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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과 시기의 불신앙 (시 53:1-6)

Wayne Dayer라고 하는 작가가 있는데요. 그 사람이 쓴 Your Sacred Self라고 하는 책에 보면 우화가 하나 기록돼 있습니다. 어떤 우화냐면, 엄마의 뱃속에 들어 있는 쌍둥이 태아가 있는데, 그 쌍둥이 태아가 서로 엄마의 자궁 속에서 대화하는 그것을 상상해서 쓴 그런 우화입니다.

한 아기가 다른 아기에게 다른 태아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출산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믿니?” 그러자 다른 태아가 대답을 했습니다. “그럼 믿지. 출산 이후에는 분명히 또 다른 삶이 있을 거야. 지금 우리가 이 자궁에 서 있는 것은 출산 이후의 삶을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이겠지.” 그러자 다른 태아가 대답을 했습니다. “말도 안 돼. 출산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니, 나는 그거 도대체 믿을 수 없어. 도대체 어떤 또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거야?”

그 말에 또 다른 태아가 대답을 합니다. “몰라. 나도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여기보다는 훨씬 더 멋진 세상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아마 거기에서는 찬란한 빛이 비칠 것 같아. 우리들은 그곳에서 우리의 다리로 걸어 다닐 것이고, 우리의 입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여기서는 할 수도 없는, 그리고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런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러자 대답을 합니다. “어떻게 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수가 있지? 우리가 걸어 다닌다고? 우리가 입으로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다고? 그럼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지기도 하고, 우리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 수도 있다고 하는 말이야? 정말 말도 안 되는 이런 소리 좀 하지 마. 잘 들어.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이 탯줄 때문이야. 이 탯줄이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거야. 얼마 뒤에 우리가 출산의 과정을 겪게 된다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자궁이란 세상에서 빠져나가게 될 텐데, 그것으로 우리들의 인생은 끝이야. 더 이상 이 짧은 탯줄이 우리들에게 영양을 공급해 줄 수도 없고, 이제는 우리의 생명은 끝나는 거야. 이 바보야.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살아있는 동안에 마음껏 생을 즐겨.”

그러자 다른 태아가 대답을 합니다. “아니야. 나는 출산 후에는 지금과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릴 거라고 생각해. 그때가 되면 아마 탯줄은 아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다른 태아가 이야기를 합니다. “말도 안 돼. 만일 출산 후에 우리 새로운 세상이 있다고 한다면, 출산으로 인해서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단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온 것이 없지? 출산으로 모든 게 다 끝나버리는 거야. 지금까지 돌아온 사람이 없잖아.” 그러자 다른 태아가 대답을 합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출산 뒤에는 우리가 엄마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 엄마가 우리를 돌보아 줄 거야.” 다른 태아가 말합니다. “엄마라고? 너는 정말 엄마의 존재를 믿는 거니? 엄마가 있다는 증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어? 엄마가 있다고 한다면, 왜 엄마는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 거야? 엄마가 있다고 하는 증거도 없으면서, 엄마의 존재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그러자 다른 태아가 대답을 합니다. “그래. 나는 엄마를 직접 내 눈으로 보지는 못했어. 하지만 엄마는 우리 주변 어디에든지 계시는 것 같아. 어쩌면 우리가 엄마의 품 속에 있는지도 모르지. 엄마는 너무나도 커서, 우리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일 거야. 우리가 지금 이 자궁에서 살아가는 것도 엄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태아가 대답을 합니다. “그래? 나는 엄마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른 대화가 대답을 합니다. “아니야. 나는 비록 엄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따뜻한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엄마가 내게 말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고, 가만히 묵상하고 귀를 기울이면 엄마를 느낄 수 있을 거야.”

웨인 다이어라고 하는 사람은 크리스천 작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우리들의 삶에 아주 유용한 우화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다이어가 쓴 쌍둥이 태아의 우화에 나오는 첫째 태아처럼,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나도 쉽게 단정 지어버리고, 그리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 편 53편 1절의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만져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쉽게 단정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데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불평과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면서 시기와 질투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고 계시고, 사실은 마치 엄마의 자궁 속에서 그 두 태아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그렇게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 속에 있다고 하면, 가장 편안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전쟁에 포성이 울린다고 할지라도, 엄마 안에 있으면 엄마의 품 안에만 있으면 전혀 두려울 것이 없고, 그 안에서 평안히 잠을 잘 수가 있는데,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그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어리석은 없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간다고 하면 놀라운 축복이 있는 것이고, 담대한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인데,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두려움 가운데 살아간다고 하면, 그리고 불평과 원망 가운데 살아간다고 하면, 그런 인생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인생이라고 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우리들의 삶과는 그렇게 다른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도 역시 힘들고 어려웠어요. 그들의 삶도 고난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고난의 순간 가운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견뎌냈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이라고 하는 그 사람도 엄청난 고난과 아픔 가운데 있었어요. 엄청난 질병으로 고통을 당했고, 엄청난 재산에 손실을 당하면서 자녀들을 잃어가면서, 엄청난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연단을 통해서 나를 정금같이 빚어 가는 것이고, 그러한 연단을 통해서 우리의 그 상처를 통해서 진주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그 순간에도 오히려 감사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믿음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믿습니다.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의 삶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형제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팔려버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그런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거기서 절망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그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리라고 한다면 그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면서 그곳에 있는 모든 곳에서 형통한 삶을 살게 되었던 줄로 믿습니다.

다윗도 또한 마찬가지였는데요.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그는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다녀야만 했습니다. 그 칼날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친구들로부터 배신을 당해야만 했던 삶이었고, 모든 물질들이 떨어져서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언제 칼날이 날아들지 모르는 그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다윗은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시편 23편 1절의 말씀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많이 있었어요.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족한 것 투성이었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그냥 우연히 우리에게 다가오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고난의 길 가운데, “내가 사망의 음침한 길을 골짜기를 지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죽이기 위한 골짜기가 아니라, 결국에는 그 길을 통하여 쉴 만한 물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며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간 줄로 믿습니다.

시편 18편 1절 2절 말씀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이시오. 나의 구원에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거나,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그런 분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나아오는 자마다 영접하시고 돌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10장 13절 말씀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인가?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것인가? 무엇인가 대단한 권력이 있고, 빽이 있고, 대단한 무엇인가를 자랑하는 사람들, 엄청난 공을 세운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의 그 모습을 보고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빽도 없어도, 가진 게 없어도, 힘에 부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르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영접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믿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몇 년 전에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었을 때 요즘에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마는 중동지역 바레인을 다녀왔던 어떤 메르스 확진자가 중동지방에 다녀오고 난 다음에 걱정이 돼서 보건당국에 전화를 했습니다. 자신이 바레인에 다녀왔는데, 메르스가 걱정이 되니까, 검사를 한번 받아보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별 반응이 없더래요. 검사를 좀 받아야 되겠다고 하는데, 아무런 그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큰둥하게 반응을 보이는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무슨 얘기를 했냐면, 우리 친척이 청와대에 고위직에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리겠다고 했더니, 그때서야 비로소 검사를 해줬다는, 지금은 선제적으로 검사하고 그러고 있는데, 그런데 어쩌면 그런 게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 같아요. 우리들의 힘없는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 않고, 무시당하고 관심도 받지 못하는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우리를 보시고 돈 많은 사람인가? 공부 좀 한 사람인가? 괜찮은 사람인가를 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미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우리 영접하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약속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그냥 혼자 나 혼자 불평만 하고 원망만 하고 왜 인생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가 그렇게 절망만 하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불평만 하고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시기하고 더 질투하고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영접해 주실 그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주님 앞에 찬송하고 기도하고 주 앞에 엎드리는 믿음의 일꾼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주님이십니까?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모든 것을 다 버리셨어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 그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를 항상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언제든지 받아주시고 용납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인데요.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통치 가운데 다 사용하셔서 결국은 선한 길로 마침내 복의 길로 우리를 빚으시고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좋은 일이 있든 슬픈 일이 있든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오늘만이 아니라 1년 365일 늘 감사와 찬송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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