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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창 24:26-27)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정말 신비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 배우자를 만나게 되셨습니까? 각 가정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게 해서 지금의 남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흥미롭고 참 재미있고 정말 아주 놀라운 흥미진진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와 제 아내는 어떻게 만났을까요? 저와 제 아내가 만나게 된 스토리도 들어보시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전 세계로 방송되는 이 상황 가운데서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고 하면 사적인 자리에서는 말씀을 드릴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종종 질문을 던집니다. “목사님, 어떻게 내게 맞는 배우자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배우자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배우자를 예비해 두셨고, 하나님께서 그런 예비해 두신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열심히 찾아야만 하는 건가요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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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런가 신앙 상담을 통해서 여러 가지 주제를 대답해 드렸는데, 거기에도 이런 질문이 나온 적이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대답을 해드렸는데, 유튜브 영상 가운데서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는 상위 랭킹 그룹에 속하는 내용이 바로 이 질문입니다.

어떻게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는 그런 질문이 가장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많은 문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말 간단합니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정말 단순한 것인데요. 정답이 무엇이냐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것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자신이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 뻔한 대답이고 너무나도 쉬운 대답일 수 있겠는데요.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100% 하나님의 예비하심, 100%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역사이면서도, 동시에 100% 우리가 애쓰고 수고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100% 하나님의 준비하심, 예비하심, 100%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는 것도 인정하고, 동시에 우리가 100% 노력하고, 100% 우리가 수고하고 애써야 된다고 하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그게 건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불신앙은 무엇인가? 불신앙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줄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오로지 나의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불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반대로 나는 노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께서 무조건 다 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것은 맹신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건전하지 않은 신앙인 것이죠.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나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아도, 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믿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건전한 믿음이 아니라 잘못된 맹신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종종 우리의 신앙이 불신앙의 길로 가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잘못된, 건전하지 못한 맹신의 길로 빠지게 될 가능성도 많이 있는데요. 어떠한 문제를 만났을 때, 그냥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우리가 하는 것이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겠지, 기도가 정답이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있으면, 먹을 것도 생기고, 살 것도 생기고,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건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 고3 학생들이 수시를 통해서 대학 입시를 지원하게 될 것이고, 또한 나중에 또 정시를 통해서 가게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수능도 보고 하게 될 텐데, 나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수업시간에 제대로 듣지도 않고, 열심히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하나님, 정말 열심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하면, 그것은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채, 비즈니스를 잘 성공시키기 위해서 생각도 하고 깊이 연구도 하고 노력하면서, 그래서 참 돈을 잘 벌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될 때로 되라고 방치하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하나님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돈이 좀, 이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그렇게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질병을 낳기 위해서, 우리가 건강해지기 위해서, 건강에 노력을 하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뿐만 아니라, 운동도 제대로 하고, 그런 정말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그런 부단한 노력이 없이, 그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내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지 건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이 정말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사랑의 주머니가 메말라가 버리고, 그래서 정말 사랑이 메말라져버린 그런 사황 속에서, 우리 가족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있어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남편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기도만 하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셔서, 우리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것은 건전한 생각이 아닙니다. 정말 행복한 가정이 되려고 한다고 하면, 내가 먼저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죠. 내가 먼저 희생하며 사랑하는 그 결단을 해야지, 우리 자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해야 되는 것이고, 우리 가정 가운데서 왜 대화가 사라졌는가를 알고, 내가 희생하면서 사랑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하면, 기도만 한다고 해서 그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노력하면서 참고 인내하면서, 사랑의 모범을 보이면서, 내가 희생을 하면서, 정말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쉽게 분노하지 아니하고, 화를 참으면서, 귀를 기울여 무슨 말을 하는지 마음을 읽으려고 하고 공감을 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을 하면서, 하나님 도와달라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야 되는 것이지, 대화도 끊어버린 채, 말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 왜 우리 가정은 이렇습니까?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은 건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맹신도 아니고, 불신앙도 아니고, 건전한 신앙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면서도, 이것이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해 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 건전한 신앙입니다. 시편 127편 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에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요?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만 세워주시면 된다는 게 아니고, 세우는 자가 수고하고 애써야 되는 것인데, 세우는 자가 수고하고 애쓰기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방어하지 않고 그냥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하나님께서만 지켜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파수꾼이 깨어서, 경성해서, 방어를 최대한 대로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성을 지켜 보호해 주셔야만 한다고 하는 것을 동시에 고백하는 것이죠.

수고하고 애쓴 후에 이것이 나의 공로가 아니라, 내가 똑똑하고 내가 잘나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서,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 아니라, 교만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불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임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참된 신앙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해서 그 이삭의 신붓감을 찾는 이야기의 한 대목을 우리가 함께 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이제는 장가를 가야 할 때가 되자, 자기가 데리고 있던 종에게 사명을 주어서 파송했습니다. 우리 아들을 위해서 신붓감을 구해오라고 하는 그런 사명을 아브라함의 종에게 맡겨주었습니다. 신부감을 찾아올 때의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것은 이삭을 위한 신부를 구할 때 이방 족속들 가운데서 신붓감을 구할 것이 아니라,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거기서 신부감을 구해오라고 하는 그런 조건을 달아서 종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 집을 떠나서, 아브라함이 원래 살던 고향으로 갑니다. 저 먼 길을 걸어가서, 그 아브라함의 고향 속에서, 아브라함의 가족들 가운데서 신부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해서 도달하게 된 것이 어디냐면, 아브라함의 친척의 집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하게 된 여인 이삭의 신부로 구한 여인의 이름이 뭐죠? 이삭의 아내 리브가라고 하는 여인을 구하게 됐습니다.

가계의 도표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데라라고 하는 사람에게,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나홀은 하란의 딸 밀가와 결혼해서 리브가와 라반을 낳았는데, 바로 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해서, 나홀과 밀가 사이에서 태어난 리브가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의 조카 딸 리브가를 신부감으로 맞이하게 된 것이죠. 나중에 그 이삭이 낳은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딸들인 레아와 라헬이라는 사촌과 결혼하게 되는 친족 간에 결혼하는 내용이 창세기의 말씀 가운데 기록돼 있습니다.

옛날에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신붓감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지참금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그래서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가서 장인 장모에게 그 지참금을 드리고, 신부를 데리고 오는 것이죠. 마치 신부를 사오는 것처럼, 수많은 예물을 드리고 그 지참금을 드리고, 그 신부를 데리고 오는데, 아브라함의 종은 먼 길을 떠나서 어이 리브가의 집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리고 리브가를 이삭의 하나로 맞이하게 되기 위해서 그 신부를 데리고 돌아와 결국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창세기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 창세기에 있는 결혼 이야기, 이삭이 어떻게 리브가와 결혼하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전체를 다 살펴보진 않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결혼하는 것도 이런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고, 이러한 결혼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가 않습니다. 성경에 나왔으니까, 성경이 하나의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따라야 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도 창세기에 기록된 이 방식 그대로 우리가 따라야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에는 영원 불변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원리가 이 성경 안에 들어 있기도 하지만, 그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원칙이 전달되는 그 이야기는 문화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잘 분별해야 됩니다. 과연 이것이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법칙인가? 아니면 이 당시에 특수하게 그 문화권 안에서 통용되었던 그런 이야기인가를 구분해낼 줄 아는 것이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창세기에 나와 있는 이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면 잘못된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자기들이 서로 사랑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신붓감을 어디서 데리고 와서 결혼을 시키면 결혼을 했듯이, 오늘날에도 서로 연애 결혼을 할 것이 아니라, 꼭 부모님이 짝을 찾아주면, 그 짝과 결혼해야만 한다 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그게 성경의 원칙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결혼할 때 오늘 이삭과 리브가는 이방 민족에게서 아내를 구한 것이 아니라, 친족 간의 친족 내에서 결혼을 한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한국 사람이 타 민족과 타인종과 결혼하면 안 되고, 오로지 우리 인종 같은 민족끼리만 결혼을 해야 된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도 역시 잘못된 결론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문화적인 것이었을 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과연 영구불변한 하나님의 법칙인지, 그 당시에서 통용되었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상황 가운데 있었는지, 이것을 잘 구분해야 되는데, 그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소위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성경을 읽으면서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걸 많이 혼동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기를 낳을 때 무통주사를 맞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을 하는 그런 사람도 있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이 성경 말씀 가운데, 우리가 영원히 받아들여야 될 말씀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문화적이고 그 당시의 상황 가운데서 주어진 것들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 말씀을 전체적으로 잘 분석하고 종합해서 어떠한 것은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될 영원불변한 진리인지, 아닌지, 이것을 잘 구분하는 훈련을 우리가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무튼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사명을 받아서 신붓감을 찾기 위해서 먼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그 과정 가운데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누구냐면 리브가라고 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것이죠.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절대로 내 고향 내 친족 중에서 아내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제일 먼저 만난 여인이 누구냐면, 바로 아브라함의 조카를 만나게 된 겁니다. 아주 잘 된 거죠.

뿐만 아니라 리브가의 인품을 테스트해봤습니다. 과연 이 여인이 얼굴만 이쁜 여인인지, 정말 성품이 온화하고 정말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인지를 테스트해 봤는데, 물을 좀 달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먼 길을 오느라 고생한 낙타들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참 마음이 너그럽고 참 사랑이 많은 그런 여인이라고 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인이라고 하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이 아브라함의 종은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내가 지금 이삭의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서 먼 길을 오게 되었는데, 정말 내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정말 제대로 된 신붓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반신반의하면서 그 먼 길을 오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정말 좋은 신부감을 첫 번에 발견하게 되어서 너무나도 좋았던 것이죠.

이 리브가라고 하는 여인을 만나게 됐을 때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렇게 이 리브가라고 하는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은 어떻게 해서 이 리브가라고 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이 종이 잘 찾아와서 정말 아이디어를 잘 내가지고 계획을 잘 세워가지고 좋은 신부감을 찾기 위한 아주 철저한 계획과 방법을 잘 써서 이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 발걸음을 잘 인도해 주셨기 때문일까요? 정답은 둘 다입니다. 둘 다.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지시를 잘 받고, 그 지시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그 아브라함의 친족을 찾아간 겁니다. 그런데 그 가는 길 가운데 하나님께서 잘 인도해 주셔서, 그 리브가를 아주 잘 만나게 된 것이죠. 그때 이 아브라함의 종이 고백한 내용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24장 26절에서 27절에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였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가 이 리브가를 만나게 된 것이 내가 똑똑하고 내가 계획을 잘 세워서 그래서 내가 잘났기 때문에, 이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이 좋은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발걸음을 인도한 게 누구라? 바로 하나님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의 종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다고 고백했는데요.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러니까 이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의 집에서부터 떠나서 갈 때와 우르 지방 저 먼 지방까지 가서, 그래서 이 리브가의 집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이리 와라. 그쪽으로 가지 말고, 이리 와라. 이 길로 가라. 아니 그 길로 가지 말고, 요리 가라.” 하나님께서 그 가는 길목 길목마다 두 갈래 길이 있으면, 이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하나님께서 친절하게 그 아브라함에게 매 순간순간마다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친히 말씀해 주셔서, 그래서 이 아브라함의 종이 이곳까지 왔다고 하는 그런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마치 여행 가이드처럼, “깃발 보고 따라오세요. 깃발 보고 따라오세요. 아저씨, 딴 짓 하지 말고 깃발 보고 따라오세요.” 그렇게 여행 가이드가 말하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종에게, “너 다른 길로 가지 말고, 나를 따라와라. 나를 따라오면, 내가 이 리브가를 보여줄 테니까, 나를 따라와라.” 해가지고, 그렇게 아브라함을 아브라함의 종이 이 리브가를 만나게 된 것일까요?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주로 여행사를 활용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여행 가이드를 사용하게 되는데, 여행 가이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3박 4일 정도 되는 그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해외 여행을 가는데 그 나라의 지리도 잘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제대로 효과적으로 구경을 하기 위해서는 그냥 가면 안 되는 겁니다. 반드시 가이드가 있어서, 그 가이드가 미리미리 다 스케줄도 다 잡아놓고, 다 차량도 다 대절해 놓고,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다 통역을 해가면서 안내해줘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아오게 되는 것이죠.

지금 아브라함의 종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마치 여행 가이드처럼 “이리 와라. 이리 와라.” 해서, 마치 별이 나타나서 동방 박사의 길을 인도해 준 것처럼, 아브라함의 종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느냐고 묻는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성경에는 아무런 그런 내용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제가 추측하기에는, 아마도 이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아요. 갈대아 우르를 향해서 걸어가는데,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될지 잘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 동네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을 겁니다. “어디로 가야 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만난 사람들이 “저리로 가세요.” 알려주었을 것이고, 지도를 보면서 그 지도의 길을 따라가는 방법을 사용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어려움을 만났을 수 있었을까요. 어려움이 하나도 없었을까요? 아마 어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오는 과정 가운데,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소낙비가 내려서 정말 힘들었을 수도 있겠고, 밤중에 아주 추운 그 밤중에 잠을 자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중간에 강도를 만나서 지체되는 일도 있었을 수 있었을 것이고요. 가다가 한참 가다가 보니까, “이 길이 아닌가배.” 하면서 돌아서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모릅니다. 모르지만 그런 과정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도 충분히 그렇게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한참 길을 가고 있는데 다리가 부러졌을 수도 있겠고요. 낙타가 가다가 쓰러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한참 갔는데 길이 딱 끊어져버려가지고, “이 길이 아닌가 봐.” 다시 돌아나와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가야 하는 그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도 발생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건 순전히 제 상상입니다. 상상이지, 성경에 정말 그렇게 기록돼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리브가를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그리고 제일 처음 본 그 여인이 정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신붓감이라고 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아브라함의 종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지금까지 자기가 걸어온 그 모든 여행길이 다 이해가 되는 것이죠. 다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때는 지체하는 것 같았고, 그때는 헛수고를 해서 다시 돌아와야만 했었고,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빨리 가지 못하는 그런 지체하는 상황들이 발생해서,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웠는데, 그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타이밍에 리브가가 나오는 바로 그 순간에 아브라함의 종이 가서 그 우물에서 만나는 거에요.

그때 만일 그 지체함이 없었다라고 한다면, 만일 그때 그 실패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때 열이 나서 하룻밤 가지 못하고 머물러야만 했던 그 상황이 없었다라고 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 만나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그 모든 과정들이 다 한꺼번에 이해가 되면서, 지금 이 시간에 리브가를 정확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 저런 어려움까지 다 사용하셔서, 리브가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셨구나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과거의 모든 것들이 다 이해가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향해서 성실과 인자하심을 보여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를 돌아보게 될 때, 우리는 감사의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왜 그렇습니까? 로마서 8장 28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라.” 모든 것이 좋았던 일, 행복했던 일뿐만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까지도 다 협력하여 하나님의 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종종 과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해 오셨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들의 삶을 형성하고 우리들의 인격을 더 성숙하게 만들고 믿음을 강화시켜 왔는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이 내가 혼자 걸어온 발걸음이 아니라, 한 치도 오차가 없으신 그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인도하셨음을 발견하고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맥주 감사 주일로 지키는데요. 교회 절기 가운데 감사절이 두 번 있습니다. 하나는 11월에 있는 추수 감사절과, 7월 첫 주에 드리는 맥주 감사 절기가 있는데, 둘 다 농사를 짓고 그리고 수확을 걷은 것에 감사하는 날로 시작된 절기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일 년에 두 번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매 순간순간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중은 자신의 여행을 편도 여행을 마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는데요.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 때 고난을 이겨내는 능력이 됩니다. 과거의 고난도 슬픔도 좌절도, 결국에는 감사의 조건들이 될 수가 있고, 그래서 감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직 우리가 결과를 보지 못한 미래에도, 지금의 고난과 좌절과 아픔들이 사실은 결국에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임을 믿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욥은 엄청난 충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들이 다 날아가 버리고,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다 죽어가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욥은 1장 21절 말씀에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신앙은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한 아버지, 그 어느 것도 아깝지 않고,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위하여 남겨두지 아니하고, 다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외면하고 그냥 방치해 두고, 내 팽개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좋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려워할 것도 슬퍼할 것도 낙망할 것도 없고, 실패할 실패하는 것도 좌절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해야 될 유일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삶 찬양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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