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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평결 (롬 8:1-8)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낼 것인가?” 이러한 탄식의 절규는 바울 사도의 절규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 자기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인 사람인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이렇게 울부짖은 것이죠. 겉으로 보면 괜찮은 사람 같고, 멋있는 사람 같지만 하지만, 자기 자신의 실체를 들여다본다면, 썩은 내가 풀풀 풍기고, 정말 더러운 모습으로 가득 차 있는 인생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탄식하며 울부짖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인생이로다.”라고 외치는 것이죠. 거룩하게 살고 싶은 열정이 있지만, 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넘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현실은 늘 사탄이 좋아할 일들만 하고 있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죠.

이렇게 우리 자신이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그 문제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저게 문제야”라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그게 문제인 줄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훌륭한 감독은 어떤 감독일까요? 어느 팀이 실력이 좋지 못해서, 자꾸만 패전해서, 그래서 감독을 경질하게 되고, 새로운 감독이 왔다고 한다면, 그 감독은 지금 우리 팀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분석해야 합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왜 우리는 승리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도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놓은 팀들인데,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모아서 구성한 팀인데, 왜 우리는 승리하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를 진단해야 되는데, 문제를 정확히 진단할 때에, 그럴 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방책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첫 단계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아는 것이 모든 해결책의 첫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희랍의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가 한 유명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그게 뭔지 아십니까? (“네 자신을 알라.”) 기가 막힙니다. 일반 상식이 대단하십니다. “네 자신을 알라.” 네 꼬라지를 알라 이 말이죠. 네 자신을 알라. 하지만 사람들은 나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는 겁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모르고, 진단할 줄 모르는 겁니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장 칼뱅 선생은, 요한 칼빈 선생님은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이죠. 마치 깜깜한 방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면,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물을 분간하기도 어렵고, 무엇이 무엇인지 제대로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줄기 햇볕이 방 안에 비추기 시작하면, 그러면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이 있는지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볼 때, 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거죠. 거룩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 그 높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목격하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라고 하는 사실을,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이 완벽한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바리새인이었고,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을 아주 철저하게 지켰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리와 창기들, 그리고 암 하아레츠라고 하는 일반 평민들에 비해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잘 지켰기 때문에, 그런대로 나 자신이 괜찮은 줄 알았어요. 빌립보서 3장 4절에서부터 6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가 옛날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 사도가 예전에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냐면, “나는 완벽하다” 이 말이에요. 나는 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켰고, 이 정도면 됐지 않았느냐? 이 정도면 어디 내놔도, 꿀릴 게 없다고 완벽한 모습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교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빛 되신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된 거죠. 예수님께서 그 바울 사도에게 나타나셔서, 음성을 들려주실 때, 바울 사도의 눈이 멀고, 그래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그런 심각한 상태가 되어 버렸지만, 놀랍게도 바울 사도는 그때 자기 자신이 누구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이죠. 그래서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내가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종종 저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데요. 그분들이 하는 말 가운데는 “우리 남편은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에요” 하는 그런 말을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저는 그분들이 아주 참 의롭게 정직하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나쁜 사람들이 있고, 사기를 치고 또 뒤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적어도 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했었기 때문에, 부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그 말은 아직 하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나는 남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았고, 남에게 10원짜리 한 장 피해 준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하나님이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야 돼요. 우리에게 질병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감기에 걸리면, 그 감기는 쉽게 낫습니다. 왜 그렇죠? 감기에 걸리면, 증상이 바로 나타나거든요. 콧물이 나오고, 기침을 하고, 열이 나고, 몸살기가 있고 하니까, “아, 내가 감기에 걸렸구나” 하면서, 대책을 세웁니다. 일하던 거 잠시 중단하고 쉬기도 하고, 약을 먹기도 하고, 또한 찜질을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병을 낫게 하는 거죠. 왜냐하면 증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상이 없는 경우에는 위험할 수가 있는 것이죠. 증상을 모르면, 그러면 내가 병이 있는 줄 모르는 겁니다.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게 되는 거죠. 심각한 질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질병이 가장 심각한 거죠. 예를 들자면, 암이라고 하는 질병이 바로 그렇습니다. 내 안에 위암이 있고, 대장암이 있고, 여러 가지 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괜찮은 줄 알고, “나는 괜찮구나” 생각하다가, 어느 날 말기가 되어서야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 너무나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늘 통지를 보냅니다. 여러분 통지 받으셨습니까? 받아요. 당신은 50대가 되었으니, 대장암 검사 좀 하세요. 당신은 지금 몇 살이 되었으니, 무슨 암 검사 좀 하세요. 자꾸만 검사하라고 합니다. 왜 검사하라고 합니까?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까,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인 것이죠. 내가 그냥 생활할 때는 모르는데, mri를 찍어보고, 검사를 해보고, 그렇게 할 때, “나에게 이런 질병이 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 알게 되면 치료받을 수 있고, 치료받으면 나을 수가 있는 거예요.

우리 교우들 중에도 보면 많은 분들이 암 진단을 받아서, 그래서 진료를 받고 수술을 하기도 하고 해서, 그래서 낫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요즘에는 암이라고 하는 것도 크게 무서운 질병이 아니더라고요. 거의 90% 이상이 다 치료가 되는 그런 병인데, 미리미리 진단할 수만 있다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치료가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검사를 받았는데, 내 안에 암이 있다고 하는 사실이 판정이 나면, 그게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좋아요! 암이 있는데도, 발견하지 못하는 게 위험한 거죠. 암이 있는데도, 진단하지 않으면, 대책을 쓸 수 없으니까, 위험한 것이죠. 어차피 가지고 있는 암인데, 그런데 그것을 진단해서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치료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가를 알았습니다. 마치 영적인 mri를 실행한 것이나 다름이 없고, 그리고 그 영적인 mri를 실행했을 때,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한 절망적인 상태의 영적인 상태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진단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오호라 나는 권고한 사람이로다” 그렇게 진단해 버리고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우리들에게 놀라운 치료책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1절 2절 말씀 한번 다시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으니라.” 영적인 암 환자가 되어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라고 외쳤는데, 그런데 그것으로 절망적으로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치료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방될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나을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어떤 방법으로 나을 수 있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을 것이다. 오늘 설명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그런 치명적인 영적인 질병으로부터 치료받을 수 있다고 하는 의미인 것이죠. 영적인 의사이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데, 완치시켜 주시기 때문에, 이제는 죽지 않는다. 이제는 걱정할 필요 없다. “이제는 완전히 치료되었다”라고 선언해 주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영적인 질병을 주님께서 치료할 수 있는지, 오늘 말씀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누가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살 수 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영원히 살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인데요. 이 말씀의 의미는 어떤 의미의 말씀입니까?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 안에 있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다는 거예요? 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 옛날 노아의 홍수 때와 같습니다. 얼마 전에 힌남노라고 하는 태풍이 몰아쳐서, 하룻밤 비가 내렸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물난리가 나고, 사람이 죽고, 그리고 모든 재산이 무너져 버리는 그런 엄청난 피해가 있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 때에는 하루 비 온 것이 아니라, 40일 40 주야를, 밤낮으로 비가 쏟아져 내리게 되었을 때,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심지어 산까지 물에 잠기는, 그런 엄청난 그런 비극이 전 세계에 퍼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누가 살아났습니까? 그림을 한번 보면서 보면 좋겠는데요. 그때 살아난 사람은 누가 살아났어요?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노아는 이 홍수가 올 걸 대비해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를 열심히 만들어 가지고, 산 꼭대기에 만들어 놓았는데, 그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다 살았어요. 심지어 짐승조차도 그 안에 들어가면 살았어요. 하지만 그 방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다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 가운데서 기억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라고 하는 방주 안에 있어야, 예수님 안에 있어야, 우리가 용서받고, 예수님 안에 있어야 구원을 받고, 예수님 안에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로마서 8장 1절 2절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무엇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결코 정죄함이 없다”라고 선언하고 있는데요. 우리 교회에서 쓰는 말들은 늘 일반인들이 쓰는 표현하고 좀 달라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정죄”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가요? “정죄” “정죄”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카타크리마”라고 하는 그런 단어입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이냐면, 죄가 있다고 판결을 내리는 거죠. 그러니까 재판정에서를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을 심판한 다음에 재판한 다음에 당신은 죄가 있습니다. 사형, 무기징역 이렇게 죄를 확정하는 것이 정죄인 것이죠.

그런데 그 정죄가 누구에게 없다? 로마서 8장 1절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유죄 판결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결코 그런 죄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죄하다고 판결을 받고 풀려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게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게 될 때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아요? 우리 교인들은 좋아요. 그래요. 그런데, 불신자들은 아주 기분 나빠합니다. 우리가 그냥 복음을 전하면 “좋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아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는 게 당연해요. 받지 않고 아무 일도 없다고 하는 게, 좋아요? 어느 게 좋습니까? 경우에 따라, 다릅니까? 어떤 면으로는 심각한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요? 나쁜 사회일까요? 좋지 않아요. 어느 학급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아주 불량 학생들이 있어서, 공부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커닝을 하고, 다른 동급 학구들을 괴롭히고, 그리고 아주 왕따를 시키며, 또 떠들기도 하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상관하지 않고, “괜찮아” 그냥 내버려 두어서, 그 학생들 때문에, 다른 선량한 학생들이 피해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한다고 한다면, 그래도 그렇게 나쁘게 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이 없다고 한다면, 그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우리가 장사를 하고 있는데 깡패들이 나타나서 돈을 뜯어가고, 아주 강매를 하고, 그래서 엄청나게 우리 상인들을 힘들게 만드는데, 그래서 그 조폭들이 판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해서, 그 조폭들이 활개를 쳐서, 정말 선량한 시민들, 상인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되는 거죠. 말도 안 되는 거죠. 정말 나쁜 짓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고 있고, 죄를 지어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그렇게 모든 나쁜 짓을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잡아 가두지 않는, “나, 그 사람 얼굴이 이 사람 얼굴인지 모르겠다” 하고 무죄 방면시켜버리고, 이 소리가 저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무죄방면시켜버리고, 그냥 죄가 없다고 이야기해버리면, 그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복음을 들려줄 때 불신자들은 감사하고 기뻐하기보다는 화를 내는 겁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무죄 평결이 이루어지고 살아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무주의 평결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이 말씀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퉁치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냥 죄를 지었는데도 아무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것은 당연해요.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베푸시고, 악을 행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벌을 주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공평함이 없이, 정의로움이 없이, 악을 행했는데도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어준다고 한다면, 그런 하나님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불신자들이 불만을 내는 이유는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불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공평해 보이기 때문에 불만을 가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왜 그렇게 불공평합니까? 하나님이 왜 그렇게 정의롭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나쁜 하나님니까?”라고 하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나쁜 하나님, 불공평한 하나님, 정의롭지 못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 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받아야 될 그 죗값을 “그냥 없는 걸로 하자”라고 한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당해야 될 그 죗값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될 그 죽음을 예수님께서 지시고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려내신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짐을 다 지시고, 그 죄의 엄청난 형벌을 스스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모든 인류에게 누구든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이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종종 사면령을 내립니다. 815 사면을 하든, 성탄절 사면을 하든 아니면, 부처님 오신 날 사면을 하든 사면령을 종종 내리는데요. 특별사면 말고, 일반 사면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경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운전면허를 취소당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취소당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고 했던 사람들,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사면령을 내리는 거죠. 음주운전을 하고 사고를 냈는데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게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죽임을 당한 그런 피해자가 있고, 그런 무질서한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어지럽혀지기 때문에, 당연히 처벌해야 되는 것이고, 당연히 벌을 주어야 되기 때문에, 면허 정지까지 시키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면허 정지시키는 것은 정의였는데, 그로 인해서 그 가정이 너무나도 힘든 겁니다. 운전을 해야 생계유지가 되는데, 생계유지가 안 돼요.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자녀들이 고통을 당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이 사람들에게 용서를 해주어서, 이제는 다시는 그런 잘못하지 말고 “이제는 성실하게 살라”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사면령을 내려줄 때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면령을 내려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사면령을 악용해서 “음주 운전해도, 언젠가는 다시 용서받지 뭐” 하면서 계속해서 음주운전을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큰 잘못이겠죠. 그런 의미가 아닌 거죠. 그 목적은, 사람들이 그렇게 악용하는 일들이 있지만, 정부에서 그렇게 사면을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정말 잘못을 했다고 할지라도 불쌍히 여겨주어서, 그래도 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해 주신 그 구원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다 한결같이 실패하고, 한결같이 다 망하는 길로 갔어요. 그래서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다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는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불쌍하게 보셨어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쌍하게 보시고, 그래서 너희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주시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로 하여금 대신 용서받게 해 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죄를 지었는데, 용서해 준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내게 주어졌다면,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원하여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만일 불신자들이 우리를 향해서 따지고 들자면, 어떻게 죄지은 사람을 그냥 용서해 주느냐고? 우리를 향해서 따지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항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답해야 됩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죄지은 사람을 이렇게 용서해 준다고 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나 같은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일이죠. 그런데 그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셨어요. 그게 말이 안 되는데,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거예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것이고, 놀랍게도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일이 생긴 것이고, 나와 같은 죄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선생님처럼 덜 죄를 지은 사람은 더더욱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해줘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도대체 예수님 안에 있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도대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공간이 아니잖아요? 장소가 아니잖아요? 어떤 방이 아니잖아요? 예수님이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이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수님인데,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예수님 안에 있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교회를 열심히 다니라고 하는 말일까요? 도대체 예수님 안에 있는다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로마서 8장 9절에서 우리가 볼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9절의 말씀 금방 읽었는데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약간의 도표를 만들어서 설명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우리들의 안에, 너희들의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곧 무엇과 똑같다? 하나님의 영 안에 내가 있는 것이나 똑같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고 하는 말은 뭐냐면, 내 안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면,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영 안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라고 하는 말이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말과 똑같고 같은 말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영접하면, 그러면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는 것과 똑같다. 이 말이에요. 이해가 되십니까?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는 겁니다. 어떻게 모시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내 마음대로 살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어요.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살았어요. 육체의 정욕에 따라 살았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내 마음의 왕좌에 있어서,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사는 게 예수님 안에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제 결혼식이 있었어요. 누구의 결혼식이죠? 사랑하는 우리 김성규 형제, 또 나혜미 자매의 결혼식이 있었어요. 너무 이쁘더라고요. 그런데 그 결혼식 할 때 어떤 서약을 했냐면, 서로가 서약을 하면서 결혼을 했는데, 피차 복종하는 서약을 하고 결혼을 한 겁니다. 총각 때 처녀 때는 어떻게 살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살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 겁니다. 하지만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아닌 남편의 뜻에 복종하는 게 결혼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아내의 뜻에 복종하는 게 결혼이에요. 지금까지는 총각 처녀로 살았을 때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내 몸도 내 몸이 아니에요. 아내의 뜻에 따라야 되는 몸이에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에요. 남편의 뜻에 따라야 하는 몸이에요. 그게 남편을 받아들인 것이고, 아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예수님 안에 거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인데요.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죠.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의 왕좌로 모시고, 주님의 뜻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가 많이 오해를 해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만 하면,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오해한 것이죠. 계속해서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그런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들을 하면서도,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교회를 다니니까, 구원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로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나의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제는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악한 일을 하면서,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계속 탐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나태한 삶을 살면서, “나, 예수님 믿어. 나, 교회 다녀”라고 하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합니다.

완벽해져야 한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죠. 우리는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여전히 부족한 것뿐입니다. 실수하는 게 많고 넘어지는 게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죄가 없다고 판결을 받을 수 있겠는가? 누가 영적인 그런 암 진단으로부터 치유함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고, 즉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이제 주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간 사람이 그런 무죄 판결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완벽하게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늘 넘어지는 사람들이기에, 결국 이 예수 안에 있는 자만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소망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종교는, 종교라고 하는 이름을 가졌든, 아니면 이 세상에 성공 신화이든, 그 어떤 것이든,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노력하면 될 것이다”라고 하는 말을 합니다. 어쩌면 그럴듯한 말이긴 한데, 그런데 해보셨잖아요?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오호라. 나는 비참하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또 실패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때 우리는 주님 앞에 다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또 넘어졌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심령을 고쳐 주옵소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보혈의 피로 씻겨 주옵소서. 신실하게, 신실하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닫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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