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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마음의 문

믿음은 모든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문(gate)이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해도 그 약을 불신하고 복용하지 않는다면, 그 약이 주는 놀라운 효능을 체험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의사가 있더라도, 그 의사에 대한 좋지 않은 헛소문 때문에 불신하고 그 의사에게 가지 않는다면, 그 의사를 통해 아무런 치유를 받을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 할지라도 그 지도자에 대한 악의적인 가짜뉴스로 인하여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지도자가 잇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믿지 못하면, 마음의 문을 열 수 없고, 마음의 문을 열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선물이 기다리고 있어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도 믿음이 필요하고, 기도할 때에도 믿음이 필요하다. 야고보서 1:6-8에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의심하는 자는 주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게 우리 마음대로 조절 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마음은 내것인데,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하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믿어야지 의심하지 말아야지 하면 의심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지만, 기도하는 도중에 이러다가 결국 죽게 되는 것을 아닐까? 우리들의 마음에 의심이 자꾸 솟아오르게 되어 있다. 그게 인간의 연약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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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나이가 많아 결코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다. 그게 로마서 4:18-22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런데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를 읽어보면, 정말 아브라함이 아무런 의심이 없이 믿은 것 같지 않다. 그는 상황이 어렵게 돌아갈 때마다 불안해 했고, 아들을 과연 낳을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하였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는 내용이 창세기 15장에 나오는데, 바로 뒷장이 16장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지 못해서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의심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도 기도하면서 자꾸만 의심이 든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의심이 들 때마다 다시 정신 차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악인은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면서도 뻔뻔하게 행동하는데, 그런 악인은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다. 선한 사람은 억을한 일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는데, 그러한 억울함을 풀 기회조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선하시며 공의로우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지금도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면, 왜 이 세상이 엉망진창일까? 하나님이 계신다는 게 의심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증거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들어 보라. 겨우내 죽어 있는 것 같았던 나무들에서 싹이 피어나고 있지 않는가? 산수유가 피어났고, 매화가 피어났고, 개나리도 피어나고 있다. 나무 가지가지마다 푸른 눈이 나오고 있다. 겨우 내내 마치 죽은 것 같았다. 아무런 생명이 없는 것 같았다. 겨울에 나무를 보면 아무런 생명이 있는 것 같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는 희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이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게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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