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 (삼상 16:1-13)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학생 같은 기분으로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영어 문장을 하나 공부하겠습니다. 근데 뭐 걱정은 마시고요. 초등학교 3학년 수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영어 문장 하나만 보시죠. 보여주십시오. 예. “You can’t judge a book by its cover.”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표지만 보고, 책 표지만 보고 책 내용을 판단할 수 있다? 없다? 없다. “But… but for your car…” 점점점.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표지만 보고 책 내용을 판단할 수 없어요. 그러나 당신 자동차는요? 이게 어디 있는 문구 같으세요? 이게요, 미국에서 제가 다니던 주유소에 자동차 광택약 광고하는—자동차 세차할 때 이게 딱 묻히고 닦는 광택약 있어요—그거 묻히고 닦으면 차가 번쩍번쩍 새 차 같아 보이는 그런 약 광고에 써 있던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당신 책 살 때 표지만 딱 보고 한 번에 내용을 알 수 없죠. 그러나 당신 자동차는 어떻게 판단하세요?

여러분 자동차 살 때 어떻게 하세요? 여러분이 만약에 중고차 한 대를 고른다 그러면, 아무리 그 차 속에 있는 엔진이 좋다 그러고 뭐 차 관리를 잘했다 그러고 아무리 그래도 껍데기에 흙이 더글더글 붙어 있고 막 스크래치가 여기저기 막 나 있고 막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으면 여러분 그 차 고르시겠어요? 아니요. 아니요. 안 골라요. 아무래도 껍데기를 보게 된다는 거죠. 예. 여러분 자동차 고를 때 우리는 껍데기를 봅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제가 그 광고 문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뭐였냐 하면 ‘그렇지, 책은 그렇지, 자동차는 그런데…’ 그렇지,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볼까요? 사람. 여러분은 사람을 볼 때 도대체 뭘 보고 판단하십니까? 사람을 보고요. 요새 우리 선거철이 다가오는데, 그렇죠. 이제 비밀을 하나, 저희 집안의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면 저희 어머니는 선거를 하실 때마다 사람 인물을 보고 뽑으셔요.

“어머니, 어머니 이번에 선거에 누구 뽑으실 거예요?” 그러면 저희 어머니는 “아유 나는 누구” 그러셔요. 이미 정하셨어요. “아니 왜 그 사람이에요?” “그 인물이 좋잖아.” 늘 그러시는 거죠. “아니 어머니 선거를 인물 보고 뽑으시면 어떡해요? 뭐 정책도 보고 일을 잘하는지도 보고 그러셔야죠.” 저희 어머니, “아이고 야야 인물이 좋으면 잘해.” 아유, 이 외모지상주의! 그래가지고 “어머니 그러시면 안 돼요. 그렇게 인물만 보실 거면 왜 아들은 이렇게 낳아놓으셨어요?” 아이고, 예.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보고 판단할 때 세상 사람들은 아무래도 외모를 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아닌 척하셔도 이번 선거에 나온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인물이 좋은가 어떤 사람이 인상이 별로 안 좋은가 그거 보시잖아요. 그렇죠? 안 보시는 분 한번 손 들어보세요. 아무래도 보신다니까요? 사람은 겉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겉을 보실까요? 아니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그랬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의 중심을 보시는지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사울 왕과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너무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이라는 사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고요. 말 그대로 겉보기에 좋았던 사람이에요. 인기도 좋아서 사람들이 “사울이면 됐어요, 사울이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인기 좋아서 핵인싸에 추대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무엘상 9장 2절에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웬만한 보통 사람은 그 사람 옆에 서면 어깨 밑으로 내려갈 정도로 대단한 풍채를 가졌던 사람이죠. 예. 집안도 좋고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사람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사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사울이었나요? 아니죠.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었습니다. 수백 년 후에 그의 후손들이 다윗에 대해서 평가한 것을 보니까요,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폐하시고”—누구를 폐하셨어요? 사울 왕을 폐하시고—“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누가요? 하나님께서—“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누구의 마음에? 하나님 마음에—“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6절에 보니까요, 다윗의 인생을 한마디로 딱 정리했는데 이렇게 표현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기가 막히죠. 저는요, 여러분 잘 기억해 두세요. 혹시 제가 여러분보다 먼저 천국 가면 제 묘비에다가 좀 이렇게 써주세요. 제 묘비에 이렇게 써질 수 있으면 정말 소원이 없겠어요. 뭐라고요? 딱 세 단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 잠들었다.” 이거보다 더 멋진 삶에 대한 평가가 있나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 잠들었다.”

예, 기가 막힌 인생. 저는 저와 여러분이, 또 우리들의 자녀손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런데요, 이 두 사람이 다 왕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을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운 사람이 사무엘입니다. 당시에 왕을 세울 때는 기름 부어 세웠어요. 왕만이 아니라 제사장과 선지자도 그렇게 기름 부어 세웠습니다. ‘기름 부었다’, 영어로 하면 어노인팅(Anointing), 어노인티드 퍼슨(Anointed person).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이 바로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우리가 나중에 우리의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사용하는 칭호지만, 원래는 예수님께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택하여 쓰시는 하나님의 도구,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세우신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도 기름 부으심을 받았고 다윗도 기름 부으심을 받았어요.

그런데 사울과 다윗이 어떻게 본질적으로 달랐느냐? 사울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왕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왕입니다. 그 자신도 세상을 닮았어요. 그는 세상 같은 왕입니다. 왜 그가 세상 같은 왕인지 한번 보십시오. 사무엘상 8장 5절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이때 아직 이스라엘의 왕이 없던, 그래서 사사 시대라고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이끌어가던 그런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고 다른 나라들이 왕을 가진 나라들이 강성해 보이고 그들이 자꾸 이스라엘을 쳐들어오니까, 이 백성들이 뭐라고 말하느냐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모든 나라와 같이 왕을 세워서 그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해달라”는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에 진짜 왕이 없었습니까? 이스라엘에는 정말 왕이 없었나요? 아니죠. 그들에게 왕이 있었어요. 누가 그들의 왕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셨던 거죠. 그런데 지금 그들이 뭐라 그래요?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자기들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 이웃 나라들의 침략을 받았으면서 말하기를 “아니 우리가 왕이 없어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거예요. 우리도 저들처럼 왕을 주세요.”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셔야 되는데 “우리에게 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도 저 모든 나라들처럼 왕을 주세요”라고 말했다는 거죠. 사무엘상 8장 20절에 보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여러분 하나님은 그들이 다른 나라들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 같은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애굽에서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 가나안 일곱 족속 같은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가나안 족속들을 그 땅에서 내쫓고 그 땅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어요.

그런데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도 다른 나라들같이 되고 싶어요.”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말이죠.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나님이요, 어떻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들의 요구, 하나님이 들어주셨을까요? 안 들어주셨을까요? 예, 하나님이 들어주셨어요. “아니 하나님의 뜻과 안 맞는데 왜 들어주셔요?” 예. 그럴 때가 있어요. 여러분도 자녀들이 정말 아닌데 계속 떼를 쓰면 들어줘요? 안 들어줘요? 아니, 지금 밤중에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애가 계속 “엄마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잠도 안 자고 계속 떼를 쓰면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 줄 때가 있어요? 없어요? 있죠. 맨날 주시면 안 돼요. 큰일 나요. 예.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용하실 때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걸 신학적인 용어로는 ‘허용적 주권’ 그럽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너희들 망해라” 그래서 주신 건 아니죠.

더 큰 뜻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허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죄악에 대한 책임을 가지셔야 된다, 하나님께서 죄 짓게 만드셨다, 그건 아니에요. 하나님은 더 큰 구속의 섭리를 위해 그들의 죄를 허용하신 겁니다. 그래서 사울이 왕이 됐어요. 왕이 됐고요, 사울이 잘 나갔어요. 전쟁에 나가서 막 이겼어요. 이전에 사사들보다 더 큰 힘과 권력을 가지고 군사들도 모으고 열두 지파를 다 이끌어 나가니까, 야, 그러니까 막 싸움에 나가서 승리했어요. 문제는 뭐냐? 그다음입니다. 이기고 난 다음에 사무엘상 15장 9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은 남기고…” 누구를 위하여 남겼을까요? 그 얘기는 안 나오는데 뻔하죠. 왕과 자기들을 위해서 남겼어요.

보기에 좋은 것만 남겼어요. 나중에 선지자한테 질책을 받으니까 “아니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그랬어요.” 그건 나중에 둘러댄 말이고요. 어쨌든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뭐였어요? 그 모든 전리품들을 다 남겨두지 말고 진멸하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자기들의 보기에 좋은 거는 스리슬쩍 빼놓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가치 없고 하찮은 것, 별 볼 일 없는 것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척하고 자기들 눈에 좋은 건 따로 챙겨놨다는 겁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요? 왕은 됐어요. 전쟁에는 이겼어요.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됐어요? 완전히 망가진 겁니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 됐습니다. 왕이면 뭐 합니까? 권력을 성취하면 뭐 합니까? 전쟁에 이겼으면 뭐 합니까?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에 실패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여러분 그거 정말 믿으세요? 그러면 여러분 한번 여러분의 자녀들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자녀가요 인물도 좋아요. 키도 커요. 공부도 잘했어요. 스펙도 잘 쌓았어요. 취직도 잘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어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공한 인생입니까?

자 여러분 우리는 사울이 세상 사람들이 다 원하는 훌륭한 사람 같아 보여도, 그러나 그는 결국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으나 그 가진 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고 나중에는요 미쳐가지고요, 악한 귀신에 사로잡혀서 미쳐서 막 증오와 복수에 막 그냥 부르르 떨다가 마지막에는요 자기 아들하고 전쟁터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것도 자기 아들 요나단과 같이요. 그러나 여러분 다윗,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사무엘 선지자를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집에 하나님께서 보내셨어요. “아니 하나님, 사울이 왕으로 세우심을 받았는데 아니 저한테 이새의 아들을 기름 부으시라고요? 사울이 알면 저 죽어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시키세요?” 사울, 사울은 이미 신경 쓰지 마. 사무엘은 자기가 기름 부어 세웠던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 보고 화가 나고 눈물도 나고 원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사울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처음부터 그는 내가 택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내려놔. 신경도 쓰지 마.” 그다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을 보시죠.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그러셨는데 이새의 아들이 몇 명이에요? 여덟 명. 여덟 명 누군지 콕 찍어 얘기하셨어요? 안 하셨어요? 안 하셨어요. 갔더니 이새에게 그 얘기를 하니까 그 아들 중에 누구를 떡하니 내놓습니까? 장남이죠. 장남. 부모의 눈에 제일 먼저 드는 건 누구예요? 장남이죠. 저희 집은 어땠을까요? 저희 집에는 아들이 셋이 있습니다. 딸도 하나 있고요. 저는 그중에 넷째입니다.

넷째, 삼남 일녀의 막내. 집에 누가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이런 아들이 있습니다” 저부터 딱 소개하셨을까요? 아니죠. 예. 저희 어머니에게 여전히 제일 중요한 사람은 누구예요? 장남, 장남. 예. 저희 어머니가 뭘 중요하게 보신다고 그러셨어요? 외모를. 외모 얘기만 나오면 저희 어머니 늘 하시는 말씀이 “아이고 우리 큰아들은 눈도 크고…” 아 왜 하필이면 그거 외에 뭐 다른 건 다 놔두고 눈 크기부터 얘기하시는지. “아 눈도 크고…” 그러면 저는 딱 눈을 감아버려요, 그냥. 예. 아유 저도 다른 데 괜찮은 데도 있는 것 같은데 아 왜 눈 얘기부터 자꾸 하셔가지고. 다윗의 집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새도 첫째 아들 엘리압 딱 내어놓았습니다. 7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뭐라 그러셔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신다 그랬습니다. 둘째 아비나답, 셋째 삼마,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까지… 무슨 춘향전에 보면 변사또가 기생 점고하듯이 하나씩 하나씩 다 앞에 나와서 인사를 했는데 이게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죠.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이 택하신 아들들이 그 안에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아버지는 얼마나 초조했을까요? 아니 그런데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야 우리 여덟째 아들 어디 갔니? 빨리 데리고 와라”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여러분 아들이 한 일곱 여덟 이쯤 되면 마지막 여덟째는 있는지 없는지 챙기지도 못하는 아들 있죠? 있습니다. 예. 여러분 우리 큰형님은요 밖에 나가면 딱 끝나는 시간에 칼같이 집에 딱 들어와서 집에서 딱 밥 먹는데, 저는 밖에 나가면 언제 들어왔는지 온 식구들이 아무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여덟째 아들이 그 자리에 있는지도 아마 이제는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11절에 보니까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이 뉘앙스는요, 있기는 있는데 기대가 들어 있어요? 안 들어 있어요? 전혀 안 들어 있습니다.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제서야, 그제서야… 아니 일곱 명 아들 다 아니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서야 사람을 보내서 그를 데려옴에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눈이 빼어나다는 말은 눈이 크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이 커야 멋진 게 아니에요. 여러분 눈빛이 빼어나다, 얼굴이 아름답더라… 이걸 보고 어떤 분이 “하나님도 결국은 얼굴을 보시네.” 아니요. 앞에 먼저 얘기했어요. 하나님은 용모를 보지 아니하신다. 이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이사야 53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은 사람의 흠모할 만한 외모를 갖지 못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잖아요.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 날 이후로 다윗에게 일어났던 일은 성령이 그에게 부어진 겁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가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는 거죠. 우리는 여기서 이 기름 부으심의 참된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 기름 부으심은 사울도 기름 부어 왕이 되었고 다윗도 기름 부어 왕이 되었지만 그 기름 부으심이 달라요. 사울은 사람들이 택한 왕, 사람들이 원했던 왕, 사람들의 인기로 세워진 왕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기름 부으심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들의 눈과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기준으로 부어진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가 의지한 것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사람의 힘과 권력과 군대의 숫자나 사람의 지혜에 구원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랬으면 열두 지파를 통괄해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전쟁에 나가서 이겼던 사울이 얼마나 잘 돼야 됐겠어요? 그런데 그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오히려 누가 봐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다윗…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에 아둘람 굴에서 그와 함께했던 그를 따르는 자들은 전부 다 비루한 자들, 쉽게 말하면 세상에 별 볼 일 없는 자들이라 그랬어요. 그러나,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가 물맷돌 하나 들고 골리앗에게 나갈 때에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나가노라” 했던 것처럼 여호와의 이름이, 하나님이 구원의 능력이 되셔서 그를 하나님의 사람의 길로 이끌어주셨다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기름 부으심을 받아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 되면 이제부터 그때는 잘나가고 만사형통하고 모든 사람 위에 높아지고 화려한 영광을 받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런 하나님의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게는 이때부터 고난길이 시작된 거죠. 기름 부으심을 받은 후부터, 골리앗을 쓰러뜨린 후부터 사람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잡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났습니다. 당대의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의 정적이 된 거예요. 그가 어떻게 쫓겨다닙니까? 그가 적국 블레셋에게까지 몸을 피신하는데 거기서도 적국 왕이 자기를 죽일까 봐 미친 척하고 돌아버린 척하고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고난 가운데서도 사울의 목숨이 자기 손 앞에 닥쳤을 때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내가 함부로 죽일 수 없다. 하나님이 하실 거야.”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꺼이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그것을 배우는 거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가는 바로 그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건 뭡니까? 언약 백성에게 주신 사명이죠. 하나님과 그 백성의 약속, 그들에게 맡기신 임무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시키시기 위해서 그를 기름 부어 세우신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을 세우시기 위해서 그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어주신 거죠. 우리의 삶은 바로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 사명을 이루어야 가치 있는 삶이고, 그 사명을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13절에 보니까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그랬어요.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어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단련되고 준비되었던 다윗,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왕권이 어떤 것인지를 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세워가시는 그 과정…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확인하시고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참다운 하나님 나라의 왕 되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The Anointed Person’, 메시아,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가 걸어가신 길이 어떤 길입니까? 그분도 역시 그 기름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어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그 모든 역사를 이루어내실 때에 그는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 사람들이 세우는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들의 왕이 되기를 거부하시고 오히려 고난의 길을 택하사 그들로부터 버림받으시고 배신당하시고 치욕과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그 고난길, 그 고난의 길에 온전히 순종하신 분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고 그를 따라다니던 제자들…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열광했던 그들이 다 실망하고 주님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 제자들 중에 두 명은요, 완전히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가고 있는 길이었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는 축 처지고 그 엠마오로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을 하고 있을 때, 그 옆에 누가 함께 걸어가셨어요? 예수께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그들의 옆에 함께 걸어가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봤나요?

못 알아봤죠. 예수님이 넌지시 그들에게 물으시는 겁니다. “아니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이 있길래 그렇게 힘없이 걸어가시오?” “아니 당신은 도대체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거 모른단 말이오? 우리가 이스라엘의 구량자(구속자)라고 믿었던 그분이, 우리가 그분이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으시면 정말 우리가 그 해방의 날을 맞이할 줄로 알고 따라갔는데, 그분이 그만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왕이 되시기는커녕 힘없이 붙잡히시고 고난을 다 당하시고 그 억울한 재판에 그냥 아무 소리 안 하시고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어. 이제 다 끝났어, 다 끝났어. 우리의 소망이 다 무너졌어.” 주님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니 너희가 성경을 그렇게 모르느냐? 너희가 성경을 그렇게 모르느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메시아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메시아가 누구인지, 메시아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너희가 그것을 정말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여러분 그 얘기가 누가복음 24장 25절, 26절에 나옵니다. 같이 한번 볼까요?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그리스도, 그리스도, ‘The Anointed Person’, 메시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는 원래부터 그렇게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성경이 그와 같이 말하고 있다고 주님은 분명하게 그들에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온 인류의 구원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당하셨고,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고 경멸하는 그 저주받은 십자가의 길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바로 그분이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습니다. 다윗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신 우리들, 또 우리의 자녀들, 언약 백성 된 우리의 자녀들도 이 땅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로서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어떠한 삶이 이루어지기를 구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저 겉모습을 보고 우리의 겉모양을 보고 “아이고 저 예수 믿는 것들, 저것들 참 보잘것없고 저것들 참 가난하고 저것들 참 연약하고 아이고 저것들은 자식들 공부도 똑바로 안 시키고 아이고 저게 뭐야” 하고 손가락질할지라도, 그러나 여러분 우리 안에는 세상의 기준으로 측량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크고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저와 여러분 속에,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삶 속에 이루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들이 세상적으로 보기에는 볼품없고 연약하고 이렇다 할 스펙이 없을지 몰라도,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기꺼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고난받을 수 있는 자들로, 기꺼이 자기 몫의 태인(태운)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자들로 쓰임 받게 될 때에,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영광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이, 또 여러분의 자녀들의 삶이 어떤 삶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사울처럼 모든 것이 준수하고 대단하고 인기 좋고 인정받으나,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실패해서 스스로 몰락하는 길로 걸어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기를 혹시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다윗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기름 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그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걸어가며,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위하여 기꺼이 나의 손해를 감수하고 기꺼이 내 한 몸을 내어놓고 헌신하며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부활의 소망을 품고 잠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분명히 소원합니다. 저희 자녀들이, 저희 아이들, 저희 집의 세 아이들이 정말 아무것도 되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부활의 소망을 품고 잠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기를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 동족들에게 고백했던 것처럼, 혹 그것을 위하여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지라도 내가 그들이 그렇게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바로 그와 같이 소원하며 그와 같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향해서 우리가 세상적인 눈, 세상적인 기준으로 그렇게 대단한 사람 만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 하나님의 눈, 우리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그들의 중심이 바로 서 하나님을 따라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의 길, 그 고난받는 하나님의 종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부활의 소망을 품고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남기고 잠들 수 있는 모든 저와 여러분, 우리들의 가정, 우리들의 자녀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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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osing Based on the Heart: Walking the Path of the Anointed

Today is Children’s Sunday. As we gather like students on this day, let’s study one English sentence. Don’t worry—it’s at a third-grade level. Please show the sentence:

“You can’t judge a book by its cover. But… for your car…”

What does this mean? You cannot judge a book’s content just by looking at its cover. But what about your car? Where do you think this slogan comes from? It was an advertisement I saw at a gas station in the United States for a car polish. The idea was that you can’t tell a book’s quality by its cover, but how do people judge your car?

How do you act when buying a car? If you were choosing a used car, even if the seller insisted the engine was perfect and well-maintained, would you pick it if the exterior was covered in mud, full of scratches, and dented everywhere? No, you wouldn’t. We inevitably look at the “shell”. We look at the exterior when choosing a car. However, whenever I saw that ad, I thought, “True, books are like that, and cars are like that… but what about people?” What do you use as a standard when judging a person?

Election season is approaching. Let me share a family secret: whenever my mother votes, she chooses based on a person’s appearance. I’ll ask, “Mother, who are you voting for this time?” She’s already decided. “Why that person?” I ask. “Because he looks so handsome and dignified,” she says. I argue, “Mother, you can’t vote based on looks! You have to look at their policies and whether they work well.” She replies, “Oh, son, if they look good, they do well.” What look-ism! I tell her, “Mother, you can’t do that. If you only look at appearance, why did you have a son who looks like this?”

When judging people, the world inevitably looks at outward appearance. Even if you pretend otherwise, you probably find yourself noting who looks more impressive or who has a less-than-pleasant impression among the candidates. Humans look at the outside, but does God? No. God looks at our hearts.


Saul vs. David: Appearance vs. Heart

We know the story of King Saul and David very well. Saul, the first king of Israel, was literally “good-looking” on the outside. He was so popular that people nominated him as a leader. 1 Samuel 9:2 says of him:

“Kish had a son whose name was Saul, a handsome young man. There was not a man among the people of Israel more handsome than he. From his shoulders upward he was taller than any of the people.”

Saul had a great family background, height, looks, and popularity. But was Saul the one after God’s own heart? No, it was David. Hundreds of years later, when his descendants evaluated David in Acts 13, it says:

“…he removed him [Saul] and raised up David to be their king, of whom he testified and said, ‘I have found in David the son of Jesse a man after my heart, who will do all my will.’”

Acts 13:36 summarizes David’s life in one phrase: “For David, after he had served the purpose of God in his own generation, fell asleep…”. This is incredible. If I go to heaven before you, please write this on my tombstone. It is my greatest wish to have these three words: “Served God’s purpose.” Is there a more beautiful evaluation of a life? “Served God’s purpose and fell asleep.” I pray that you, your children, and your grandchildren live such a life.


The Meaning of Being “Anointed”

Both men were anointed as kings by the prophet Samuel. In those days, kings, priests, and prophets were set apart by pouring oil on them—this is “Anointing”. The Hebrew word for an “Anointed person” is Messiah. While we primarily use this title for our Savior, Jesus Christ, it originally referred to any instrument or worker God set apart.

So, how were Saul and David fundamentally different? Saul was the king the world wanted. He even looked like the world. 1 Samuel 8:5 shows the people’s demand: “Appoint for us a king to judge us like all the nations”. They ignored the fact that God was already their King. They wanted to be “like other nations” (1 Samuel 8:20), which directly countered God’s purpose for calling them out of Egypt to be a set-apart people.

God granted their request through His “permissive sovereignty.” He allowed their mistake to eventually teach them a greater lesson. Saul became king and was initially successful in battle. However, in 1 Samuel 15:9, we see his downfall: Saul and the people spared the best of the sheep and oxen—things they found “good” for themselves—but destroyed only what was “despised and worthless”. He disobeyed God’s clear command to devote everything to destruction. As a result, while he kept his throne and won his wars, his relationship with God was ruined. If you fail in your relationship with God, everything else is useless.


God Sees the Heart

When God sent Samuel to the house of Jesse to find a new king, Samuel was afraid of Saul. But God told him to stop grieving over Saul. Jesse presented his eldest son, Eliab. Samuel thought, “Surely this is the one.” But God said:

“Do not look on his appearance or on the height of his stature, because I have rejected him. For the LORD sees not as man sees: man looks on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on the heart.” (1 Samuel 16:7)

One by one, seven sons passed by, but none were chosen. Finally, they brought in the youngest, David, who was out tending the sheep. When he arrived, the Bible notes he had beautiful eyes and a handsome appearance, but the focus was on the fact that he was the one God chose. From the day he was anointed, the Spirit of the Lord rushed upon David (1 Samuel 16:13).


The Path of the Anointed is the Path of the Cross

Being anointed by God does not mean an immediate path to worldly glory. For David, it was the start of a long journey of suffering. He was chased by Saul and even had to feign madness in enemy territory to survive. Through this suffering, he learned to trust God.

This path was perfectly fulfilled in Jesus Christ, the true Messiah. Though He had many opportunities to become a king through worldly popularity, He chose the path of the cross. He was rejected, mocked, and killed. His disciples were so discouraged by His suffering that they fled. On the road to Emmaus, the resurrected Jesus explained to two downcast disciples:

“Was it not necessary that the Christ should suffer these things and enter into his glory?” (Luke 24:26)

We, as the covenant people, and our children are also called to be anointed by the Holy Spirit. Even if the world looks at us and sees us as “insignificant,” “weak,” or “lacking specs,” we must carry the values of the Kingdom of God.

Do you want your children to be like Saul—impressive and popular, but failing in their relationship with God? Or like David and Jesus—willingly walking the path of suffering for the sake of God’s purpose, serving until they “fall asleep” with the hope of resurrection? I pray that our families and children are found righteous in God’s eyes, serving His purpose faithfully to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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