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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계명 “하나님을 네 탐욕의 수단으로 악용하지 말라” (출 20:7)

오늘은 제3계명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시는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할 때, “망령되게”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부르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이 될까요? 영어 성경에서는 이 “망령되게”라고 하는 말을 “in vain” 그러니까 “헛되게” “공허하게”라고 하는 말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헛되이 부르는 것, 무의미하게 사용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금하고 계시다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거짓 증언하지 말라”라고 할 때, 그 거짓이라고 하는 말이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고 할 때 그 “망령되게”라고 하는 말과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체가 없는 허황된, 비어 있는 그런 증언은, 증언을 하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하나님의 이름도 이렇게 비어져 있는, 허망하게, 무의미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제3경에 의해서 금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사용하게 되는데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게 될 때, 그 이름을 무의미하게 발설하거나 함부로 사용하거나 모욕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계명일 텐데요. 그것을 좀 더 긍정적인 의미로 바꾸어서 이 계명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하게 다루고,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긍정적인 의미로 우리가 이 계명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존귀하신 하나님이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고 만유의 주 되신 하나님인데, 그 주 되신 하나님을 우리가 함부로 사용한다고 하면 안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제3계명은 하나님에게 딱 알맞는 그런 계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북한의 응원단들이 우리나라에 왔는데, 그 과정 가운데서 김정일 수령인가, 아무튼 지도자인가, 김정은? 아마 김정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분의 초상화가 있는 것이 비 가운데 이렇게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북한 응원단들이 보여준 그 반응은 굉장히 우리 남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었어요. 그렇죠? 그 북한 주민들이 막 달려가 가지고, 응원단들이 달려가지고 그걸 껴안고, 정말 이렇게 존엄하신 우리 김정일 수령 동지의 사진이 이렇게 함부로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면서, 막 그걸 보호하려고 하는 그런 태도가 북한 주민들에게 있었는데요. 어쩌면 우리 하나님은 그 수령동지보다도 훨씬 더 높으신 분이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 함부로 막 대하는 것보다는, 정말 예의를 갖춰서 공손하게 그리고 아주 존엄하게, 하나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존엄하게 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러니까 이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요? 사용을 할 수는 있다는 말인가요? 할 수는 있다는 말로 이해를 하시죠? 예. 하지만 옛날 유대인들은 이 계명을 하나님의 이름을 아예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아마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아예 사용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가 함부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발설하다가 혹시라도 하나님의 영광에 손상을 입힐까 봐, 혹시라도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그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두려워서 우려가 돼서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튼 유대인들은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제3계명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냐면, 하나님의 이름을 절대로 입박해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합니까? 아예 없습니까? 있죠? 하나님의 이름이 뭐죠? 여호와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하나님인데, 이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이름을 성경 책을 읽다가 여호와라고 하는 그 단어가 나오면, 제3계명을 기억하고서 이 단어를 발설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이름을 그러면 빼고 어떻게 성경을 읽죠? 우리 게임하듯이 1 2 3 할 때는 (음)하고 4 5 하고 그렇게 가듯이, 하나님. 성경 읽다가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 그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읽은 건 아니고, 그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다른 말을 대치해서 읽었습니다. 무슨 말로 대치했냐면, 아도나이라고 하는 말로 대치해서 읽었습니다. 이 아도나이라고 하는 히브리어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주님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대체할 만한 아주 좋은 단어인 것이죠.

그래서 여호와라고 하는 단어가 나와 있는 그 구절이 나오면, 여호와라고 읽지 않고 뭐라고 읽었냐면은, 아도나이 주님 주님 주님이라고 하는 말로 바꾸어서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유대인들은 그 하나님의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4개의 글자, 하나님의 이름이 히브리어 4개 글자로 돼 있는데요. 그 글자가 나올 때마다 그 단어의 원래 발음으로 발음하지 않고 뭐라고 불렀다고요? 아도나이 그 어려운 단어를 한 번 들려줬는데 금방 이해하시네요. 이 아도나이라고 불러서 읽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백 년이 지나다 보니까 후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정말 그 하나님의 이름 4개의 글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손주들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잘 모르고 늘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만 하니까 할아버지의 정확한 이름을 모르고 그냥 할아버지로만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할머니의 이름을 정확하게 모르고 저분은 그냥 할머니라고만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아도나이 주님으로만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관련된 근거 없는 그런 환상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데요. 특별히 유대인들과 관련해서 근거 없는 환상 가운데 하나가 뭐냐 하면 유대인들은 언어를 잊어먹지 않는 그런 민족이라고 하는 그런 근거 없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랑 똑같은 민족이고 우리보다 더 나을 것도 없고 더 모자랄 것도 없고 똑같이 우리랑 똑같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유대인들도 자기들의 언어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일제 36년 동안에 우리나라 말을 빼앗기고 일본어만 써야만 했던 그 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유대인들도 포로로 끌려가서 바벨론에서 사는 동안에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아람어를 썼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실력들을 다 잃어버리고 히브리어 언어를 잃어버려서 성경책이 히브리어로 돼 있는데 그 히브리어를 읽으려고,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져버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잊어버리고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그런 상태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고 그냥 아도나이라고만 불렀기 때문에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뭔지를 잊어버리게 된 것이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정확하게 여호와가 사실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성경에 여호와라고 번역이 돼 있고, 킹 제임스 버전 영어 성경에서 Jehovah라고 번역이 돼 있는데 이것은 정확한 히브리어 발음이 아닙니다. 사실은 이 히브리어 네 글자의 자음에다가 모음을 아도나이에 해당하는 모음을 붙여서 발음한 것이 여호와라고 하는 그런 발음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원래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었을까를 연구하고 연구하고 연구하면서 추측해서 내놓기를 뭐라고 내놨냐면, 아마도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가 아니라 야훼라고 읽어야 정상적인 발음이다라고 학자들이 연구해서 내놨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 가면 성경 읽을 때 여호와라고 하는 말 대신에 야훼라고 읽는 그런 교회들이 있죠? 우리 교회만 다녔으니까 알 리가 있습니까? 순복음교회 가면 야훼라고 읽습니다. 그리고 기장측 교회에 가도 야훼라고들 많이 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아마도 야훼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히브리어 4개 자음에다가 아도나이라고 하는 모음을 붙인 것이 여호와이기 때문에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에 정확한 발음은 아닙니다.


아무튼 그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고요. 아무튼 유대인들은 제3계명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발설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그 단어를 발음하지 않고 아도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 것이죠. 하지만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사용해도 괜찮다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다만 어떻게 사용하면 안 된다고요? 잘못 사용하지 마라 무례하게 혹은 공허하게 또는 무의미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제3계명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잘못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이 계명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할 거에 관한 계명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가에 대한 계명입니다. 왜냐하면 이름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그 사람 전체를 나타내는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면 안 된다 정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 하나님을 어떠한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가? 제1계명에서는 오로지 하나님만 섬겨야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섬겨야 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제3계명에서 그 하나님을 우리가 허망하게 무의미하게 함부로 무가치하게 하나님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매력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셔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너무나도 필요한 겁니다. 하나님이 만일 나를 위해서 일해 주시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나님이 그 전능하신 것으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시는 대로 움직여주고,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움직여줄 수만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이 볼 때 정말로 매력적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탐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매력들을 우리가 갖고 싶은 그런 욕망이 생길 정도로 하나님은 그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어떤 마음을 갖게 되냐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전능하심을 이용해서 내 탐욕을 채우고, 하나님의 그 전능하심을 이용해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용해서 내가 부자가 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용해서 내 문제를 해결하는, 나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그런 하나님으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제3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는 그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그냥 섬기기만 하면 괜찮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어떠한 태도로 어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경고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결론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되죠? 존귀하게 대해야, 경외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전능하심이라고 하는 그 꿀만 따먹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의 그 이용 가치만 이용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이 사랑스럽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그 이익만을 내가 따먹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마음이 우리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의 말씀을 보면 그런 예가 아주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이스라엘 민족들은 전쟁에서 지려고 하는 그 순간에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언약궤를 가지고 가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가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정말 존경스러워서 정말 하나님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하나님을 정말 예배하고 싶어서, 그래서 언약궤를 그 전쟁터로 가지고 간 건가요? 아니요. 우리가 잘 알듯이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두 엘리의 두 아들들은 하나님을 모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될 그 재물을 자신의 이속을 위해서 취해버린 사람이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욕보인 사람들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경외함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헌신했던 사람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님을 모욕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로 간 이유가 무엇이냐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해서 그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로 간 것이 아니라, 그 전쟁터에 하나님을 불러들여서 그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효과만을 바라고 전쟁터로 데리고 나간 것이죠. 이것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에 두고 사무엘을 기다렸습니다. 전쟁하기 전에 제사를 드리고 싶어서 사무엘을 기다렸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오질 않는 겁니다. 그런데 사울의 부하들이 하나씩 둘씩 다 흩어져 버리는 거예요. 블레셋 사람들을 너무 무서워해서 군사들이 흩어지는 그 상황 가운데서 사울은 긴급하게 그 군사들을 모았어요. 모으고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자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나간다 하면서 제사를 드렸어요. 그런데 사울이 그렇게 제사를 드린 그 이유가 무엇이에요? 그 마음이 무엇이에요?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싶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어서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군사들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수단화 시켜버린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신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수단화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만한 일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신앙적인 율법을 아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금식도 열심히 했고 기도도 열심히 했고, 안식일도 잘 지켰고 구제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해서 하나님이 너무나도 좋아서 그렇게 신앙생활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것이 좋아서 그 일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린 것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그 지위를 인정받고 칭찬받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그런 사악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이용당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시는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마라. 아무 데서나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마라. 아무 데서나 내 이름을 쓰고 아무 데서나 신앙적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신앙이 많은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잘못된 방식으로 나를 이용해 먹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아주 쉬운 예로 든다고 한다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에게 다가와서 사랑을 고백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그 여자에게 정말 잘해줍니다. 매너 있게 하고 선물 공세를 하고 전화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하고 또 여러 가지 아주 좋은 것들을 하면서 그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남자가 그렇게 하는데, 그 남자의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이 있냐면 내가 이 여자랑 결혼만 하면 내가 재벌가의 사위가 되겠구나.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돈,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것들이 탐나서, 그래서 그 여자에게 거짓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한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를 좋다고 하시겠습니까? 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나를 나로 인정해 달라는 거에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고, 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될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3계명은 그냥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유교적인 사상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모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렇죠? 자식이 엄마의 이름을 부르면 되나요? 안 되나요? 안 되죠. 되나요? 안 되나요? 예를 들어서 자식이 정진희 권사님 보시고 보면서 진희야 그러면 됩니까? 안 됩니까? 돼요. 안 돼요. 그런 일이 없죠. 우리 유교적인 사회에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그냥 그런 개념으로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함부로 불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실런지도 몰라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가 쉬워요. 근데 어제 텔레비전을 보니까요. 무슨 프로그램이었더라 나 혼자 산다가 거기 보니까 어떤 그 탤런트가 한 명 나오는데요. 엄마한테 뭐라고 불렀냐면, “영희야” 그러더라고요. 별 희한한 일도 다 있죠? “영희야, 사랑해.” 그러는데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엄마를 그렇게 불러도, 그 아들의 마음에 엄마를 무시하거나, 엄마를 아주 짓눌러버리거나 무시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의 마음에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그 엄마가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엄마가 아들이 “영희야, 사랑해.” 그러는데 “그래. 나도 너 사랑해.” 그러면서 얼마나 둘이 좋아하는지 아주 눈꼴사럽더라고요.

예전에 우리 딸도 미국에 있으니까, 하루는 저한테 그래요. 제 미국에서는 그냥 이름 막 부르거든요. 아빠 이름 막 부르니까, 그래 가지고 “국진” 하면서 말을 하는데, 한국에서만 있었던 저는 갑자기 충격을 좀 받아가지고, 걔가 왜 이렇게 얘기하나? 좀 충격을 받았지만,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이 아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우리 딸 아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무나도 좋았어요.


사실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 발설하느냐라고 하는 그런 계명적인 그런 하나의 율법주의적인 태도로 이 제3계명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종종 설교하시는 목사님들 가운데 제 3계명을 설명하면서, “Oh my God” 혹은 “Oh. Jesus”라고 하는 말들을 미국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이것은 제3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그렇게 설교하는 경우가 종종 많이 있는데요. 깜짝 놀랐을 때 아니면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그리고 아무튼 어떤 감정적인 무엇이 생겨났을 때, Oh my God을 부른다든지, 아주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Jesus하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습관들이 미국 사람들에게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쓰는 것이라고 그렇게 설교하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사실 제3계명은 그렇게 우리가 용어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실 유대인들은 정말 공경하게 공경하는 표현들을 많이 썼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어떻게 했었냐면, “오, 전능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시고 거룩하신 지존하신이여” 하면서 기도를 했어요. 여호와라고 하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야훼라고 하는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그 야훼를 대신할 다른 거룩한 이름들을 많이 사용했어요. 그래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신 이여” “지존하신 이여” “만왕의 왕이시여” 하면서 모든 존경과 의미를 담아서 하나님을 불렀어요. 그러면 괜찮을까요?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이용해서 나의 잇속을 채우고, 내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내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난 뒤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아버리려고 하는 그 태도는 하나님을 수단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에 반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나님을 부를 때 아빠라고 부르듯이, 유대인들은, 요아킴 예레미아스라고 하는 학자는 말하기를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다고 그래요. 그렇게 부르지 못하고 존엄하신 하나님, 장엄하신 하나님 모든 예의를 갖춰서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를 때 너희는 아빠라고 불러라.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그렇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장엄하고 존중하면서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 제3계명은 피상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발설하냐? 이렇게 발설하면 죄가 될까? 저렇게 발설하면 죄가 안 될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제3계명에서 말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냐 하면, 과연 너희들은 하나님을 누구로 보고 부르고 있느냐, 과연 너희는 하나님을 누구로 생각하고 섬기고 있느냐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질문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 질문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수단화시켜서, 하나님의 그 장점만을 나의 것으로 사용해 버리고, 내 이득을 취득해버리고, 그래서 하나님을 나의 종으로 만드는, 힘센 종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태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죠.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사랑으로 하나님을 수단화하지 않고, 정말 하나님이 감사하고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고마워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그 태도야말로,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태도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맹세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는 거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데요. 마태복음 5장 33절부터 3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내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내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니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가 사람들이 맹세할 때 어떻게 맹세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내가 맹세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맹세한다고 이야기합니까?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 그 말 사실이야 거짓말이야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맹세하는데, 이건 진실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에요?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하는,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는 겁니다. 수단화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런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물론 다 서약이나 계약서 사인이나 이런 거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결혼할 때 결혼 사역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단순하게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과연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나의 이익을 위해서 악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제3계명의 의미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항상 던져야 될 질문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왜 하나님을 사용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질문을 언제나 던져봐야 합니다. 나는 왜 하나님의 이름을 지금 들먹이고 있는가? 내가 왜 하나님의 이름을 지금 말하고 있는가? 왜 내가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가 정말 하나님이 사랑스러워서 정말 하나님이 예배하고 싶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일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죄악을 숨기고 자신의 탐욕을 숨기고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가 많은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들의 이익을 위하여 탐욕적인 목적을 위하여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아니하실거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사람들이 제게 다가와서 말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아무개 교회 성도고, 아 어떤 교회의 직분자고,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를 위해서는 정말 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다고 그렇게 저한테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근데 그분을 만나고 나서 제 마음이 기쁘지 않아요. 왜냐면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 목적이 뭐냐면, 사기치려고 그 얘기를 하는 거에요. 자신의 이익을 장사하려고 하는 그 속셈을 감추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윤을 남겨 먹기 위해서 성도의 모습을 하고 제게 다가와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목사님 우리 땅을 세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교회를 위해서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하고서 비싸게 불러요. 목사님 정말 교회를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싶어요. 저는 헌신을 하고 싶어요 하면서 장사하려고 그래요. 정치적인 아젠다를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나는 서울의 대형 교회의 중직자고 서울의 어떤 아주 유명한 대학의 교수인데,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걱정해서 이런 글을 보낸다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거에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만 대면 어리숙한 우리 성도들이 다 속아 넘어갈 줄 알고, 그런데 그 죄가 제 3계명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그 죄에 해당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할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수단화시켜서 나의 명예를 채우고 사람들로부터 박수받는 것을 원하고, 나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나님을 사용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제 3계명은 그렇게 하지 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라고 하는 그런 포괄적인 계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을 수단화시키지 말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탐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탐나서 “이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쓸 만하겠구나” “이 사람만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도움이 많이 되겠구나.” 그런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아니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늘 죄를 짓고 늘 탐욕적이고 이기적이고 교만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저희들이 받았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나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고 경배하고 진정으로 살아가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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