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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했던 하나님의 말씀(삼상 3:1)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로 세워지게 될 때의 상황을 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 제사장이 다스리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지도 않고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지도 않고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성경 66권이 주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환상을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평생 어떤 신비로운 기적을 체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있는 성경 66권이 그 자체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데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성경 66권 외에 다른 어떤 특별한 계시가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오히려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시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상이나 환상으로 직접 말씀해주시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소장할 수도 없었고, 아직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와 인도하심을 통해서 삶을 살아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희귀했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고 이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이야 하나님 마음이니 그냥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에서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인하여 예수님은 고향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마 13:53-58).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기적을 베푸신 반면, 믿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기적을 베푸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엘리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던 이유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모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식을 더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습니까? 혹시 듣는 자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을 때 1세기 유대 땅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은혜를 체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가슴을 치며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왔는데 바리새인들은 똑같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서도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기도할 제목은 “주여, 나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주여, 내게 들을 수 있는 귀를 허락하여 주소서”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 의미가 없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도 회개할 수 있었던 베드로와 같은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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