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성경연구소

동지

WebServant 2011.07.14 23:04 조회 수 : 1055

얼마 전 교우로부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을 빌려 읽었는데, 그 책을 읽을 때, 나는 일종의 죄책감에 짓눌렸다. 남들이 그렇게 감동적으로 읽었다는 소설을 읽어나가는 것이 내겐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적어도 내게는 지루하고, 책 읽는 재미가 별로 없는 책이었다. 이런 느낌을 가지는 것은 마치 엄마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무제한의 사랑을 베풀어주셨건만, 나는 엄마를 소재로 한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자책감이라고 할까.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그런 솔직한 느낌을 조심스럽게 썼다. 감정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비추어질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서 들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책에 대한 열변을 토하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내 글을 읽고 난 후에 지인이 남긴 첫 번째 반응은 “저도..지루해서 책은 끝까지 다 읽지 못했습니다”였다. 그의 반응을 읽는 순간 나는 마치 면죄부라도 획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만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준비해 오지 그냥 운동장에 서게 될 때 그 불안함, 하지만 나처럼 똑같이 체육복을 준비하지 않은 친구들이 몇 명 더 있을 때 느꼈던 안정감이라고나 할까.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게 큰 위안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해병대에서는 기수열외 때문에 괴로워하던 병사가 사고를 쳤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아무도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고 무시당하는 것은 그만큼 참기 힘든 일일 것이다. 왕따나 이지매 같은 말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동료압력(peer pressure)이 있다. 사춘기의 예민한 청소년들이 친구들에게서 따돌림 받지 않으려는 압박감은 참으로 크다. 무엇이 옳은가보다도 다수의 선택이 무엇인가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동료가 있다면 악을 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가 자신만 먹지 않고 남편인 아담에게 준 것도 이런 맥락에서가 아닐까? 죄를 지으면서도 뻔뻔할 수 있었던 라멕은 가인이라는 심정적 동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거짓말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부가 서로 죄를 짓는데 의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타락의 동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모두가 함께 잘못하면 전혀 잘못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공의에 기준을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기준을 두면서, 모두가 타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과속하는 도로에서 내가 과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겁낼 일이 아닌 게 되는 것처럼. 그러다가 갑자기 앞에 가던 차들이 모두가 속도를 줄이게 되면, 지금까지 아무런 느낌 없이 과속하며 차를 몰던 사람도 갑작스럽게 조심하게 되면서 속도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미국의 범죄심리학자인 제임스 윌슨 과 조지 켈링이 1982년 3월에 공동발표한 '깨진유리창'이라는 글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사회무질서에 관한 이론인데, 치안이 허술한 골목에 보존 상태가 동일한 두 대의 자동차를 보닛을 꽉닫지 않은 상태 채로 1주일간 방치해 두었다. 그 중 한대는 고의적으로 창문을 조금 깨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관찰해보니, 다른 차는 별 이상이 없었던 반면,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는 그 상태로 방치된 지 겨우 10분만에 배터리가 없어지고 연이어 타이어도 전부 없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낙서나 투기, 파괴가 일어났고 1주일 후에는 완전히 고철 상태가 될 정도로 파손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이론에 근거해서, 라토가스 대학의 겔링 교수는 뉴욕의 지하철 범죄를 줄이기 위해 낙서를 지우라고 제안했다.  그 결과 뉴욕 지하철의 범죄 발생율이 감소하기 시작해서, 75%나 급감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망가져 있는 모습 속에서 죄를 더 지어도 좋겠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시편은 이렇게 노래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악인과 함께 어울리며 죄인의 길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잠언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잠 1:10).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 사이에 있다보면, 악을 행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선을 행하는 일에 서로 동지가 되어주면 좋겠다. 믿음의 길을 걸을 때, 헌신의 길을 걸을 때,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노력할 때, 믿음의 동지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쉽게도 믿음의 길을 가려고 할 때, 동지들이 등장하지 않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제자들은 그를 버리고 모두 도망갔다. 군중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요구했다. 심지어 같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마저도 예수님을 향해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믿음의 동지들이 되어서, 선을 행하는 일에 낙심하지 않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악한 길을 갈 지라도, 선한 길의 동반자들이 되어서,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이 일으켜 세워주면 좋겠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신실하게 사는 것이 외롭지 않은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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