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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언제 어떻게 우리의 우상으로 변하는가?

이 세상의 좋은 모든 것들은 우상으로 변할 수 있다. 먹을 것, 운동, 취미, 대학교, 취업, 사랑, 꿈, 재물, 성공, 아름다움, 인기, 자녀, 정치, 자동차, 주택 등등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인데,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은 우리들에게 우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신앙생활마저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물은 우리들에게 유용한 것이다. 이 세상의 다른 종교와는 달리, 성경은 금욕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보시기에 좋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감사함으로 받는다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누린다면 큰 축복이 된다. 하지만, 그런 재물이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다. 마치 재물에 우리의 목숨이 달려있는 것인 양 착각하고,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할 때 재물은 이미 우리에게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정치, 정치인, 이데올로기도 우리들에게 유익한 면이 있다. 성경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정치, 정치인, 이데올로기가 우상으로 바뀌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마치 우리의 소망이 정치나 정치인에게 달려 있는 것인 양 착각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녀들도 우리들에게 우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며 축복이다. 그런데 자녀에 대한 사랑이 도가 지나치면 자녀가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나 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다(마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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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의 의미는 우리의 자녀에 대한 사랑을 절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한다. 우리나라 미신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토속 미신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가 자녀들을 너무 사랑하거나 좋아하게 될 경우 귀신이 아이를 데려가거나 해코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사랑스러워도 사랑스러워하는 표시를 과하게 내지 않고 절제하곤 한다. 너무 사랑하는 것 같으면 귀신이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명위복(賤名爲福)이라 했다. 예쁘고 좋은 이름을 자녀들에게 지어주면 단명할 수 있고, 화를 당할 수 있으니, 일부러 개똥이라든가 돼지라든가 하는 이름을 지어주어서 복을 누리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도 그런 하나님일까? 자녀를 하나님보다 덜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이와 비슷한 이유일까?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가 자녀를 정말 사랑하는 것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시고 미워하시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시다. 우리가 자녀들을 너무 많이 사랑하면, 해코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들을 사랑하도록 우리들에게 모성애 부성애를 심어주셨고, 부모가 정말로 아낌없이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기를 원하신다. 종종 하나님보다 자녀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너희들은 하나님 다음이다”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절제하고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한참 모자란다. 우리가 자녀를 더 많이 사랑해도 한참 부족하다.

자녀가 우상이 되는 때는 우리가 사랑을 많이 할 때가 아니라, 왜곡된 사랑을 할 때이다. 즉 자녀를 사랑한 나머지 다른 아이들을 미워하게 되는 경우이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자녀가 우상이 된 나머지 다른 아이들을 향한 미움의 마음이 솟아오른다면, 이미 자녀들이 우상이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명목 때문에 정의, 공의, 진실함, 공평함을 저버리게 될 때, 자녀가 우상이 된 것이다. 내가 어떤 책임을 맡았는데, 내가 나의 자녀를 사랑한 나머지 나의 자녀들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편법을 사용하고 내가 가진 권력을 악용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자녀가 우상이 된 때인 것이다. 부모가 왜곡된 사랑을 하는 것이 문제이지, 자녀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항상 부족한 게 사랑이다.

자녀가 우상이 되는 것은 사악한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심지어 교회의 일을 하면서도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고등부 수양회에 따라가서 봉사를 하는 선한 일을 하면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우리는 점심을 나누어주다가 자기 자식이 오면 쏘세지 하나를 더 올려주는 일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한다. 부모가 따라온 자녀들이 가지는 특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이미 자녀가 우상이 되어버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이때에는 자기 자녀에게 쏘세지 하나 더 얹어줄 것이 아니라, 사랑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 누구인지 살펴서 그들에게 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자녀들이 우상이 되어 행한 행동은 결코 자녀들에게 유익하지 않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아이로 자라게 만들 뿐이다. 불공평한 방법으로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는 자신의 자녀가 다른 아이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당하게 되거나, 다른 사람들로터 미움을 받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할 진정한 모습은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더 많이 양보하고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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