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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와 불의의 싸움

<한산: 용의 출현>, 솔직히 말해 별로였다. <프리즌 브레이크>, <24시>, <CSI> 같은 미드를 즐기던 내게, <한산>은 긴장감이 떨어진 밋밋한 전개로 보는 내내 약간의 지루함마저 있었다. 그냥 일본을 무찔렀다는 국뽕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즐거움이 있을 정도뿐이었다. 거북선의 머리가 일본 배를 뚫어버리는 아이디어 등 신선한 시도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소소한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플롯일텐데, 그게 많이 아쉬운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 자체보다도 그 영화의 대사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잡았다. 그것은 이 전쟁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이순신의 대사였다. 단연코 이 대사는 엄청난 감동을 준다.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묵직한 메시지이다. 실제적으로 역사 속의 이순신이 이런 말을 했을 리 알 수 없지만, 감독은 이순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불의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말 것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싸워야 할 의의 싸움이 있고, 그리고 그 싸움에서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우리는 불의와의 싸움을 싸울 전사가 된다.

그런데 과연 “의”는 무엇이고, “불의”는 무엇일까? 불의를 무찔러야 할 의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데, 그 “의”가 무엇이고 무엇이 “불의”인지에 대해선 질문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 편이 의로울 뿐이다. 일본은 그냥 악이고, 우리는 무조건 의다. 그래서 일본을 배신한 항왜(降倭)는 의롭다.

우리는 먼저 무엇이 의이며, 불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중세 시대에는 순진한 성도들이 십자군 전쟁을 이용하여 탐욕을 추구하려는 자들에 의해 이용당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점거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을 악이라고 규정해버렸을 때, 그들을 죽이고 전쟁을 하는 것은 의로운 전쟁이었고, 신앙의 행위로 포장되었다. 우리 군인들은 제한된 정보 속에서 우리 국민이 빨갱이며 간첩들이기에 죽여야 한다는 의와 불의의 싸움에 투입된 적이 있다. 그래서 시민들을 무참히 총칼로 짓밟으면서도 정당하다고 생각했었다. 시민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절규하던 자는 오히려 악인일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의 나치도 그들 나름대로의 의와 불의의 싸움을 했었다. 그들은 악을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류를 위해 의로운 싸움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역사 속에서 부재(不在)한 것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런 싸움이었다. 역사 속에서 부재한 것은 무엇이 의이고, 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싸움 속에서 그런 질문은 없다. 하지만 참된 크리스천은 무엇이 의(義, 옳음)인지를 묻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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