데서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풀무불마저도, 불의 세력마저도 그들을 건들지 못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칼날을 피한 사람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된 사람,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친 사람,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사사들과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이런 환란과 전쟁 가운데서 칼을 피하기도 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약했던 사람들이 강해졌던 그 모습을 보여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만일 보통의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이 순간에 완전히 무너져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상황 가운데서 좌절해 버리는 것이죠. 조그만 어려움이 닥치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쓰러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는 것은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무너지는 것들이죠. 이 세상의 것들은 영원한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곧 무너져버리는 것들이죠.

예를 들자면, 돈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은 있으면 든든해 보이는 겁니다.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나쁜 것이 아니죠. 우리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돈이라고 하는 것을 의지하고, 그것에 따라서 살게 되면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우리의 의지가 돈 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망하게 되는 것이, 권력도 마찬가지고 건강도 마찬가지고 지혜와 지식도 마찬가지고 친구와 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들에게 유익하기는 하나, 나쁜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유익한 것이기는 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고, 우리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기는 하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고, 끝까지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시편 146편 3절 4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의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썩어질 것 무너질 것들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결코 흔들릴 수 없는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놀라운 일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죠.

다윗은 어떻게 해서 골리앗을 이겼나요?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이런 사람은 한번 들어봤었어야 할 텐데요. 말콤 글래드웰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주 유명한 경영학자인데요. 이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하고 <티핑 포인트>라든가 첫 <첫 2초의 힘, 블링크>라고 하는 그런 말들을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말콤 글래드웰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 가운데 <다윗과 골리앗>이라고 하는 책도 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다윗과 골리앗이라고 하는 책을 보면,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이겼는가를 분석하면서, 이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골리앗이라고 하는 그런 강자도 약점이 있기 마련이고, 다윗은 약자였지만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서,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그 강점을 가지고, 강자지만 그 강자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결국 그를 쓰러들였다고 분석합니다.

참 흥미로운 주장인데요. 이 사람의 분석에 의하면 골리앗은 시력이 별로 안 좋았을 거라고 그렇게 분석합니다. 멀리서 다윗을 보면서 다윗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는, 그런 시력이 부족한 것이고, 그리고 몸집이 비대해서 몸이 좀 우둔한 그런 것들을 분석하면서, 결국 이 다윗은 어떻게 해서 골리앗을 이겼는가? 강자가 만들어 놓은 강자의 법칙에 따라서,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자신의 방법으로 전쟁을 해서, 결국 골리앗을 쓰러뜨렸다고 하면서, 이 말콤 글래드웰이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그러니까 여러 약자들에게도 소망이 있고, 좀 이렇게 연약한 자들에게도 늘 약자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약자 가운데 장점들이 있는데, 그런 걸 살려서 강자를 물리쳐라. 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 세상의 모든 삶의 과정 가운데서 어마어마하게 다가오는 그 강자가 있을 때, 그 강자의 법칙에 따라 싸우면 질 수밖에 없으니까, 강자의 법칙을 무시해버리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말콤 글래드웰이라고 하는 사람이 했습니다.

아주 지혜로운 조언이라고 생각이 되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참된 정말 좋은 지혜의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그가 무엇인가 대단한 작전을 잘 세웠고, 자신만의 장점을 잘 찾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다고 하는데, 성경은 그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거예요. 다윗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은 벌벌 떨고 있었어요. 골리앗 앞에서 무서워하고, 그 앞에 감히 나가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한 반면에,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골리앗이 보이고, 블레셋의 군대가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골리앗 앞에 나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순간에 골리앗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죠. 아무리 골리앗이 크고 강하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시고 도우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다윗은 담대하게 골리앗 앞에 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사무엘상 17장 45절에 보면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에 여호와의 이름, 곧 내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나아가노라.” 만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다윗은 그 앞에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위대한 일들을 해내는 거예요. 그것이 오늘 히브리서 11장에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한 면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낸다.

그런데 두 번째 부류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이번에 나오는 두 번째 부류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가? 위대한 일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다윗처럼 골리앗을 쓰러뜨리거나, 어마어마한 업적을 나타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무엇이냐 하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그런 상황 가운데서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고 견딜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5절부터 3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가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실현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족을 잇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믿음이 있다고 해서 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냐면, 고난을 당하는데 그 고난을 인내할 수 있었다는 거죠. 참아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 다윗처럼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은 아닐 겁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니엘처럼 전부 사자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현과 고통을 참아낼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잘 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박해를 당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박해와 고통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어서 정말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죠. 그렇게 견디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이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될 텐데, 그런데 믿음이 없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그런 순간에 믿음으로 견디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어떻게 해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견딜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는 악이 승리하는 것 같고,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뒤죽박죽인 것 같고 그래서 이 세상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믿는 겁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그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주권 가운데, 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그것 때문에 견딜 수가 있는 겁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땅에 떨어지는 것인데, 지금 내게 닥치는 그런 고통과 고난과 아픔들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컨트롤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기꺼이 견딜 수가 있는 것이죠. 요즘 유명한 프로그램 중에 <가짜 사나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가짜 사나이> 이근 대위가 하는 그런 <가짜 사나이>, 뭐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군인으로서 유디티(UDT) 훈련을 받고 네이비실(Navy Seal) 훈련을 받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면, 정말 혹독한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혹독한 훈련을 하는데 대부분 다 견뎌내고 있어요. 왜 견뎌낼까요? 막 바닷속에 처넣기도 하고, 막 죽일 것 같기도 하고 하는 그런 엄청난 훈련인데, 어떻게 그런 힘들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욕을 들어가면서까지 비인격적인 대우를 당하면서까지도 견딜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지금 훈련을 받고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고, 지금 내가 당하는 이 혹독한 것들은 나를 죽이기 위해서 이러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의 과정 가운데 있으며, 결국 이런 훈련의 과정이 끝난 다음에는 내가 좀 더 강인해지고, 서바이벌 능력이 생기고, 그리고 우리 같이 협력하는 그런 힘도 생기고 하는 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죠.

근데 그게 아니라,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납치를 당해서, 그런 일을 당한다면, 공포스럽고 견딜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컨트롤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예요.

의사가 환자의 배를 가릅니다. 그런데 그 배를 가를 때 환자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거예요. 왜? 의사가 내 배를 가르는 것은 나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뱃속에 있는 암덩어리를 꺼내기 위한 거라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거죠. 믿음의 사람들은 왜 견딜 수 있는가? 그것은 이 세상이 그냥 우연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가장 지혜로우신 그 하나님께서 천지를 운행하시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 세상에 돌아가는 것이 단 하나 참새 한 마리까지라도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컨트롤 가운데 모든 것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사람 그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왜 이 사람 믿음의 사람들은 견딜 수 있습니까? 바로 이 세상을 통치하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냥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분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망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게 될 때, 우리는 시련을 당하고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무엇이 선을 이룬다고요?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선을 이룬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좋은 것만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승리만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도 선을 이룬다는 거예요. 합격하고 건강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만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낙방하고 질병 가운데 있고, 가난과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죠.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과 아픔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견딜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알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히브리서 십이장 1절 2절의 말씀이 우리들의 결론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지금까지 히브리서를 살펴보면서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 믿음의 증인들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습니까? 원하기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들을 회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어떠한 일들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보이는 장애물들, 내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그런 엄청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 산들, 그런 것들을 바라보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온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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