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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후손 (창 3:15)

드디어 이번 주부터 성경 일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번 주는 창세기 1장에서부터 읽게 되겠는데요. 이번 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성경 읽는 본문은 월요일 날에는, 1장서부터 4장까지, 화요일부터는 5장서부터 8장까지, 수요일은 12장까지, 목요일은 16장까지, 금요일은 20장까지, 토요일은 24장까지. 그래서 이번 주에 창세기 1장에서부터 24장까지 읽는 스케줄이 되겠습니다. 쉽죠? 예 쉽습니다. 매일 4장씩 읽으면서 24장까지 읽게 되겠는데, 오늘 오후 예배 시간에는, 금년도 오후 예배 시간에는 이 성경 우리가 읽을 부분에 대한 대략적인 해설하는 시간으로 우리가 보내게 됩니다. 꼭 그 주에 맞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이 성경을 읽는 과정 가운데서, 그 핵심적인 내용들을 설명하는 시간이 오늘 오후 시간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 읽기 그룹 단톡에 있는 분들에게 오후 예배에 참여할 것을 서로 권면하기도 하고, 또 참석을 못한다고 한다면 영상으로라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해서 창세기의 메시지 가운데서 아주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게 될 텐데요. 이번 주간에 오늘 오후에 영상 링크를 보내주게 되겠는데, 그 영상을 먼저 한번 우리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영상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번 영상은 리딩 지저스 1번의 두 번째 수업으로, 창세기 1 2 3장에 나타난 창조와 타락 그리고 회복의 약속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성경 통독을 다짐하고 창세기부터 읽어갑니다. 아마 창세기가 성경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창세기부터 성경을 읽는 것은 마치 씨앗이 꽃을 활짝 피운 나무로 자라는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와 타락을 다루고 있는 창세기의 1 2 3장은 성경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성경에서 펼쳐질 이야기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이 씨앗 속에 담겨진 내용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볼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신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그가 만드신 피조물의 세계는 명확히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 안에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을 숭배하도록 유혹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고에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    

이렇게 사람은 살아있는 영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이자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이 흘러넘치는 에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죄가 없이 완벽했던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사람이 교제하는 장소였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명령을 주시면서요.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내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내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선악과 나무는 아담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에덴 동산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백성이 있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며 낙원인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선악과 나무에 대한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하나님의 아들 아담도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창조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에덴 동산은 완벽한 곳이었습니다.    

선하게 창조된 에덴에 어느 날 악한 영이 뱀을 통해 등장합니다. 뱀은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모든 것을 무너뜨릴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사단의 형상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뱀은 아담보다 하와를 먼저 유혹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부인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동산의 각종 나무 열매는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라고 교묘히 말을 바꿉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부인하며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와는 맛있어 보이기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목소리와 자기 욕망의 목소리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결과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있던 남편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었고, 아담도 먹어줍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뱀을 꾸짖고 물리쳐야 했습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책임은 에덴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아담 역시 유혹에 넘어가면서 죄를 짓고 맙니다. 그 순간 온 인류의 창조 질서가 뒤집혀버리는 비극이 시작됩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궁극적인 심판은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육신의 죽음이 바로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먼저 찾아온 죽음은 생명의 충만함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아담과 하와는 탈락 이후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노화가 나뭇잎에 자신의 몸을 가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아담에게 물으십니다.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자신의 죄를 되돌아보고 자백할 기회를 주시려던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결국 서로를 비난하고 하나님께 죄의 원인을 돌리게 됩니다. 이렇게 그들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뱀, 하와 아담의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결국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됩니다. 에덴 동산에서 누리던 풍성한 삶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죽음과 가까운 고통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에덴동산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불칼을 가진 그룹들을 두어 입구를 지키게 하십니다. 거룩한 곳에 부정한 출입을 금하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구약 성경에 세세하게 기록된 것과 같이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죄는 모든 것을 훨씬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 사건의 결과에는 하나님의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심판 속에서 하나님 나라와 백성들을 회복시킬 씨앗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뱀에 대한 심판으로 흙을 먹는 가장 낮은 존재가 되게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내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내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예수님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가실 중요한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차 올 여자의 후손은 뱀에 의해 부상을 입게 되지만 뱀의 머리를 밟아 결국 승리를 이룰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첫 아들인 아담은 뱀을 물리치지 못하고 에덴을 잃어버리지만 장차 오실 약속된 아들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소중한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 것일 수가 없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모두 다 모아놓고 수억 년이 지난다고 해서 자동차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죠. 핸드폰 부품을 다 가져다 놓고 그것을 가만히 놔둔 채로 수억 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핸드폰이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동차나 핸드폰보다 수십만 배 더 복잡한 우리 인생이 우리 사람이 저절로 생겨날 리가 없고,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 우리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요.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드셨다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창세기의 말씀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만들어진 것이 하나님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 중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 중에서 아주 특별한 것이 무엇일까요? 네 인간입니다. 사람입니다. 어떤 점에서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창세기 1장 26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는 것이죠.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세상의 창조물들은 그냥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하는 점이 아주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누구를 닮았습니까? 부모님을 닮았어요. 그러니까 그 닮은 모습을 보고 얘는 누구의 아들이구나. 얘는 누구의 딸이구나. 알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제가 예전에 이리에서 살았는데요. 저희 큰 집은 천서에 있었어요. 춘포면 천서리에 있었어요. 그래서 방학 때가 되면 제가 우리 큰 집에 놀러 가고, 우리 할머니가 계신 집에 놀러 가게 됐는데, 버스를 타고 우리 형제들끼리 세 형제가 큰 집에 놀러 가게 됐는데요. 버스를 타고 이렇게 쭉 가다 보면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이 우리들을 유심히 쳐다보더니만, “니네 누구네 집 애들 아니?”냐라고 물어봐요. 맞습니다. 그러면 니네 코를 보니까 알겠다. 이 메주코를 보면 그 집 특성이 나타난다 이 말이죠. 우리의 얼굴이 우리의 형상이 우리 조상들의 형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형상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얘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딸이라고 하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만드셨는데, 이 세상에 만들어진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창세기 5장 1절에서부터 3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130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그랬습니다. 셋이 태어났는데 그 셋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의 형상을 닮았는가? 아담과 하와의 형상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실 형상이 없죠. 형상이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을 드러내는 그런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라고 하는 사실을 누가복음 3장 38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예수님의 족보를 쭉 설명하면서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오, 그 위는 아담이오.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니까 마치 아담이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듯이 하나님이 아담을 낳았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누가복음 3장 38절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창조하신 다음에 우리들을 낳으신 다음에 에덴 동산을 만들어서 그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에덴 동산을 가꾸고 경작하고 지키게 만드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이 에덴 동산을 경작하라고 이 에덴 동산을 지키라고 명령을 주셨는데, 이 말 표현이 어떤 표현인가? “경작하다” “가꾸다”라고 하는 아바드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 지키다라고 하는 샤말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마치 제사장이 성전에서 일하고 지키라고 명령했을 때 주셨을 때 사용했던 그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마치 제사장이 성전에서 성전을 관리하고 가꾸고 지키고 했던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이 에덴 동산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그 신분에 따라서, 에덴 동산을 잘 가꾸기도 하고 지키기도 하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살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니까 하나님의 세상인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에 에덴 동산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 대신의 왕으로서, 그 에덴 동산을 가꾸며 다스리며 살게 만들어주었는데,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에이전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축구 선수가 에이전트를 두어서 자신의 계약 사항을 에이전트한테 다 맡겨버려서 에이전트가 그 모든 일들을 대신 수행을 하듯이, 우리 보험회사 에이전트가 나를 대신해서 보험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해 주듯이, 하나님은 인간을 어떻게 만드셨는가? 에이전트로 만드셔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만들어주셔,서 이 세상을 가꾸며 경작하게 만들어 주어서, 이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해 주셨다고 하는 게 창세기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주 충격적이고 아주 안타까운 사건이 벌 벌어지게 된 것이죠. 그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죄를 저질렀던 선악과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에덴 동산 가운데 선악과를 만들어 두셨고, 그리고 그 선악과 때문에 인류가 타락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죠. 도대체 왜 이런 선악과가 있어가지고 왜 인류를 탈락하게 만들었을까? 차라리 만들지 않았더라고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여러 가지 질문들이 떠오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왜 만드셨던 것일까요? 그 선악과를 만드신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여러 가지 종류로 대답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를 중요한 하나의 그 메시지를 우리가 찾는다고 한다면, 이 선악과는 우리의 신분이 누구인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 선악과를 보면서 내가 지금 이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있기는 있지만, 이 세상을 내가 이 에덴 동산을 내가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다스리고 가꾸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 에덴 동산이 내 게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이게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고 나는 청지기일 뿐이고 나는 대리자일 뿐이고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일 뿐이고, 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서 이 에덴 동산을 가꾸는 일꾼이라고 하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이 바로 이 선악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아무거나 다 해도 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사과를 따먹어도 되고 동산을 이렇게 갖고 가도 되고, 저렇게 갖고 가도 되고, 그냥 자기가 창의적으로 마음대로 이 에덴 동산을 마음껏 꾸미면서 마음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없는 게 하나 딱 있었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선악과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는 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 내가 하나님이 아니구나. 내가 이 에덴동산의 주인이 아니구나. 이 에덴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일 뿐이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 선악과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게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그 옛날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이 보디발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안의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 요셉은 얼마 가지 않아서 주인의 신임을 얻게 됐습니다. 그 주인의 신임을 얻게 되었는데 요셉이 하는 것은 다 잘 되는 거예요. 요셉이 이걸 만지면 너무나도 잘 돼요. 그러니까 요셉한테 다 맡겨버리는 겁니다. 이거 니 마음대로 해.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니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하라고 주인 보디발이 요셉에게 모든 전권을 요셉에게 다 준 것이죠. 그래서 요셉은 더 신나게 일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해버릴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보디발이 허락하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내 아내는 건들지 마라입니다. 내 아내를 건들면 안 된다는 게 하나 요셉에게 주어주던 명령이었던 것이죠. 요셉은 다른 모든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보디발의 아내만큼은 건들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그래서 자신이 노예이지 내가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며, 나는 보디발의 종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 집 안에서 살 수가 있었던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선악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악과는 무엇인가? 아,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실, 나는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하나님의 일꾼이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사는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 선악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실패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것이죠. 뱀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선택을 했다고 하는 것이 안타까운 선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뱀이 사탄이 하와에게 나타나서 하와를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사탄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도대체 사탄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이고, 어떻게 그 사탄이 뱀을 통해서 인류를 유혹하게 된 것 창세기는 아무런 대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왜 사탄이 어떤 방식으로 해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탄생하게 되었고 우리를 유혹하는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추측하고 상상해 볼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대답을 주지는 않는데요. 그러나 분명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분명히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탄에 의해서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거역하는 선택을 했던 것이 안타까운 선택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살 것인가 아니면 사탄의 유혹에 따라 살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서 살아야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아담과 하와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것이죠. 성경에서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분명한 결과의 차이가 있을 거라고 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한다고 하면 복된 삶이 되겠지만, 사탄의 유혹에 따라 산다고 한다면 그것은 파멸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최초의 인간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었고 그 결과 죽을 것이라고 했던 그 잘못된 선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죽었나요? 안 죽었나요? 당장 죽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한다면 사탄의 말이 맞은 것일까요? 안 죽는다고 했으니까? 그게 아니죠. 죽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죽는 것을 죽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죽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분리되는 것이 바로 죽음인 것이죠.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부터 분리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그렇게 분리가 일어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 마치 나뭇가지가 나무에서 잘리면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은 꽃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아직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결국은 죽음을 향해서 갈 수밖에 없는 꺾여진 가지처럼 꺾여진 꽃처럼, 지금은 아직 살아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잘려나가서,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그 결과는 무엇인가? 수치심과 두려움과 그리고 이 세상에 속박과 무기력과 하나님을 배반한 그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한 것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향해서 물으시는 것이죠. 네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 네가 그 나무에 열매를 먹었느냐 물으시는 것은 책망하시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나아가야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죄의 그 영향력은 회개를 선택하기보다는 오히려 남을 탓하고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쪽으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하나님을 향해서도 원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창세기 3장 12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줌으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 책임이에요. 하나님 책임. 창세기 3장 13절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 뱀이 하나님 만드신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그 뱀이 나를 유혹해서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죠.  


안타까운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운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비로운 심판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걸로 끝이죠.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어요. 끝나버렸어요. 끝. 그게 우리가 심판하면, 손 털고 끝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데, 그걸로 끝을 만들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셔서 심판 가운데 심판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구원의 약속을 넣어주시는 거예요. 회복의 약속을 넣어주시는 거죠.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넣어주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이야기는 여자와 뱀이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산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사실은 여자의 후손이 누굽니까? 바로 여자의 몸을 통하여 동정녀를 통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의 후손들은 그런 사람들의 음모에 따라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과 같은 그런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 죽임이 예수님을 온전히 박살내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완전히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것은 겨우 예수님의 발꿈치를 무는 것과 같은 약간의 아픔만을 주었을 뿐이고, 예수님께서는 그 죽음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셔서, 사탄의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그 죽음마저도 이기고 승리하게 하셔서, 사탄의 권세를 박살내버리고,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그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누르셔서, 결국 이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시는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줄 거라고 하는, 그 약속이 놀랍게도 아담과 하와가 탈락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그 생명의 구원의 약속을 허락해 주신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잘못한 우리 인생들을 보시고 그냥 끝장 내버리고 창세기 3장으로 끝 하고 끝내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새로운 구원의 약속들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그 약속들을 만들어 나가고 기대하게 만들고 주님을 바라보게 만드셔서, 결국 이 구약의 이야기들이 신약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그 이야기를 펼쳐 나가게 해 주신 것이죠.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과 수고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 가운데서 당하는 고통과 아픔은 다 우리가 죄성이 가득한 인생이기 때문에 당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사탄의 통치 가운데 우리가 항복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삶은 고통스러운 삶이 되고야 만 것이죠. 땀을 흘려도 헛수고일 뿐이고 땀을 흘려도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게 된 것이고, 가장 행복해야 될 그 순간에 고통은 더 심해지는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면서 우리의 인생이 그저 편리하고 평하고 정말 좋은 것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 늘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점철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소망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소망인 것이고, 그 이야기는 신약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불순종으로 인해서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죽음을 예수님에게 전가시켜주셨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 것이죠.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그 죽음의 고통을 우리 주님께서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주님과 하나님과 연결되게 되는 놀라운 은총을 얻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창세기 1장에서부터 3장까지의 이야기는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틀을 우리들에게 제공해 줍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한 세 가지 단계로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창조와 타락과 그리고 구원이라고 하는 이 엄청난 큰 이야기의 물줄기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의 말씀은 우리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첫 부분을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제 우리가 성경을 읽어나가다 보면 언제나 이 이야기가 반복되고 타락한 인생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구원자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살리시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예수님께서 오실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약 성경 전체는 어떤 이야기인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이야기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성경을 읽어나갈 때 그냥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거기에 성취의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다 못 읽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사랑의 이야기,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신 그 이야기를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고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귀한 성경 읽기가 금년 한 해 동안에 잘 이루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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