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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궤를 물리친 사울(삼상 14:16-19)

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7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베냐민 기브아에 있던 파수꾼이 바라보니 블레셋 진영이 무너져 흩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병사가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때 사울은 황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빨리 공격을 해서 전쟁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고대 시절에 전쟁에 나가거나 무슨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전통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엘리 제사장 시절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궤는 다윗 시절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따라서 사울이 아히야에게 가져오라고 한 궤(14:18)가 무엇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이 부분에서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경(LXX)은 “하나님의 에봇”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유대 역사가였던 요세푸스도 이러한 칠십인경의 번역을 채용하여 “하나님의 에봇”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 사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아히야에게 가져오라고 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아히야 제사장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는 그 순간, 상황은 더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 것입니다(14:19). 그래서 사울은 아히야 제사장의 손을 거두라 하고 중단시켰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 묻고 때를 기다릴 시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황금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할 때에만 하나님을 이용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모습과는 달리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왕 아기스에 다녀오는 사이에 아말렉이 쳐들어와 처자식들을 사로잡아가고 재물들을 약탈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분노에 차서 당장 아말렉과 싸우려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었습니다(삼상 30:7-8). 당연히 싸워야 하는 그 순간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미 자신의 마음에 전쟁을 하는 것을 결정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다급하게 돌아가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을 중단해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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