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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설교자와 케뤼그마

어명을 전달하는 신하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자 사이에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많다. 대체로 어명을 전달하는 신하는 정확하게 어명을 전달한다. 왕의 어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문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읽어주면 된다. 전달할 때 신하의 감정이 포함될 수 있지만 적어도 그가 읽는 내용은 어명으로 쓰여진 문서 그대로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가 불분명하다. 구약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예언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설교자가 설교하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받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일 것이라고 깨달은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과연 그 설교자가 깨달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일까? 설교자가 전하는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전하시기 원하시는 바로 그 메시지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실제적으로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이단들이 있어왔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가르친다고 했지만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되는 잘못된 사상을 전했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성경은 우리가 아무나 다 믿지 말고,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렇지 않은지 분별하라고 권면한다. 이 세상에 수많은 거짓 선지자가 나왔기 때문이다(요일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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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문제는 단순히 흑백의 문제로 규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흑백논리가 강해서 이단이라는 딱지가 붙었는지 붙지 않았는지가 중요하고, 정통교단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단을 감별하는 것이고, 이단이라고 낙인을 찍으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배척해야 하고 정통교단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정통 교단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교학은 단순히 설교학자들의 전유물일수만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며, 그런 점에서 설교학이라는 학문이 독자적인 학문으로 발달하기 전에는 설교학 과목을 성경과목의 교수들이 가르치곤 했었다. 요 근래 설교학의 발달로 설교학이라는 독립적인 학문이 하나의 분야로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학은 본문에 대한 바른 이해를 추구해야 하기에 끊임없이 성경 본문의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모든 신학과목이 설교로 귀결되어지고 꽃피워져야 할 것이기에, 모든 과목이 다 설교학과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다룬다. 그리고 그 말씀을 풀어서 설교자가 이해한대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과제가 복잡하게 꼬여있다. 이 책에서는 이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함께 고민해보려고 한다. 설교가 권위를 가지는 것은 예배의 세팅에서 강도(講道)를 할 수 있는 목회자가 강단에서 선포한다는 형식에 있지 않다. 설교가 권위를 가지는 것은 그 설교가 온전하게 하나님의 케뤼그마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 때이다. 따라서 설교가 설교 되게 하는 핵심은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담고 있는가에 있다. 결국 석의(釋義, exegesis)의 문제가 설교학의 중심 이슈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파악하여 하나님께서 전하기를 원하는 메시지(케뤼그마)를 하나님께서 전하기 원하는 대상에게 선포해야 하는 것이 설교자(케룩스)의 임무일 것이다.

만일 설교자가 선포한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전하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메시지가 아닌 잘못된 메시지를 전한다면, 그 설교자를 존중해주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한 셈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였지만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놓고 섬기자고 했던 아론의 행위를 반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설교자는 무조건 정당한 것이 아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일 수 없다(마 7:21-23). 오직 설교의 권위는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을 때뿐이고,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특정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특정한 대상에게 전달할 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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